대지도론 7.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한다. 불취어상 여여부동하라.
우리 중생들이 어떤 과정으로 번뇌를 일으켜 집착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번뇌가 생겨나는 그 과정 역시 잘 알아야 합니다.
금강경의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의 내용과 일맥 상통합니다.그 내용을 살펴보면,
예리한 근기를 지닌 이는 부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다툼을 일으키지 않거니와
둔한 이는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하는 까닭에 다툼을 일으킨다.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이 끝내 공한 경지인 까닭에 다툴 곳이 없다.
만일 끝내 공한 가운데서 다툼을 얻을 수 있다면 끝내 공하다 할 수 없다.
끝내 공하다 함[畢竟空,필경공]은 유무(有無)의 두 일이 모두 멸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경』을 다툼이 없는 곳이라 한다.
- 대지도론/용수보살/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동국역경원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하는 까닭에>
중생은 형상, 즉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게 곧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모습/형상...........즉 상[相]이란,
단순히 눈에 보여지는 그런 형상/모습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물들의 그 고유한 특성을 의미합니다.
색성향미촉법
보여지는 빛깔/모습도 하나의 상이고,
소리 역시도 하나의 상이고, 냄새/맛/감촉/법 역시 각각의 상이 있습니다.
지수화풍 사대 역시,
지대는 단단한 상[相]이고,
수대는 축축하고 젖는 상[相]이고
화대는 따뜻한 상[相]이고,
풍대는 움직이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이렇게 각각의 성질/특성.....즉 상[相]이 있습니다.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하는 까닭에>
중생은 모습/형상, 즉 상[相]을 취하여 집착합니다.
쉬운 예를 하나 들자면,
우리가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때,
마음 속에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고 나서 그에 대한 적개심을 키웁니다.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 짝사랑하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고 나서, 마음속으로 더더욱 집착하게 되지요.
또 온라인 상에서도 댓글로 어떤 내용을 주고 받을 때 역시
우리는 저 너머에 상대방이라는 어떤 실체가 있다고 여깁니다. 마치 진짜처럼..
또 마음 속에 아주 끔찍한 귀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때도 역시 그게 진짜인줄 알고 두려움이 치솟을 수도 있지요.
왜 이렇게 상[相]을 취할까요?
그것은 그런 모습, 즉 상[相]이 진짜라고 여겨서 그렇습니다.
이게 무명입니다.
보여지고 들려지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진짜라고 여겨서,
그걸 취하고 그로 인해 집착합니다.
만약 그런 상[相]이 가짜란걸 알면 마음에 떠올려지지도 않고,
설사 떠오르더라도 무관심하게 될 겁니다.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하는 까닭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기억해서 마음 속에 떠올리는 때는,
그 사람의 모습/형상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합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떠올린 그 사람의 모습/형상은 진짜가 아닌 가짜지요.
가짜인걸 알면 그런 모습을 떠올려도 아무렇지 않을텐데,
가짜인걸 모르고 진짜인줄 알기에,
마음 속에 떠오른 그 모습에 마음이 불쾌해지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떠올리는 그 사람의 모습은, 과거의 모습입니다.
과거에 본 기억을 토대로 그 사람의 모습을 마음에 떠올리지요.
그러나 그 사람의 몸은 이미 다르게 변해 있습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그 몸은 이미 과거의 지나가버린 몸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건 매 순간 순간 변화해서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는데,
우리가 마음 속에 떠올리는 상[相]들은 모두 과거의 것이라 죽어 있는 것들 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매 순간 순간 경험하는 그 모든 상[相]들도 역시 실체가 없는 허상입니다.
그 모든 상[相]들은 고정되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딱 이거다...라고 할만한 상[相]은 없습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네가지 상이 있는데,
그중에 두번째인 인상...즉 사람이라는 상[相].....
만약 사람이였던 존재가 죽어서 축생 중 하나인 벌레로 태어났다면,
사람의 모습이였던 존재가 다시 벌레가 되어버렸으니,
사람이라는 상[相]에 그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인상...즉 사람이라는 상[相]...이것은 우리 중생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지요.
실제 사람이라는 실체로써의 상[相]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엔 어떤 실체로써의 사람이 있다고 여기는데,
그런 건 없고 있는 것은 그저 변화하는 오온인 색수상행식 뿐입니다.
본래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실체로써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하는 까닭에>
상[相]을 취하지 않아, 여여부동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불취어상 여여부동의 그 방법...
그것은 그 모든 상[相]이 공함을 알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에 실체가 없어 공함을 안다면,
보여지고, 들려지고, 생각되어지는 그 모든 것들을 취하지 않게 됩니다.
취할게 없다는게 공이지요.
그래서 위의 대지도론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이 끝내 공한 경지인 까닭에 다툴 곳이 없다.
만일 끝내 공한 가운데서 다툼을 얻을 수 있다면 끝내 공하다 할 수 없다.
끝내 공하다 함[畢竟空,필경공]은 유무(有無)의 두 일이 모두 멸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경』을 다툼이 없는 곳이라 한다.
공하기에 형상/모습, 즉 상[相]을 취하지 않습니다.
상[相]을 취하지 않으면 번뇌 역시 생기지 않게 됩니다.
상[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그 상[相]을 진짜로 여겨 취하는 우리 중생들이 문제지요.
금강경의 명언......<불취어상 여여부동 (不取於相 如如不動) >.....
만약 부처님과 대보살님과 같으신 분들께서,
중생이라는 상을 취하지 않으신다면 과연 우리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수 있을까요?
그건 아마도 불가능할 겁니다.
그래서 불보살님들께서는 중생이라는 것 역시 실체가 없지만,
억지로 상을 취해서 아무것도 없지만, 자비심을 베풀어 중생을 제도하시리라 믿습니다.
대지도론 7.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한다. 불취어상 여여부동 (不取於相 如如不動) 하라.
[출처] 대지도론 7. 모습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한다. 불취어상 여여부동하라.|작성자 마하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