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나이미는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을 타고 다니면서 당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당신의 마음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당신은 몸과 마음이 아니고 몸과 마음은 당신을 감싸고 있는 배네옷이다. 당신은 당신의 배네옷을 당신 자신이라고 오해함으로써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신은 그러한 당신의 불행을 자비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경우에도 당신이 오해하는 것처럼 당신 자신이 배내옷인 몸과 마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므로..."
미르다드의 서, 제4장 인간은 배내옷에 싸인 신이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인간은 배내옷에 싸인 신이다. 시간은 배내옷이다. 공간은 배내옷이다. 육체는 배내옷이다. 모든 감각기관도, 그리고 그 감각기관에 의해 지각된 모든 사물도 마찬가지로 배내옷이다. 어머니는 배내옷은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기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하루하루 바래가는 자신의 배내옷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은 늘 유동적이다. 따라서 그 같은 의식이 표현된 언어의 의미는 결코 명확하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따라서 인간의 이해는 오리무중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균형을 잃고 있다. 이것은 세 배로 증폭된 혼란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구원을 간절히 바란다. 인간의 고뇌로 가득 찬 절규는 몇 겁(劫)에 걸쳐 울려 퍼지고 있다. 대기는 인간의 탄식으로 무겁고, 바다는 인간의 눈물로 짜다. 땅에는 인간의 무덤이 새겨져 있으며, 하늘은 인간의 기도로 귀가 먹먹하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아직 '나'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기가 배내옷에 싸여 있듯이 인간은 '나'라는 배내옷에 싸여 있다.
'나' 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은 '말씀'을 둘로 분열시킨다. 한쪽엔 인간의 배내옷이 있으며, 다른 한쪽엔 죽지 않는 신성(神性)이 있다. 인간은 진정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어떠한 힘도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어 놓을 수 없다. 신은 그것을 금지했다. 인간은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나눌 수 있다고 공상하는 데 불과하다. 그리하여 어린 아이인 인간은 무한의 '대자아(大自我)'가 자신의 존재와 적대하고 있다고 믿고서 그와 싸울 태세로 전쟁에 나선다.
이 대등할 수 없는 싸움에서, 인간은 육체를 갈기갈기 찢고 피를 강물처럼 흘린다.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신은 그 모습을 다정하게 지켜본다. 왜냐하면 인간이 찢어 놓은 것은 두터운 배일에 불과하고, 인간이 흘린 것은 자신이 '유일자(有一者)' 와 하나임을 보지 못하게 하는 쓰디쓴 담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싸우고, 피를 흘리고, 정신을 잃고,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눈을 뜨고 '나'의 갈라진 틈을 스스로의 육체를 통해 합일시키고, 그 갈라진 틈을 스스로의 피로 봉인하는 것이.....
벗들이여, 이 때문에 그대들은 '나'를 사용할 때는 주의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아주 현명한 경고다. 왜냐하면 그대들이 쓰는 '나'라는 말이 아이만이 아니라 배내옷까지 의미하는 한, 또 그대들 입장에서 '나'가 도가니라기보다는 오히려 체인 한, 그대들은 단지 쓸데없는 것을 체질해서 마침내 '죽음'과 고통과 고뇌를 초래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