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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여러 가지 다양한 가르침이나 이설에 대한 판단의 문제
(영적 분별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 얘기를 들으면 그 얘기가 맞는 것 같고, 저 얘기를 들으면 그 얘기도 맞는 것 같을 겁니다. 여러 가지 설과 가르침이 많이 등장할테고 그 중에는 진짜도 있고 거짓도 있습니다. 성서의 예언대로 거짓 그리스도, 거짓 예언자들이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다들 진리니 사랑이니 얘기하겠지만 거짓 가르침은 다 맞는 얘기를 하지만 결정적인 한두 가지를 왜곡함으로써 순진한 영혼들을 그릇된 길로 빠뜨리려고 합니다. 요한의 가르침대로 내게로 다가오는 모든 영과 모든 가르침을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시험하는 한가지 방법은 내면의 선생에게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 대답을 얻을 수 없다면 언제나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혼탁한 의식 때문에 그 대답이 분명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질문에는 반드시 대답이 옵니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도 옵니다. 그러니 참을성 있게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
이 세계는 상대적 세계라고 합니다. 즉 세계를 봄에 있어서 절대적인 관측점(부동의 관측점)이 없다는 얘기지요. 즉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야라고 하는 환상 세계의 현실이지요. 나라고 인식되는 것조차도 부단히 변화하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가치 판단이나 시각도 일정치 않습니다. 그래서 선악의 문제도 상대적인 문제 즉 판단의 기준에 따라 왔다갔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악을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건 잘못입니다. 분명히 상대적인 선도 있고 상대적인 악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선도 있고 절대의 악도 명백히 존재합니다. 사람은 그 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 결과는 '삶이냐 죽음이냐' 둘 중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선악의 문제를 상대적인 것으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우리 존재의 긴급한 문제를 망각하게 하려는 어둠의 논리입니다. 모든 게 상대적이라면 선을 선택하건 악을 선택하건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건 그 결과도 상대적이고 임시적인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선택도 무의미할 것입니다. 이 말은 가만히 있는 거나 잘해보겠다고 바둥대는 거나 매양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문제입니다. 악을 행하면 그 만큼 자신에게 고통이 돌아오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또한 선한 공덕을 쌓지 않고는 깨달음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깨닫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부처가 될까요? 중생이 가만히 있으면 부처가 됩니까?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퇴보하는 게 현실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계를 '불난 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가 안고 있는 문제의 다급함, 긴박함을 표현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지금 악을 마구 쌓거나 또는 아무 선택도 하지 않고서 시간을 허비할 정도로 한가한 입장이 못된다는 겁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다음을 기약할 처지가 못된다 이겁니다.
상대적 선악의 논리는 그런 긴급성을 잊게 하려는 논리입니다. 당장의 선택이 곧바로 삶이냐 죽음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급박한 현실의 문제를 잊게 하려는 것이지요. 이 세계는 한마디로 환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세계가 환으로 보이는 것은 세계가 문제라기보다 관찰자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각의 왜곡은 성서에서 말하는 타락 사건 이후라고 대사들은 말합니다. 그 전에는 절대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불가의 가르침하고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에 세상이 삐딱하게 보인다는 얘깁니다. 타락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점차적으로 조금씩 진행되어 온 일이라고 대사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면서 절대적인 시력도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인식의 절대적인 기준점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의 근원인 신입니다. 그 신을 뚜렷이 볼 수 있는 자라면 모든 것을 관측함에 있어 절대적인 관측점이 확보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의 에너지를 이기적 목적으로 남용함으로써 그 남용된 에너지는 신과 인간 사이를 가리우는 에너지의 베일(energy veil : evil 악)을 형성하게 되었지요. 이 에너지 베일로 인해 신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대신 남용된 에너지로 형성된 환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것이 오랜 세월 지속되다보니 완전히 길을 잃게 된 것이지요. 에너지 베일이란 것에 대해 얘기를 좀 더 해보지요. 누군가에 대해 자그만 불만을 품고 그냥 방치하면 그 불만이 점점 커지는 경험을 해 보셨을 겁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에 대한 불만이 커지게 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전에는 친한 친구였는데 지금은 마치 나를 괴롭히려고, 나를 곯리려고 존재하는 사람같이 보이게 될 겁니다.
그 사람은 물론 나를 괴롭히려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요.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그렇지만 자신은 상대방을 그런 사람으로 봅니다. 그 시작은 그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불만으로 인해 상대방의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게 된 거지요. 이처럼 자기가 만든 이미지가 현실로 보이는 것을 '환상'이라고 하지요. 사람들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환상을 만들어 왔지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짜인지 거의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게 빛에 속한 것이고 어느게 어둠에 속한 것인지도 알기 어렵게 되었지요. 그러니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된 겁니다. 요한 계시록에 예수의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네가 차거나 더우면 너를 삼키겠다. 그러나 네가 차지도 덥지도 않으니 너를 뱉노라' 상대적 세계관에 빠져들다 보니 사람들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빠진 것이지요. (중용은 미지근한 상태가 결코 아닙니다. 차거나 덥다는 것의 뜻은 분명한 선택을 말합니다.)
부정적인 정서는 때로는 자석처럼 외부에 떠도는 비슷한 성향의 기운을 끌어들여 그 정서를 증폭시켜 버립니다. 예를 들어 사소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았을 겁니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한 부부 싸움이 가스통을 폭발시키는 데까지 이어져 두사람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도 죽게된 사건이 있었지요. 여기서 일어나는 것은 조그만 분노가 외부에 떠도는 분노의 엔터티들과 결합하여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발전한 경우지요. 이럴 때 사람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때로는 나중에 자기가 왜 그랬는지조차 모릅니다.
외부에 떠도는 분노의 엔터티들은 사람들이 분노의 에너지가 엉겨서 생성된 생명체지요. 분노의 엔터티들은 분노를 먹고 삽니다. 사람들이 분노를 일으키지 않으면 굶어 죽겠지요. 그래서 엘 모리아 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가 머리에 깃들게 하더라도 둥지까지 틀도록 하지마라." 여기서 새는 의심이나 두려움, 분노같은 악들이지요. 그런게 전혀 안 생기도록 할 수는 없을 지라도 그게 나의 세계 안에 머물게 내버려두어선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로 인해 더 큰 악이 생겨서 나중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되는 일이 생길 수 있지요. 자기를 늘 살피는 일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지요.
타락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지요. 여기부터 하는 얘기는 인류의 상고사에 관한 건데 저 자신도 정리가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하는 건 악의 문제를 다룰 때 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타락한 천사들'과 그들의 자식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에 비극과 파괴가 되풀이 되어온 것은 인류만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독스럽게 잘못 만들어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결론은 사람들 속에서는 사람과는 그 기원을 달리하는 지극히 사악한 존재들이 숨어있어서 인간들의 모든 선한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나온 결론입니다.
이들 사악한 존재들은 외관은 우리와 똑같으나 그 본성이 천사였는지라 여러 면에서 우리보다 능력이 뛰어
나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상층부에 주로 포진해왔습니다. 그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대중을 조종하여 사람들을 자기들의 지배하에 둡니다. 그들의 목표는 '영혼의 파괴'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끄는 길은 그 외관이 선해 보일지라도 종착점은 파멸로 이르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인류를 속이고 조종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인류는 이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존재와 그 영향력을 무시한 채 지금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들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들의 파괴 음모를 무시한 채로는 어떠한 긍정적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사람들의 타락은 창세기를 보면 '뱀'이라고 알려진 존재의 유혹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지구에서 진화하는 영혼들을 가리킵니다. 오컬트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얘기할 때 '근종(root race)'라는 용어를 씁니다. 근종은 물질 우주 속에서 진화를 위해 우주의 중심인 대중앙태양에서 나온 일단의 영혼들을 말합니다. 근종은 각기 다른 진화적 특질이나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의 진화를 관리하는 존재를 '마누'라고 합니다. 근종은 현재 여섯 번째 근종까지 등장했고 이제 일곱 번째 근종이 등장하는 시점입니다.
신지학에 의하자면 이 근종들은 이곳에서 진화를 마치면 보다 상위의 혹성으로(예를 들면 금성이나 수성) 가 그곳에 진화를 한다고 합니다. 역으로 지구의 근종들은 화성같은 곳에서 진화를 마치고 왔다는 얘기지요. 대사학에서는 근종은 우주의 중심에서 곧바로 와서 진화를 마치면 대중앙 태양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그럽니다. 어떤게 맞는 얘긴지 저로서 알 수가 없군요.
어쨌든 근종은 지구라는 토양 위에 일단의 영혼들이 진화를 마치고 돌아간다는 개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진화되어가는 게 아니라 그런 진화와 관계없이 갑자기 진보된 영혼들이 지구상에 무더기로 등장했다가 진화를 마치고 지구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얘기지요.
대사학에 의하자면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근종은 이 지구에 와서 무사히 진화를 마치고 모조리 승천했다고 그럽니다. 이들이 살던 몇 백만년전의 지구는 이들 인간들의 의식의 순수성을 반영하여 지구 자체가 거의 투명했다고 하는군요. 이들의 몸도 지금의 사람들하고 사뭇 달랐을테지요. 그리고 먼저 말씀드린 대로 윤회라는 과정이 필요없었구요. 지구에 내려와서 천년이나 이천년 정도 공부하고서 승천하여 신에게 돌아가곤 했다고 합니다. 이 고대 근종들은 그들과 신을 이어주는 실버코드의 지름이 무려 3미터 가까이 되고 그들의 세줄기 불꽃도 온 몸을 다 감쌀 정도로 컸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흘러오는 신의 에너지는 그야말로 무한했습니다. 지금으로 봐선 초인이라야 가능한 일들을 누구나 일상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이들의 문명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음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지구는 그렇게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외계에서 낯선 존재들이 지구를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불을 뿜는 물체를 타고 왔습니다. 순진한 인류는 이들을 무심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 '타락한 천사들'이었습니다. '뱀serpent'이라 불리는 자가 바로 이들 타락한 천사들 중에 한 무리인데, 이들은 신의 지혜를 관장하는 '조피엘(Jopiel)' 대천사의 휘하에서 일탈한 천사들입니다. 그래서 비할바 없이 교활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조피엘이란 대천사가 사탄이란게 아니라 뱀이란 천사들은 조피엘이 이끄는 천사의 집단 중에서 빠져나가 못된 짓하는 천사들을 말합니다. 조피엘 대천사 자체는 이런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들 '타락한 천사'들은 어디서 생긴걸까요? 요한 계시록에 보면 루시퍼가 자기를 따르는 천사들을 데리고 하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대천사 미카엘이 이끄는 군사들에게 패하여 천상에서 추방됩니다. 이들이 바로 '타락한 천사(네피림)'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에텔계입니다. 이들이 추방된 곳은 계시록에 '땅'과 '바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육계와 아스트랄계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영계 우주에서 물질계 우주로 추방되었다는 것이지요.
루시퍼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그의 교만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침의 별'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대천사였습니다. 루시퍼란 이름의 뜻은 '빛을 담은 자'라고 하는데 이는 그가 담당한 신의 빛에서 연유한 이름이라 합니다. 그는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스스로의 영광에 도취되어서 자신을 '뭇 별들보다' 높이려 했고, 하느님의 자녀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길 거부했습니다. 여기서 '뭇 별들'은 엘로힘을 말합니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천사들을 꼬여서 스스로를 최고 신으로 높이려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신이 완전하다면 그의 창조도 완전했을 터인데 왜 루시퍼에게서 교만함이 생겼을까? 어쩌면 신이 완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요. 그걸 따지는 건 여기선 쓸데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루시퍼의 모토는 '내가 지배하리라'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왕중에 왕이라고 합니다. 모든 피조물의 참된 지배자는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라는 얘긴데 루시퍼는 그리스도 대신 자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악의 특성은 자기가 신을 대신하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신이지요. 아까 뉴스를 보니까 김정일 장군의 축지법 찬가를 여인들이 부르더군요 이처럼 악은 사람들의 내면에 계신 그리스도를 대체하려 듭니다.
물질우주로 추방된 천사들은 잘못을 뉘우치기보다는 복수심에 불타 물질계에서 진화하는 신의 자녀들을 파괴하는데 골몰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고도로 발달된 물질과학을 이용하여 우주를 돌아다니며 신의 자녀들이 진화하고 있는 혹성들을 하나 하나 정복해 나갑니다. 이들이 물질 과학에 뛰어난 이유는 그들의 대장인 루시퍼가 그 방면에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그럽니다. 지구에 출현하는 UFO,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우주 모선 등은 이들이 타고 다니는 물건들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에도 손을 뻗쳤습니다. 이들의 농간에 의해 타락하여 파괴된 혹성이 지구에 두 개 있다고 대사학에서 말합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보면 운석의 무리가 있는데 그것이 파괴된 혹성의 잔재라는 겁니다. 그 자리에 혹성이 있어야 한다는 건 천문학자들의 계산 결과 나온 얘깁니다.
파괴된 혹성 중에 하나는 말덱이라 하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물질과학을 남용하여 핵전쟁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하는군요. 또 다른 혹성은 헤드론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영혼들은 쾌락에 너무 탐닉하다가 자기들의 혹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자기 혹성을 잃은 영혼들은 상당수가 최후의 심판 속에서 소멸되었고, 일부만이 다른 혹성에서 환생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 혹성의 진화에서 뒤쳐져 다른 혹성에 태어난 영혼들을 래가드(laggard)라고 부르는데 말덱에서 온 래가드종은 지구에 유전자 조작 기술을 퍼트리고 헤드론에서 온 래가드종들은 지구에 쾌락주의를 퍼트리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하는군요. 이들이 지구에 악을 퍼트리고 확산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지만 주된 악은 이들이 아니라 아까 말한 '타락한 천사'들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지구에 도착하는데 그것은 지금부터 최소한 50여만년전 이상의 얘깁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들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았지만 자신들의 빛으로 이들을 교화시켜 보겠다는 선한 의도로 이들을 받아들였다는군요. 그러나 인류는 오히려 이들의 꾀임에 말려들어가 이들이 걷는 악의 길에 빠지게 됩니다. 성서에서는 뱀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느님처럼 똑똑해 질 수 있다고 꼬십니다. 선악과는 마야세계에 관련된 과학을 말합니다.
여기서의 과학은 道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쾌락이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신의 에너지를 쓰는 방법 같은 것이지요. 신은 그 길로 가지말라고 금합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경고하지요. 즉 마야의 길에 빠지면 신의식의 죽음을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였지요. 즉 사람의 의식 속에서 신이 죽게 되리라는 얘깁니다. 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상태지요.
이때 뱀은 얘기하지요. 신은 똑똑해지는 비밀을 자기만 꼬불치고 있는 거라고. 그 과학을 따라해보면 금방 신처럼 될 수 있다고 꼬시지요. 지구에서 진화하는 영혼들의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신처럼 되는 것이지요. 왜냐면 사람은 신의 자녀들이고 어버이를 닮으려는 거야 자식의 본성이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타락한 천사'들은 똑같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이거 한 번 먹어봐라. 이대로 한 번 해봐라. 금방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금방 신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금방 성공할 것이다. 금새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
이들은 비전(이니셰이션)의 사다리를 단숨에 건너 뛸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자기들의 방식은 우주법칙에 예외라도 되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그러나 비전의 사다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야 하는 사다리입니다. 밑에 계단을 지나지 않으면 그 다음으로 결코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이어라키는 사다리와도 같습니다. 각 사다리의 계단에는 누군가 있습니다. 위에 있는 자는 밑에 있는 자를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관계는 구루/첼라 관계입니다. 구루/첼라의 관계는 이 우주에서 위에서 밑으로, 위에서 밑으로 에너지/ 빛/의식이 교류되는 방식입니다. 제자가 올라오면 스승은 기쁘게 그 자리를 물려줍니다. 그리고 스승은 다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하이어라키는 영적 세계의 계층구조입니다. 올라갈수록 높은 존재들이 있지요. 맨 꼭대기에는 신이 있습니다. 선에서 즉각 깨닫는다는 것하고 오컬트에서 말하는 비전을 통한 점진적인 성장하고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절대 불변의 영이면서 물질계에서 진화해가는 영혼입니다. 진여를 깨닫는다함은 자신의 실체로서 절대불변의 영을 깨닫는 것입니다. 즉각적인 깨달음하고 점진적 성장하고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견성을 했다고 해서 이 물질계에서의 존재의 목적이 다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한 부분은 절대의 영이지만 다른 한 부분은 아직 미완의 영혼입니다. 견성은 잃어버린 절대적 시각을 회복한 것일 뿐입니다. 견성은 진정한 수행의 시작이라고도 하지요. 다시 말하면 참된 진화의 시작인 거지요.
성장은 자기 초월입니다. 현재의 자기를 넘어서 자꾸 자기를 확대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초월은 우리 존재의 본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장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입니다. 타락한 천사들은 사람의 이런 욕구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걷고 있던 악의 길에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사람들은 발전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에 이끌려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서서히 에너지 베일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과 멀어지고 마야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참스승인 신과 멀어진 인류에게 이제는 자기들이 만든 카르마가 선생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기 카르마를 통해 애써 배워야만 하는 존재, 땀흘려야만 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있어서 삶은 자기가 신의 에너지를 남용하여 뿌린 씨앗을 거두는 고통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능력도 현저히 감소되었습니다. 이전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악에 빠져있으면 그로 인한 에너지 남용으로부터 생기는 카르마가 너무도 커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카르마의 주님들은 인간의 실버코드를 대폭 줄여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의식도 축소되고 수명도 단축되었습니다. 성서의 고대 인물들이 수명이 긴 것은 실버코드가 축소되기 전이지요. 에너지 베일을 그대로 지닌 채로는 신에게 절대로 되돌아 올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로서 환생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타락과 더불어 지구도 점점 빛을 잃어 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구의 생명을 유지하는 빛은 지구에 진화하는 영혼들 안에 거하는 신성의 빛입니다. 그 빛이 줄어들자 지구의 전체적 빛도 감소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환생을 통해 과거의 오류를 시정하고 자기가 만든 에너지 베일을 걷어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타락한 천사들의 지배하에 들게되고 찬란했던 문명은 급속히 무너져 갑니다. 레무리아 대륙의 붕괴는 사람들이 남용해서 생긴 어둠의 무게를 엘리멘탈들이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자 생긴 일입니다. 아틀란티스도 마찬가지 이유로 침몰합니다. 대사학에서 에덴은 타락이전의 레무리아 문명이라고 그럽니다.
이들 타락한 천사들은 인류와 더불어 지구에서 환생하게 됩니다. 신과 멀어진 인간은 나약할 수밖에 없고, 그들 앞에서 이들 천사들은 너무나 거대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배자로 군주로 때로는 신으로 군림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사랑의 신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 때로는 쾌락의 신이었습니다. 그 쾌락은 생명 에너지를 고갈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쾌락이지요. 이들은 또한 사람의 피의 희생을 즐기는 신들이었습니다. 고대에 사람을 제물로 쓰던 종교들은 바로 네피림들을 신으로 받드는 종교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신이 이방인의 종교에 빠지지 말라고 거듭 경고합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영어로 Alien 즉 외계인이지요. 악의 세력이 피를 좋아하는 건 피에는 성령의 에너지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로 에너지를 보충하는거지요. 따라서 이들 악마들은 신의 자녀들의 심장을 찔러 피가 솟구쳐 나올 때 최고의 희열을 느낍니다. 전쟁은 이들이 좋아하는 피의 잔치지요
이들, 타락한 천사들은 자신이 인간 속에서 악을 퍼트리고 그 악에 인간들을 묶어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나온 자식들 또한 그 아비를 닮아 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들 밑에서 인류는 온갖 고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전쟁 놀음에 동원되어 서로를 죽여야 했습니다. 이들 타락한 천사들은 누가 더 악한지 자랑이라도 하듯 사람들을 죽여댔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그냥 죽이는 것은 그 영혼을 파괴하는데 도움이 못된다는 걸 알고 루시퍼는 이들에 다른 제 안을 했습니다. '누가 더 교묘하게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가?' 이제 그것이 그들의 시합이 되었습니다.
영혼을 파괴하려면 그 영혼이 죄를 짓게 만들면 됩니다. 죄에 빠진 영혼은 그 죄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다른 죄를 짓다가 그 죄와 함께 소멸되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네피림들은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저 놈들은 반동분자들이다. 저 놈들은 유대인이다. 저 놈들은 회교도이다. 그러면 평소에 갖고 있던 유산자에 대한 증오심이나 이민족에 대한 증오심이 발동합니다. 여기에다 적당한 자극을 가하면 사람들은 집단적 증오심에 사로잡혀 상대 집단이 자기와 똑같은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 먹습니다.
성서에 보면 이삭과 가라지의 비유가 나오지요. 밀밭에 씨를 뿌렸는데 거기에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 가라지를 그냥 내버려둡니다. 왜냐면 이삭도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와 이삭은 분리되고 가라지들은 다 태워 버립니다. 여기서 가라지는 네피림들과 그들의 자식들입니다. 추수는 심판의 때지요.
* 이 비유에서 이삭은 지구상에서 진화하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여기에 이질적인 무리들이 숨어 들어와 진화의 터전을 더럽힙니다. 이들은 비유에서처럼 수십 만년간 지구에서 활동하도록 허용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이들에 대한 심판자로서 왔음을 선언합니다. 당시에 바리사이파, 사두개파, 산 헤드린 등지에 포진해 있던 '독사의 자식들(사악한 자의 자식들)'은 예수를 처형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우주적 심판의 싸이클을 가동시킨 것입니다. 그 싸이클은 그때부터 시작되어 이제 막 그 종착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무참히 살해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나쁜 카르마를 쌓습니다. 네피림들은 팔짱만 끼고 있으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자기들이 농간에 빠진 줄로 모르고 거듭 거듭 악의 길로 들어갑니다.
* 부룬디나 보스니아 등지에서 벌어지는 민족간의 잔인한 학살 행위의 배후에는 민족 감정을 부추겨 권력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들 민족 집단들의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집단적 카르마지만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자꾸만 악화되는 것은 이런 집단적 증오심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자들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들의 선전 선동에 말려들어 서로를 죽임으로써 카르마의 매듭은 더욱 더 얼키고 설키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지역감정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카르마의 문제지만 그걸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네피림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본질을 알고 자기들에게 도전해 올까봐 모든 기록들을 철저히 파괴해 버렸습니다. 인간에게서 참 가르침을 빼앗고 대신 거짓 가르침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거짓 가르침이 '성내는 하느님'의 교의입니다. 아틀란티스 후기에는 말덱에서 지구로 환생한 래가드 종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이들은 과거를 반성하기보다 여전히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들은 특히 유전자 조작 기술에 능해 이들의 실험실로부터 온갖 흉칙한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아틀란티스의 붕괴를 초래한 대홍수(노아의 홍수)는 그런 창조에 대한 모독 행위를 쓸어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네피림과 래가드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생성된 모조 인간들은 그때 다 소멸되지 않고 남아서 인류 속에 스며들어갔습니다. 이들 모조인간들은 평소에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네피림들의 명령에 따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영혼이 없는 존재로 빈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사람하고 똑같습니다. 이들하고 정상적인 사람하고 혼인하면 2세는 어떻게 될까요? 영혼이 없는 아이가 나올 수도 있고, 영혼을 가진 아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 길이 없지요. 배우자가 모조인간인지 뭔지. 그 혼인의 와중에 인간의 순수한 유전자는 모조인간의 유전자와 마구 섞여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신의 빛을 담을 그릇인 사람의 육신은 더렵혀지게 됩니다. 요즘 인간 복제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합니다만, 그 기술은 이미 아틀란티스 말기에 성행했던 기술이 다시 등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 당시의 래가드는 과학자들로 다시 환생했구요. 록음악과 마약, 테러리즘도 아틀란티스 말기에 판을 쳤습니다. 방자한 젊은이들, 무책임한 부모들, 인기만 챙기는 무책임한 정치인 이런 것 모두 아틀란티스 말기에 있었던 현상입니다. 이들은 지금 다시 전부 환생해서 옛날과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고 그들은 거기서 또 선택을 해야 합니다.
고대의 네피림 신들 중에 일부는 헐리우드나 스포츠의 스타로 등장해서 사람의 혼을 빼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현란한 쑈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버릴 건지 아니면 신에게로 돌아가는 빛의 길을 택한 건지. 이들로 인해 지구에 악이 만연하자 지구를 구하기 위해 외부에서 빛의 존재들이 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이들이 사나트 쿠마라와 그를 따라 온 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