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새 봄에 뿌리는 창작의 씨앗
봄이 성큼 다가왔다.
겨우내 움추렸던 기운들이 따뜻한 햇살에 녹아내리며, 지금 봄은 한창 태동중이다.
지난 겨울은 유별나게 추웠는데, 아마 어려워진 경제 침체가 추위를 한몫 더 했지 않았나 싶다.
경제가 풀리지 않다보니 문화예술 역시 어딘지 모르게 침체된 분위기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에는 나라가 늘 어수선하고 경제가 밑바닥에서 오랜 세월을 맴돌고 있는 원인 중 주요 요인이 ‘정치’의 혼돈을 꼽을 수 있다.
국민과 가장 근접한 정치현장인 지자체가 그 장(長)이 바뀔 때 마다 정책이 바뀌는 일이 허다하고, 정부의 정책 역시 사명성과 일관성 그리고 성취성 없는 구조로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달라지며, 정당은 계파의 이권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혼란과 분쟁조차도 아랑곳없이 허구헌날 싸움에 전념하고 있다보니 이 나라의 진정한 행복은 수도없이 많은 ‘행복구호’ 속에서 표류해 온지 오래이다.
‘백년대계의 정책’이 아니고, ‘일년대계의 정책’이 이 시대의 흐름임을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고통에 신음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바로 대다수의 서민인 것이다.
비유하자면 환자로 치면 워낙 중병이어서 의사로서는 진단은 중병이고, 치료와 수술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뇌, 간, 폐, 심장, 신장 그리고 뼈 마디, 근육, 심지어는 가장 중요한 핏줄까지 단 한군데에도 성한 곳이 없으니 참으로 걱정스럽다.
더구나 가장 위태한 것은 옛날 ‘명의 허준’ 같은 의사가 정계라는 병원에 없다는 것이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사이비 의사의 권력에 가려져 그 진가를 발휘 못한다는 것이 오늘의 현장이다.
필자가 가끔씩 주위에 하는 말이 있다.
“어차피 돈 안되는 세상에 인간이라도 되자”는 것이다.
모든 세상 구조가 미친듯이 물질만능에 휩싸여 돌아가는 세상에 정치와 경제, 문화와 교육 등이 물질이 아니면 그 기능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는 이 시대에 적당한 부(富)인 생활의 안정조차도 이루기 위해서는 권력에 아부하고, 때로는 세상을 기만해야하는 어려운 시대이다 보니 성실한 사람의 도(道)는 상처와 실패의 그늘에서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참다운 인간의 길은 점차 퇴색해 가고, 물질만능의 세상은 점차 팽배해져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진화하려는지 이대로 간다면 인류의 미래는 뻔하다.
그러나 극한적인 절망만은 아닌 것이 물질보다는 참다운 정신의 계승을 위해 땀흘리는 인간 군상(群像)이 지구상에는, 이 나라에는 아직도 많이 현존한다는 사실이다.
단지 이들의 힘이 오랜 세월 군림해온 악과 사이비 권력에 눌려 세상 밖으로 제대로 표출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성실히 노력해서 전셋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삶의 안정조차도 갖기힘든 경제현실은 결국은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인륜도 저버릴만큼 위험한 세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래서는 안되지 않는가?
그래서 “인간이라도 되자”고 푸념섞인 자조의 변을 내뱉는 것이다.
어차피 로또복권 같은 특별한 기적이 없는 한 서민에게 있어서 돈으로부터의 행복과 안정은 요원한 것이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다.
그래도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우리 문인(文人)의 사명이 매우 크다.
우리는 문화를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삶의 가장 큰 위안으로 바라보는 부류이다.
우리의 글 한 줄이, 글 한 편이 민중에게 끼치는 영향과 힘은 마치 호수에 던진 작은 돌 한 점이 만들어내는 파동과 다를바 없다.
원을 그리며 점점 크게 퍼져나가는 그 힘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넓은 바다까지 이어져가는 물결의 원조가 된다.
지금 이 어렵고 난해한 시대에 우리 문인의 창작정신과 노력, 글의 힘은 이 나라를 살리는 중요한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는 자각을 지금 하지않으면 안된다.
혼미한 정치 속에 경제가 어렵고, 교육도 좌충우돌하며, 사회가 갈수록 물질만능으로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가 메말라가는 시대에 세상을 구원할 진정한 메시아적 힘은 종교가 아니고 바로 문화예술이다.
특히 문학의 힘은 인간의 정서와 진정성을 구원할 첫 번째 에너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신춘문예’에 글 한 편을 내보내기 위해 고뇌의 시간을 보낸 우리 작가들의 정신은 진정 이 나라를 구하는 훌륭한 애국의 시작이라고 필자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누군가, 어느 국민이 한 편의 시와 수필, 소설을 문득 보고 삶의 절망 속에서도 잠시라도 위안과 정서적 휴식을 취할 작가들의 글은 참으로 위대한 인간 정신의 회생(回生)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만을 쫓아가는 세태는 때로는 진정한 친구도 없고, 자신의 고독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토로할 위안 대상도 없기 마련이다.
이럴 때 자신의 정서와 비슷한 한 편의 글은 때로는 큰 위안이 되고, 공감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삶의 용기와 희망으로 전도돼 일생을 성공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진정으로 문학의 힘은 위대하다.
필자 역시 오늘같이 비 내리는 깊은 밤, 오래 전에 음미했었던 고전시집에서 한 편의 시를 다시 만나는 동안, 고적한 봄날 밤의 새벽시간을 의미깊게 승화할 수 있었는데 다음은 그 시(詩)이다.
춘야희우(春夜喜雨)
-두보(杜甫)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좋은 비는 그 내려야 할 시절을 알고 있나니
당춘내발생(當春乃發生) 봄이 되면 내려서 만물을 소생케 하는구나.
수풍잠입야(隨風潛入夜) 바람 따라 몰래 이 밤에 들어와
윤물세무성(潤物細無聲) 소리도 없이 세상을 적셔놓았네
야경운구흑(野徑雲俱黑) 들판은 낮은 구름으로 어둡고
강선화촉명(江船火燭明) 강에 배 한척은 등불을 밝히는데
효간홍습처(曉看紅濕處) 새벽녘 붉게 젖은 곳에
화중금관성(花重錦官城) 금관성이 꽃으로 덮여 있네.
역시 중국 당대(唐代)의 시성(詩聖) 두보의 시는 언제 만나보아도 그 정취와 운치가 훌륭하다.
평생을 실력에 맞는 제대로된 관운을 만나지못하고, 가난과 방황으로 점철했던 불운 속에서도 詩를 통해 세상과 인간의 절절함을 노래했던 두보의 인간다움과 문학에 대한 그 열정은 후세에 까지도 그 명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
새 봄이 문 밖에서 생명의 소생을 재촉하는 비를 내리고 있다.
이 봄에는 아무리 먹고 사는 일에 지치고, 힘이 들어도 하루 중 시간을 내어 독서도 하고, 창작의 씨앗을 뿌려보자.
때로는 시대적인 비평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옹호자가 되기도 하며, 그러나 근본은 진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창작의 씨앗을 뿌리자.
새 봄에 우리 문인들께서는 한 편의 시와 수필, 소설, 희곡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라는 자각심을 대지에 심기를 바라며, 창작의 씨앗을 열심히 뿌려 언제인가 다가올 가을엔 수확의 즐거움을 한껏 맛보시길 기원드린다.
「2016년 한국신춘문예 봄호」에 즈음하여
발행인 엄 원 지
발행인 프로필
1993년 ‘시세계’등단 / 1994년 장편시집 ‘백팔번뇌’ / 1995년 계몽시집 ‘표류하는 시인의 혼’ / 1998년 평론집 ‘한국문학의 본질과 그 방향 / 문화관광부장관상 ,통일부장관상 수상 외 다수 / 대한민국 독도문화제, 대한민국통일예술제 조직위원장 / (사)대한민국장인예술협회 회장/ 한국다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한국신춘문예협회 회장/ 스포츠닷컴, 추적사건25시 발행인/ 외 한국화가 등 문화, 예술, 언론 등의 영역에서 20여년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