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와 달리 나는 바하리아로 시집와 살면서 사실 별로 시집살이를 해본 적이 없다. ^^
바하리아도 한국 시집살이가 무색할만큼 엄한 시집살이에 대한 얘기들이 많은데,
뭐든 어설퍼 보이는 외국인 며느리가 혼자 친정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안스러워보여, 나에게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 탓인지^^ 난 시집살이에서 항상 열외를 받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대가족의 장남으로 카리스마 짱인 울남편을 혹 거스르게 될까 식구들이 무서워하는 탓도 있는 것 같고...^^
(여기는 가족의 여자들은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하다보니 아들, 장남의 지위가 시어머니 위이다.)
오히려 외로운 이국땅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바로 우리 시댁식구들이다.
교장선생님이신 깐깐한 시아버님은 식구들 혼내시다가도 나만 보면 웃으실 정도로 나를 좋아해 주신다.
울 어머님은 내 바하리아 생활의 정신적 지주이실 만큼 현명하시고 또 정도 많으셔 난 어머님을 항상 콧소리 가득 넣어 "마마"(여기말로 엄마)로 불렀다.
시누이들은 공부들도 잘하고 영리하며, 친절한 스타일을 부모님들께 받아, 항상 나에게 친절하고,
물론 나도 좋은 것이 생기면 항상 챙길 정도로 사이가 좋게 지냈다.
이런 나의 시집살이에 약간의 기류변화가 찾아 온 것은 3년전 둘째 시누와 시동생이 합동결혼식을 치르고,
나에게 나이 어린(만 19세) 동서가 생기고, 첫째 시누에 이어 막 결혼한 둘째 시누도 힘겨운 시집살이를 시작하게 되면서였다.
이젠 집에 어머니를 도울 시누이도 없고, 동서가 생기니, 나에게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어머님댁에 들르는 것도 신경써야하고, 음식 준비며 설거지등도 동서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솔선수범하고, 맏며느리 노릇을 흉내라도 내게 되었다. ^^
둘째 시누가 깐깐한 시어머니 밑에서 호된 시집살이를 하게 되고,
그에 비해 누구에게 시킬 바에 내가 그냥 하고 만다는 울 어머님의 성격탓에 해이한 시집살이를 해오던 동서가 시누들 눈밖에 나기 시작하면서 조용하던 집안에 시집살이 칼바람이 불어왔다.
큰 시누가 남편이 사우디에 일하러 갔을때는 친정에 와서 지내다 보니, 부딪히는 일도 자연 많아졌다.
나는 지레 제발이 저려 동서가 날 보고 배워 그러나 싶어, 시댁에 좀 더 신경을 써드리면, 이게 오히려 동서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이멘(내 이름)은 이런데,,,동서는 왜 저러냐는 식이 되어버린다.
동서가 이렇게 시댁과 불화가 생기니 또 시동생과도 자연 불화가 생기고, 짐도 여러번 싸서 친정으로 갔다가 돌아오고,
난 이제까지 거져 먹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동서와 나는 사이가 좋았는데, 그 이유는 시동생이 서운하게 하면, 울 신랑도 그렇다 똑같다~ 같이 욕하면서였다. ^^ (어디나 아줌마들의 남편욕 레퍼토리는 비슷하다..ㅋ)
그런데, 중립적인 내가 볼때도 울 동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시댁을 멀리하고 싶어하는 속마음이 다른 식구들 눈에 다 보인다는 것이다. ^^
동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돈벌이가 넉넉하고 버는 족족 잘쓰고 사는 친정에서 풍족하게 커오다가, 돈벌이가 넉넉한데도 조그마한 것도 아껴쓰는 알뜰한 시댁분위기가 째째하게 보이는 모양이였다. 더욱이 자기남편도 이를 보고 배웠는지 자신에게 짜게 구니, 결혼뒤 삶이 고달프고 이집 식구들이 다 싫은 듯했다.
그래도 어쩌리 보수적인 바하리아에서 이혼녀로 사는 것보다야 자기 생활스타일을 바꿀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을텐데, 화가 나면 아무래도 그 생각이 안드는 모양이다. 동서의 극성스러운 친정엄마도 한몫을 해서 ... 뻑하면 친정으로 짐싸서 가게까지 만든다.
그래도 우리 시어머님이 '난 더 안바란다' 하시며, 분란에 물을 끼얹으면 다시 집안이 잠잠해지곤 했다.
이러다가 몇개월전에 우리 시어머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평소 관절염이 있으셔서 고생하셨지만, 다른 건강의 이상은 모르다가,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지져서 몇주동안 병원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신 것이다.
장례식후 며칠동안은 찾아온 손님들을 챙기고, 일을 다 치르고 나니, 어머님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다.
여기를 봐도 눈물이 나고, 저기를 봐도 눈물이 나고, 서로 또 울까봐 눈도 못마주친다.
모두들 조금씩 제 정신을 차릴때가 되니, 혼자 남으신 아버님이 걱정이다.
시누들과 동서, 내가 번갈아 가며 시댁에 머물기로 했는데, 출가외인인 시누들이 자주 시간을 낼수는 없으니, 아무래도 동서와 내가 번갈아가며 지내고, 시누들이 시간날때 마다 들르는 식이였는데...
그런데, 한달이 못가 동서와 시댁식구들이 대판 싸우고는 짐싸들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조금뒤 큰 시누 남편이 사우디에 일을 보러 가게 되어 큰 시누가 시댁에서 아버님과 지내다, 남편을 따라 사우디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와 작은 시누 둘이서 서로 번갈아가며, 아버님을 챙겨드리는데, 항상 아버님은 나에게 미안해만 하신다.
이제껏 농땡이만 쳐오다 이제는 제대로 수업받는 것 같기도 한데, ^^
그래도 내 마음은 어느때보다 즐겁다. 항상 특별대우를 받으며 열외에 서있을때 보다 내가 쓰임새가 있는 지금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어쩔때는 몸이 고단할때도 있지만, 몸보다는 마음이 편한것이 낫다.
홀로계신 시아버님을 두고, 등을 진 울 동서도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댁은 옛날식 집이라 설거지도 통을 마당에 들고 나와 앉아서 하고, 구정물을 마당에 버리고는 흙마당을 쓸어 주어야 한다.
닭과 오리도 키우고 있어서, 먹이와 물을 챙겨주고 달걀도 꺼내와야 하는데,,,오늘은 도망간 닭도 제법 잘 몰아넣었다. ^^
이런 내모습을 보면 이제 바하리아댁이 다되었구나 기특한 생각이 든다. ^^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도 이제가 나이가 드셔서 곁에 있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1년에 한두달 찾아뵙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니, 항상 불효녀처럼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여기 계시는 부모님께 잘한다면, 이것이 한국 부모님께도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생각이 들어맞기라도 하듯, 요즘 멀리 살던 오빠가족이 한국 엄마아빠 곁으로 이사를 올수 있게되어 나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 아버님께 좋은 혼처가 생겨 재혼하시게 될때까지 나는 열심히 시집살이 할 예정이다. ^^
첫댓글 우리 영선이 착하다 복받을겨~~^^^^
에이~ ^^ 이모 엄마 어른들 모시고 살아오신거에 비하면 난 거의 소꼽놀이 수준이지 뭐~ ^^
5년 전 기억에 들렀다가. 좋은 모습 보고 갑니다. 따스하네요 바하리아 그날 처럼.
와~ ^^ 5년전이요~ ^^ 잊지않고 이렇게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딱 5년전 2010년 1월 7일?8일? 쯤에 방문했었는데 요즘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 어떻게 사시나 와봤어요 잘 계신거같아 다행이네요^^ 그때 카이로에만 있다가서 언젠가 다시한번 이집트 길게 가고싶어요 그때까지 계속 미도사파리 있으면 좋겠어요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조용해지면 오셔서 여유롭게 지내다 가십시오. 요즘처럼 시끄러운 일이 없으면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지요.^^
2014년 10월 초에 바하리아사막 여행을 했던 두산중공업 이상동차장입니다. 그때 끓여주신 라면 맛있게 먹었고 여행도 즐거웠습니다. 이집트여행을 계획하시는 한국분들께 홍보 많이 해드릴 께요.
감사합니다. ^^ 두산에서 오셨던 분들 모두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저도 감사했습니다. ^^
2011년 다녀갔던 부산사람입니다.. 최근에 회사후배가 신혼여행 알아본다고 저한테 물어보다 들럿는데... 참으로 오랜만이네요ㅎㅎ 아직도 잘 계시죠? 언젠가 또 갈수 있는날이 올때까지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