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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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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공부 스크랩 상상력이 끝없는 천재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노정희 추천 0 조회 55 14.10.17 09: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2

 

       처음 그림을 보았을 희안한 표현방식에 시선을 집중할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인위적이었고 아름답지 않았다. 그림을 내가 찾고 싶어하는 편안함도 없었고 갑작스런 긴장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면서 수수께끼를 풀듯이 그림을 들여다봐야 했다. 사막인 같은데 뒤로 바다가 보였다. 뒷배경만 보면 아무것도 없어야 조화로울 같은데 딱딱한 인위적인 사각조형물이 놓여있고 어울리지 않는 나뭇가지가 위에 있다. 심지가 없는 나뭇가지는 둥근모양의 시계를 떠받치고 있다. 세개의 시계는 한결같이 녹아내린 모습으로 제각기 다른 시간을 가르키고 있다. 하나같이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억지로 뜯어다가 맞춰놓은 무대장치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화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로 입지를 굳히게 해준 대표 작품으로 시간에 대한 상징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이론을 제시하기 위해 더운 녹아내린 치즈처럼 시계를 묘사했다. , 부드러운 시계를 통해 시간이 엄격하고 단정적이라는 통념을 깨트리고 시계의 실제적인 정체를 밝히려고 했다. 달리는 작품으로1936 런던국제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감성보다는 이성이 밝은 화가였던 같다. 그의 작품은 끊임없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인상주의나 고전주의처럼 보이는대로 보며 즐기는 것도 아니고 추상화처럼 느끼는 대로 느끼면 되는 아니다. 그렇다고 마그리트처럼 쉽게 파악할 있는 상징주의도 아니다. 그의 그림은 숨은 그림 찾아내는 수수께기 같아서 처음 봤을 보지 못했던 것을 훗날 찾아낼 있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끝없는 상상력의 천재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Salvador Dali, 1904, 5~ 1989, 1)

 

 

 그의 인생

 

     달리는 1904 5월에 프랑스에 접한 스페인 국경지대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산계층의 변호사 공증인으로 매우 엄격한 교육을 했다. 달리가 다섯살이 됐을 달리가 태어나기 몇달 전에 죽은 같은 이름을 가진 형의 묘지에 데려가 달리가 형이 환생한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고 달리는 말을 사실로 믿었다. 그는 후에 우리는 물방울처럼 닮았다. 하지만 다른 반사를 내고 있다 표현했다. 달리는 1916 미술학교에 다녔으며 이듬해 아버지는 집에다 달리의 목탄 드로잉 작품을 전시해주었고 1919년에는 피게르에 있는 극장에서 첫번째 공개전을 열어주었다.  

 

      1921 달리가 16 되던 해에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하자 달리는 인생에 가장 폭풍을 맞았다. 어머니를 숭배했다. 영혼의 피할 없는 결점을 보이지 않게 해주던 존재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술회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여동생과 재혼하고 달리는 이모 역시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혼을 받아들였다. 1922 마드리드로 이주한 그는 페르난도 예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긴머리와 구렛나루, 펄럭이는 코트, 짧은 바지 괴짜 행세를 하고 다녔으나 큐비즘을 시도하면서 동급생중 가장 주목을 받아냈다. 마드리드에 큐비즘 화가가 없었던 시대적 상황속에 그는 잡지와 카탈로그를 통해 스스로 배워나갔다. 다다이즘을 시도하면서 그의 화풍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됐다. 달리는 1926 기말고사로 인해 잠시 학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1926년에 그린 ‘Basket of Bread’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당시 정통 페인팅 기교를 나타냈지만 달리의 술회에 따르면 교수진중에 그의 작품을 심사할만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같은 처음으로 파리에간 달리는 피카소를 만나게 된다. 이미 달리에 대해 좋은 평가를 들었던 피카소는 미로와 함께 달리의 독자적인 화풍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달리는 가장 학구적인 고전풍에서부터 아방가르데의 최첨단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주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바르셀로나 전시회에서 비평가들로부터 찬사와 곤혹스러운 논쟁의 대상이 되는 엄청난  시선을 한몸에 받게된다. 이때부터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 자신의 아이콘으로 만들고 1929년에는 대본을 쓰면서 초현실주의 감독 루이스 버넬과 함께 공동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후 나중에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 갈라를 운명적으로 만나 1929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해 1934년에 결혼한다.

 

     스페인전쟁(Spanish Civil War)에서 프란시스코 프랜코가 권력을 얻자 달리는 정부조직의 지적지지자중 사람이 되고  유력한 사회주의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곤란을 겪다가 결국 그룹에서 공식 추방된다. 이후부터 초현실주의자들은 달리가 죽은 것처럼 과거시제로 달리에 대해 언급하곤 했으며 초현실주의 운동과 수많은 회원들이 달리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이후에도 달리에 대해 깔깔한 논쟁을 이슈화하곤 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달리는 갈라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8년을 보내면서 각종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Avida Dollars ( 욕심 많은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카톨릭교의 예식을 위해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1942년에 자서전 살바도르 달리의 비밀인생 출판하고, 1949년에는 카탈로니아로 돌아가 남은 여생을 보낸다. 달리의 후반작품들이 자주 거절되었던 것은 작품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정치적인 원인때문이었다. 1959 안드레 브레톤은 초현실주의 40주년 기념전시회에 달리의 작품을 넣었으며 이듬해에 뉴욕에서 열린 세계 초현실주의 기념에 달리의 ‘Sistine Madonna’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후기로 넘어오면서 달리는 페인팅보다는 다른 이색적인 메디아로 실험하기를 즐겼다. 예술적인 방법으로 레이저사진술(holography), 시각적 착각을 혼합시킨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앤디 워홀같은 젊은 화가로부터 팝아트에 막강한 영향을 주었다고 칭송받았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 1950년대의 일부 작품에는 기하학과 순결을 상징하는 코뿔소의 뿔을 구성에 넣었으며 DNA 4차원 큐브에도 관심을 가졌다. 2차세계대전 후의 작품은 기술적인 기교와 시각적 착각, 과학, 종교 등의 특질들을 품고있다. 특히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대한 충격에 의해 영감을 받은 그는 시기의 작품을 핵신비라고 이름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조각에도 많은 열정을 쏟았으며 극장, 패션, 사진, 주어리 여러분야에 능력을 발휘했다.

 

     1960년에는 자신의 고향 피가레에달리 극장 & 뮤지움 짓기 시작했다. 평생의 가장 프로젝트였던 사업은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982 갈라가 생을 마감하면서 달리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체내 수분을 서서히 제거하면서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갈라를 위해 구입했던 푸볼의 성으로 이사한 그는 나머지 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곳에서도 침실에 불을 질러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으나 자신의 뮤지움에서 편안한 삶을 살면서 말년을 보냈다.

 

 

  그의 작품 세계  

 

 

On Dream Caused by the Flight of a Bee around a Pomegranate a Second Before Awakening(1944)

 

     달리는 평생을 여자를 사랑했다. 25세에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 30세에 결혼해 48년간을 함께 그녀와 함께 살았다. 물론 중간에 서먹한 시기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녀가 세상을 먼저 마감한 7년동안에도 그녀만을 그리워하며 2차례의 자살을 기도하다 1989년에 결국 그녀를 따라 이생을 떠났다. 갈라는 달리보다 열살이나 연상이었으며 처음 만났을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 갈라는 달리의 친구, 모델, 메니저로 달리 곁에 있어주었다. 갈라가 달리와 만난지 3년만인 1932년에 갈라는 이혼을 하고 달리와 1934 파리에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두사람은 갈라의 전남편이 1952년에 사망하자 1958 교회에서 다시 결혼식을 치루었다. 1965 이후 사람은 다소 뜸한 관계가 됐지만 갈라는 계속해서 달리의 사업을 경영해주었다.

 

     달리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모델 대부분이 아내다. 그녀의 이름은 갈라. 갈라사과를 먹을 때마다 달리가 너무나 사랑했던 갈라를 생각한다. 갈라는 다른 사과에 비해 달콤하면서 새콤한 맛을 갖고 있다. 후지처럼 달지만도 않고 맥켄토시처럼 시지만도 않다. 어떻게 씹으면 달콤한 맛이 느껴지고 어떻게 씹으면 새콤한 맛이 느껴진다. 어쩌면 달리의 아내 갈라도 평생을 이렇게 마디로 단정할 없는 모습을 살짝살짝 보여주며 평생을 매력있는 존재로 달리 곁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도 갈라에 대한 달리의 사랑이 엿보인다. 벌떼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갈라의 달콤한 잠을 깨울 것만 같은 노파심에서 나온 작품이다. 그의 눈에는 벌들이 마치 불화산에서 괴성을 지르며 뜨거움을 호소하며 뛰어드는 무시무시한 호랑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벌의 노랑과 검정 색상이 호랑이로 탈바꿈해 버리다니, 그의 사랑도 병이었을지 모른겠다. 갈라는 세상에서 더없이 편안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잠에 취해있다. 마치 최면상태에 오른 것처럼 그녀의 상체는 하늘을 향해 들려있다. 편안함과 아름다움은 달리가 갈라를 때마다 느꼈던 감정이었을 같다. 그러나 달리는 감정에 불안했나보다. 갈라가 누워있는 바닥은 바다위로 부서져 내릴 것같은 얇은 암반이다. 공중으로 떠있는 그녀의 육체가 가벼워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얇은 암반 모퉁이는 불안해 보인다. 게다가 암반 바로 아래는 바다의 깊이 헤아릴 없을 정도 깊은지 푸른 빛을 넘어서 검은 빛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뒤로 보이는 다리를 가진 코끼리는 무엇인가? 미술평론가들의 말들을 뒤져보면 코끼리는 달리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로, 길고 여러개로 결합된 욕망을 그려낸 것이라 한다. 어쩌면 갈라에 대한 집착과 욕막을 이렇게 그려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면 볼수록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Crucifixion (Corpus Hypercubus) 1954

 

     그는 카톨릭신자였던 그는 십자가에 관한 작품을 여러개 남겼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남자의 육체가 공중으로 들리워져 있다. 십자가 형상은 있지만 그를 붙들고 있어야 못자국이 손바닥에도 발등 위에도 없다. 교차부위에 짙은 상자가 돌출되어 남자의 육체를 붙들고 있는 듯하지만 흠조차 없이 매끈하고 아름다운 육체가 밤하늘 위로 별빛처럼 그저 눈부시게 빛날 뿐이다.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 속에서 여자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달리는 십자가를 입방체로, 못조차 입방체로 그려내 지금까지 없었던 십자가의 모습을 그려냈다. 마치 예수님이 두개 영역의 접촉점에서 사람들이 이해할 없는 다른 영역으로 이동해가는 듯한 이미지를 그려냈다. 고통의 신음소리가 들려야될 같은 십자가가 평온하고 신비스럽게 보이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해준다. 달리그의 그림을 보면 볼수록 정말 천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The Sacrament of the Last Supper, 1955

    

     예수님과 열두제자가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이다. 제자들이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니 예수님은 기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예수님을 십자가로 넘길 밖에 없는 자신들의 무능력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뒷배경은 마치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듯이 호수위로 눈부신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얼굴없이 팔을 벌리고 있는 몸통은 십자가를 가르키는 것도 같고 최후의 만찬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도 같다. 예수님의 머리는 제자들보다 훨씬 높은 부위에 위치해 있는 걸로 보면 달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려 같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이 스토리중심으로 제자들의 표정 하나하나마다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어 끝없는 얘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데, 달리의 최후의 만찬은 엄숙한 분위기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경건함이 베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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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의 초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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