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인의 신체는 1만년 전 신석기시대 사람들과 유전적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인류역사에서 최고의 혁명의 순간은 '신석기시대'에 농업혁명일 것입니다.
인류가 사냥, 채집의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잉여생산이 가능한 농업을 시작함으로써 비로서 인류는 문명사회로 진입하였습니다.
중국을 보면 농경민족을 문명인으로 보고 수렵, 목축에 의존하는 유목민족을 야만으로 보는 것은 인류역사의 발달과정의 일종의 경험칙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농업사회로의 전환은 인류역사의 대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농업의 신은 주나라 (周 기원전 1046 - 256) 의 시조인 후직( 后稷)입니다.
후직의 어머니, 강원(姜嫄)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보았는데 강원은 그 발자국을 보고 마음이 들떠 그것을 밟았는데, 그 후 아이를 잉태했는데 이때 태어난 분이 바로 후직이라고 합니다.
사직이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말하며 이들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사직단(社稷壇)입니다. 즉 사직단은 농경의 신인 후직 임금께 제를 모시는 곳입니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땅과 곡식이 국가의 근본이었기 때문에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종묘와 더불어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고 격이 높은 제사에 속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현재의 사직단은 임금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宗廟)를 오른쪽에 사직(社稷)을 세운다는 고대 중국의 배치 원리에 따라 경복궁의 서쪽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관리하고 제사의 실무를 담당하는 관아를 사직서(社稷署)라고 하였습니다.
서울 외에도 사직단은 군현(郡縣)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 세워져 국가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였습니다.
2. 동물은 잠자는 것이 일상이고 일어나서 먹이 사냥을 하는 것이 예외적인 행동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동물입니다. 사냥과 채집에 의존했던 구석기인의 삶의 행태의 단면은 여타 다른 동물의 생존방식을 보면 추정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은 잠을 자는 것이 보통이고 배가 고프면 그때서야 일어나 사냥을 합니다.
인간도 이런 패턴으로 생활을 했을 것인데 신석기혁명으로 먹거리의 잉여생산이 가능해지자 많이 먹고 많이 쉬는 삶의 형태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되어 인간은 특히 비만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여기에서 여러가지 성인병들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 현대에 들어서 실증의 예가 있는데 태평양의 한 섬나라에서 중요광물이 발견되어 그 섬의 주민들이 더이상 노동을 할 필요가 없게되었는데 과다한 영양섭취와 무노동의 결과 섬의 원주민들이 전부 멸종이 되어서 몇 십 년 뒤에는 이곳에 사람이 살지않는 무인도로 변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 식곤증 "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신체반응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신체의 정상적 반응에 맞서서 운동으로 지방을 소모해서 축적되어서 비만이 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 댄스 " " 기체조 " 등의 가벼운 운동은 식곤증을 잊게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해 나가는데 최고의 명약이 될 것입니다.
후직 고향 산서성 운성시 직산현 소개글 - ( 참고로 운성시 해주현(解州縣)은 관운장 고향 )
后稷故里 板枣之乡--山西频道--人民网 (people.com.cn)
--- 참고, 서양의 농업의 신 이야기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