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의 왕권 다툼으로 시작된 백년전쟁 중 위기에 선 조국 프랑스를 구한 성처녀 잔 다르크Jeanne d'Arc(1412~1431)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다뤄진 여주인공의 하나다. 가장 권위 있는 중세사 연구가 조제프 카르메트의 <잔 다르크>에 의하면 그는 농민의 딸로 글을 읽거나 쓸 줄도 모르는 채 집안일을 도우면서 신앙심을 키웠다고 한다. 조국을 구하라는 계시를 받은 것은 잔 다르크가 열세 살 때였고 구국의 길에 나선 것은 열일곱 살이 되고서였다.
샤를 왕자로부터 신임을 얻은 그는 영국군에 포위된 오를레앙을 해방시켜 일약 민족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반드시 시기하는 세력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를 사로잡은 군은 영국의 헨리 6세를 프랑스 왕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신 세력이었다. 귀족들의 반발로 그의 구출 작전을 포기한 샤를 7세의 방관 아래 잔 다르크는 영국군에게 금화 1만 루블에 넘겨진 다음 마녀로 낙인 찍혀 옷과 온몸에 유황이 칠해진 채 화형에 처해졌다. 19세였다.
셰익스피어는 사극 <헨리 6세>에서 존 라 푸셀이란 이름으로 잔 다르크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말할 필요도 없이 그 관점은 다분히 영국적이다. 왕자가 그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는 “나를 너의 애인으로 삼아다오”라고 하자 그는 “소녀는 연애의 예식 같은 것에는 좇을 수 없나이다”면서 그 이유를 “소녀의 직무가 하늘에서 받은 성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과연 그는 “연기로 벌을, 악취로 비둘기를 그들 집에서 쫓아버리는 것과 같이” 영국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영광은 언제나 짧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초인적인 신통력에 종말이 와서 패주하는 프랑스군을 위하여 아무리 주문을 외어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결국 포로가 된 것으로 묘사한다. 여기까지는 셰익스피어가 비교적 공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포로가 된 그를 염려하여 나타난 아버지에게 잔 다르크는 “저 늙어빠진 영감! 쌍놈의 늙은이 같으니!”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스스로가 귀족의 혈통이라고 우기던 그는 영국군에게 “당신들이 내 귀족 신분을 흐리게 만들려고 고의로 이 농부를 교사한 것이죠?”라고 소란을 부리도록 만든다. 그리고는 막상 화형에 처하려 하자 “이 흉악한 살인광들아, 나는 임신 중이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영국군이 애비가 누구냐고 물으면 횡설수설하곤 한다.
<헨리 6세>와 대조적인 것이 쉴러의 희곡 <오를레앙의 처녀>이다. 잔 다르크를 요한나란 이름으로 등장시키는 이 작품은 기적을 이룰 수 있는 힘의 원천을 현세에서의 모든 세속적인 사랑을 뿌리친다는 하느님과의 약속에서 찾고 있다. 마리아의 계시대로 그는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두나, 한 젊은 적장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위력을 상실하게 된다. 여기에다 왕의 대관식 날 아버지가 나타나 국민들 앞에서 그를 마녀라고 몰아세우자 변명도 못한 채 추방당해 황야를 헤매게 된다. 이 고통의 방랑 속에서 그는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그가 사랑을 느꼈던 장군에게 구애를 받는다. 그러나 요한나는 그 순간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세속적인 사랑으로부터 해방되어 초능력으로 사슬을 끊고는 탈주해 다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어 주고는 죽음을 맞는다. 그의 영혼은 조용히 승천했다는 것이 쉴러의 입장이다.
볼테르는 <철학사전>이나 서사시 <퓌세유>에서 그를 에로틱한 여인으로 그렸는가 하면, 장아누이는 <종달새>에서 그를 영국군에 넘겨준 친영파를 현대의 대독협력자에 비교하기도 했고, 아나톨 프랑스는 <잔 다르크의 생애>에서 히스테릭한 신경증상이 초인적인 힘의 원천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평가보다는 역시 그에 대하여 조국을 구출한 위대하고 성스러운 애국자라는 긍정적인 관점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