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v/12(목) :
오후 3시부터 작업시작. 오늘 다시 새로 온 Agent Mr. Orestes란 젊은 녀석이 싹싹하고 친절하며 일에도 밝다. 다행이다. 한국선원들과도 많은 접촉이 있은 듯하다. NYK에서 Hamburg의 Add. Inst. 받고, ‘도성’에도 우편으로 Order을 띄웠다. Nueva Gerona & Nuevitas Chart도 구했다. 여전히 야채는 없다. 계절적으로 그렇단다. 큰일이다. 없다는 것을 어디서 구한담. 예정대로 된데도 12월 16일이 되어야 Kiel에 도착하는데-. 밀어붙이자, 한 달이다. Voyage Charter라고 했으니 생각보단 일찍 끝날 것으로 보자. 서둘자. 하루 한시간이라도 여기서 늦어지면 그 만큼 우리에겐 손해밖에 없다. 십수년전 Nigeria의 Lagos에서 경험한 시절도 있었지 않은가. 허리 때문에 꼼짝을 않는다. 역시 무리가 금물이다.
Nov/15(일) :
일요일. 이 달도 반을 넘긴다. 너무 늦은 하역. 아무래도 다음 또 한 주일을 채울 모양이다. 어제 오늘 ‘신동아’ 8월호에 빠지다. 李韓烈군의 죽음. 수많은 수감자 가족, 그리고 광주의 상처는 아무래도 앞으로 짚고 넘어가야 그 올바른 가치를 찾을 수 있고 더 많은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도 같다. 정영 그러한 아픔과 비극 없이는 역사의 진전은 없을 것인가? 주부식도 그런대로 대충 갖췄다. 담배도 Seaman's Club에서 구입했다만 일정의 Delay가 의외로 많다. 월요일 이후에 온다던 Bunker가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엊저녁에 닥쳐 불야불야 법석을 떨었다. 역시 뒤죽박죽이다. 시내 Bus를 잘못 타서 둘러본 도시 변두리는 여전히 활기가 없고 그냥 사람이 머물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도둑이 없는 것 그래서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푸근한 잠을 가질 수 있어 좋다.
Nov/18(수) :
계속 부진한 양하작업. 연일 계속되는 Telex. NYK의 심정을 과연 몇 놈이나 알고 성실히 해줄 것인가? 오늘 용선자측의 Mr. Gonzalez가 다시 와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전들 어쩌랴. 요는 Receiver측의 사정에 달린 것이다. 아마도 보관할 냉장창고가 없어 직접 유통하는 과정에서 먼저 입항한 USSR 선박의 사과도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나. 어느 천년에 순조로이 끝날 것인가? 어제 겨우 293톤을 내렸다. 오늘도 싹수가 노르스럼하더니 오후 소나기조차 한 시간 동안 퍼부었다. 이발했다. 그것도 한 시간 전에 예약을 하고-. 그런데 씨팔놈들. 면도는 안 해줘도 짜른 머리카락은 털고 씻어줘야 할 것이 아닌가. 가위질만 하고 다됐다고 가란다. 목과 어깨, 가슴부위가 머리카락에 찔려 가렵기까지 한다.
Seaman's Club Mr. Roberto를 만났으나 담배는 품절이라 더 이상 안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Ship chandler가 안 온다. 야채가 당장 급한데-. 이래서도 사회가 돌아가고 사람이 살아 간다는 데는 신기하기도 하다. 너무 지루하고 갑갑하다. 아직도 적하까지 하자면 20여일은 더 걸릴 것이다. 차라리 더 늦어져 Voy. No 7이 Cancel 되는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하지만 오늘 Telex로 First Load Port가 N.Gevona로 Fix 되었다니 헛꿈만 꾸었다.
여자, 그것에 대한 강열한 욕망이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문제가 육체적인 욕망을 눌러 이길 수 있음이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숱한 시간과 비싼 대가, 깊은 회한을 치루었기는 했었다. 모처럼의 푸짐한 ‘성찬의 외식’(?)도 아쉽지만 이놈의 곳 직접 Dollar를 쓰기는 너무 아깝고 식성도 맞지 않는다. 어쩌면 금년엔 텃는가 보다. 아이구! 이놈의 항차야! 정철 카셋트 3번째로 듣기 시작한다.
Nov/22(일) :
오전 작업. 25일은 돼야 끝날 듯 하다. Yusen London지점에서 그리고 TRJJJ에 보내는 Telex를 Seaman's Club에서 보냈다. Agent란 놈들은 휴일이라 쉰다며-. 식욕을 잃어간다. 먹는 것이 너무 험한 탓이기도 하리라. 김치가 꿈에 뵈는 지금이다. 앞으로 20여일은 더 있어야 이놈의 곳을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세월을 타고 밀려서 가고 있을 뿐이다. 조타력도 추진력도 없는 반 죽음의 상태에서. 세상의 시류, 그리고 내 자신도 또 그 속의 마음과 정신까지도 고여서 푹푹 썩어만 가는 어제 오늘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가 현실적이면서도 너무 진하고 끈적하게 붙어 있다. 아무것도 원치도 바라지도 요구하고 싶지도 않다. 어서 이곳을 떠서 훨훨 날고 싶은 뿐이다.
Nov/24(월) :
간밤에 사나운 꿈자리로 뒤숭숭하며 잠을 설치더니 아침부터 OS-1 金志坤의 선원수첩 분실사고를 보고 받았다. 그것도 22일 밤에 그랬다나. 기어이 탈을 내는군. 앞으로 한 달 뒤면 만기로 귀국해야 할 입장인데-. 어떻게 처리하나? 여기가 어디야. Cuba가 아니냐. 종일 씁슬한 기분이다. 저녁에 Red Bar 등을 Agent차로 비공식적으로 둘러보았으나 헛탕. 어디서 어떻게 잃었는지를 모른다. 부득이 공식 절차를 의존해보는 수밖에 없다. 일단 전원을 상륙 금지조치 하다. 인간관리가 역시 어렵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그것도 한순간의 실수로 전체가 오랫동안 쌓아온 보람을 일시에 흩어 버리고 만 셈이다. 다시 야채를 조금 구입하다. 아직도 한 달은 버티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신적인 피로와 공허가 너무 커져간다. 부쩍 눈에 띄는 흰 머리카락이 여실히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역시 수양부족인가? 좀 더 자신을, 내일을 멀리 보고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갖자. 세상사가 事必歸正이라 하지 않든가. 이놈의 세월이 고장이라도 났나 왜 이리 더딘고?
Nov/25(수) :
겨우 ETCD를 26일 오후로 잡는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경찰서 신고가 결국 밥 11시까지 걸린다. 본서. 지서 그리고 현지 파견원과 Bar, 지서, 다시 Bar. 뒤죽박죽이었다. 얼마만큼의 기대와 보람을 가질 것인지? 피곤이 곤죽을 만든다. 기다리다 지친 동백아가씨라만 어떤 보람이라도 있을 것 아닌가. 너무 늦은 시간까지 애써준 Mr. Orestes녀석이 고맙기도 하다만 그만한 보답은 해준 셈이다. 대아에서 회신을 받다. 도난 보고서의 공관확인서 및 임시여행허가사를 교부받아 귀국조치 하도록 했다고 한다. 문제는 중간에 Canal 통과시 아무 탈없을라나? 길이 있겠지. 중간 중간에 잔소리(?) 없이 계속 흐르기만 하는 FM 라틴음악, 가끔은 귀에 익은 가락도 있어 유일한 낙이 된다. 늦은 저녁을 외식으로 Mr. Orester와 떼우려 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먹는 걸 위해 그처럼 늘어선 줄을 보면 이놈의 나라 장래는커녕 지금 당장도 싹수가 말아 비틀어지고 있는 듯하다. 지쳐간다.
Nov/26(목) :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사람에 시달렸다. 웬놈의 수속들이 그리 많고 복잡한가? 한꺼번에 왔을 땐 모르겠더니 따로따로 오니 끝이 없다. 13:00시에 작업완료. 19:10시에 출항했으니 더 말해 무삼하리. 엉터리 두 Pilot 때문에 기어이 선수 Bulbaos에 심한 Dent의 Dammage를 입었다. 구멍이나 나지 않았어야 할텐데-. Sea Protest 만들어 밀어 붙이자. 도리 없지 않은가. 아직도 수심의 염려가 있는 Gerona와 Un-Fix중인 2nd. Loat Port를 거치기까지는 15-6여 일간이 남았다만 갈수록 멀어져 가는 느낌뿐이니 이를 어쩔것이냐. Havana도 다시 돌아갈까도 두려운 곳이다. 오늘이 내 마흔일곱의 귀빠진 날이군. 벌써 그렇게 됐나? 사그리 재수 옴 붙은 날이기도 하다. 어제의 무리탓인가 허리도 절인다. 뜨끈한 물에 전부 씻어버리자. 그리고는 위를, 내일을 보고, 비록 山水甲山을 갈망정, 거지같은 무리들이 줄지어 닥칠지라도 積善하는 셈치고 웃으며 맞고 악수라도 해주자. 그래야만 우선 내가 편하고 시간이라도 잊으며 견딜 수 있을 것이다. Happy Birthday! 좋하아네. 입에 신물이 나는 날인 것을! Wife도, 얘들도 내 생각을 하며 오늘 아침을 시작했을 것인데 말이다.
Nov/27(금) :
Cuba 섬 남쪽에 있는 섬의 북단에 위치한 Nueva Gerona 외항에 13:00착. 3시간 Drifting. 16:00시 POB. 19:30시 투묘하다. 수심의 한계가 5.63m이다. 여긴 또 얼마나 걸린 것인가? 생각보다 쉽게 닿긴 했다만 청명한 밤하늘의 달빛이 호수처럼 잔잔한 해면에 잘게도 부딛고 부서진다. 물밑이 들여다 보이기라도 하는 느낌이다. 낯선 섬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한결 순박해 보인다. ETD를 내달 1일로 잡는다.
Nov/28(토) :
“태고의 정적을 태우며 너는 솟는다/그 붉은 심장의 고동은 온누리를 잠재우듯-
그래서 위대한 하루는 시작이 되어지고/세상의 온갖 속된 것은 순간적이나마 숨을 멈추고 그 다음의 너를 지켜보더군. 그래 타라. 더 뜨거웁게-”
잔잔한 아침 바다 위를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위를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난생 처음 지어본 시(詩)다. Harbour Master에 가서 Sea Protest를 만들다. 기대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묵묵히 잘해준다. 그냥 시골이다. 도타운 햇살 속에 시들어져 가는 풀들이 내품는 향기가 싱그럽다. 마지막 숨결이라도 된 것처럼.
Nov/30(월) :
또 한 달을 보낸다. 가기는 가는군. 06:30시 Shifting. 곧 작업을 시작. 의외로 진척이 빨라 수월할 것도 같다. 1일 Capacity가 600여톤이나 된다. 세관의 승낙을 얻어 Yoshino Reefer에 Boat를 보내다. 쌀 4포대에 약간의 무와 간장 등을 구입했다. 처음 보는 일본인 선장에게 명함에 메모를 적고 술 한 병을 곁들여 보낸 보람이 있고 고맙기도 하다. 그의 답신으로 보아 사람이 좋아 보인다. 내일이라도 틈이 나면 한번 직접 방문해 인사라도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저녁 늦게 비. 前線이라도 지나가는 모양이다.
11월14일자 일본 신문에서 그간의 동정을 짐작해 본다. 12.12 사태가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는 모양. 아마도 그냥 나라를 들어먹은 모양이다. 그러니 정치가 후퇴하고 집안이 소란스러울 수밖에-. 걸러고 다져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모두에게 자각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이제는 스스로가 알아서 옳게 판단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후손들이 또다시 암담한 내일을 맞이하고 만다. 10월분 POB를 지급하다.
Dec/01(화) :
계속 날씨가 궂다. 놀 때는 그렇게 좋더니-. 곁에 있는 Greece 선박 Nissos Shithos 때문에 다소 신경전이 있었으나 때마침 Agent녀석의 중계로 잘 타협을 본 셈이다. 역시 수월하게 말을 할 수 있음으로 많은 시간과 어려움을 들 수 있다. 계속 뉴스를 듣고 읽기에 시간을 투자한다만 분명히 황소걸음이긴 하나 진전은 있다. 설사 내일은 알 수 없어도 오늘은 내 정성을 쏟아보는 거다. 그것이 곧 살번제가 되기도 하니까. 여전히 두 번째 적하항이 미정이다. 화물의 양도 정해져 있지 않다. 본선의 재량으로 “It's up to you”라고만 한다. 될 수 있는 한 여기서 실을 수 있는 데까지는 실어보자. 그래야 다음항에서의 머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Yoshino Reefer의 近藤(곤도오)선장과 VHF로 교신하다. 간장값을 갖다 줘야 하는데 날씨가 고약하군. 3개월간 중단했던 Jogging를 다시 5000보부터 시작한다. 허리가 완전하지는 못하나 더 이상 진전이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무리가 없는 한도 내에서 해보자.
Dec/02(수) :
19:20 N. Gerona 출항. 예상대로 수월하게 마쳤다. 항로 입구 쪽이 얕아 긴장을 했지만 무사히 잘 빠졌다. 매일 조금씩 쌀쌀한 기운이 더해간다만 견디기 알맞은 기온의 시원한 해풍이 텅빈 마음을 다소나마 채워준다. 다음항은 큐바섬 중간부분 아랫쪽에 위치한 항구 Cienfuegos다. 출항 2시간 전에 결정됐다며 알려주었다. 복잡한 Havana나, 수심이 얕고 부두시설이 미흡하다는 Nuevitas가 말이 있었으나 그쪽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내일 아침 10시경이면 도착한다. 또 얼마나 걸릴 것인가? 독일 Kiel의 ETA에 따라 사전에 연락이 돼야 할 일들이 많다. “도성”의 주부식 우편 Order의 수취여부 확인. OS-1 김지곤군의 Open Ticket 청구. Cash Advance 등이 중요한 사항들이다. X-mas와 연말이 겹치는 25-27일경 에 입항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최대한 10일을 잡는데도 12-3일 출항, 24-25일이 된다. 자칫하면 쌍말로 뭣 같은 X-mas와 연말이 되겠군. 생각지도 못한 골칫거리나 사고가 발생할 소지가 너무 많다.
Dec/03(목) :
09:10 Pilot Station도착. 10:00 투묘하다. 좁은 입구에 비해 항내는 시원스레 탁 트인 정말 좋은 항이다. 젊은 도선사 녀석의 다소 우악스런 操船이 있었긴 해도 안심해도 될 듯한 느낌에 잠시 방심한 탓에 결국 ‘Let go Anchor’ 직전에 한차례 앗찔한 순간을 겪었다. 바늘끝 만큼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완전무결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자기 자신이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기계가 아니다. 그것이 곧 인간이 가진 장점이고 단점이기도 할게다. 그냥 매사에 순간순간마다 조심하고 신경을 쓰는 수밖에 더 있겄냐. 내일, 아니 1분 1초 후를 모르는 것은 비단 선박의 상황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사가 그러하다. 다만 급속한 상황의 변화에 따른 더 빠른 판단과 행동이 있어야 할뿐이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수속도 비교적 쉽게 끝났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벌써 큐바에서만도 4번째 항이 아니가. 8-9일 접안에 12일경이 ETD가 된다나-. 예상이 맞아 들어가는 셈이다만 부근에 기다리는 先着의 3척이 끝나려면 1-2일 정도의 지연은 각오해야 한다.
Dec/07(월) :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다. 하늘, 바람, 물 그리고 햇빛만이 있을 뿐이다. Agent를 불렀다. 멀리 있는 Hamburg의 ‘도성’과는 연락이 닿았으나 국내인 Havana의 Mr. Dreste에게서는 감감 무소식이다. Berthing이 11-12일 예정이랬다. 자꾸만 시선이 Calendar 뒤를 훑고 지나가는 버릇이 생긴다. 결국 이 한해도 쥐꼬리만큼이나 남겼다만 정작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마냥 칠흑처럼 깜깜하기만 하다. 정화 정주의 입시들. 내 나라 돌아가는 세상사들, 도대체가 답답할 뿐이다. 5일 날 주문한 주부식을 아무래도 하루나 이틀 앞당겨 실어야 겠다.
Dec/08(화) :
14:00 Agent로부터 23:00시에 접안 예정이란 통보가 있더니 21:00에 Pilot가 왔다. 22:40시 접안. 곧 적하가 시작된다. 무엇인가 급히 서두는 감이 있다. 아마도 당국에서 불똥이 떨어진 모양이다. 철야 연속 작업. 11일 출항이랬다. 잘 된 일. 내게는 ‘The sooner, the better’아닌가. 낮에 부식 일부를 싣다. 일도 서두른다. Owner, NYK, Diaship 등에도 Telex하여 24일경에 Keil운하 입구 Brunsbuttel 도착 예정임을 알리다.
Dec/09(수) :
순조로운 작업이 빠르게 진행된다. 저녁에 시내를 둘러보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다. 역시 이곳도 도시가 죽어가고 있다. 인간 능력의 잠재를 사그리 잘라버린 듯-.
그냥 남의 뜻에 의해서 세월을 맡겨두고 살아가는 느낌이다. 역시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발전과 문화의 창조가 있음을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같은 Bus로 온 Tally녀석의 말처럼 일한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시키는 일만 해야하 는 사회인 바에야 밤 세워 일한들 무슨 의욕이 있고 보람이 있을 것인가.
부산 대아와의 텔렉스가 불통이다. 출항 후 Cable로 해야겠다만. 12월 24일 오전에 닿을 수만 있으면 모든 일이 쉬이 풀릴 것이리라. 이제 먹는 것만 다소 확보된다면-, 그래서 13일 정도만 버티면 한숨 돌릴 수 있다. 一日이 如三秋인 지금이다.
Dec/10(수) :
6일간 계속된 Jogging이 역시 무리 같다. 허리가 영 불편하다. 이러다간 영영 병신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Dec/11(목) :
간밤에 꿈자리가 사나웠다. Wife가 보이기도 했다. 종일을 조심했다만 별일은 없는지? 2/O와 OL-1의 Pesso화 발각으로 Customs의 조사를 받았으나 단 1Pesso뿐이었던 것이 다행히 인정을 받은 모양. 15:00 작업 완료.
Shifting과 Documenting. 18:00 출항했으나 외항에서 고장 난 Pilot Boat 기다리느라 1시간 반을 지체했다. 쌍말로 좃같은 곳이 끝까지 애를 먹인다. 그 늙은 Pilot 영감의 추잡스리 구걸 같은 요구도 징그럽다. ‘잘 있어라. 큐바에서 4개항. 40일을 머물렀다. 그러나 내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해가 가는지?’ 알만하다고 답하는 걸 보니 저들도 자신들의 처지를 알고나 있는가 보다. 그냥 나라 전체가 사그리 시들고 찌들어 간다. 앞날이 한밤중인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란 북한, 큐바, 알바니아 중 북한을 빼고는 경험한 셈이다. 좋은 구경으로 삼자. 불쌍한 나라.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본다. 카스트로의 어릿광대 같은 제스쳐가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다만 한번 불이 붙으면 마른 섶처럼 타올라 버리지 않을까도 싶은 나라다. 시원하다. 지난 40여일간 그 무겁던 정신적 중압감에서 벗어난다. 보름 후의 USSR(소련)은 이보다 더하다고 해도 그래도 쉽게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생긴다만 날씨! 그놈의 추위가 겁난다. 바다가 얼지나 말아야 할텐데-. 12일간 그냥 달리는 거다. 대서양의 겨울철 바다가 거칠다 해도 내일을 내 고국을, 내 가족을 향해 힘차게 줄기차게 달리는 거다.
큐바의 하바나에서 잠시 들린, 그 이름을 잊은 것이 섭섭하다만 미국의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가 낚시차 왔다가 자주 들렸다는 그 Bar에서 맥주와 차를 두어 차례 마시면서 머리와 수염이 온통 허옇게 된 늙은 Bartender와 얘기를 나눈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영어도 유창했으며 헤밍웨이에 대한 자랑도 대단했고, 당시의 유물처럼 남겨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가르키며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큐바가 미국과 가깝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도 대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사회주의 답답함을 통탄하면서도 말도 못하는 울분을 가진 것이리라.
또 하나는 Miss. Suzan이란 간호부 아가씨의 추억이다. 월 160Pesso를 받는 그 예쁜 아가씨는 짧은 영어 덕분에 퇴근 후의 매춘 사업이 성업중이었다. 건장한 남자 넷을 턱으로 부린다. 하룻밤의 수입이 4-5개월의 수입을 능가하니 그럴 수 밖에-.
이 큐바에도 한국인 3세가 살고 있었다. 미국 하와이와 본토를 거쳐 이곳까지 온 이민 1세들의 후손인 아가씨가 Agent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Agent의 소개를 받아 인사를 나누었으나 전연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그는 이미 한국의 모든 것을 잊고 있는 듯 했다. 섭섭한 일이었다. 그를 위해서 한국적 Image가 담긴 것 하나라도 남겨 주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없다. 한국의 청바지 등 옷을 비롯한 제품들이 Mark를 달리하고 여기도 들어오고 있었음도 놀라운 일이었다. 앞섶에 누비무늬를 넣은 여름 남방 사쓰가 한 때는 한국에서도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여기서는 아주 고급품으로 인정, 일부러 내게 보이기 위해서 입고 나온 Agent 직원도 있었다.
Dec/12(토) :
대청소를 실시했다. 방바닥에서부터 내 마음속의 땟자국까지를 박박 문질어 내려 애썼다. 우선은 바닥부터가 훤해지더니 차츰 왼 주위가, 정신에도 덕지덕지 앉은 땟자국에 조금은 벗어져 나간다. 새벽잠이 깨임과 동시에 ETA가 잘못 계산되어 타전되었음을 발견. 너무 서둔 탓이리라. 다시 정정 Cable을 넣었지만 이미 한 가닥 금간 사기그릇처럼 흠집이 남는다. 이 나이에 아직도 덤벙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전의 무리탓인가 허리가 말썽이다. 자신을 잃어가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는 듯도 하다. 제기랄.
아직 출항한지 24시간이 못 됐는데도 조급증이 나는 것은 또 무슨 망령인가. 옛날 북양시절 만선을 마친 뒤 남하하기 시작만 하면 곧장 영도섬이 바로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던 그 환상 같은 것이 다시 도지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반겨줄 것이없다. 그저 추위와 짧은 시간, 그 속에서 바삐 움직여야 할 긴요한 일들만이 잔뜩 기다릴 뿐이다. 어쩌면 밤을 하얗게 새면서 운하를 건너야 할 재수 없는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모른다. 오직 한 가지 아내로부터의 서신과 책, 거기에 묻어 올 당신과 애들의 내음새. 그 하나 때문에 얼른 떠올려도 대여섯가지가 넘는 굵직한 일들 조차 잊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쉽다. 정영-.
Dec/15(화) :
북대서양의 발달한 저기압 끝을 따라 가느라 괜찮은 듯 하더니 오늘부터 황천, 그리고 흔들림이 시작한다. 겨우 북위 31도인데도 바람에 살갗을 찌르는 한기가 진득이 묻어있다. 겨울옷을 챙겨본다. 아무래도 시원찮다. 지금쯤 한국에서는 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겠군. 국가의 장래를 위해 정말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두 金氏(김영삼. 김대중)의 책임은 곧 국민을 속이고 우롱한 것이 아닌지? 과연 누가 어떻게 내일을 이끌어 갈 것인가. 어제 Tonichi로부터 저들도 염려스러운 모양인지 Cable로 알려왔다. 거기다 NYK Survey까지 겹쳐있으니-. 염려 마시오. 잘해 낼거요. 연일 영어 카셋트 테이프에 정신을 쏟는다. 특히 뉴스 기사가 들을 만하다. 계속 두드려 보자. 정화의 입시가 22일이랬다. 내 염원의 기도가 조금만이라도 이루어 준다면 잘 해낼 것이다. “정화야! 힘내라, 우선은 네 자신을 위해서다. 결코 실망하거나 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 자신에게 보다 너를 가진 부모 그리고 네 아우들에게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본다”.
詩人 高銀씨의 소설 ‘밤주막’ ‘청포일기’ ‘만추’ ‘파계’를 읽다. 인간적 다스함이 있어 좋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