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고미산(高尾山)
제5회 한일선교협의회 마지막 날이다. 일본기독교교단 동경북지구와 서울노회 사이의 선교협력관계가 올해로 9년을 맞았다. 이번 제5차선교협의회 주제는 "현대사회의 신음에 응답하는 교회 - 갈릴리의 예수를 생각하며"이다.
어젯밤 이준원 선배, 이승구 선배랑 잠자리에 누운 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새벽 2시에 잠이 들었다. 창밖이 훤하여 일어나 보니 아침 7시다. 아침 식사시간이 8시니 아직 여유가 조금 있다.
창밖을 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얼른 세수를 하고나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와 산보를 하였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운율에 맞추어 춤추듯 우산을 두드리며 장단맞추는 가을비 아래 산보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아침 9시부터 이번 선교협의회 마지막 순서가 진행되었다. 합의문 채택 시간이다. 이 합의문에는 지난 금요일부터 시작하여 어젯밤까지 진행된 발제와 토의를 총정리하는 내용을 담게 될 것이다. 서울노회에서 3명 동경 북지구에서 3명 등 6명의 초안 위원들이 어제 밤 12시 30분까지 여러 가지 사항에 합의하고, 그 초안을 작성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진행되는 도중 장난기가 발동한 이승구 선배가 우리 셋이 각자 시를 한편씩 쓰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즉석에서 각자 시를 지었다:
비
일본 고메산 아침에 내리는 비
50년 세월을 소리없이 적시네.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사랑하는가?
유리창 밖 갈색 빛줄기
세월의 초원 위에
침묵으로 젖어가다 - 이준원
비
먼 길 떠나
평생 처음 머무는 이국땅
대지를 적시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
세월은 비 가운데
나를 재촉하여도
나는 결코 서둘지 않네 - 이승구
5언절구(五言絶句)
추우조적기(秋雨朝滴氣)
관외미단풍(觀外未丹楓)
심중화기지(心中畵旣之)
사주선안전(思走先眼前) - 정현진
가을비가 아침 기분을 촉촉히 적시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네
내 마음은 이미 단풍으로 물들었는데 ...
생각이란 이렇게 늘 눈 앞의 현실보다 앞서 달려가는구나
이 시 세편을 함께 음미하며, 창밖에 햇빛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니,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비는 역시 비였다.
오늘 저녁에 나는 서울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샐활로 다시 되돌아갈 것이다(09-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