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령산
김 선 호
879미터 (지난 날의 산기행기 중에서) 1987년 7월 17일 선호
날씨가 시어머니 마음같이 변덕이 심한 여름날씨. 자칫 길 잃기가 매우 쉽다. 마음 한곳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부푼 것은 벌써 한달만에 가는 산이어서 우리는 더욱 긴장되는 흥분을 참지 못하였다. 석고개에서 출령산 입구까지 1시간정도 소요된다. 우리가 올라갈 때 빗방울이 떨어져서 다소 걱정했지만 비는 곧 그치고 말았다. 소로를 걷는 동안 고개들어 산을 보아도 산새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매우 짙어서 하얗게 보이기만 하였고 계곡에 흐르는 물은 많치가 않았다. 축령산입구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구멍가게에서 껌과 성냥 한통을 사고 차시간표를 물어 보았다. 이곳에서 10분정도 걸으면 깊숙한 산속이다. 산속으로 빠져들자 적막감에 휩싸인다.
언덕을 오르면서 집이 두채가 보이는데 사람은 없었다. 옆으로 벌채 해놓은 참나무만 가득 쌓여있고 멀리서 말소리만 조용히 날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능선 길까지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런 식으로 몇채의 집을 더 볼수 있었지만 역시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사람들은 숯 굽는 사람이었다. 깊은 산중에서 숯 굽는 사람들... 이제는 연탄불이 꺼져도 숯을 쓰지 않는다. 다만 대중음식점에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흙과 나무로 만든 로에서 얼굴은 숯분으로 검게 되어 윤곽도 알수 없고 뜨거운 7월에 그을은 여름을 태운다. 세상이 좋아서 연탄불은 쓰고 있지만 저렇게 고생을 하면서 만든 숯이 팔리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마저 앞선다. 통 참나무가 숯이 되어 고운 빛을 띠운 그들의 고운 마음이 사용자에게 전달되길 빌고 싶다. 숯 굽는 사람들이 끌고 내려온 참나무 때문에 길이 없어졌다. 겨우 찾아오르니 능선길이다. 능선이라서 산과 산을 곱게 이어놓은 것이 아니라 한쪽은 절벽이다. 축령산 경계가 되어 한쪽은 양주군이고 절벽쪽은 가평군이다. 일기만 좋으면 청평호수가 보인다고 한다. 이 능선길이 축령산의 주능선이다. 여기서 조금만 오르면 커다란 바위가 고개를 내보이듯 보이는데 이 바위가 독수리 바위다. 실로 형태로 보아 독수리 머리와 흡사하였고 이것은 자연의 오묘함을 다시 맞볼수 있다.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축령봉은 길이 매우 아기자기해서 지루함이 없는 길이다. 또한 남이 바위가 있는데 바위가 꼭 의자의 모양을 이루고 있어서 이 산을 오르는 사람마다 이 바위에서 한번 앉아보곤 한다.
하산길에 우리는 길을 잃고 말았다. 길을 찾으려고 몇번이고 왔다갔다 했지만 허사였다. 어디선가 사람소리가 들려 왔다. 그 사람 역시 우리와 같은 신세였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었다. 금석이가 전나무에 올라가서 주위를 살펴보고 왔다. 멀리 인가는 보이는데 숲이 너무 우거져서 내려갈수 없다고 했다. 일행은 원래의 길에서 다시 시작하였다. 언덕을 오르니 길이 시작되었다. 다시 능선길로 접어들었다. 한참만에 다시 길이 끊기고 말았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약간 높은 바위에서 상황을 살피었다. 여전히 인가는 시야에 들어왔다. 할수 없이 가장 적은 넝쿨벽을 치기로 했다. 가시와 가지 그리고 날카로운 나뭇잎에 긁히고 이런 상태에서 조금도 주춤함이 없이 열심히 갔다. 금석이가 더덕냄새가 난다고 해서 일행은 발을 멈추고 살펴보았다. 정말로 더덕의 줄기가 여기저기 걸쳐 있었다. 충분한 시간만 있으면 몇뿌리 캐고 싶었지만 갈길이 멀었다.
허공이 트인 듯한 곳에서 산딸기밭을 만났다. 일행은 쉴겸해서 미친 듯이 먹었다. 허기졌던 배를 약간이라도 채우니 세상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이곳이 능선이 끝나는 곳이 어서 곧 길이 있을 것같아 우리는 계곡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정말로 진수성찬이다. (돌구이, 골뱅이, 소주, 드라이진, 3층밥) 거의 식사가 끝날쯤해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재빠른 동작으로 취사도구 챙기고 우의를 입고 하산, 비맞은 계곡의 바위가 매우 미끄럽다. 일해은 고함이라도 지를 듯한 기쁨과 날 것 같은 마음이다. 콘크리트 넓은 길을 걷는 마음 우리는 길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마을사람에게 물어보니 행현리라고 했다. 되돌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지나려 한 것이었다. 뒤돌아 축령산 다시 보니 묵직한 산세가 너무 멋있었다. 마을에서 막걸리에 그동안의 여독을 풀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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