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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생신을 함께 잘 지내셨는지요? 국민 모두가 축보해 주는 생신에 언제나 휴일이라는 잇점까지 있으니, 선생님은 행복한 출생의 주인공이시네요. 형부 한 명이 구정날 생신인데, 특별히 형부의 생신을 구태여 기릴 필요가 없이, 어차피 그 날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하는 날이라서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관심의 날이 되지 않아서 오히려 불평이신 것 같던데.... 행과 불행은 언제나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인 모양이지요...
몽고 비자 한 달간의 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읍니다. 조금 전에 기차역에 가서 기차표를 예매해서 사 들고 왔읍니다. 비자는 금요일에 끝나는데, 목요일에 몽고를 떠나서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합니다. 하루를 여유로 남기고... 그러자면, 수요일 밤에 떠나는 밤 기차를 타야, 목요일에 국경에 도착합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빨랐읍니다. 이곳의 교통 사정이 좋지 않으니, 어디 한 곳 훌떡 떠나오다보면, 1주일이고 열흘씩 흘러 버리지요.
수도인 울란바타르에 돌아올때마다, 저희집에 수신자 부담의 전화를 하느라고 전화기를 빌려쓰는 한국음식점 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경상도 어디 고등학교, 모교에서 음악교사를 18년동안 하셨다가 빚때문에 그만두고 이리로 오셔서 장사를 하신다는 그 분은 자신은 세월이 어떻게 가는 지를 모르고 있다가, 제가 한번씩 나타나서, '고비 사막에 다녀왔습니다' 하면 세월이 이미 흘러갔구나~~~ 하다가, 다시 훌쩍 떠났다가는 '홉스골 호수에 다녀왔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또 세월이 흘렀구나~~~~ 하신다는군요. 그러면서, 이제 도착한 것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벌써 한 달이 흘렀다시는군요.
울란바타르에서 며칠 짐을 풀고, 서서히 몽고를 알아 가면서 1주일후에 우연히 만난 독일 남자 세명과 그룹을 만들어서 10일간의 고비 사막여행을 떠났지요. 정말로 황량한 초원의 벌판에 형형색색의 마른 산들이 이어지는 길을 끝도 없이 달리는 여행이었읍니다. 공공버스가 가는 곳은 거의 한정되어 있으며, 가다보면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 것만 해도 도로니까 반가운 일이지요. 도로가 아예 없어요. 공공버스도 아예 안 다니는 곳으로의 여행이니, 부득히 그룹을 조직해서 다니기 싫어하는 제 경우라도 어쩔 수 없는 '고비 여행'입니다. 정말 끝없이 큰 나라에 정말 인구가 거의 없는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는 여행이었읍니다. 처음 길을 떠나면서 독일 남자중 가장 연장자인 60대 노인이 두 독일 청년들에게 말하고 있더군요. 도로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고, 만약에 도로를 만들어 놓으면 훨씬 이익거리가 많을텐데, 그 생각을 하지 않는 몽고인들을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더군요. 제가 의견을 말했읍니다. 남한의 16배가 되는 이 나라에 겨우 2백 5십만의 인구가 살고 있읍니다. 그것도 인구의 3분의 1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으니, 나머지 땅에는 얼마나 소수의 인구가 흩어져 사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이 남쪽의 사막 지역에는 거의 인구가 없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이 극소수의 사람들과 극소수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넓은 땅덩어리에 전부 도로를 가설하는 것은 어쩌면 몽고인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돈이 없읍니다. 우선 이 작은 인구에 불과하지만, 먹고 사는 일이 입에 풀칠 하는 일이 더 바쁜 사람들이 어떻게 이 엄청난 땅덩어리에 철로를 가설하고 도로를 가설할 수가 있겠습니까? 과연 도로를 만드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 일까요?
이번 사막 여행은 멋진 사막의 아름다운 모래를 보러가는 여행은 아니었읍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보던 끝없는 사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굳이 목적지를 찾아 가보면, 한 곳에서 모래산이 만리장성처럼 길게 펼쳐지더군요. 그러나, 가는 도중에는 몽고 어느 부분을 여행하거나 볼 수 있는 똑 같은 초원과 산악지대의 모습이 펼쳐지더군요. 바로 이것이 몽고 여행입니다. 어디 딱히 목적지를 정해서 찾아 가보면, 그다지 볼것은 없읍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은 어디나, 울란바타르만 벗어나면, 황량한 대자연이 펼쳐집니다. 이 넓은 자연을 한번 느껴보라는 것이 몽고 여행이게찌요. 요즘 이 몽고에는 프랑스 여행자들이 유난히 들끓고 있는데, 가끔 그들의 여행형태중에 또 색다른 형태를 발견합니다. 목표를 정한 어느 한 도시에 공공버스를 이용해 가서는 그곳에서 말을 한 필 사서 죽 몽고를 여행하고 마지막에 그 말을 팔고 돌아가는 여행. 어제 호수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와 그의 애인인 일본 여자 둘이서 말을 한 필당 125,000원을 주고 사서 40일간의 여행을 한 후에, 제가 만난 그곳에서 45,000원을 받고 그 말을 팔았답니다. 말타기를 좋아하지 않는 제게는 별로 솔깃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참 대단한 여행을 했다고 생각하며, 어제 숙소에 돌아오니 우리 숙소에도 프랑스어를 쓰는 스위스친구들이 5주간의 말타고 여행을 하고 말을 팔고 왔다고 하네요.
어쨌건, 잠시 중간 잡담이었는데, 이렇게 해서 우리의 사막여행은 시작되었고, 매일 밤을 몽고인들이 초원에서 사는 천막집 '게르'에서 잠을 자며,또 러시아제 지프로 길을 떠나곤 했습니다. 매일 먹는 밀크티에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늘 양고기나 쇠고기를 넣은 칼국수 아니면 밥에 이제는 물렸습니다. 언제나 고기, 고기... 야채나 생선을 훨씬 많이 밝히는 제가 매일 반찬없이 고기 섞인 국수나 밥만을 울컥 울컥 먹는 일은 그리 상쾌하지 않고 좀 물립니다. 때로는 우리의 막걸리처럼 생겼는데, 밀크에 알콜성분을 담은 뿌연 막걸리 색깔의 술도 친숙하게 마시곤 했지요. 밤하늘의 별은 정말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샤워를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세수조차 못할 때가 더 많았던 이 여행에서, 이 물이 귀한 점만을 제외하면, 어차피 저야 이곳에서 하루 묵으면 어떠할 것이며, 다른 곳에 가서 또 하루를 묵으면 또 어떻습니가? 어쩌면, 육체적으로는 가장 행복한 여행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열흘간 지프차와 운전사를 고용했기 때무네, 선생님께서 염려하시는 무거운 배낭을 매고 다닐 필요가 전혀 없었지요. 그날 묵을 숙소에 도착하면 운전사가 알아서 해결하고.....
정말 와일드한 자연을 만끽하면서, 차가 험난한 길을 점프해서 달릴때마다, 혼자서 '읏싸'하면서 기합까지 주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에, 우리 팀의 독일인 세 남자가 하도 마음들이 안 맞아서 조금 고생을 했지요. 저처럼 그들도 초면인 사람들인데, 고비사막 여행을 위해 한 사람씩 모였더니, 우선 성격은 막론하고 연령부터가 너무 차이가 났었죠. 20대, 30대, 60대로, 게다가 개인주의(이기주의) 강한 그들 세 사람이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좀 죽이고 조화를 시켜야 함에도, 어찌나 제 주장만 하다보니 마음이 갈라질 수 밖에요. 세 남자와 저와의 개인적인 관계는 따로 따로 다 좋게 잘 지내고 있었지만, 그들간의 균열의 골이 매일 매일 깊어가더니, 나중에는 서로를 미워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까지. 독일인의 합리성은 다 잃고, 중간에 있는 제가 짜증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서로들 상처를 주면서 서로에게 반대하며, 이성을 잃다보니 본의 아니게 제게도 실수들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전 독일어를 못해서인지, 아무래도 독일인들보다는 불란서인들이나 이태리 사람들하고 자연스럽게 많이 어울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고, 그들은 휴가를 조화롭게 재미있게 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죠. 함께 하면 즐거운 사람들... 이번에 독일인들에게 조금 질렸어요. 1주일간은 그럭 저럭 지내다가, 한 친구가 다른 일정의 제의를 하느데에 하두 의견이 분분하고 시끄러운 차에 어쩔 수 없이 제가 강력한 독재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동안은 늘 "너들 세 사람들이 결정하면, 난 만족하게 따를 것이다." 전혀 내 목소리를 내지 않던 제가 갑자가 독재를 행사하면서, '이들 그룹을 위해서~~~~' 이름으로 독재자가 되니 모두가 아연실색~~~~ 하여간, 그렇게 시끄러운 그룹여행은 또 처음이었읍니다. 간혹 유럽인을 두고 말하면, 일을 할 때는 독일인과 하면 확실하고 정확하고 좋지만, 휴가를 즐기라면 이태리사람들이 잘 논다고 하죠.
돌아오는 길에 들른 옛 수도였던 곳에도 특별히 볼 것은 없습니다. 달랑하니 절이 하나 았을 뿐이죠. 그 대제국을 형성했던 몽고 제국의 흔적이 별로 없는 것은 아쉽지만 사실입니다. 몽고여행을 한국인들의 단체여행식으로 목적지를 두고 짧은 시간에 홱 달려갔다오면, 정말 볼것 없을 뿐 일 것니다. 이 곳 여행은 시간을 두고 대 자연을, 와일드한 자연을 즐겨야 하는 것일겁니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고비여행에서 돌아와서, 먼지구덩이의 빨래와 샤워를 한 후에, 이번에는 혼자서 이 나라 관광의 하일라이트라고 몽고인들 모두가 추천하는 북쪽 러시아에 가까운 '홉스골 호수'로 달려 갔다가 1주일만인 어제 저녁에 돌아 왔습니다. 길은 여전히 험하지만, 고비와는 달리 그래도 공공버스가 계속 연결되는 노선이라서 당연히 혼자 떠났지요. 이 나라의 버스는 인간이 찰 때까지 무조건 출발시각 무시하고 기다림이어야하는데, 선생님 말처럼 조바심 많은 한국인 은 할수가 없는 여행입니다. 느긋하고 늘어터진, 저처럼 물에 불어 터진 것같이 게기는 한국인만이 오직 할 수 있는 버스여행입니다. 많은 후진국에서, 불편한 교통조건을 경험했지만, 이런 경우도 또 처음 겪는 일이었죠. 장거리 버스가, 우리의 봉고사이즈인데, 좌석이 찰 때까지가 아니라, 짐과 인간으로 너무 많이 차서 움지일 수가 없을 때까지가 기다리는 것이 한계시간입니다. 자리가 다 차서 떠나나 하면 절대로 안 떠나죠. 작은 도시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또 사람을 태우죠. 가끔 이런 형태의 버스를 다른 나라에서 타보기는 했지만, 겨우 몇 시간내의 단거리의 경우였지, 이렇게 28시간이 넘는 장거리 버스로서 운행되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찰 때까지로, 8시간을 출발을 기다린다는 것은 말이 아니죠, 중국에서도 가끔 단거리버스에서 사람이 차야 떠난다지만, 인구많은 중국은 1시간을 넘지 않아서 어차피 인간이 차게 되어 있읍니다. 불행히도 몽고는 인구가 또한 그만큼 귀해서, 결국 기다리다가 사람이 꽉꽉 메워지지 않으면 안 떠나는 날도 생긴 답니다. 이래서, 몽고여행은 시간을 두고, 인내성이 필요하다고 하죠. 저는 토요일에는 어차피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토요일 그 곳에서 버스를 타고 겨우 2시간 기다려서 출발. 28시간만에 일요일인 어제 도착했습니다.
홉스골 호수는 정말 크고 맑은 호수였습니다. 이 나라 최대의 관광지인 만큼 교통편이 어쨌건 잘 연결은 되고는 있어서 다행이었읍니다. 지금껏 말한 불편함들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공공교통편을 이용해서 들어갈 수 있다는 점만으로(물론 제가 말한 그 장거리버스가 다가 아니고 몇 번을 이어서 갈아타고 가지만), 제게는 교통편이 좋다고 표현하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사실 조금 우습네요. 선생님의 생신이었다는 추석날을 바로 그 호수에서 보냈지요. 조카들에게 호수에 잠긴 달을 보고 오겠느라고 약속을 하고 떠나서 열심히 달밤에 호숫가로 나가 보았지만, 구름이 잔뜩 낀 그 날은 달을 전혀 볼수가 없었는데, 밤중에 '쉬'하러 천막밖으로 나왔다가 휘영청 밝은 달을 보긴 했습니다. 아마도 다음날 새벽달이죠.
이 곳에서 만난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춘천에서 한의원 원장님이신데 역시 경상도분이셨습니다. 선생님정도의 연령층인것 같은 분인데, 여름 휴가 대신 추석 연휴를 끼워서 1주일간 혼자 떠나오셨다더군요. 여행이 익숙치 않은 분이신데 용기를 내셨답니다. 시간이 짧은 문이라서 그 호수에도 비행기를 타고 오셨는데, 비행기조차 확실히 뜰지 말지 몇시간 늦어질 지 모든 것이 불확실해서 가실 때까지 불안해하시고 계셨죠.
어쨌건, 불편한 점이 더 많은 현대화와는 거리가 먼 몽고 땅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한번도 몽고인들에게 제가 짜증을 내지 않은 점입니다.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곳보다는 훨씬 교통편이나, 여행조건이 좋은 인도에서는 바로 이렇게 너그러워 보이는 제가 '인도깡패'나 다름없이 공격적이었답니다. 작은 돈으로 사기를 치고, 늘 거짓말을 하는 그들과 매일 싱생이 하기 일쑤이면서, 얼마나 와일드한 '한비자'였는지 선생님께서는 저의 그런 모습을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인도가 제일 싫었다는 이야기도 물론 아닙니다.
그만큼 몽고인은 순박합니다. 별로 화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이나라의 험난하고 거친 대 자연이 주는 불편함이야 당연히 그에 순응하며 받아들여야죠. 덜컹거리는 차에서 점프를 하면서 부딪혀서인지 어릴때 있었다는 엉덩이의 몽고 반점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어디 엉덩이뿐이겠습니까? 몽고 반점은 다리 곳곳에도 온 몸이 퍼렇게 다시 생기게 되었고, 얼굴은 이미 몽고 간장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이찌만, 그만큼 몽고인들과 몽고의 자연에 적응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늘 염려해주시는 마음에 감사의 뜻으로, 좀 긴 이야기를 쓰느라고 이 'PC방'에서 돈좀 뿌리고 있습니다. 알아주세요! 이제 목요일에 중국국경을 다시 넘어가면, 북경으로 가서 돌아오는 길에 중국어 학원에서 1달넘어 공부를 하고, 가까운 천진항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까 합니다. 10월 말이나 되어야 잠시 한국에 들를 것 같네요. 때 맞추어 가야 할 일도 있고, 아마도 바로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될 것 같으니 선생님이 제의 하시는 부산에서의 한잔은 아마 힘들겠죠? 한국가야 1주일을 체류할 수 있을지????
1달간 중국어 공부가 펑크가 나서 조금 섭섭하지만, 좋은 여행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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