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클럽의 창립정신
창립을 준비하던 초창기의 지도자들은 좋은 클럽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을 회원으로 맞이 할 것인가? 클럽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해 갈 것인가?
그리고 봉사활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모일때마다 화제로 등장한 제목들이다. 이렇게 수많은 토론을 하면서 때로는 심한 의견충돌도 있었지만 모두의 합의를 도출하여 진남클럽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진남클럽의 특징은 내실을 기하고 조용히 봉사활동을 하며 클럽운영을 민주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회원 모두의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합의였다. 그 당시 사회전 분위기를 보면 대부분의 봉사클럽들이 앞을 다투어 홍보차원에서 하는 봉사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눈에 잘 띄는 거리에 거액을 들여 조형물을 세운다든지 매스미디어를 의식하고 봉사한다든지 필요한 곳에 직접 봉사하는 것 보다는 기관장에게 봉사금을 전달하는 등 자체클럽 홍보에 치중하는 봉사가 빈번한 시절이었다. 그때 진남클럽은 연혁에서도 보는바와 같이 경운기가 귀한 시절에 농촌으로 리어카를 보낸 것이 촤타기념 사업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집배원이나 구두닦이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방한복을 입히고 소리 날새라 빈민가를 찾아 연탄이나 식량을 전달하기도 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을 찾아가 장학금을 전달하고 낙후된 낙도를 찾아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의료봉사를 하고 YMCA 사업운영비를 전달하는 등 클럽홍보와는 별관계 없이 어둡고 그늘진 곳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서 왼손이 모르게 봉사하는 것으로 출발한 클럽이라는데 그 클럽정신을 높이 평가할만 하다.
진남클럽이 초창기에 이와같은 정신으로 출발하게된 이유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초창기의 지도자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하여 클럽을 결성한 이유도 있고 또 스폰서를 담당한 여수클럽이 외형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좋은 클럽의 영향을 받은데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모든 회원들이 와이즈멘 클럽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고 국제인준을 받았기에 와이즈멘으로서 클럽목적과 이념을 따라 정도를 걷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요즘처럼 창립총회를 하자마자 촤타를 받는 경우는 클럽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친목단체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그런점에서 진남클럽은 촤타를 받는 과정이 좋았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좋ㄹ은 클럽으로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은 말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