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로 살자
고전 15:1-10
우리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사도 바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서 가장 큰 사역을 감당한 분으로서, 바울만큼 위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그 진리를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수 구원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우물쭈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의 속사정까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성경을 깨닫게 해 주는 학자입니다.
또한 역동적인 목회자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노잣돈도 없이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분은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으로 꽉 찬 사람입니다.
“십자가 외에는 내가 다른 것은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전 2:2)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자로서 생을 마감한 분이 사도 바울입니다.
1.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일생(一生)을 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은혜로 살고 싶어 합니다.
사람의 은혜를 입어도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은혜로 사는 것이지, 자기 노력이나 자기 수단 방법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역사해서 은혜로 날 도와주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살았다” 했습니다. “미래도 은혜로 산다”고 했습니다. “현재 살아가는 것도, 어떤 악조건이나 어떠한 괴로움과 죽음과 환란, 핍박이 닥쳐와도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가 당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1주야(晝夜)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면서,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던 그러한 상황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11:24-28).
성도 여러분!
은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가 그것입니다.
보이는 은혜는 일반 은총을 말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일반적으로 내리는 자연 은총을 가리킵니다.
보이지 않는 은혜는 특수한 은총으로서 신령한 은혜, 내적 은혜입니다. 보이지 않는 은혜는 성령으로만 깨닫고 알 수가 있는 은혜입니다.
2. 사도 바울은 겸손(謙遜)한 삶을 살았습니다
은혜 받은 자의 삶은 겸손한 삶입니다.
은혜 받으면 인생이 나그네임을 알게 됩니다.
나그네의 삶을 살 때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인생이 언젠가는 떠나야 할 나그네임을 모르면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약 4:6, 벧전 5:5).
은혜 받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가 나그네인 줄 알고 고백했습니다(히 11:13). 베드로도 그랬습니다(벧전 1:17).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수많은 업적을 남긴 다윗도 “인생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대상 29:15).
성도 여러분!
은혜는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나그네다”라고 고백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림자처럼 사라질 나그네이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하면서 삽니다.
어디가도 주인 노릇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 묵어가는 여관방이요 하숙집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처럼 영원히 있는 줄 알고 탐욕을 냅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딤전 6:7).
욥은 하나님이 자녀와 재산 등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셨을 때 “적신으로 왔으니 적신으로 갈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욥 1:21).
사도 바울은 정말 자랑거리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족보 있는 집안으로 왕의 후손이었습니다. 당시에 최고 학문을 공부한 지성인이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시민권을 소유한, 일등 시민인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보니 모두 배설물(排泄物)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 15:8)라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①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 15:9) = 주후 55년경
‘나는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 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15:9)
②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엡 3:8) =주후62년경 로마 옥중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 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3:8)
③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 1:15) = 주후63-65년경 로마 감옥 에 투옥이후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15)
라고 고백했습니다. = 이것이 사도 바울의 겸손(謙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니 자기의 자랑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고, 버렸습니다.
3. 사도 바울은 감사(感謝)가 차고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은혜 받은 사도 바울의 행복감은 감사가 차고 넘친 데 있습니다.
바울은 매맞아도 감사하고, 굶어도, 헐벗어도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녹슬지 않는 천국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남 욕하고 원망하며 감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딤전 4:4).
사도 바울 보세요.
빌립보 감옥, 가이사랴 감옥, 로마 옥중에서도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모든 삶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했기 때문에 감사로써 마감하는 거 보세요.
사도 바울은 평생 은혜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다가 하나님 앞에 간 분입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마음대로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으니, 감옥은 불평과 불만과 저주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반면, 수도원에는 감사, 감격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내가 주 안에 있다”라고 고백했습니다(엡 4:1).
도리어 “내가 감옥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진보’를 이루고 복음이 널리 만방에 퍼진다”고 기뻐했습니다.
결론
은혜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한탄하시면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실 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 6: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에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감사하면서 마음이 여유 있게 사는, 승리하시는 성도 모두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