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직장인 A씨는 지난 몇 개월간 지속되는 손발 저림 증세로 진료실을 찾아왔다. A씨는 업무상 1주일에 3회 이상 소주 1병 이상을 지난 10여년간 마셔왔다. 자신은 술을 마셔도 항상 안주를 충분히 먹으면서 마셨고, 또 잘 취하지도 않아 술은 자신 있다고 했다. 검사 결과 A씨는 알코올성 간염과 알코올성 말초신경염이었다. 손발 저림은 감각신경에 염증이 생긴 탓이었다. A씨는 이 같은 진단 결과에 좀처럼 수긍하려 들지 않았다.
한국인에게 술은 담배보다 더 위험하다. 한국 사람의 건강과 수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하나만 대라고 하면 성인 남자의 60%가 흡연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다음 통계를 보면 음주가 건강 문제 1위임을 알 수 있다. 음주 인구 1인당 연간 맥주 204병, 소주 120병, 양주 2병을 마신다. 성인 남자의 88.8%, 여자의 71.6%가 음주를 한다. 우리나라 사망자 중 10.6%가 음주 관련 사망자이고, 남성은 술로 인해 2.71년, 여성은 0.95년의 평균 수명이 감소한다.
우리는 술이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상을 너무 모르고 있다. 심지어 의사들 중에도 술을 많이 마시는 것에 관대한 이들도 많다.
술은 어쩌다 한두 잔 마시는 것은 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마시는 것이 해가 되는가 하는 기준이 바로 ‘위험 음주’의 정의이다. 하루에 마시는 양이 알코올로 50g 이상이거나 1주일을 합쳐 총량이 170g 이상이면 위험음주다. 이를 잔으로 환산하면 알코올 50g은 소주 5잔, 양주 4잔, 맥주 3병, 폭탄주 3.5잔, 와인 3.5잔, 막걸리 1과 3분의 1병에 해당된다. 알코올 170g은 소주 2병 반, 양주 반 병, 맥주 10병, 폭탄주 12잔, 와인 2병 반, 막걸리 4병 반이 된다. 이 기준은 정상 남자에 대한 것이고 고혈압, 당뇨, 비만 등이 있는 사람과 여자 및 65세 이상인 사람은 위 기준의 절반, 즉 소주로 치면 하루 3잔 이상, 1주일 총량이 1병을 넘으면 위험음주가 된다.
위험음주를 하면 위염, 위 및 십이지장궤양, 췌장염 등의 위장병, 알코올성 간염, 만성 간염, 간경화 등의 간질환, 두통, 기억력 감퇴, 말초신경염 등의 신경질환, 고혈압, 부정맥, 뇌졸중 등의 심혈관계질환, 당뇨병, 빈혈을 일으키고, 간, 췌장, 식도, 두경부 및 유방암을 발생시킨다. 뿐만 아니라 만성피로, 수행력 감소, 불안, 우울, 수면장애 등을 일으켜, 각종 사고 및 폭력의 원인이 된다.
더욱이 술이 신체에 미치는 해악은 최근에 마시는 양보다는 일생 마신 양에 비례한다. 술의 양을 줄였는데도 알코올성 질환들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다. 항아리에 물이 꽉 찼을 때 조금만 부어도 넘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된다.
술은 안주로 해독되지 않는다. 안주를 잘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 위장에 부담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안주는 술을 더 마시게 하는 속성이 있다. 위험음주는 마시는 알코올의 절대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안주를 많이 먹는 우리나라의 음주법은 사실은 알코올성 질환을 가중시키는 면도 있다. 이른바 ‘건강한 음주법’이라는 것도 사실을 알고 보면 술을 더 마시게 하는 음주법이다. 천천히 마시든, 순한 술부터 시작해서 독한 술을 마시든, 3~4일 간격을 두고 마시든 결과는 마시는 절대량에 비례한다. 한두 잔에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음주법인 것이다. 숙취해소음료나 아침의 해장국도 그 순간은 몸을 편안하게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알코올의 해독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A씨는 주치의의 권고대로 아무런 약도 처방받지 않고 6개월을 완전 금주를 했다. 지금은 손발 저림도 없어졌고, 알코올성 간염도 나았다. 또한 술을 마실 때에는 몰랐었는데, 안 마셔 보니까 술이 그동안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
첫댓글 휴...............힘들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