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힘들다.
이제 우리에게 누적된 피로가 쉬 해소되지 않으니 모두 힘들어 한다.
오늘은 도중에 20km 또는 30km를 걸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 중간에 숙소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피로감에 지친 우리는 20km 지점에 있는 로그로뇨(LOGRONO)라는 도시에 숙소를 정했다.
오늘은 도보 자유여행의 참 맛을 느낀 날이다.
출발 후 10km 지점에 위치한 viana라는 작은 마을에 12시 30분경 도착해서 까페에 동행인이 커피를 주문하러 들어갔다. 기본 에스프레소로 제공되는 커피에 한국 아재인 내 입맛이 아니다. 그래서 뜨거운 물을 부어서 아메리카노 스타일로 만들어 먹으며 으레 공치사 하기 바쁘다.
마트에서 산 긴 마른 순대 같은 초리소(chorizo)를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도자기 접시에 썰어서 가져 왔다. 언어 장벽을 허물고 무상으로 업무를 수행한 나의 우쭐함을 보는 눈빛에 신뢰가 없다.
사실은 주방에서 일하는 젊은 스페인 아가씨가 나를 보자마자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며 한국에 1년간 살았다고 하며 반가이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넣어달라는 요구사항을 한국어로 했으면 간단히 해결될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설명한 그 상황에 대해 동행자는 오히려 억울해 한다.
근데, 어찌 나를 한국 아재로 바로 알아 본걸까? 좋다고 해야 하나?
휴식을 취한 뒤 걸으려 하니 어디선가 생음악으로 오케스트라 소리가 들려 온다. 가던 길 돌려 찾아가니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며 즐기고 있는 공연장이다. 나도 배낭 내려놓고 함께 춤을 추고 싶다. 무릎 춤 추는 애들이 참 이쁘다.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순수함이랄까?
도착한 로그로뇨는 대학이 있고, 잘 정비 되어 있는 소도시다.
토요일 오후 시간인 대성당 앞 넓은 광장에는 파라솔이 그득하고, 야외 테이블이 사방팔방이다.
중앙 야외 테이블에서 자리 잡고 떡 앉아서 와인과 맥주 한잔 마시며 그간의 피로를 날려 보낸다. 흥겹고도 좋다. 중간 중간 애들끼리 뛰고 까불며 해맑게 웃는 소리가 광장에 꽉 차있다. 연출한다 해도 쉽지 안을 듯 하게.
화장실 다녀오는 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엇인가를 사간다. 여행지에서 줄이 있으면 일단 줄서고 보는 나는, 10여 개에 4,000원 하는 군밤을 샀지만, 가격 대비 맛이 별로였다.
대학교 인근에 자리한 오늘 숙소는 근래 최악이다. 도시의 숙소는 일단 가성비가 좋지 않다. 주상복합 건물의 1층 화장실 딸린 빈 사무실에 2층 침대 2~30개가 놓고 재운다. 13 유로로 저렴하니 순례객 외에도 자는 손님이 많은 것 같다. 꽉 찼다.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코골이 전쟁을 한다. 이 또한 수행의 길이려니 하며 받아들여야 하나 보다.
2021.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