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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사도행전의 방언이 나오나 그 사건은 일회적 사건이지 은사로서 방언이 쓰여진 것은 아니다.
방언에 대해서 38년간 연구하셨던 장로교 목사 노우호 목사는 연구결과 사단의장난이라고 확신한다.
① 방언은 크게 둘러 나눌 수 있는데 사도행전 형이 방언과 고린도 교회 형의 방언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들(2:1-4, 10:44-48, 19:1-7은 직접적인 기록이고 8:14은 간접적인 기록이다)은 분명히 외국어였다. 사도들이 말한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사도행전 10:47에서 베드로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도들은 에베소, 가이사랴에서 있는 방언들이 자기들이 예루살렘에서 본 현상과 꼭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이와 달랐다. 그것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거의 모든 방언들은 고린도 교회의 방언들이다.
② 주전 4세기의 철학자 플라톤의 [이온]이라는 책에 보면 당시 영감을 받았다는 시인이나 작가들의 방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특징은 이성으로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고, 방언하는 본인도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하고, 통역이 필요했고, 환상과 신유의 표적이 따랐고, 신들린 사람 같다는 등이다. 주전 4세기는 예수님이나 오순절의 경험 이전이다.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에게 나타난 이런 현상을 누가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나타나는 방언과 너무나 똑같다. 방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주의깊게 생각해야 한다.
③ 고전 12:14을 살펴보면 방언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중의 하나이다(12:10). 방언 자체를 금하지 말라(14:39). 자신도 방언을 말한다(14:18). 그러나 고린도 교회 형의 방언에 대한 바울의 전체적인 견해는 대단히 소극적이다.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되 특히 예언을 사모하라(14:1). 이것은 방언으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에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으로 소개하고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교회에 무익하다(14:7-11). 방언은 통역하라고 했는데 통역이라는 말은 언어의 통역을 말한다. 그러므로 통역할자가 없으면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다(14:28).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자기에게는 확신을 주는 이익이 있을지 모르지만 불신자들에게 의혹만 줄 뿐이다(14:23).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의 표적이다(14:22).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보면 바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로 설명하는 방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로서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인데 현대 고린도 교회의 방언 형태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지껄임에 지나지 않고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증거하기보다는 오히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 하다. 그렇다면 바울이 여기서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고 한 방언은 사도들이 오순절에 했던 사도행전 형 방언을 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고전 14장은 특히 고린도 교회의 알아들을수 없는 방언의 형태를 우려하는 바울의 근심이 넉넉히 나타나 있다.
④ 재림교회에서는 사도행전 형의 방언의 기적을 부인하지 않지만 오늘날 교회들에게 하는 방언이 대부분 고린도 형 방언이기에 재림교회는 그러한 방언을 하지도 않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방언에 대한 노우호 목사의 연구결론]
https://youtu.be/Q1LHqVZLm44?si=KdpZreikHZXppbdY
에스라 성경강좌’로 유명한 노우호 목사가 한국교회의 방언은 100% 거짓방언이며 악령운동이고 방언을 부추기는 목회자는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며 “방언을 검증하자.”는 도전장을 당차게 내밀었다.
노우호 목사가 최근 출판한 <방언을 검증하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분명한 것은 현대 교회의 방언은 성경이 말하는 방언과 다르다는 것이다. 분별력이 없는 목회자들이 현대교회에 침투한 방언을 맹목적으로 성령의 은사로만 알고 본인들이 사모하고 있고 성도들에게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선동을 하고 있다. 수많은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성경에서는 방언(方言)으로 기도하라는 어떠한 가르침도 없다.”
“현대교회의 신비주의는 오순절 운동이 아니라 고린도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현대교회의 방언은 성령의 은사(恩賜)가 아니라 악령의 기만(欺瞞)이었다. 방언운동은 성령의 운동이 아니라 악령운동이며 방언기도는 자기의 영의 기도가 아니라 악령이 성령을 가장하여 사람들 안에 들어와서 그 사람의 기도를 훼방하여 온 것이었다.”
방언에 대한 이러한 입장을 당차게 밝힌 노우호 목사는 마산샤론교회 담임이며 ‘에스라하우스’ 원장이다. 에스라하우스는 1977년 8월부터 시작된 성경연구원으로 ‘성경을 최고(最高) 권위(權威)로 믿고 가르치는 곳, 성경(聖經)과 역사(歷史)와 미래(未來)를 연구하는 곳’ 등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에스라 성경강좌(EZRA BIBLE LECTURE)’를 진행하는 곳이다. 노 목사는 지난 10월 24일 <방언을 검증하자>(에스라하우스 출판부, 신국판 440쪽)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강조했다.
“작금에 한국 교회에 번지고 있는 방언을 두고 지난 37년 동안 검증해 본 결과 100% 거짓방언이었다.” “단순히 거짓 방언이라면 문제가 간단하다. 깨닫는 날로부터 그만두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방언이 거짓 방언정도가 아니라 악령의 방언, 귀신의 방언일 때는 문제가 된다. 방언을 그만 두어도 귀신은 그 사람 안에서 나가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노 목사는 이미 ‘에스라성경강좌’를 통해 참여자들에게 방언과 관련한 자신의 이와 같은 견해들을 숱하게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방언과 관련된 성경적 논점과 질문 그리고 답변들을 무수히 게재해 놓고 있다.
노우호 목사는 자신의 저서 <방언을 검증하자>라는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나타났던 방언은 1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였다. 그날의 방언은 개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은사가 아니라 성령이 강림하시는 표적이었다. 그날의 방언은 그 날 하루에만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러한 현상이 날마다 계속된 것이 아니다.
가이사랴에 있었던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방언도 예루살렘에 나타났던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그날의 방언도 오순절 방언과 같이 사람들 중에는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을 높이더라.’ 하는 기록을 보면 방언하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이사랴의 방언 역시 성령이 임재하시는 표적이었을 뿐 결코 개인에게 분여하여 일생동안 활용하는 은사가 아니었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몇 사람에게 안수할 때에 나타났던 방언도 그날 하루만 나타난 현상이었고 역시 성령님이 임하시는 표적이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안수할 때 방언을 하고 예언을 했던 사람들도 대체로 유대인들이었다. 세례 요한이 강조했던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보아서 그들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날 12시람 쯤 되는 사람들이 예언도 하고 방언도 했다. 그날에 나타난 방언 역시 개인에게 주시는 은사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는 표적이었다.
방언을 은사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던 유일한 사람은 바울 사도였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 10절에서 방언을 은사들 중에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방언은 거짓 사도 궤휼의 역군들이 꾸며낸 기만술로 드러나게 되어 곧 그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방언이 없었다(고후 11:4~28). 따라서 방언을 성령의 은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성경적인 근거는 없다.
고린도교회의 방언이 그치게 된 것은 AD 55년경이었다. 그리고 그 후 100년 정도 지나서 몬타누스 신비주의자들이 방언과 같은 소리를 내었다고 하지만 곧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의 방언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표적이었다는 사실은 확증되었고 표적으로서의 방언과 거짓 방언은 그치게 되었다.
1901년 미국의 캔사스 주 토페카의 베델신유학교 여학생 아그네스 오즈만의 입에서 나오게 된 이상한 소리도 성령의 은사였다는 증거는 없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소견에 불과하다. 그 학교를 운영하던 찰스 폭스 파르함은 그때의 방언을 오순절의 회복이라고 오해했다. 찰스 폭스 파르함은 앞으로는 선교사가 선교지에 갈 때 언어훈련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었다. 그 말을 믿고 인도 지방으로 선교를 하기 위하여 갔던 가르라는 사람은 인도에 가서 입을 열어 무슨 소리를 내었지만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작금에 한국교회에 번지고 있는 방언을 두고 지난 37년 동안 검증해 본 결과 100% 거짓 방언이었다. 단순히 거짓 방언이라면 문제가 간단하다. 깨닫는 날로부터 그만두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방언이 거짓 방언정도가 아니라 악령의 방언, 귀신의 방언일 때는 문제가 된다. 방언을 그만두어도 귀신은 그 사람 안에서 나가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방언의 위험 20가지“
① 악령의 방언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② 귀신의 방언이 심각할 정도로 많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③ 엉터리 방언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서 위험하다.
④ 방언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악령이 들어오는 수도 있다.
⑤ 거짓 방언은 본인의 기도를 훼방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⑥ 요란스럽게 하는 방언은 타인의 기도를 훼방하게 된다.
⑦ 거짓 방언이라면 일생 동안 헛소리 기도를 할 수도 있다.
⑧ 악령을 받은 자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⑨ 방언 받은 것을 성령세례를 받은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⑩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성령 충만으로 오해하고 있다.
⑪ 방언을 받았다고 스스로 신령한 자로 착각할 수 있다.
⑫ 방언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⑬ 무의식과 무아지경에 빠져서 얼마든지 속을 수가 있다.
⑭ 신비체험을 추구하는 자는 성경공부를 하지 않는다.
⑮ 방언기도만 하고 의지와 이성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⑯ 헛소리 방언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를 범할 수가 있다.
⑰ 광신적인 신비주의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도 있다.
⑱ 통역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알 수가 없어 위험하다.
⑲ 분별도 할 수 없고 검증도 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⑳ 두 사람도 같은 방언을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위험하다.”
이어서 노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교회의 방언이 위험한 50가지 이유”
01.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는 방언이 아니다.
02. 아무도 통역할 수 없는 소리도 방언이 아니다.
03.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는 허공에다 하는 헛소리다.
04. 언어의 체계가 없는 소리는 방언이 아니다.
05. 문법이 없고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 것은 방언이 아니다.
06.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는 방언이 아니다.
07. 방언은 천사의 언어도 아니고 영적인 언어도 아니다.
08. 방언은 성령의 언어도 아니고 영적인 언어도 아니다.
09. 방언은 말하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10. 참 방언을 받았다면 통역하기를 기도해 보아야 한다.
11. 사람이 영으로 기도하려면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12. 사람이 영으로 찬미하려면 마음으로 찬미해야 한다.
13.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아무도 아멘하지 않을 것이다.
14.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다섯 마디 말로 하는 것이 유익하다.
15. 함께 모여 방언으로 말하면 누가 보아도 미쳤다 할 것이다.
16. 하나님께서 참 방언을 주셨다면 반드시 통역도 주셨을 것읻.
17. 통역이 잘되지 않는 소리는 방언이 아니라 헛소리에 불과하다.
18. 통역이 없는데서 계속하는 방언은 귀신의 방언일 수 있다.
19. 몇 시간씩 방언하는 경우 귀신들의 장난일 수 있다.
20. 참 방언이라도 통역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해야 한다.
21. 참 방언이나 예언도 두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해야 한다.
22. 통역이 없는 경우나 통역이 안되는 방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
23. 주는 자와 받는 자 외에 알 수 없는 방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4. 방언으로 메시지가 내려왔다는 말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25.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말하려면 한국말로 해야 한다.
26.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이상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속임수다.
27. 방언이란 말은 다른 지방, 다른 민족의 언어라는 뜻이다.
28. 거짓 방언도 있고 귀신의 방언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9. 억지로 배우는 학습방언들은 100% 가짜라고 할 수 있다.
30. 혼자 기도하는 중에 임했다는 방언도 가짜들로 드러났다.
31. 알 수도 없는 영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어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32. 모르는 영에게 몇 시간씩 의지를 내어 주는 것은 위험하다.
33. 자신의 영혼을 수동태에 방치하는 자세도 매우 위험하다.
34. 문법 체계가 없는 불쾌한 소리를 반복하는 것은 방언이 아니다.
35. 분초 단위로 행동을 지시하는 방언도 귀신의 방언이다.
36. 몇 시간씩 기도하게 하는 방언은 귀신들이 하는 짓이다.
37. 방언으로 설교나 예언하는 것은 100% 가짜였다.
38. 타인의 비밀을 폭로하는 방언은 사탄의 훼방이다.
39. 무례하거나 자랑하거나 교만한 방언은 가짜들이다.
40. 의미도 없고 문법도 없는 이상한 소리는 가짜 방언이다.
41.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방언도 사탄의 모조 방언이다.
42. 주변사람의 기도를 훼방하는 방언은 귀신들의 방언이다.
43. 아무 것도 모르는 초신자의 방언은 귀신들의 방언이다.
44.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의 방언도 위험한 일이다.
45. 오늘날 방언은 1,000명이 하면 1,000가지다.
46. 10,000명이 하게 되면 10,000가지가 다르다.
47. 따라서 아무도 검증을 할 수가 없고 알 수도 없다.
48. 알아들을 수도 없고 통역도 검증도 못한다면 위험한 것이다.
49. 귀신들이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속일 수 있어서 위험하다.
50. 특별히 여자들의 경우는 더욱 위험하다.”
노 목사는 “아직까지도 현대 교회의 방언이 성령의 은사인 줄로 철석같이 믿고 매일같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들의 방언도 성령의 은사라는 증거는 없다. 지금 교회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도 영적으로 큰 위험에 놓여 있다.”면서 “이렇게 위험한 방언을 부추기는 목회자들은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 목사는 한국교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방언에 대해 ‘거짓방언’이라며 자신의 소신을 과감하게 밝힌 <방언을 검증하자>는 책에서 “지금 우리 기독교는 2000년 역사 이래 가장 큰 시험에 휘말리고 있다고 본다.”면서, “사탄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제는 타락과 변질을 부추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사탄이 거짓방언을 가지고 교회를 공략하기 위하여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고 본다. 지난 100년 동안 사탄의 작전은 거짓 영들을 침투시켜서 교회를 변질시키는 짓을 했다. 이러한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분별력 없는 목회자들은 악령을 성령으로 알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 방언을 받으라고 성도들을 선동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렇게 악한 일에 앞장을 서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이러한 판국에 방언을 부정하고 나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독자들이 헤아려 주시기 바랄 뿐”이라면서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노 목사는 책의 말미에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거짓 방언이 없는 교회에서 바른 신앙을 갖게 되는 그날까지” 이 일을 계속 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 목사는 목회자들에 다음과 같은 20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방언에 대한 20가지 자기점검법]
1. 자신이 방언으로 기도하실 때 무슨 말인지 알고 계십니까.
2. 방언을 성령님이 주셨다는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3. 자신이 하는 방언이나 성도들의 방언을 통역할 수 있습니까.
4. 자신이 하는 방언들 중에 한 단어라도 아는 것이 있습니까.
5. 교회 안에서 몇 가지의 방언이 사용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6. 자신의 방언과 성도들의 방언이 귀신의 방언이면 어찌됩니까.
7. 방언으로 기도한 것이 모두 헛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8. 방언을 받을 때에 악령이 들어 온 것이라면 어떻게 됩니까.
9. 성도들 안에 악령이 들어와서 방언을 하고 있으면 어찌됩니까.
10. 목사님의 교회 안에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은 자가 있습니까.
11.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 방언을 하지 말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12. 온 교회가 함께 방언으로 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고 있지 않습니까.
13. 고린도 교회의 방언이 왜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했다고 봅니까.
14. 고린도 교회의 방언이 왜 금방 그치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15. 고린도 교회 방언이 그친 후 1900년 동안 왜 방언이 중단되었습니까.
16.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던 방언이 성령의 은사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17. 방언을 미끼로 악령들이 사람 안에 들어왔다면 어찌되는 것입니까.
18. 목회자가 이런 것도 분별하지 못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까.
19. 많은 목회자가 방언을 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 큰 교회 목사가 방언을 하니까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노 목사는 이상의 20가지 질문에 대해 “방언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목회자들이 받은 방언이 악령의 방언이면 목회자들 안에 귀신이 있다는 뜻이다. 목회자들 안에 귀신이 내주하고 있다면 목회자들 안에 성령님이 거하지 않는다. 성령님이 거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목사라고 할 수도 없다.”라고 밝히고, 따라서 “목회자의 목회자 방언 목회를 하고 있다면 성령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순절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령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노우호 목사는 “어렵게 전도하여 가르쳐 온 성도들에게 결국 악령의 방언을 받게 했다면 목회는 실패한 것”이라면서 “모르고 했다지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방언을 성령님이 주셨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라며 재차 질문을 던진 후 “대답을 할 수 없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만약 성도들에게 방언을 받게 했다면 이는 더 큰 일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노 목사는 <방언을 검증하자>는 책 결론의 말미에서 “지난 100년 동안 이렇게 위험한 방언에 대하여 아무도 검증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방언에 대하여 막연하게나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우려하던 학자들도 이제는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그저 몇 사람이 방언과 신비주의를 염려하고 있는 정도”라면서 “분별력이 없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방언의 실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불나비처럼 신비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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