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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북알프스 등반 (Japan Alps) #1
2015. 12. 25. 00:11ㆍ나의 산
가미고지(上高地) - 니시호타카다케(西穗高岳) - 호타카다케(穗高岳) 능선 - 오쿠호다까다케(奧穗高岳, 3190m) - 白出沢
산행은 총 8일간 진행되었고, 그 중 3일 간은 능선에서 강풍으로 움직이지 못함. 니시호타카다케 산장에서 오쿠오 다카다케 정상까지는 중간에 강풍으로 멈춘 날을 빼고 3일 소요.
날씨가 계속 좋아지지 않아 짐을 최대한 줄이고 9명 중 3명만 정상으로 출발. 나머지는 서수산장으로 이동해서 白出沢으로 하산.
짐을 최대한 줄인다고 빙벽장비에 자일, 빵만 챙기고 텐트는 두고 감 -_-. 너무 무식하고 용감한 생각이었는데
하마터면 능선에서 설동도 파지 못하고 죽을 상황이었으나 운좋게 제주도 설암산악회를 만나 함께 이동.
3인용 텐트에 6명이 들어가서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강풍을 버티기 위해 텐트폴대를 잡고 버팀.
정상을 넘어서 정상아래 호타카다케 산장은 1층은 눈속에 잠겨있어서 어쩔 수 없이 2층 창으로 들어가 다시 하루를 버팀.
정상에서 안전한 지점인 白出沢까지는 새벽 5시에 출발해서 밤 8시 도착. 무리하여 산행할 경우 하루 안에 가능하나 반나절은 허리까지 눈이 차올라 러셀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6명이 교대로 쉬지 않고 계속 이동.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이날은 눈사태와 끝없는 러셀로 가장 머리 속이 복잡하던 날...
능선에서는 12발 아이젠이 필요하고 정상까지 자일하강도 두어 번 정도 했던 것 같고, 항상 안자일렌으로 이동.
대부분의 험한 겨울산이 그러하겠지만 적절한 기술과 강한 체력 뿐 아니라 운도 꽤 좋아야 정상까지 도달할 수 있다. 운이 없으면 능선 왼쪽 비탈로 굴러떨어져 죽던가 오른쪽의 눈속에 푹 파묻혀서 여름에 발견되던가...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이중화가 아닌 K2 가죽비브람을 신고 갔기 때문에 신고 벗을 때마다 얼어붙은 신발 때문에 매번 30분 이상을 비브람과 씨름해야 했고 결국 발뒤꿈치가 까져서 귀국 후에 1주일간은 신발을 신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 80-100리터 배낭을 매고 갔으나 짐을 다 넣을 수 없어 30-40리터 쌕을 추가로 가져갔으나 여전히 짐은 들어가지 않음.
여름에는 가미고지까지 차가 운행하나 겨울에는 폭설로 운행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 터널 두 개를 지나 산행 시작지점인 제국호텔근처까지 이동
이동 중에도 눈은 계속 내림
등반 시작 지점 근처
니시호타카다케 산장까지 2박 3일간은 계속 러셀로 이동.
본격적인 능선 종주 시작직전까지는 계속 러셀이나 능선부터는 강풍으로 크러스트 상태.
10만원을 주고 산 에코로바 방풍복. 당연히 고어텍스처럼 방수도 되는 줄 알았으나 그냥 방풍복이었고,
중간중간 응결된 눈을 빼내야 했다. 색상은 참 마음에 들었었는데.
강풍으로 텐트 3동 중 1동은 능선에 설치했으나 흘러내리는 눈에 파묻혀 폴이 부러지고, 2동은 설치할 공간이 없어 설동구축.
정상으로 출발할 때 왜 저 고글은 안가져갔는지 계속 후회만 연발. 눈을 어떻게 뜨고 다녔는지...
설동 안. 춥긴 하나 온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보온장구만 있으면 버틸만하고 눈을 뜨러 나갈 필요없이 벽을 긁으면 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용.
이 곳에서 3일간을 움직이지 못함. 원래 얼굴이 홀쭉한 편인데 빵처럼 부풀어올랐다.
동계 북알프스 종주 등반 (Japan Alps) #2
2015. 12. 25. 03:16ㆍ나의 산
독표 앞에서 3일간 날씨 때문에 텐트와 설동에 갇혀 있다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아홉명 중 셋만 1박 2일 목표로 정상으로 출발했으나 실제로는 3일이 소요되었다.
순식간에 죽을 수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을 수도 있는 상반된 상황들이 반복되었고, 날씨 또한 앞이 보이지 않는 폭풍설과 파란 하늘이 간혹 보이는 절망과 사소한 희망이 반복되는 산행이었다.
적지 않은 팀들이 북알프스 동계 등반 중 포기하거나 구조를 당하거나 더 운이 없으면 죽어서 내려오지만, 그에 비해 우리는 지랄같은 날씨와 장비를 가지고 치열하면서도 가장 운이 좋은 산행을 했던 것 같다.
슬링을 너무 주렁주렁 길게 달고 가는 바람에 아이젠에 걸리면서 머리부터 눈속에 파묻혀 질식사할 뻔 했다. 슬슬 여기서 산행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후회와 절망만 머리 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왼쪽은 몇 백미터를 굴러 떨어질 수 있고 오른쪽은 항상 눈보라가 구름처럼 휘날리기 때문에 발을 헛딛으면 살아나올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시 올라올 수도, 찾으러 내려갈 수도 없다.
여기에서 사고로 한 시간 이상을 피켈에 의지해서 버텨야 했는데 죽는 것보다 죽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이 얼마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적이 있었고 그 후로는 절망감이라는 단어는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한 번의 사고를 겪고 나서 우리는 안자일렌을 하고 진행. 서로의 신뢰 수준에 따라 안자일렌이 거추장스럽고 더 위험하거나 반대로 모두를 지켜줄 수도 있었는데 우린 싫건 좋건 후자에 확신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잠시 파란 하늘이 나왔으나 오른쪽은 여전히 눈보라. 강풍으로 눈이 바위에 붙어있지 않으니 등반이 너무 어렵다.
어떻게 저 봉우리들을 지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암담한 건 앞으로 저런 봉우리를 몇 개를 더 지나야 하는 지도 모르는 거다.
저 두 봉우리 사이에서 막영을 했는데 사실 막영이라기 보단 아주 작은 공간에 그냥 바람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한 것이었다.
불침번을 서듯이 두 명씩 번갈아 가며 텐트폴대를 잡고 버텨야 했고 나머지는 잠을 자고 싶어도 바람소리와 텐트가 휘날리는 소리에 그냥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는데 나는 그 와중에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텐트 자리에 포도주를 뿌려놓은 듯 바닥이 빨간 뭔가로 흩뿌려져 있어서 일본 사람들은 이런 산에 와서 포도주를 먹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우리보다 먼저 온 팀이 텐트를 치고 자다가 절벽에서 굴러온 낙석을 맞아 죽은 흔적이라 한다. 여전히 우리는 지랄같은 상황 속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강풍과 추위 둘 중에 하나만 없어도 좋으련만
오르는 것 이상으로 하강도 갑갑해 보이는 봉우리. 우리 자일길이로는 한 번에 안될 것 같고 반대편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니... 오른 쪽에 오쿠호 다카다케 정상이 보여 우리는 오른쪽으로 트래버스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 동안의 안자일렌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서였다면 여기 트래버스는 서로를 믿어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눈이 단단하지 않아 피켈을 눈속에 푹 꽂아넣고도 확보가 불안정해서 온몸으로 누르면서 자일을 조금씩 풀어줘야 했다.
정상이 보이나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봉우리.
어쨌건 우리는 정상에 도달했고, 고맙게도 정상에 도착한 후 몇 분간은 하늘이 잠깐 맑아졌다.
정상에 오니 좋았던 건 정상을 올라서가 아니라 이제 산행이 끝나간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데 그 다음 날은
하산이 아니라 북알프스에서 쫒겨나는 상황이었다.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얼마나 더 피곤하고 위험한
것인지 북알프스는 정성스럽게 알려줬다.
내가 착용하고 있는 것들은 머리부터 발까지 저렴이들.
\1. 우모로 된 고소모는 늘어나고 얼어붙어서 왜 뒤집어 쓰고 있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고,
2. 하네스도 구형으로 하강하다가 가랑이에 쥐가 나서 차라리 떨어져 죽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고
3. 고글도 안가져와서 하루 종일 실눈으로 등반을 해야 했고,
4. 플라스틱 2중화가 아닌 내 발에 맞지 않던 가죽비브람은 등반 2주 전부터 그렇게 도코를 발랐건만 이미
방수기능은 없어져 버려 얼어붙은 신발을 신고 벗을 때마다 얼마나 낑낑대야 했는지, 결국 오른발 뒷꿈치
살이 벗겨져서 양말과 살점이 붙어서 등반이 끝날 때까지 양말을 벗지도 못하고,
5. 자켓과 트라우저는... 방풍만 되고 방수가 안된다. 어찌나 안해도 되는 체열배출을 잘하던지 쉴 때마다
너무 cool해서 행복(?)했다.
6. 밴드식 아이젠은 나사가 빠져버려 착용이 불가능했는데 나사고리를 아이젠 발톱에 걸어서 착용을 하고
산행을 해야 했다.
그래도 꼭대기까지 올라왔으니 참 운이 좋았다.
우리와 함께 정상을 오른 제주 설암 산악회, 내 옆에서 사진을 찍은 한 명(김진현)은 다음 해 네팔 랑탕리웅에서 정상등정 후 눈사태로 셀파들과 함께 실종되었다.
유일하게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지 않은데 그것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었다. 좀 어려운 구간에서는 아이젠만 있으면 그냥 딛으면 되는 곳도 스텝을 만들기 위해 힘들어 하면서 계속 킥을 하던 때가 기억난다. 간혹 그 다음에 있던 나는 행여나 떨어질까 봐 받을 준비를 하면서 '제발 떨어지지 마세요'를 마음 속으로 외치곤 했는데 ㅜㅜ
정상은 맑은 하늘을 잠깐 보여주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올라온 능선보다 더 경사가 심한 능선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수고악 산장으로 내려가는 하산코스는 올라왔던 능선보다 경사가 더 심했으나 아이젠과 피켈을 박아가면서
역시나 안자일렌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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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출발해 白出沢屋까지 내려오는 동안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출발을 어두운 새벽에 하기도 했고 계곡에서 올라오는 바람은 능선에서의 바람보다 약하지도 않은데 얼음이
되어버린 눈조각들이 끊임없이 몰아쳐서 1시간 이상을 아예 눈을 거의 뜨지 않고 내려가기만 했는데 결국 얼굴 왼쪽에 동상을 선물하고,
바람이 좀 잦아 들었나 싶으면 크고작은 눈사태가 우리들 사이를 벌리기도 하고 모으기도 하면서 안자일렌을
하지 않았으면 아마 누군가는 눈 속에 파묻혀서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새벽에 출발 전에 먹은 후로는 밤까지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제일 많이 먹은 것 같다.
오후부터 밤까지는 징글징글한 러셀을 하면서 내가 지친 것인지 미친 것인지 혼란이 오기도 했다. 여섯 명이
교대로 러셀을 해나가면서 맨 앞사람이 지치면 옆으로 그대로 드러눕고 그 다음 사람이 다시 맨 앞에 가서 뚫고 가고 1-2분 정도 쉬다가 맨 뒤에 붙어 따라가고 이런 도돌이질을 몇 번이나 반복한 것인지.
암튼 우린 그렇게 끝이 없어 보이던 여정을 끝냈다. 白出沢屋 산장에서 우리를 찾으러 올라온 최고참 선배는 산장으로 가서 체력이 그거 밖에 안되냐고 (나에게) 불같이 화를 냈는데 살아 내려온 것에 대한 기쁨의 표현으로 생각한다.
우린 서로 약속한 기간에서 하루가 밀렸고 그마저도 또 하루가 더 밀릴뻔 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한 밤중에 만났고, 모두 지쳐있었지만 그래도 사지는 모두 멀쩡했으며, 쉬운 길을 내려가기만 하면 되지만 아직 하루의 산행이 더 남았기에 계속 긴장할 필요도 있었으니까.
산장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기억나는 건 술 몇 잔에 꾸벅꾸벅 졸다가 그냥 쓰러져서 아침에 눈을 뜨니 바람한 점 없는 아름다운 설원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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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역시 오전은 러셀이었으나 인원이 여섯 명에서 열 두명으로 늘어났고 바람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내려갔다.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이제 양말에 눌러 붙은 까진 뒤꿈치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아우성이다.
정상을 가는 중에는 '형, 왜 저를 고르셨나요' 하는 속으로 원망만 했었던, 나에게 가장 무서운 선배에서 롤모델이 되었던 항상 무모함을 즐기던 우리 선배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6년이 되었다.
동경으로 돌아와서도 거지같은 몰골이지만 그냥 행복한 날이었다. 얼굴의 동상은 나에게는 유쾌한 훈장이었다.
동계북알프스 #3 - 풍경사진
2015. 12. 25. 17:38ㆍ나의 산
서수산장에서 출발하여 능선에 올라설 때쯤 찍은 맞은 편 능선
서수독표능선. 완만한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막영을 했고 날씨가 계속 나빠져서 3일간 움직이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