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사는 참으로 오랜만에 들렸다.
1978년이었나? 여름 방학 때 동아리 선배와 함께 사찰의 상징성을 모른 채 들였으니...
*남장사 풍경 - 해가 서산으로 기울즈음.
그래도 크게 낯설지 않은 까닭은 뭘까?
욕심은 많고 산 넘어 가는 지친 태양을 묶어둘 수 없기에 산문을 비켜 올라가 꽁지로
부터 가람을 거슬러 내려와서 주전각인 극락전에 다가섰지만 화려한 불사에 식상한
나란 중생은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친견치 않고 협문을 통해 보광전
뜰 파초 앞에서 발을 멈춘다.
밀양 표충사, 산청 대원사에서도 볼 수 있지만 사찰에서의 파초의 의미는 어느 자료
에서도 구하지 못했지만 불교와 도교의 습합 현상으로 생각해보면 도교에서 파초는
칠보의 하나이기에 도교의 영향으로 판단해보면 어떨까?.
남장사의 보광전은 전각내부의 흔치 않는 목각 탱과 지권인 수인의 비로자나불 손
모양새가 특히 하다.
철조 비로자나불은 통견, 상현좌는 크게 일반적 유형을 벗어나지 않았으나 상체가
다소 밋밋하며 다른 철조불에 대비해 상체가 엷은 편으로, 가장 이채로운 것은 지권인
수인의 손 모양이며 다른 비로자나불은 오른손이 위에서 왼손의 검지를 잡은 형이나
보광전의 철불의 수인은 그 반대인 것이다.
*남장사 철조 비로자나불
답사가 끝날 무렵 주지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조성 당시 주지스님의 믿음이었겠지요"
하긴 형식에 얶매인 해석보다 또 다른 접근, 해석이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으니....
철조 비로자나불은 나라에 큰 일 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니 이래저래 매력이 넘치는 부처임에 분명하다.
철불 뒤의 목각 후불 탱도 금분을 입혀도 싫지 않는 느낌으로 다가오며 운궁형 닫집
우물반자의 천장도 무던히 좋으며, 특히 보광전은 측면 문이 2, 뒷벽에도 문이 하나
있어 금당의 부처는 오늘날처럼 뒷벽에 안치하지 않고 법당 안으로 앞당겨 모셔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3*3칸의 건물이다.
*철조 비로나자불 위 천정 -
궁금한 것도 많은 나라는 놈 보광전 뒤의 금륜전(金輪殿) 현판에 눈을 고정하고 골몰에
보지만 영 알 수 없다. 여태껏 한번도 보지 못한 전각이기에...
민간신앙의 산신, 도교의 습합인 칠성, 단군 신앙과 연결되는 독성을 한 전각에 모실
때는 삼성각 현판을 달며, 구분해서 모실 때는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을 별도의 전각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같이 모시면서도 산신각, 금륜전 현판이 나란히 걸려있다.
주지스님 말씀으로는 칠성각의 주불이 치성여래라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나(치성여래는
금륜불정치광여래의 준말이며 협시불로 일광, 월광 보살로 모시고 손바닥에 약합,금륜
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의 성격이 강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전각의 위계이다.
즉 우리 건축에는 건물의 명칭으로 위계를 알 수 있으며 간단히 보면
殿전, 堂당, 閤합, 閣각, 齋재, 軒헌, 樓루, 亭정인데 금륜전은 치성여래를 모셨다지만
이채로웠다.
보광전 철불의 수인과 더불어 현판도 주지스님의 믿음이었는지 모르지만...
*남장사 입구 석장생
여러 번 오락가락하면서 찾은 남장사 입구의 석장승은 왕방울 눈, 큰 코, 어금니,
수염 등 장승의 일반적 모습이나 이목구비가 제각각 삐뚤삐뚤하여 천진한 아이같아,
사찰의 비보와 벽사의 기능으로 미루어 보면 제 역할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가슴에는 주원대장군의 부적을 달고 계셔, 남장분교의 머리가 잘린 골맥이에
비하면 복 박은 장승이다.
2003.06.07
첫댓글 장승 뵙는 재미도 만만찮습니다. 그렇지만 저 설명없이 사진만으론 어림없지요. ^^*
역사가 느껴지는 색감이라고 할까요. 선과님.덕분에 잘 봅니다.()
선과님^^* 오늘 남지장사에 다녀왔답니다. 상주 나들이차에 평등심, 나무, 소나타님이랑요...... 되짚어 보면서 선과님 글 실감나게 읽고 갑니데이.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