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자 환갑이라는 말이 있듯이, 늦게서야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뉘우친다는 데서 비유한 말이다. 다늦게 환갑이 지나서야 부모의 은공을 깨닫고 보니 섬겨드릴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에는 안계시고 안타까운 마음에 뉘우침만 크니 우리네 인생의 무지함이 회자되곤 한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찬이라면 영적으로도 철이 나야한다. 하나님은 나 한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실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면서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영적으로 철이 들어 있다고 보실까? 하나님은 내 삶을 보시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헤아려 본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에 대하여 생각할 줄을 모르듯이 철이 없어서 아버지의 마음을 모fms다.
시편에서 보니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 뿐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까지도 알고 있다. 철이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그가 죽을 상황에서 오랜 날들을 보내게 될 때 하나님은 나를 수렁에서 건지셔서 구해주셨을 뿐만 아니고, 내가 걸음을 잘 걸어가게 해 주셨다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다. 나의 생명 뿐 만이 아니고, 내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가운데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러실까?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밤중에 길을 가다가 공사장의 웅덩이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다면,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를 구출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각자 자기 가던 길로 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빠져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의 아들이었다고 한다면 그냥 구출만 해 주고 돌아서 가겠는가? 라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냥 너 집에 가서 보자하고 그냥 가버리겠는가? 아마도 그런 아버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아들이기 때문에 지극정성으로 힘을다해 보살펴 주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 생명을 일상가운데 수렁에서 건지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내가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보살피시고 계신 것이다. 이 마음을 깨닫는 다면 나의 머리카락 까지 세신바 되시는 아버지의 세밀하심을 간과하고 무지하게 살아온 날들을 뉘우치며 고꾸라질 수 밖에 없다. 기도할 때 아직도 나의목적을 놓고 대화를 시작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며 대화를 하고 있는가? 우리가 친밀한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 할때는 시시콜콜한 것들까지도 대화의 내용이 되어 긴시간을 보내게 되듯이 다윗은 그렇게 대화를 끌고 간다. 다윗은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나에 대한 주의 생각도 많아서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고 내가 널리 말하고자하나 너무 많아서 그 수를 셀 수도 없다고 하였듯이, 나뿐만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도 이미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적과 주의 손길의 흔적들이 있다. 아울러 나를 향하신 계획이 서 있어서 내가 7막3장으로 역할을 마치게 될지, 세상이라는 무대에 나의 역할이 8막3장이 될지, 9막 또는 10막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연출자이신 하나님의 기획에 맡겨드릴 뿐이고, 나는 맡겨진 역할을 성실하게 하면 된다. 설사 그 역할이 6막 7장으로 끝나도 미련을 갖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 뱅이 걸인에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명령하니 곧 다리에 힘을 얻어 일어나 걸으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다. 일어나서 감사한 다음에 또다시 그 자리에 그만 털석 주저 앉은 것이 아니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시니 주님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닌가. 내가 믿는 기독교는 머리로 알고 마는 것이 아니고 주신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선대의 한경수 감독께서 강단에서 늘 하시던 어록 가운데 “성경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면 안돼! 그대로 믿어야 되는거야!” 나는 초신자 시절에 이 말씀이 귀에 박혀있었다. 그래서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 땅끋 까지 이르러 내증인 되리라 ”아멘
이 말씀대로 증인된 삶이 이루어 지길바라며, 우리 교회가 100주년에는 100명의 선교사가 사방으로 파송되어 나가는 역동력 있는 교회되기를 바라고 있다. 선교지에 나가보면 주님은 이미 그곳에서 선교를 하고 계시고 나는 거기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주님은 기뻐하고 계셨다. 이미 우리에게는 넘치는 복을 주셨고 순종하고 나가는 자에게 주님은 복의 통로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역동력있고 야성이 길러지는 선교현장에서 우리의 달란트를 통하여 하나님 영광드리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우리네 삶이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 잘 길러 결혼 시켜 출가하면 할 일 모두 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자식 결혼후에 에이에스가 더 많고 끝이 없듯이 우리네 인생살이 잘 걸어 가려면 반석위에서 잘 걸어가라고 말씀 하신다. 어느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대답하니 네가 복이있다고 하셨고 너는 반석이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인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세상권세가 이기지 못할것이며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고 하셨다. 또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해주신 분은 하늘 아버지가 알게 해 주신것이다. 라는 것이다. 설령 베드로 뿐이겠는가, 오늘날 나에게도 누구나 알지 못하는 이것을 알게 해 주셨으니 복이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을 세상의 보이는 보화나 권력에 비유하겠는가? 공부많이 했다고 이것을 아는 것도 아니요, 돈이 많다고 이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값도 지불하지 않고 거저 얻었으니 횡재중에 횡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은 돌아갈 본향이 있음에 자다가도 웃음이 나오고 기쁠뿐이다. 그래서 이런 복을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이 복된소식을 나도 거저 받았으니 모든이에게 거저 전하며 오늘도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된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준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쳔의 삶이요 나의 삶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세상 권세가 이기지 못하겠고 천국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하셨다. 반석은 예수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