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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피해로 시끄러운 이야기를 울란바타르의 공동 숙소인 아파트에서 BBC뉴스를 통해서 서양인 여행자들과 함께 들었읍니다. 지난 가을에 한국을 한달간 여행했다는 호주인 남자가, '한국뉴스, 태풍'하면서 내게 알리는 신호를 해서 부엌에 있다가 뛰어 갔지요. 해마다 일어나는 자연의 재해를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는지? 저는 그야말로 해마다, 외국땅에서 한국의 태풍소식을 들어야 하는데.... 지진, 홍수.... 세계각국에서 해마다 일어나는 이런 자연재해들 때문에, 제가 여행하는 동안 우리 어머니께서 국제 소식을 들으며 하두 애간장을 태워서, 제가 이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답니다. 인도에서 지진일때, 제가 인도에 잇었고, 남미 어디에 홍수가 나면 제가 거기 있었고, 하시며, 하두 제 안전때문에 마음을 졸이는데, 저는 연락이 되지 않고.... 처음 여행 1년동안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거든요. 가끔 어머니 목소리만 들으러 전화를 할 뿐,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이왕 나그네길을 떠났으면, 기능하면 철저히 제가 속했던 사회와의 단절을 시도했었죠. 그러나, 원래 생각했던 1년보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 수명을 줄이는 일은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인도에서부터는 계속 한국의 모든 사람들과 교신을 하면서 지내죠. 그러다보니, 요즘은 낯선 나라에서 엽서보내는 낭만적인 짓거리를 아예 생략해 버렸죠. 제가 보내는 세계 각 곳에서의 엽서를 받ㄷ으며, 세계지리를 공부하던 제 조카들에게는 아주 아쉬운 하나의 문명의 해택(혜택이 아닌)이 되었답니다. 그들은 오래전, 그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가 보낸 각국의 엽서를 스크랩하고 있었거든요. 하여간, 선생님께서 분노하시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마 많은 선진국들도 이 자연의 재해앞에 속수 무책인 경우가 허다해요. 일본의 지진은 일본 정부가 막아 낼수 있나요? 작년에 제가 동유럽에 갔을때는, 동독의 아름다운 고도 '드레스덴'과 체코의 수도 '프라하'가 홍수의 피해로 대단했어요. 거의 속수 무책이었죠. 저는 바로 그 홍수가 지나간 다음에 갔었는데, 기차는 물론 지하철역도 군데 군데 끊어져서 정상운행이 되지 않고 있었어요. 우리처럼 여름마다의 큰 태풍이나, 대홍수가 아니라, 비가 조금만 계속 내려도 수해를 맞는 것이 유럽의 현실입니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조금 찬찬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 다음해를 대비해 봅시다.
저는 예정대로 17일 밤기차를 타고, 18일 국경을 넘어서 중국으로 돌아와서, 또 다시 몇번 기차를 갈아타고, 어제 밤 기차를 타고 오늘 아침 북경에 도착. 지난 번에 묵었던 적이 있는 한국인 유학생이 하는 민박집에 편안하게 짐을 풀었었요. 지금 이 민박집 컴퓨터의 자판은 당연히, 그래서 한글이 분명히 깔린 것이니, 한글 자판 염려 또한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금요일이라서, 오후에 이곳에 있는 학원가를 한 바퀴 돌면서 죽 수강할 강좌들을 체크했어요. 월요일부터 수업을 시작할려고 했는데, 한 학원에서는 외국학생들을 위한 중국어 수준평가 시험(영어의 토익같은)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주말에 유명 강사의 수업을 한다고 해서(아침에 배낭매고 걸어 오는데, 누군가 손에 지라시 종이 한장을 쥐어 주던데, 사진속의 인물은 하두 요염한 중국여인이라서 가라오케 선전용인가 했더니, 학원선전에, 우리 주인집 아빠의 말로는 꽤 유명한 강사라네요), 하여간 주말에 늦잠 잘 아침시간을 활용해서 ,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 8시 30분~11시 30분 강의를 듣기로 작정했답니다. 내일 아침부터 수업 시작이죠. 우선 중국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면, 수업료가 한국의 반값도 안되니까, 벌써부터 이왕 온 김에 배터지게 수업듣고 가야지~~~~ 하면서 마음이 부풀어 있어요. 주중에도 2곳의 학원 정도를 병행할려고 해요. 주말 학원도 물론 장소가 다른 학원이지만~ 제가 또 취미 생활의 하나인 이 언어 공부를 시작했다하면, 아무 것에도 눈을 돌리지 않고, 그 하나에만 매달려서 즐기는 통에, 그렇게 싸질러 다니던 인간이 당연히 운동부족상태가 생겨서 문제죠. 소화가 안되니, 가뜩 지병인 장이; 부글 부글 끓는다거나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외골수적인 문제 성격.... 그래서, 배낭에 사실 줄넘기를 넣어오긴 했지만, 어디 매일 뛰기나 하겠어요. 방법은 이곳 저곳 학원을 옮겨 다니며, 공연히 왔다갔다 하기로 했죠. 별 말같지 않은 작은 일에 머리 굴리고 사는 제가 좀 우습죠? 제 위의 언니가 늘 제게 하는 말입니다. 좀 같지 않은 일에 머리 그만 굴리고, 큰 것을 위해서 좋은 머리 좀 쓸 수 없느냐고? (제 머리는 별로 좋지가 못하지만, 우리집 식구중에는 가족들 의견이 제가 게중 낫답니다.)
제가 이런 인간입니다. 남들이 못 참는다, 어쩐다 하는 일에는 의외로 느긋하면서도, 늘 꼴 같지 않은 작은 일에 머리 굴리며, 골치 썩히기도,즐거워하곤 하는 단순동물입니다. 국경을 넘어오면서도, 고비에서 가끔 오며 가며 만나던 여행자들 셋이 (독일 영국 아일랜드), 우연히도 같은 기차를 타게 되었더군요. 북경까지 직행오는 기차는 하루 다음인 목요일 출발인데, 그나마 표가 다 팔렸다고 하여 중간 도시인 지닝까지의 표를 샀다고 하는데, 국경도시까지의 표를 산 저와는 가격 차이가 많이 났죠. 저는 국경에서 스탬프를 받은 후에, 바로 그 역에 가서 다시 그들이 가는 '지닝'으로 가는 표를 끊으니, 중국돈 '25위안'이더군요. 이미 낮의 4~5시간을 달리니, 이미 침대칸은 필요가 없어진 거죠. 제가 탔던 울란바타르에서 국경으로 가는 손님만을 태운 기차칸들은 이미, 그 곳에서 떨어져 나가고(다시 울란바타르로 돌아가겠죠), 대신 붙은 기차가 중국 로컬 기차칸들이 그들이 타고 있는 국제칸 침대기차옆에 다시 부착이 되어서 함께 떠나서, 지닝에는 함께 도착했죠. 그들에게 3달러를 주고 다시 표를 샀다고 하니, 당연히 분한 얼굴. 배낭 여행자들은 이런 작은 돈에 목숨 거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그들의 분한 기색도 어쩌면 당연하죠. 하기사, 그들과는 달리 이제 저는 여행길에는 조금 단련이 되고, 돈 아껴서 여행하는데는 거의 도가 통해가고 있는 상태쟎아요. 밥먹고 나그네길만 떠나 다닌 햇수가 벌써 몇해인데, 아직은 미숙한 그들과 비슷할 수야 없겠지요!!! 그래서, 다시 그곳 '지닝'에서 북경오는 밤 기차표를 사는데, 혼자서 또 작은 일에 흥분하는 일이 생겼죠. 몽고가 아닌 중국에 왔구나~~~~~ 실감.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잉와'라고 부르는 싼 침대표를 사기가 여간 힘들지 않쟎아요! 이유는 두가지죠. 아직 중국의 매표시스템이 완전 전산화가 안되어서, 중간 역일 경우는 중간에 승객이 내린 좌석들을 체크하기가 어려워서인 경우가 있고,(그래서 승차한 후에 좌석칸에서 침대칸으로 바꾸어 달라고 승무원에게 부탁을 하면 언제나 가능했죠.) 또 하나의 이유는, 때로는 작은 도시들에서 역원들과 암표상인들이 짜고, 아예 표사기가 하늘의 별따기랍니다. 암표상들이 매표구에 표 사러오는 사람들에게 웃돈을 받고, 팔곤합니다. '지닝'역의 경우가 바로 암표상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표구에서 표는 언제나 만원인 경우죠. 표사려고 줄을 섰는데, 계속 암표상이 수북히 표들을 갖고, 따라와서 귀챦게 굴더군요. 새치기 하는 사람들을 야단쳐가며 겨우 기다려서, 물어보니 당연히 표는 없다하고~~~~~~ 못살게 따라다니던 암표상이 20위안의 웃돈을 달라더군요. 사실, 저는 국제열차 탄 친구들에 비해서 돈을 많이 절약했지만, 한국돈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제가 흥분하면서 절대로 용납못하는 점의 하나입니다. 비록 내 나라는 아니라도, 이런 점들은 꼭 개선되어야할 점!
또 다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자니 화도 나는데, 암표상은 계속 말을 시키고 있는데,.... 저는 창구에다 '잉좌'를 달라고 했죠.(우리가 백두산갈때 탔던 밤 기차의 자리~) 옆에 와서 온갖 암표상 일행들이 다 함께 와서 '그 자리는 물편해서 못 잔다'고 방해를 하죠. 우리는 알쨚아요. 기차안에서 얼마든지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특히나, 암표상이 그 표를 다 팔지 못하면, 당연히 자리가 비게 되어서 기차승무원에게 말해서 제가 그 자리에 누워 갈텐데, 미쳤다고 제게 주어질 침대를 이 암표상에게 미리 웃돈 주고 삽니까? 제가 어디 머리가 두 자리입니까? 하두 방해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상관없어!'하고 소리를 몇번이나 쳤는지!!! '상관없대도! 니가 타니? 불편해도 내가 타지!' 암표상은 얼굴이 벌개져 있고, 나는 이번에는 영어로 빠른 속도로 소리를 쳤어요. '당신 때문에 내가 줄을 몇 번이나 서는데, 왜 날 따라다니며 시간뺏고 귀챦게 하느냐?"고. 서툰 중국어로 버벅거리는 것보다는, 이런 쌈질할때는 그들이 어차피 못 알아 들어도 빠른 속도로 내 감정표현이 확실한 표현을 상대방을 겁주는 것이 즉효죠. 그래서, 그 역에서 제가 아주 특별히 소리나는 어떤 주요 인물이 되어 버렷죠. 줄을 섰던 모든 사람들이, 사람마다, "당신 어느 사람이야?" 모두들 내 국적이 궁금한 모양인데, 궁금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결국, 그 좌석표를 사두고, 배낭을 보관소에 맡겨둔 채, 저녁식사를 하며, 한 바퀴를 돌고 왔어요. 갑자기 배낭을 맡겼던 가게의 여자가 나를 끌고 매표소로 다시 가면서 하는 말이, "'잉와'표가 있으니, 네가 산 무 좌석의 그 싼 표에다가 침대값 나머지를 내면 침대표를 살 수 있다." 하더군요. 역무원이 창구에서 또 한장의 표를 주는데, 표 두 장의 금액을 합쳐보니 정확히 침대칸 표의 가격이더군요. 그녀도, 나를 쫒아다니던 암표상 남자도,매표소 창구의 역원도 모두가 마피아처럼 한 패를 이루며, 그런 짓들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표가 제대로 팔리지들 않고 남아 있으니, 그러느니 제 값에라도 팔려고 포기한 거지요. 이렇게 자꾸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를 하다 보면, 그들의 부패는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나는 기대합니다.
그러나, 저희 언니가 어릴때부터 늘 제게 하는 말입니다. 제발 잘잘한 것에 짜게 굴지 말고, 몇 푼 안 되는 돈은 신경쓰지 말고 팍팍 쓰고, 굵직한 일에 팍 팍 신경써서 돈도 팍팍 벌든지, 에너지도 그런 굵직한 일에다 팍팍 쓰라고!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집안을 위하는 일에 좀 에너지를 쓰라고! 제가 왜 인도에서 왕깡패가 되엇던지 이해가 조금 어렴풋이 가능하실 겁니다. 이런 작은 사건들은 인도에서는 시시각각으로 겪으며 살아야 하거든요. 중국여행 몇달후에 인도로 넘어온 한국여자를 인도 여행 초기에 만낫는데, 그녀는 제가 몽고인을 벌써 그리워하듯이 중국인을 그리워하더군요.순박하고 좋은 사람들이라고.(중국인을)
저도 압니다. 제가 얼마나 쓸데없이 잘잘한 것에 머리를 썩히며, 굴리며 사는지를. 그러나, 또한 제가 사는 방법입니다. 비록 제가 거쳐가는 나라들이 제 나라는 아니지만, 그들의 나라가 발전되어 나가고 잘 살려면 이런 작은 문제부터 고쳐져야 할 일이니까요. 그래서, 여행하면서 제가 가장 싫어 하는 말이, 후진국의 나라들에서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작은 푼돈으로 검은 돈을 주면 해결된다고 조언하는 여행자들이나, 때로는 가이드 북의 이야기나, 때로는 여행기를 쓴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을 가장 싫어 합니다. 비록 잠시 거쳐가는 나라라고 해서, 그런 여행자의 횡포를 부리며, 나쁜 관행을 심어주고 가선 결코 안되겠지요. 어쨌건, 엊저녁 자정이 가까워 그 밤 기차를 타러 플랫포옴으로 들어가면서, 오늘 아침 기차에서 나오면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척을 하더군요. 다들 빙그레 웃으며 다가와서 말을 시키는데, 그 의미는 잘 모르겠어요. 알고 싶지도 않고. 저는 이렇게 사람들이 무료할때, 심심치 않은 분위기를 한번씩 만들어 주곤 한답니다.
인도에서는 늘 역 창구에서 줄서면서, 줄서기 교육을 얼마다 시켰던지... 어제도 사실은 그 역안에서 새치기 하면서 내 앞을 가로 막던 몇 사람들, 제게 등짝을 얻어맞기도 하고 욕도 좀 얻어 먹기도 했어요. 저 한때 학교 선생했는데, 줄 서기 정도는 당연히 가르쳐야죠.
따로 PC방 안 가도 되는 주인집 컴퓨터라고 너무 오래 왕수다를 떨었죠?(돈 안드는) 제가 바로 이런 잔 머리의 대가랍니다.
다음에 또 연락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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