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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5장, 27장, 28장
'에서와 야곱, 이삭의 축복, 야곱의 꿈'
5절~10절
26: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이 절들은 이삭이 아브라함의 주요 상속자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다음 두 가지가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1)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줍니다(5절). (2) 아브라함은 자기의 서자들, 아들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그들을 떠나 보냅니다(6절). 여기서 하갈과 그두라의 자녀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여기서 '서자들'이라는 표현은 아브라함과 첩들 사이에 공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은 아브라함의 아들들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그 여인들 사이에는 분명히 관습에 근거한 어떤 관계가 맺어져 있었을 것입니다(5~6절).
19절~34절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와 야곱이 태어납니다. 이 단락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소개해 줍니다. 이 쌍둥이는 25~36장의 중심인물들입니다. 여기서 이들이 태어나는 과정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는 그들과 관련된 특성을 미리 보여줍니다.
여기서도 아람 족속과 그들이 살던 지역 '밧단아람'('아람의 평원')이라는 뜻이 언급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가족이 아람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가르켜줍니다. 신 26:5 절에서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라고 소개됩니다. 이 표현은 아브라함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야곱을 가리킬 것입니다(20절). '임신하지 못하므로', 사라와 마찬가지로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임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삭의 간구를 들어주셔서 마침내 리브가는 임신하게 됩니다(21절).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라는 표현은 창 25~36장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한 가지를 소개해 줍니다. 이 쌍둥이 아들들은 대체로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창세기에서 형제들 사이에 갈등과 싸움이 일어난다는 주제는 자주 나타납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모든 인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연상시켜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알려주십니다. 이 계시의 말씀은 창세기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계보에서 야곱이 의미심장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동생들이 맏아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맏아들은 장자에게 주어지는 특권들을 누렸습니다(22~23절).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다' 또는 '속이다' 를 의미합니다. 야곱(히, '야아콥') 의 철자는 히브리어에서 발꿈치를 뜻하는 '아켑'과 비슷하여 또한 '속이는 자'를 암시합니다. 어떤 사람의 발꿈치를 잡는다는 표현은 속이는 것에 비유합니다. '속임'이라는 모티브는 야곱과 관련된 몇몇의 에피소드들에서 나타납니다.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쌍둥이 에서와 야곱은 아브라함이 죽기 15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죽음은 25:7~8에서 언급되었습니다(25~26절).
여기서 에서와 야곱의 인격적인 특성이 소개됩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생활 방식이 서로 대조적으로 묘사됩니다. 에서는 남성적이며 바깥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하며 집 안에서 생활하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27~28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는 자신이 지닌 장자 신분을 업신여겼습니다. 이 점에 근거해서 에서는 망령된(불경건한 또는 속된) 자라고 묘사됩니다. 에서는 자신의 장자권이 온 세상을 구속(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34절).
27:1~29절
27: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11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14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못한다고 소개됩니다. 이 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관련해서 이 두 가지 요소들은 중요합니다. 이삭은 자기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자신의 맏아들인 에서를 축복할 때가 왔다고 판단합니다. 이와 같은 축복기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상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의 축복 기도를 받은 사람이 미래를 만들어가신다고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자기가 에서인 것처럼 가장 할 때 이삭은 눈이 멀어서 그 속임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삭의 시력이 매우 약해진 것은 또한 이삭의 내적인 통찰력이 매우 무뎌졌음을 암시 해줍니다. 곧 이삭은 에서의 결점을 무시하고 또한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이삭이 에서의 인품을 올바로 평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별미를 맛보려는 강력한 욕구에 이끌렸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1~2절).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히브리어 본문에서 '내 마음껏'은 '내 영혼이'(히, ['나프쉬']로 되어 있습니다). 가장 또는 족장으로서 이삭이 에서에게 하고자하는 축복 기도는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축복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들의 상속자를 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들을 비추어볼 때, 이른바 '맏아들'의 계보는 마침내 왕으로서 태어나는 한 자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왕을 통해서 이 땅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맏아들과 그가 받을 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히브리어에서 두 단어들과 관련된 언어 유희를 통해서도 강조됩니다. 곧 히브리어에서 맏아들은 '베코라' 하며 복은 '배라카'입니다. 에서의 야곱과 관련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이 두 개념들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쌍둥이 동생 야곱이 장자권을 얻으며 또한 어떻게 야곱이 아버지에게 장자권과 관련된 복을 받는지도 이 두 개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4절).
'리브가가 들었더니', 야곱이 이삭에게 속임수를 행하도록 리브가가 스스로 꾀를 지어내어 그 모든 과정을 이끌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점은 야곱이 자신의 아버지를 속인죄를 다소 가볍게 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을 그 죄로부터 면제시켜주시는 못합니다(5~10절).
야곱은 이삭이 속임수를 눈치채지 않을지에 대해서 걱정합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만약 어떤 저주가 주어진다면 자신이 그 저주를 받겠다고 말하면서 야곱을 안심시킵니다. 야곱이 맏아들의 복을 받게 하려는 리브가의 열망은 틀림없이 야곱에 대한 자기의 특별한 사랑으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11~13절).
'태어날 때부터', 에서는 살결이 붉고 또한 온몸에 '털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과 분명하게 구별되었습니다(11절).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이 말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나중에 출 10:16에서 명기되는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삭은 야곱의 주장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은 이삭이 맨 처음에 에서로 가장한 야곱이 정말로 에서라고 확신하지 못했음을 암시해줍니다. 이삭과 야곱 사이에 이어지는 대화는 이 이야기에 드라마적인 특성을 더해줍니다. 야곱이 입은 옷의 향취를 맡고 나서, 마침내 이삭은 야곱이 에서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이삭에게 나오기에 앞서, 리브가는 에서의 옷을 가져다가 야곱에게 입혔습니다(19~27절).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맏아들'을 축복하는 이삭의 기도는 물질적인 필요가 충분히 채워지게 되는 것을 훨씬 넘어섭니다. 이 절에서 이삭은 온 세상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간구합니다. 곧 이삭의 축복 기도는 야곱의 가정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사람들과 모든 나라들을 포함 시킵니다. 이 축복은 분명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17:6)에 근거한 것입니다.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 말은 12:3에 언급된 것으로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반영합니다. 이모티브는 창세기에서 계속해서 전개됩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유일한 계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 또는 은혜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29절).
1절~22절
28: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삭은 헷 족속의 여인들에 대한 리브가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야곱에게 지시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에게 '밧단아람'으로 가라고 지시합니다. 이와 같은 이삭의 권고는 야곱이 에서에게서 도망쳐야한다는 리브가의 바람과 꼭 맞아떨어졌습니다(1~2절).
야곱에 대한 이삭의 축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 을 야곱에게 주실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그리고 비록 이삭은 지금 야곱을 메소포타미아의 북서쪽에 있는 하란으로 보내지만 야곱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을 차지할 것을 기대합니다.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3절)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3절),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됩니다(3~4절).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에서는 자신의 이전 행위를 수정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인정을 받으려고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들 가운데서 한 명을 아내로 다시 맞아들입니다. 하지만 에서는 여전히 헷 족속 출신인 두 아내를 거느리고 있습니다(6~9절).
'브엘세바에서 떠나', 이제 야곱은 하란까지 약 900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10절).
도중에 야곱은 어떤 장소에서 돌을 베개로 삼고 밤을 보냅니다. 그때 야곱은 꿈을꿉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여기서 사닥다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쑬람'은 아마도 계단을 가리킬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꿈속에서 보인것이 사닥다리 모양을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계단의 모습을 하고있는 것인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닥다리(계단)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곧 이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이 땅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신다는 사실을 계시해줍니다(12절).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13절)라는 표현은 또한 '여호와께서 그의 곁에 서서'라고 번역 될 수 있습니다. 16절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기보다는 오히려 땅에서 자기와 함께 계신다고 인식합니다. 이 절들에서 여호와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반영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꿈속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곧 하나님은 야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또한 이 모든 약속들이 야곱에게 이루어지게 하실 것입니다(13~15절).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야곱은 하나님이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 함께 계신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의 집(히, '벧엘')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하늘의문'이라는 표현은 그 장소가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을 암시할 것입니다. 19절에서 야곱은 그 장소를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계신다는 개념을 야곱의 사고 속에 분명히 들어 있다는 것을 가리켜 줍니다(16~17절).
이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야곱은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웁니다. 또한 그 돌의 기둥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서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야곱이 이때 여호와를 위해서 제단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특이한 점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아직까지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켜줍니다 나중에 야곱은 브니엘에서 또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그때 야곱의 신앙이 온전히 변화됩니다. 그리고 나서 야곱은 여호와를 위해서 제단을 세우기 위해서 벧엘로 돌아갑니다(18절).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수 세기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도 이 성읍의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야곱이 '벧엘'이라고 부른 장소는 아마도 루스의 밖에 있었을 것입니다(참조 수 16:2). (19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여기에서 야곱은 하나님에게 조건적으로 서원합니다. 여호와에 대한 헌신과 관련하여 이 서원은 야곱이 여전히 이중적인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야곱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데에는 하나님을 또다시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20~21절).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야곱은 하나님을 위해서 제단(성소)을 세울 것이라고 서원합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돌이 그 제단의 첫 기초석이 될 것입니다. 장차 야곱이 야곱의 자손에게서 나타날 왕의 계보에서 성전을 세운다는 것은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수 세기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감사의 표시로서,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에게 드립니다. 이것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십일조라고 언급됩니다(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