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지(蠹紙)
하금수
모던한 현대식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나는 종종 60년대 유년의 꿈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초가삼간이었던 할아버지의 집이 그립다. 여동생 손을 잡고 오디 따 먹으러 갔던 할아버지 집 울타리는 싸리 꽃으로 담장을 한 예쁘고 아담한 초가집이었다. 단칸방에 마루하나, 뜨락엔 청초한 화초들이 우리 자매를 반겼다. 하얀 고무신을 신으시고, 한복을 정갈하게 입으셨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자식들 결혼시켜 내보내고 직장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 오셔 혼자 사셨다. 티끌하나 없던 마당 귀퉁이 가지런히 놓여있던 수수비, 댓돌위에 올려 져 있던 하얀 고무신, 봄에 하얗게 핀 싸리 꽃을 보면, 할아버지가 사시던 옛집이 아련히 그리워진다. 할아버지 집에 있던 나무로 만든 철봉에 매달려 해 질 무렵 까지 놀다가 장에서 돌아오는 엄마 오는 길, 개울가에 촘촘히 피어있던 싸리 꽃길 따라 엄마 마중 나갔던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여학교 소사로 근무하셨던 할아버지 집에는 좀 먹은 책이 한권이 있었다. 금방울과 은방울이야기 구전으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설화인지, 중국소설인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은 소설을 국문학을 전공하며 아무리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도, 기억 속 오랫동안 정착되어 있는 책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유년시절 60대에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다닥다닥 초가집이 붙어 있는 다랭이 마을, 동네 꼬마아이들과 어울리며 놀던 아이들은 많았어도 책을 보는 아이는 거의 본적이 없다, 빨간 앵두를 따주었던 기와집에 살던 선생님아들만이 삼국지를 읽고 있었다. 할아버지 집에 있던 좀 먹은 낡은 책은 겉표지도 없었다. 일곱 살에 한글을 읽었던 나는 그 책을 집에 가져와 책이 닿도록 여러 번 읽었다. 겉표지가 없는 헌책에 온종일 매달려 살던 어린아이, 만화방에 자주 가던 아이는 성장하면서 책을 가까이 하는 어른이 되었다. 대학에서 전공도 국문학을 선택했다. 어릴 적 꿈은 이루어져 지금은 맘껏 책을 구입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간결한 짧은 수필을 쓰고 싶어 시 공부를 시작했다. 수필을 쓰는 사람이 시를 쓰면 수필이 짧고 간결해진다고 한다. 시 쓰기 시작은 1년 전이다. 시도는 했으나, 마음만 성급했지 시 한줄 쓰기가 수필을 쓰는 것보다 힘들었다. 먼저, 주변 시인들이 추천해준 시집을 찾아 읽었다. 그러던 차에 동인 한 분이 평론으로 유명한 작가의 책, 시 평론을 담은 여러 권의 책을 내게 선물하였다. 시 평론이 아주 잘된 책이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시인의 평론집은 매우 유익했다. 반복해서 읽어도 좋은 책을 선물해 주신 예산문학 동인께 지면으로나마 감사드린다. 이후, 쉬는 날이면 나는 도서관을 찾는다. 시 쓰기 하는 데는 많은 독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책을 고루 읽다보면 넓은 사고력을 키워주고 시 쓰기에 도움이 된다. 독일에서 서양학을 전공한 역사학과 교수님이 이끌어 주는 독서모임에 꾸준히 나가 책을 읽고, 읽은 책을 서평을 한다. 매달 모임을 갖고, 서로 나누는 독서모임에서의 동문들과의 교류는 내게 좋은 정보와 에너지를 준다.
늦게라도 대학에서 문화재관련 석사를 마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요즘, 문화재보존학과 동문들과의 유적, 사적지 답사를 종종 한다. 이 또한 내게 폭 넓은 지식과 역사인식을 갖게 된다. 문화재가 있는 곳은 자연경관이 좋아 자연이 주는 선물은 시 창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나와의 싸움이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들은 정말 위대하다. 어떤 과정을 통해 좋은 시어를 창작해 내는지 매우 궁금하다. 시 쓰는데 도움을 주시는 선생님의 말씀이다.
‘시는 쉬우니, 무조건 써봐라’ 하셨다.
‘시가 쉽다고요?’
시창작하는 과정이 매우 힘든 과정임을 알면서 내게 창작에 대한 용기를
주고자 하신 말씀이었다. 먼저, 읽기 쉬운 가벼운 시를 읽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집중하기 좋은 시, 이어 요즘 뜨는 시를 선별하여 읽기 시작했다. 보태어 좋은 시를 평론한 것을 다독 하면서 시가 어떻게 써야 하는 지, 조금은 알듯하나 아직 초보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시어를 찾는데 고민하는 것은 마땅히 시 작업 수순이지만 내 경험은 시간만 축내는 것이었다. 좋은 시를 골라 시를 다독하며 무작정 써보려 노력하는 방법 밖에 길이 없는 것 같다. 시 한줄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하며 ....
습작으로 쓴 시이다.
두지(蠹紙)
초가삼간에서의 어릴 적 꿈은
내 방이 있는 큰 집이었다
풀벌레 우는소리
기차가 마을을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겉장 없는 좀먹은 낡은 동화책에 매달려 살았다
초가삼간에서의 어린아이 꿈은
고물상에서 보았던
한 권의 책,
내 방에 두는 것 이었다
초가삼간에서 보았던
금방울 은방울 이야기
고전소설 두지,
내 기억 속의 너는
나의 꿈 이었다
* 두지 : 좀 먹은 종이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