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 어리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을 모르고 있어 그래서 나와 너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다투고 빼앗고 죽이고 있다. 허나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아라. 흙이 있어야 풀이 있고, 풀이 있어야 짐승이 있고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는 법.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어야 남편이 있고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어야 부모가 있는 법. 남편이 편해야 아내가 편하고, 아내가 편해야 남편이 편한 법. 남편과 아내도 한 송이 꽃이요, 부모와 자식도 한 송이 꽃이요 이웃과 이웃도 한 송이 꽃이다, 나라와 나라도 한 송이 꽃이거늘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라는, 이 생각을 바로 지니면 세상은 편한 것이요
세상은 한 송이 꽃이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하면 세상은 늘 시비하고 다투고 피 흘리고 빼앗고 죽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니라. 그래서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참뜻을 펴려면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참새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심지어 저 미웠던 원수들마저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요 다른 교를 믿는 사람들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니 그리하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니라, <옮겨온 글>
*만공선사滿空禪師는 경허선사鏡虛禪師님의 법제자法弟子입니다, 두 선사님의 일화는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생략을 합니다, 만공스님은 본관은 여산(礪山), 속명은 도암(道巖), 법명은 월면(月面), 법호는 만공(滿空)이다. 1871년(고종 8) 태인 군내면 상일리(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3세에 출가하였다. 충남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泰虛)를 은사로 모시고, 경허(鏡虛, 성우 1849~1912)를 계사(戒師)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895년 온양 봉곡사에서 수행한 후 덕숭산 수덕사와 정혜사·견성암을 거쳐 금강산 유점사(揄占寺)에서 3년을 지냈다. 1905년 덕숭산으로 다시 돌아와 참선하며 수행승들을 가르치고, 1914년 서산 간월도리에 간월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 1937년 마곡사(麻谷寺) 주지를 지낼 때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조선 31본산(本山) 주지회의가 열렸는데 총독부가 조선불교의 일본 불교화를 주장하자 이에 호통을 치며 공박하였다. 주로 덕숭산에 머물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쓰다가 1946년 전월사에서 입적했다. 사후에 <만공어록 滿空語錄>이라는 책이 편찬되었다. 선사님의 위의 법문은 화엄법계 연기를 잘 설파하신 법문입니다, 불자님들께서는 좋은 인연이 되십시오,
화정 합장,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