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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R
:I don't wanna listen to that
공항에서 한걸음 벗어나자, 차가운 공기가 얼룩진 내 심장을 베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해선 안 될 서울 공기였다. 그에 크게 숨을 들이마쉬고선 내쉬며, 눈에 잘 띄도록 놓여진 안내표지판을 따라 힘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두리번거릴 필요조차 없었다. 네가 없는 난, 언제나 혼자였으니.
공항을 벗어나자 개미떼처럼 줄을 지은 차들이 커다란 차도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에 터덜터덜 그들의 곁에 서니, 익숙히 택시 한대가 나의 앞에 멈춰섰다. 택시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그 말을 이어 자연스레 너의 집주소가 나의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순간 멈칫하며 아저씨에게 정정하려 했으나, 하지 않았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이렇게 너의 집으로 찾아가게 된 것이 수를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으니.
익숙한 길가를 지나, 익숙한 가게를 지나, 익숙한 너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 무거웠다. 멀쩡히 차를 타고 가다 다시 차를 돌려달라며 말하려다가도, 너의 얼굴이 보고 싶어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너의 집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자, 이유 없는 초조함이 날 붙잡아 오기 시작했다. 목이 타기 시작했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며, 무언가에 끊임없이 짓눌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도 오르는지,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너와 걸었던 그 길을, 너와 갔던 그 익숙한 가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총각 휴지 좀 줄까?"
"네?"
택시 아저씨의 부드러운 눈매가 거울에 비춰 나에게 맞닿았다. 그에 반사적으로 되물으며 코를 훌쩍여 보인 나는, 그제서야 나의 옷이 흠뻑 젖도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던 것도 모두 이 눈물 때문이라는 사실 역시 곧바로 자각할 수 있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겨우겨우 눈물을 참아내며 답했다. 내 대답에도 택시 아저씨의 시선은 내게서 떠나지 않았지만, 머지 않아 다시 정면을 향해 돌아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지금 나는 슬프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상태인데, 왜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더이상 택시 아저씨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옷소매로 찬찬히 눈물을 닦아내자, 그제서야 들리는 타닥타닥 소리에 창밖으로 비가 우수수 쏟아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탓에, 내 심장을 베어놓던 그 차가운 공기는 꽁무니조차 볼 수 없었다. 그 날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내가 네게 이별을 고하던 날. 나만 네게 이별을 고하던 날.
말도 없이 너에게 이별을 고한건 나였다. 하룻밤 사이에 태도가 바뀐 난, 아무 말도 없이 너의 곁을 떠났고, 너와의 연을 끊어냈으며, 너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갔다. 부모님은 유학을 가겠다는 내 말에 드디어 아들놈이 정신을 차렸다며 뛸듯이 기뻐했지만, 난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성공이었는데. 이렇게 기뻐하시는 부모님인데. 왜 하나도 기쁘지 않았을까.
그 날 밤, 새푸른 하늘이 어둠에 물든 줄도 모르고 넌 내게 연락을 해왔다. 이미 내 친구들을 통해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은 너일테지만, 미련하게도 넌 내게 뻗은 손을 거둘 줄을 몰랐다. 며칠간 너의 연락은 지속되었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너의 손길은 나에게서 자취를 감추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날 위로해주고 축하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반면 날 손가락질 하는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잠수이별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놈이라며. 너 때문에 지금 멀쩡하던 아이 하나가 망가져가고 있다며.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네 행동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알고 있냐며. 그러고도 네가 그 아이를 사랑했다 말할 수 있냐며.
울고 있을 너를 떠올리자면 하고 싶은 말이, 전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몰랐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너를 마주한다면 꼭 너에게 말해줘야지. 그런데 무엇을?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퉁퉁 부은 내 눈가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 이유없는 눈물도, 너와 관련된 것일까.
택시가 너의 집앞에 멈춰섰다. 우산도 없이 택시에서 내린 나는 익숙히 발걸음을 옮겨 너의 집 앞에 우두커니 섰고, 시선을 올려 너의 집을 올려다 보았다. 아니, 올려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너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끝자락에 멈춰섰다. 도저히 너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너를 꼭 만나고 싶었는데, 도저히 마주할 수가 없었다. 왜일까. 이 감정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날 아프게 하는걸까.
"ㅁ,미친놈아..!!"
"............"
"왜 병신처럼 비를 맞고 있어. 뭘 잘했다고...!!"
한참이 지났을까. 온몸이 축축이 다 젖어들 무렵, 내 몸이 이 빗물에 감춰질 무렵, 익숙한 우산 하나가 나의 위에 씌워졌다. 너였다. 여전히 그 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는, 너. 나를 내려다 바라보는 너의 눈가엔 눈물이 가득했다.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을 보니 학원에 갔다오다 우연히 날 마주한 모양새였다. 오랜만에 널 마주하자 또다시 마음 한켠이 아려오기 시작했고,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넌 내게 이런 우산과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는데, 언제부터 너의 존재가 내 목을 조여오는 사슬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아니, 애초에 널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 나의 탓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난 항상 널 가식적으로 대해왔고, 그로 인해 우리가 이별하게 되었으니까. 난 매 순간, 모든 것들이, 모든 행동들이 모두 거짓되었었다. 나의 옆에서 해맑게 웃는 널 보며, 내가 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내가 널 지켜주어야한다고 수없이 나 자신에게 채찍질 해왔으니.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너에게 건네는 내 한마디가 빗방울에 젖어 힘겹게 몸을 떨었다. 그런 나를 본 너는 한참을 망설이다 나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고, 조용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와 함께 수없이 많이 왔던 카페었다. 이곳에서마저도 난 항상, 가식적이었고.
매일 꿈꿔오던 자리었다. 드디어 널 내 앞에 마주했고, 너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항상 입가를 맴돌기만 하던 그 말들을 너에게 뱉어내기만 하면 되었다. 꼭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하고 싶었던 말들을. 수없이 되뇌었던 말들을. 끝까지 네게 전하지 못했던 그 말들을. 그런데 그 말들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무엇일까? 난 네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걸까?
"............"
너의 또렷한 두 눈이 나를 응시했다.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꿀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널 바라보고 있었지만, 넌 단한번도 날 보채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넌 여전했다. 항상 날 용서해줬고, 기다려줬다. 그런 너에게 난, 안타깝게도 단 한번조차 진심인 적이 없었지.
처음 어긋난 단추부터 다시 맞춰보기로 했다. 난 이런 너의 모습에, 날 항상 배려해주는 너의 모습에, 목이 조여오곤 했다. 내가 아플 때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날 구해주는 것이 너라서 가끔은 버거웠고, 가끔은 외로웠으며, 가끔은 불행했다. 내가 너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내가 받고 있어서, 너란 세계에 갇혀버린 미아가 되는 심정이었어서.
이게 내 진짜 모습이었다. 한껏 꾸며낸 가면을 벗어던진, 진짜 나의 맨얼굴. 시기와 질투에 찌들어서 너보다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내가 꼭 널 지켜주어야 한다는 구식적인 사상에 발목이 묻힌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 나의 선택으로 인해 결국 나 자신을 갉아 먹어버리는, 추악한 모습의 나.
너무나도 추악한 탓에 감추어낼 수 밖에 없었고, 감춰내야만 했다. 나도 이러한 선택을 한 내가 너무 미워 죽여버리고 싶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넌 내게 이 모든걸 털어줬음 했겠지만, 이 모든걸 알았더라면 너는 날 도우려 했을테니까. 날 도우려드는 네 행동이, 날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는 그 시선이, 찌질하고 병신 같은 내 눈엔 날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손짓과도 같아 보였으니까.
설사 네가 날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두려웠다. 나의 맨얼굴을 본 넌, 더이상 날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 모든걸 알게된 네가, 날 떠나가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몹쓸 걱정 때문에. 내게 보여준 그 해맑고 예쁜 미소를, 이 모든 것을 다 알고난 후에도 내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난 그 미소를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두려워서. 무서워서. 겁이 나서.
애초에 영원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나였다. 넌 항상 나에게 영원히 사랑한다며 나의 귓가에 속삭였지만, 바보가 아니고서야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는 나였디. 그 탓에 네가 내 귓가에 영원이란 말을 꺼낼 때마다, 속으로 울부짖으며 울었었다. 영원 같은 소리 좀 그만해. 어차피 끝은 있는거잖아. 하고 입가에 맴도는 말을 힘겹게 삼켜내며. 이렇게 너에게서 또 한걸음, 멀어지며.
"......두려웠어."
어렵게 꺼낸 한마디었다. 그에 너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참아온 눈물을 터뜨렸고, 나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너를 바라보며 난 아무말도 잇지 못했다. 말 그대로였다. 어쩜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았을까봐. 그저 나의 경쟁의 대상이 필요했던 것일까봐. 너만 날 진심으로 사랑했을까봐. 너를 사랑한 내 마음조차 가식이었을까봐.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도망쳤고, 그래서 무너졌다. 너무 많은 위로가, 너무 많은 채찍질이, 너무나도 맞는 말들이, 나의 목을 조여왔기에. 한가지 확실한 것은 넌 나에게만큼은 진실했다는 것이었다. 난, 처음부터 쭉 가식적이었고.
"....미안해."
"............."
"너무 못난 나라서."
어쩜 내가 너에게 제일 먼저 건네고 싶은 말은 사과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못난 내가, 구름 한점 없는 새푸른 너에게 먹칠을 했으니. 나로 인해 너가 상처 받고, 아파했으니. 모든게 내 잘못이었다. 널 원망할 자격은 나에게 없었고, 애초에 널 원망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게 나의 탓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저 나의 사랑이 진심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마저도 거짓이었다면, 난 다신 사랑이란 감정을 못느낄 것 같으니까. 또다시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며,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으니까.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이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나의 마지막 사랑이, 너였으면 좋겠으니까.
"나도 내가 널 진심으로 사랑했길 바래."
"............"
"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이 감정이, 사랑이 맞길 바래."
"............"
"아니, 사랑했을거야."
"..................."
"아니, 사랑했어. 진심을 다해."
+사실 남준이 파트를 읽으면서 많이 고민했어요. 가사의 끝자락에 '너만 나를 사랑했다고 더.' 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가사 때문에 앞부분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뉘우침, 후회함과 동시에 느끼는 두려움들이 뒷부분과 잘 맞지가 않아서, 좀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없을까? 하다보니 남준이 캐릭터가 쓰레기가 되어버렸어요...ㅎ 여주 입장에서 보면 완전 쓰레기인데, 남준이 입장에서 보면 그저 여주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어 했고, 그 탓에 자신의 모든 행동들이 거짓되어 자기 자신을 힘들게 했으니 도망치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화를 하게 된다는....ㅎㅎㅎ 사실 지금 매우 마음에 안들어요 이 노래 제 최애곡인데ㅜㅜ 내가 망친거 같아 힝ㅜ
+제 최애곡인만큼 남준이편, 윤기편, 호석이편으로 나누어져서 올릴 거구요, 최대한 가사를 반영해서 썼어요! 나중에 글 다 읽어보시고 노래 다시 한번 들어보세요! ㅎㅅㅎ
+우리 꽃쁘니들 저와의 1000일이네요! 앞으로도 우리 오래가요 ㅎㅅㅎ
첫댓글 글 너무 좋아요 1000일축하드리고 작가님!! 우리 오래가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10.27 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