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姜昇)
[요약정보]
UCI G002+AKS-KHF_12AC15C2B9FFFFU9999X0
자 자양(子揚)
호 완휴재(玩休齋)
생년 1430(세종 12)
졸년 1500(연산군 6)
시대 조선 전기
본관 진주(晉州)
활동분야 기타 > 처사
부 강순(姜純)
증조부 강회중(姜淮仲)
[상세내용]
강승(姜昇)에 대하여
1430(세종12)∼1500(연산군6).(주) 생몰년
본관은 진주(晉州).(주2) 본관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자는 자양(子揚), 호는 완휴재(玩休齋).
대제학(大提學) 강회중(姜淮仲)의 증손(曾孫)이며, 송산군(松山君) 강순(姜純)의 아들이다. 강호(江湖) 김숙자(金淑滋)의 문인(門人)이다.
1447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주3) 생원시 합격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문음으로 벼슬을 시작하여(주4) 출사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여러 주군(州郡)을 관장하면서, 농업을 권장하고, 학업을 흥하게 하였다.
김제(金堤)에 부임하여 단종(端宗)이 임금의 자리를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갔다. 세조(世祖)가 송산군(松山君)에 봉했으나 받지않고, 동봉(東峰) 김시습(金時習)과 함께 계룡산(鷄龍山)에 들어가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고, 단종을 삼현사(三賢祠)에 모셨다. 1784년(정조8)에 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전라북도 김제의 봉서사(鳳棲祠)에 배극렴(裵克廉)과 함께 봉안(奉安)되었다. 사당이 있는 봉서서원(鳳棲書院)은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다.
[주1] 생몰 :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해제 참고
[주2] 본관 :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주3] 생원시 합격 :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주4] 출사 :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참고문헌]海東人物志, 性潭集(宋煥箕, 한국문집총간 244∼245집, 민족문화추진회), 완휴재선생실기(琓休齋先生實紀)
[집필자]이세호
2008-12-31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첫댓글 회중 - 안명 - 순 - 승 (1430(세종12)∼1500) : 안명에 대한 시대 오류가 있어 확인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