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선교사묘역과 유진벨선교기념관 및
광주지역 선교지
2018.8.29
유진벨 선교기념관
한국어 이름을 배유지라고 했던 유진벨(1868-1925) 선교사는, 남장로교회의 제2진 선교사로 오웬 선교사와 함께
1895년 4월 9일 내한하여 전남지역에서 개척토록 위임받아 어학선생 변창연과 함께 나주로 가서 1896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 답사를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 목포로 옮겨가 목포선교부를 설립하고 교회개척과 교육활동에 종사,.
목포 정명학교와 영흥학교를 설립하였다. 1904년 사역지를 광주로 옮겨 승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였다.
교육과 의료활동, 교회개척에 힘쓰는 등 30년간을 전남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925년 9월 28일 소천,
양림동 뒷산, 현 선교사묘역에 안장되어, 먼저 순교한 오웬, 서서평 선교사 등과 함께 잠들어 있다.
1904년의 첫 예배
호남신학대학교와 광주선교사묘역
광주 양림동 선교사묘역
광주광역시 제중로 77번지(양림동 220-13번지) 소재 광주선교사묘역은,
1909년 오웬 선교사가 병으로 숨져 순교하자 이곳에 매장하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처음엔 오웬, 유진벨, 서서평 등 선교사와 그 가족 등 22기의 묘지만 있었으나
2010년 23기의 묘비가 추가로 세워졌고 이후 호남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숨져
양화진과 전주에 안장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묘비를 동일한 모양과 크기로 재현, 추가로 세워서 현재
총 45기의 묘비가 있다. 원레 이곳은 광주 시내의 어린 아이들이 죽었을 때 내다 버리는 공동묘지 풍장터였는데
1904년 선교사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이곳 양림산은 호남지역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난의 길 체험
우일선 선교사 사택(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5호)
광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으로써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로버트 엠 윌슨)에 의해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우일선은 1908년 제중원(현 기독병원) 원장이 되어 의사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1층에는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이 있고 2층에는 침실,
지하에는 창고와 보일러실이 있는 이 건물은 평면으로 볼 때 정사각형 건물로 지어졌다.
양림동 지역에는 이렇게 개인 주택에 기독교 표식을 한 주택들이 많다
미국 남장로교선교부가 광주지역에 세운
첫번째 교회인 광주 양림교회당
양림교회 교육관
오원기념각(광주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26호)
오원 선교사(클레멘토 씨 오웬/1967-1908)가 지역민을 위해 자신을 길러준 할아버지를 기념하는 건물로
지으려고 기금을 마련하는 중 1909년 갑자기 별세하자 동료들과 지인들이 모금을 보태어 건축, 1914년 준공
하였다. 오원 선교사는 배유지(유진벨) 선교사와 함께 1904년, 읍성에 가까운 이곳 양림리에 첫 교회를 설립,
전남 내륙과 해안을 배경으로 활동하다 1909년 순교하여 양림언덕에 잠들었다. 오웬의 죽음은 한센병진료소가
양림에서 태동, 국내 최대규모의 한센병치유공동체(1927-28)인 여수 애양원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네델란드식의 건물로, 회색벽돌을 쌓고 맨사드지붕틀을 올린 오원기념각은, 정방형 공간 1층 모서리에
강단을 두고 좌우 대칭으로 출입문을 배치하였다. 남녀 동등하게 모양과 크기가 같은 각각의 큰문으로 입실,
강단 기준으로 휘장을 쳐서 남녀 구별하여 착석하였다.
어느 집 담 안에 석류 열매가 참 탐스럽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