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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3:1-18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보아스의 선대(善待)로 이삭을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던 나오미와 룻은 3장에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섭니다.
청혼 계획(1-5절)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새로운 국면은 나오미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할 곳 곧 남편을 구해주려 합니다. 이 모든 일은 ‘너를 위하여’ 즉,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나오미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던 자신을 좇아 고향과 부모님까지 버리고 따라온 룻에게 빚진 마음, 곧 고마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룻을 향한 나오미의 마음은 아름다웠지만 그녀가 제시한 계획은 위험했습니다.
(2-4)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그녀가 선택한 룻의 배우자는 보아스였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밤에 보아스를 찾아가 그의 잠자리에 함께 눕도록 모험을 제안했습니다. 이 계획이 실패할 시 룻이 수치와 모욕을 당할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나오미는 룻에게 새로운 변화를 암시하는 행동들, 곧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의복을 갈아입는 일을 제안하며 철저히 준비시켰습니다. 이러한 시어머니의 제안에 룻은 다음과 같이 반응했습니다.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룻은 “다 행하리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룻의 이러한 순종이 억지가 아닌 자발적 순종이었음은 8절이 보여줍니다. 룻은 자신이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와 결혼하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오미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룻을 위해 재혼을 제안했듯 룻 또한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나오미의 기업을 되찾아주기 위해 순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청혼 실행(6-15절)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성경은 룻의 행동을 한 줄로 요약하여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룻의 순종은 그녀가 나오미를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면 순종하고, 사랑은 행동으로 입증됩니다. 그러나 룻이 순종해야 했던 행동들은 위험천만했습니다.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룻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되 아무에게도 걸리면 안됐습니다. 그래서 룻은 보아스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숨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보아스가 눕자 룻은 ‘가만히’ 가서 보아스 곁에 누웠습니다. 여기서 ‘가만히’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벨 때에도 쓰였습니다(삼상 24:4). 그만큼 룻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 행동을 옮겼습니다. 가만히 가서 보아스 곁에 누운 룻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과연 룻의 행동은 위험을 감수한 모험이었고 과감한 도전이었습니다.
(8-9)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시간이 흘러 밤이 깊었을 때 보아스가 깼습니다. 보아스는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크게 놀라 외치다시피 물었습니다. “네가 누구냐”. 이 짧은 질문은 그의 당혹스러움을 보여줍니다.
이전에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 곁에 누우면 보아스가 그 이후 행동에 대해 알려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룻은 보아스의 질문에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라고 자신을 밝히며, 곧이어 청혼했습니다. 이러한 룻의 주도적인 모습은 그녀가 억지가 아닌 자발적으로 시어머니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룻은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라는 말로 청혼했습니다. 여기서 옷자락으로 번역된 단어는 앞선 2장 12절에서 “날개”로 쓰인 단어입니다. 즉, 룻은 “당신의 날개를 펴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라고 청혼하며 의도적으로 보아스가 이전에 자신에게 빌어주었던 복,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받기를 기원한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기원해주었던 그 안식처가 보아스 당신이 되기를 원한다고 재치 있게 청혼한 것입니다. 또한 룻은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땅을 되찾아줄 것도 요청했습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보아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10-11)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의 첫 마디는 “내 딸아”였습니다. 보아스의 선택지에는 자신을 당혹스럽게 한 룻을 비난하고 그녀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리어 룻을 “내 딸아”라고 부른 뒤 그녀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보아스는 잠결에도 하나님의 복을 가장 먼저 빌어주었을 정도로 하나님이 일상의 언어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복을 빌어준 뒤 룻의 행동을 높였습니다. 그는 룻이 자신에게 인애 즉, 헤세드를 베풀었다고 말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다고 말했는데 그가 말한 처음 인애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았던 행동을 말하고, 나중 인애는 룻이 지금 자신에게 청혼한 행동을 말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젊은 남자와 충분히 결혼할 수 있었음에도 시어머니를 위해 나이 많은 자신을 선택해준 것에 감동을 받아 나중 인애가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보아스는 룻에게 빚진 마음, 즉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교우님들의 가정에 심방을 가서 빛이 나는 부부를 볼 때가 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고마워하는 부부에게서는 빛이 납니다. 그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서부터 생기가 돕니다. 룻과 보아스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가족이 나에게 선물이 되려면 서로를 향한 ‘고마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은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고마움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이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남편과 아내, 자식의 고마움을 아는 부모, 그리고 부모의 고마움을 아는 자식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보아스는 룻의 행동을 높인 뒤 그녀가 청혼한 다음 느낄 걱정과 불안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룻이 요구한 것을 다 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를 통해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에게 인애를 베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 행하겠다고 말한 보아스의 말은 앞서 룻이 나오미에게 다 행하겠다고 말한 것과 오버랩됩니다. 이는 세 사람의 관계 안에 인애 즉, 헤세드가 흐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룻이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겼습니다.
(12-13)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나오미의 계획과 룻의 청혼, 그리고 보아스의 청혼 수락을 모두 무산시킬 변수가 생겼습니다. 그 변수는 바로 보아스보다 기업 무를 선순위를 가진 친족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보아스는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밝혔습니다. 분명 보아스는 룻이 자신에게 청혼해 준 것을 큰 인애라고 말할 정도로 룻에게 고마워했고, 룻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유력자였기에 마음만 먹으면 선순위 친족이 있더라도 자신이 힘으로 누르고 룻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사사시대였습니다. 모두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을 대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유익을 구하며 자기 감정에 이끌리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행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보다 더 가까운 그 친족이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면, 그래서 그가 룻과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까지 수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보아스는 결과의 영역인 미래를 통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신 과정의 영역인 현재에만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보아스는 결과가 하나님의 영역이고, 현재만 자신의 영역임을 아는 겸손한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자다가 깬 상황에서도 자기 감정이 아닌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기준 삼아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이는 평소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밭모퉁이와 이삭을 남기고 과부를 선대하며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오늘 변화가 없으면 내일도 오늘의 복사판이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좇음으로 내일을 영원에 잇댄 하루로 변화시키기를 소망합니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어도 룻을 향한 보아스의 인애는 식지 않고 여전히 뜨거웠습니다.
(14-15)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보아스는 혹시라도 룻이 발각되어 정숙하지 못한 여인으로 여겨질까 염려하여 룻을 지켜주기 위한 사랑의 행동을 합니다. 바로 그녀의 겉옷 위에 보리를 여섯 번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보아스가 되어준 보리는 룻에게 좋은 명분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 보리는 추수가 끝나 더 이상 이삭줍기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던 나오미와 룻에게 사랑의 식량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보리는 룻의 청혼을 보아스가 수락했으며, 자신이 인애를 베풀 것이라는 사랑의 증표였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행동으로 입증됩니다.
나오미와 룻의 대화로 시작됐던 3장은 그들의 대화로 마무리 됩니다.
청혼 보고(16-18절)
(16-18)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나오미는 룻이 돌아오자마자 청혼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았고, 룻은 있는 그대로 알렸습니다. 보아스보다 선순위에 있는 친족이 있었다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지만 나오미는 룻에게 앉아있으라며 믿음으로 기다리기를 권유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보아스가 자신이 약속한 인애를 쉬지 않고 이룰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의 일상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상이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알려졌고, 그 일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평범한 그들의 일상에 비범한 하나님의 헤세드가 담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헤세드는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비범한 역사로 바꾸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상대의 필요를 따라 행동하며 서로를 헤세드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 안에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헤세드는 행동으로 입증됐습니다.
우리도 본문 속 세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헤세드를 나타내는 삶으로 영광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55장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아십니다. 그래서 성부는 우리를 위해 성자를 내어주셨고, 성자는 찢겨진 빵과 부어진 포도주가 되어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성령 또한 값없이 우리를 그 만찬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삼위 하나님은 우리를 헤세드로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 헤세드는 완전한 사랑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입증됐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며, 우리 인생들을 향한 항구적 부르심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으셨듯 우리도 사랑을 포기하지 마십시다. 사랑은 요원하지 않습니다. 존재 방식이 사랑이신 삼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늘이라는 일상이 주어졌습니다. 이 일상에 하나님의 헤세드를 담으십시다. 그분이 자신의 살과 피로 차려주신 영원의 식탁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참여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헤세드로 물들이십시다. 그리고 헤세드에 적셔진 마음으로 오늘의 일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이들에게 값없이 헤세드를 흘려보내십시다. 그렇게 오늘 하루,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의 헤세드를 나타내는 비범한 역사로 쓰이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삼위 하나님,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찬양합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먼저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신 예수님의 헤세드 사랑에 우리 마음을 적십니다. 이전의 우리와 같이 영원한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신음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헤세드를 흘려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인생이 자기 유익을 구하며 육체의 필요만 채우다가 끝나는 고깃덩어리 인생 되지 않게 하시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이 땅에 흘려보내는 영원한 생명의 삶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가 룻이었다면 나오미의 제안(1-4절)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생각해봅시다.
2. 나오미, 룻, 보아스는 서로에게 빚진 마음 즉, 고마움을 가졌습니다. 나는 가족에게 빚진 마음, 고마움을 갖고 있는지 돌아보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고마운지 생각해봅시다.
3. 나오미와 룻은 밑바닥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헤세드를 나타내는 비범한 역사로 쓰였습니다. 나는 이웃 사랑을 몇 번째 우선순위로 놓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4. 사랑으로 승리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고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