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무언가 대단해… 저번에 꺼낸 가보는 쉐릴이 아니었어. 그건 단순한 미스릴 검이었지. 저번에 시험으로 받은 그 검 말일세. 그런데 정령술에 이어서 이번에는 쉐릴까지 꺼내드는군. 저번 삶에서는 무언가 커다란 여행을 했었는가?”
교수님의 말에 나는 싱긋 웃음으로만 대답했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교수님은 끌끌거리며 혀를 차시곤 미소 지어 보이셨다.
"영악하구나, 영악해…"
“영악하다는 뜻에 예의바르다는 뜻도 있더군요. 칭찬으로만 들어도 되겠습니까?”
내 대답에 교수님은 클클거리시며 더 웃으시곤 탄식조로 말했다.
“자네, 그런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꽤나 썩히고 있군. 현실에서 하는 일이 상당히 궁금해지는군. 알려 줄 수 있는가?”
몸이 굳었다. 조금은… 그래… 난… 교수님에게는 고백해도 되겠지.
“백수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죠. 6년 전 우연히 잡은 게임에 중독되어 1일 반나절동안 내내 게임만 플레이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저귀까지 찬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아기죠. 어머니가 필요한 아기 말입니다.”
내 말에 충격을 받으신 듯, 눈을 치켜 뜬 채로 날 무섭게 노려본다. 그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한쪽의 바위위에 걸터앉아 양 손을 모으고는 머리를 가져다 놓았다. 보이는 것은 깔고 앉은 바위, 아니… 암흑뿐.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교수님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중독자인건가? 어찌 보면 우리 운영자들에게는 기쁜 소리를 하는군, 자네는…”
교수님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셨다. 이곳으로 와서 모두 소환해 놓은 정령들이 내 모습을 보더니 이유도 모르면서 같이 추욱 늘어진 채로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웃긴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뻗어서 근처의 정령에게로 가져다 놓았다. 그곳에서 있던 물의 정령은 손가락이 다가오자 손가락을 피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나는 그 정령을 따라서 느릿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것이 재미있게 보였는지 불의 정령이 특유의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와 손등 위에 걸터앉아서 이리저리 딸려가며 웃어대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흘린다. 최근은 실소를 흘리는 횟수만 늘어나는군…. 씁쓸한 웃음도 함께 베어물어본다.
“이런 게임… 그래. 이 게임을 좋아해 주니 말이지. 이 게임은 실제로 M-K에서 보급해서 이곳저곳으로 퍼지고 제공하며 업데이트를 하고 버그를 잡는 등의 일을 하지만… 결국 ‘제작’자체는 2명의 자사 최고 실력의 프로그래머와 외부 프로그래머 1명이 제작했지. ‘어머니’가 아닌 게임회사에서 운영하는 작품인 만큼 언제나 걱정을 느끼거든. 친부모가 무책임한 아이를 새엄마가 기르면서 아이가 학교에서 재혼한 가정의 아이라고 왕따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거든.
그리고 그것을 지켜 본 결과는… 실패했네.”
그의 말에 손을 놀리던 것을 그만두고 교수님을 쳐다본다. 정령들은 어느새 내 다리 위로 쪼르르 올라와서 같이 교수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교수님은 그런 정령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셨다.
“새로운 시스템은 지루함을 주고, 플레이어들조차 퀘스트의 대상이 되니 PK가 난무했지.
죽음 시스템은 그런 PK난무 시스템과 합쳐져서 오히려 페널티로 다가왔고, 제작진은 S. E의 ‘최종붕괴’사전 때문에 오픈을 앞당겼어야 했지. 플레이어들은 최종붕괴 사건으로 S. E의 플레이어를 하기 위해 정액비를 넣었던 사람들은 모두 손해를 봤지. 시간을 손해 봤고, 예정에도 없이 S. E가 붕괴되어버렸기 때문에 캐릭터 육성 시간들을 손해 봤지.
초기 베타테스터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챠넬포르타우조차 없는 광활한 곳에서 공략본이나 최소의 도움도 없이 플레이를 강행해야 했어.
그 시점에서… 플레이어들의 상당수가 게임을 떠났다. 욕과 함께 환불을 요구하고 고소를 하며 이것저것 악평을 남기고서.
S. E에서의 무기와 캐릭터. 가디언 등의 NPC등을 그대로 가지고 올라왔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 될 리는 없지.”
고개를 끄덕인다. 교수님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시더니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서는 목이 짧고 날개가 몸의 5배 이상이 될 법한 특이한 새가 날아왔다. 얼굴이 매섭고 날카로우며 꽁지깃이 안정감 있게 뻗어 가지런하고 넓게 나 있는 새는 교수님이 조련을 시켜놨는지 가만히 팔에 앉아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새의 등을 쓸어내리며 교수님은 이야기를 이었다.
“이 게임은 인기절정의 1위권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지. 애초부터 토대의 쌓기가 불안정했어. 오픈 2달 후 겨우 안정화가 되었지. 토대는 베타테스터들의 80%가 넘는 S. E 유저의 70%이상을 떠나보낸 후 완료된 것이야.
이 곳의 모든 행위는 실제 능력에 비례하며 스스로의 노력에 비례하고 덕분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건 알겠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바닥으로 땅의 정령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녀석은 망토를 꼭 잡고 있던 손을 느슨하게 풀려다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다시 망토를 입을 가릴 정도로 끌어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다 떠나간 상태에서 쌓인 토대. 그 토대만으로 모든 게임을 진행 할 수 없었기에 해석된 프로그래밍 틀의 기초를 따라 패치를 하게 됐지. 그걸로 유명해 진… 그저 일반적인 게임이야.
모두가 ‘혁신적인 게임’과 ‘세계 최고의 게임’을 외치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유행과 그 모든 것이 지나간 이곳에서 여생을 지내고 있지.”
교수님을 멍하니 바라본다. 알고 있지만, 운영자 스스로가 자신이 운영하는 게임을 비하하는 일은 드문 것 이였다. 챠넬포르타우의 교수직으로 단순고용된 것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하지만 그는 운영자다.
교수님은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론 새로운 시스템들이 중독을 불러왔지. 특히 중독성을 다른 게임보다 많이 가진 고급 마약이 S. W지. 일반 마니아층을 겨냥하는 그런 게임과는 완전히 격이 다르달까.
전혀 새로운 틀의 게임이 나온 것이지. 완전한 ‘삶’이다. 복잡함이 게임의 난이도를 증가시켰고, 현실감과 증가된 난이도 등등은 플레이어들이 도전할 의욕과 그것에 대한 상당한 노력을 주었지.
지루한 RPG의 틀을 깨버린 것이지. 가상현실이 처음 나왔을 때 그들은 새로운 것에 대해서만 열광했었고, 그 이후 다른 게임이 상당수 등장해 버렸어. 이제 이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고 예전의 신작들은 점점 고전으로 밀려나는 순간 이것이 등장한 것이지….
일종의 파격적인 시스템! 마니아층을 유혹해서 잡아들인 것은 아주 짧은 찰나였지.
그러나… 중독은 어떠한 의미든 죽음을 만들지. 그럼 세상은 이런 말을 하지.
'게임중독자 모군, 무리한 게임 도중 사망.’
이라고 말이다. 그 게임의 중독성은 무시되고 죽은 사람의 야유만 쏟아져 나오게 되는 세상이지. 이유를 아는가?
이놈의 온라인 게임이 세계에서 벌어다 주는 돈이 장난 아니니까 말일세. 그마나 온라인게임의 강세가 바로 한국이지 않는가? 모든 패키지가 망해버린 세상에서 대한민국 만세! 빌어먹을 이유지.”
교수님의 말투는 점점 격해졌지만 그것을 잠자코 들었다. 나름대로의 감정을 표출하시는 방법. 저런 모습의 교수님은 처음 이였기에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옳은 말이리라.
“그들은 주체를 무시해. 그저 희생자를 끝까지 몰고 가고, 조사를 하지 않고 보고서와 기사에 매도하는 여러 기사문을 적어 놓고 끝이야. 편한 세상이지. 오히려 그 조사한 기자들이 이 게임의 중독자일지도 모르지. 웃기지 않는가? 중독이 된 것은 중독성의 탓이 더 많은 것이지 그 약하디 약한 자제력을 가진 일반인의 탓이라는 것이야.
게임은 재미있다구. 그것은 게임을 만드는 모든 게임제작자들이 추구하는 바야. 그것을 무시한 게임은 나올 수 없어. 그럼 당연히 중독이 되게 되어 있는 거야.
스스로 자제를 하고 말고 할 시기는 지났어. 이미 이 게임의 보호 장치는 8시간 단위로 플레이어를 쫓아내는, 빌어먹게도 풀기 쉬운 프로그램 단 하나만 남아있을 뿐일세.”
…… 빌어먹게도 풀기 쉬운 프로그램이라는 부분에서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셨지만 전체의 글에 대한 동의라고 생각하는지 별 말 없는 교수님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교수님은 양 손을 머리 위까지로 들어올리면서 하늘을 바라보시며 이곳저곳을 왕복하시면서 외치셨고, 그 단어들은 혼잣말 같던 성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부르짖는 목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그 말은 나 혼자에게 한정된 대화가 아닌, 마치 웅변과 같은 전체를 향한 분노이자 탄식이었다.
“자네는…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예?"
“자네는 계속 중독되어서 이곳에서 살 거냐고 물었네.”
“경계속의 삶을 지속할거냐고 물으신 거군요.”
내 혼잣말에 교수님은 ‘경계인가?’라고 중얼거리시며 하늘을 바라보셨다. 나 역시 하늘을 바라본다. 가상현실의 속이지만 훌륭하게 재현된 구름이 유유히 흘러 다니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살짝 내렸다. 정령들은 어려운 내용 이였던지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나요… 이제 슬슬 이 여행도 마칠 때가 되었죠. 56번째 졸업 이후로 제 가문은 챠넬포르타우 이곳을 거치지 않을 겁니다.”
내 말에 교수님은 시원스럽게 껄껄 웃으시며 내 등을 쳐 주었다. 뭐가 그렇게도 기쁘신지 한참을 신나게 웃으시다가 말을 꺼내는 도중에도 계속 웃음을 입에 달고 있으셨다.
“그런가. 허허허… 그래그래. 자네에게… 56번이나 가르친 내 제자에게 졸업선물이라도 하나 주어야겠지? 허허 허허허.”
교수님은 뭐가 좋으신지 아이템창의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찾기 시작하였다. 연신 ‘뭐가 좋을까…’라고 중얼거리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니, 옳지 않은 짓인걸 알면서도 도대체 어떤 선물을 주실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교수님은 한참을 뒤지시면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는지 얼굴을 찡그리시며 하나의 물품을 꺼내셨다.
“으음… 크흠…. 이런 이런… 줄 것이 이것밖에는 없군.”
교수님이 꺼낸 것은 투박한 양손검… 갈색 끈이 힐트에 묶여있는 마검, 부론달 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왠지 부담스러워 져 입을 열었다. 저런걸 받을 수는 없다.
“제 마법검 쉐릴이나 마검 부론달… 둘 모두 유니크 아이템입니다. 실제 레벨은 1 밖에 안 될 제가 어찌 이런걸…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놈!”
교수님이 한순간 큰 호령을 하셔서 흠칫 하고는 물러섰다. 정령들 역시 그 소리에 놀란 것인지 깜짝 놀라서 멍한 얼굴을 들어올린 채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교수님을 보면서 내 쪽으로 다가와 숨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을…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 하지 않았는가! 일단 그런 것이라도 받아 두게. 일단은 마검 부론달의 원래능력은 자네가 이곳을 나갈 때까지 봉인해 주겠네. 더 이상 뭘 바라진 말게나!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게 이거라네. 그런데 이걸 거부한다는 것은 자네는 내 성의를 무시하거나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욕심쟁이라는 소리 아닌가! 어서 받게!”
그런 억지스러운 말씀까지 하면서 강요하신다면…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검을 받아들었다. 곧 내 몸 전체에서 시원하고 따뜻한 느낌이 느껴졌다. 이미 이것은 유니크 아이템의 주인인식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반항을 하거나 놀라지 않고 양손으로 검을 잡고 있었다.
곧 온 몸을 지배하던 묘한 온도변화가 사라지자 나는 검을 든 채 움직이다가 한 가지의 사실을 깨닫고는 멍하니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가?"
교수님의 물음. 나와 교수님은 매우 간단한 부분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교수님…. 저는 이런 대검을 보존할 정도로 가방이 넓지 않습니다. 운영자이시니 아이템 소환이다 뭐다 하지만 저는 현재 일개 평범한 플레이어입니다. 가보도 5개 모두 지정해서 지정 할 수 없습니다.”
나의 틱틱거리는 듯한 불만을 듣자 교수님은 무언가를 보듯 공중을 바라보셨다. 꽤나 불쾌할 지도 모를 언사였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셨다.
“쉐릴… 그래… 흐음… 호오… 아아… 쉐릴에게 걸린 기능 중에는 아이템을 소환하는 기능 역시도 있었군. 게다가 쉐릴은 가보였지? 나는 자네가 자네의 힘으로 소환한 줄 알았지. 미안하네.… 허허… 이래놓고는 교수라니, 웃기지 않는가? 늙으면 역시 죽어야 하는 모양이군. 아니면 나는 자네가 특이한 플레이어라는 것에 중점을 맞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말일세. 가끔 수업내용도 까먹으니 말이야.”
나는 그저 싱긋이 웃어보였고, 교수님은 마음 좋은 미소를 지으시며 인심 쓰시는 듯이 말씀하시며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알았네! 자네, 챠넬포르타우 내부에만 있으면 출석으로 인정해 주겠네. 단, 이번 시험도 역시 만점을 받아야만 하네.”
“제가 만점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로 압수해 가겠네.”
교수님이 얼굴을 굳히며 협박조로 말하시자 나는 느긋하게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예이, 예이. 기억해 두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발 옮겨서 교수님이 다음 이론수업을 할 강의실을 지나서 학교 뒤 연습용 공터로 행선지를 정했다.
첫댓글 확실히 연참은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을 저하시키는 요인일세. 생각해보게, 글이 좌르륵 몇개씩 올라가 있으면, 그거 읽을 생각에 막막하기도 하다네. ㅡ_-
확실히 그렇긴 하다만서도.. 읽어주는 자네 같은 사람도 있잖은가?
훗, 죽마고우가 괜히 죽마고우인가!(불타는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