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향스님 말씀: 일체는 緣起하기에 假立가립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밖의 對境대경을 눈으로 인식하거나, 귀가 소리를 알아들을 때 소리가 귀에까지 오는 시간이 있고 대상에서 나온 빛이 눈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걸리기에 우리가 인식하는 대경들은 모두가 과거의 것들이라고 말한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먼 과거의 대경을 인식하는 것이기에 몇 광년 떨어진 별들을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라고 말한다. 형상, 소리 등 오경의 대경이 모두 이렇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과학자와 설일체유부에서 말하는 그들의 전형적인 인식과정이다.
만약 그들같이 말한다면 이미 밖의 대경이 존재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 그것들이 보내는 힘을 有境유경¹이 인식한다고 말하는 것이 되기에 이미 상주 불변하는 물질의 근본 요소가 설정된 것이다².
<원담 주>
1. 有境유경: 티베트불교에서는 인식주관을 유경이라 한다. 境이 나타날 수 있는 근거, 배경 된다는 뜻으로 有境이라 이름 한다. 신심명信心銘에서 能능이라 표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식하는 주관이나 주체를 ‘나’, 혹은 ‘자아’로 착각하게 될 일체의 소지를 차단한다. 6식, 7식, 8식 이니 하는 개념을 유경으로 대체한 것이다. 자아를 붙잡으려는 심리적인 욕구를 아주 냉정하게 끊어버린 것이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추호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중관의 지혜이다.
2. 인식이 이루어지기 전에 인식대상對境이 먼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그 대경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의문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아직 인식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인식될 대상이 먼저 설정되니 이것이 모순이 아닌가라는 말이다. 범일스님이 말하는 제1착각, 제2착각도 이런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범일스님이 니까야를 이해하는 방식은 유부有部이다. 불변하는 요소(법)는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과학자들이 우주만물이 변화하여 무상하지만 그 가운데 불변하는 근본요소 예를 들어, 힉스입자, 쿼크, 중력자, 소립자를 상정하듯이. 제행은 무상하지만 법(5위75법, 4위82법 등등)은 불변하며 보존된다는 입장이다. 범일스님은 십이처를 불변하는, 자성이 있는 어떤 실체로 간주하는 듯하다.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들 즉 나, 사람, 병 ,자동차, 산, 나무 등 일체 유위법들은 변하는 것(pannati빤야티)들이다. 이 변하는 것들은 불변의 요소들(paramatha파라마타 혹은 dhamma 담마)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이기에 이 불변의 요소인 바탕의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이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개념들은 변하게 되어서 얻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비유하면 물이 수증기가 되고 이러한 수증기가 모여 구름이 되고 이 구름이 짙어졌을 때 비가 되어 내린다. 이와 같이 구름, 수증기, 얼음, 등의 모습으로 모습은 변할지라도 그 본질적 요소(이것을 dhamma법이라 한다)인 물의 성질은 과거 현재 미래에 있으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法體恒有법체항유, 三世實有삼세실유, 이것이 설일체유부의 교설이다).
이렇게 밖의 대상이 보내는 힘을 根근이 받아드리고 그것을 인식하게 된다는 관점을 견지하게 되면 본질적인 요소(自性)가 있는 것으로 된다. 이렇게 본질적인 요소가 있는 것으로 된다면 그 본질적인 요소가 인식 할 수 있는 대경의 바탕으로 있어서 그것들이 유경에게 보내는 힘이 있고 그것들이 보내는 힘을 눈, 귀 등이 알기까지는 그 보내는 힘이 눈, 귀 등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이 걸리기에 오근이 인식한 대경은 과거의 대경이라고 말하게 된다. 근대의 과학자와 유부의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렇게 설명하기는 하겠지만 그들의 말 그대로 한다고 하면 이러한 인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앞의 인식과정으로 대경을 인식한다고 말을 하게 되면 인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이미 변하지 않는 존재의 바탕 요소가 있기에 이러한 인식과 변화 즉 물이 구름이 되거나 수증기가 되거나, 얼음이 되는 등으로 변화할 수가 없다. 왜? 요소가 이미 버티고 있기에 개념으로 건설되는 대경의 세계조차 건설될 수가 없다. 왜? 이미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즉 대경이 보내는 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요소가 있다는 말이기에.
만약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인식 하고 있는 별에서 보내는 빛을 눈이 인식하기까지의 과정은 이미 과학적으로 다 밝혀진 상황인데 무슨 말인가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인식하는 밖의 대경은 얻을 수가 없다. 즉 얻을 수 없는 대경이기에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와서 그것을 인식한다고 말한다면 논리적인 오류에 빠지게 된다. 대경에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때 그 말이 가능하다. 얻을 수 없을 때는 그 말은 맞지가 않다. 왜? 대경을 얻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거기에서 무엇인가 즉 빛 등 보내는 힘이 있을 수가 있겠나? 대경의 자성을 얻을 수가 없기에 시간이 지나서 인식되기에 과거라는 등으로 말하지 마라.
그렇다면 내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그대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한 것뿐이지 내가 특별히 주장하는 것은 없다. 다만 대경이 이렇게 인식 된다고 말한다면 이런 논리적인 오류에 빠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에게는 시간 등이 없는가, 즉 소리 등이 시간이 지난 뒤에 인식이 되지 않고 그대는 바로 인식이 가능한가, 몇 광년이 지나 인식 되는 별빛이 그대는 몇 광년 전에 인식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잘못 말하고 있다.
나는 인식하는 대경과 인식이 그대가 말하는 그대로 하면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이지 내가 몇 광년 전에 빛을 인식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바깥 대경이 있고 이것들이 인식될 때 그러한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그러한 시간과 인식의 과정은 있다. 그렇지만 그대가 말하는 방식으로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대가 말하는 방식으로 있게 되면 緣起연기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왜? 요소가 있다면 연기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대가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말하는 것은 밖의 대경은 어떠한 요소(自性을 갖춘 法)도 얻을 수가 없다. 얻을 수가 없기에 연기가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인식 또한 밖의 대경이 유경에게 보내는 힘을 인식하는 것(대경에서 유경으로 향하는 일방적인)이 아니다. 밖의 대경은 찾아도 얻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다만 저쪽으로 假立가립된 것이고 가립된 것이기에 의존된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시간이 없는가? 나에게도 시간은 있다. 그렇기에 먼 곳에서 종을 치면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라는 자성 즉 요소가 없기에 시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지 시간은 얻을 수가 없다. 모든 밖의 대경은 이와 같고 안의 유경 또한 얻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대들이 돌, 물, 나무 등으로 인식 하지만 그대가 말하는 방식으로 인식 되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말하는 방식으로 인식한다면 오히려 인식을 할 수가 없다. 자성이 없기에 인식 할 수 있고, 이 인식 한다고 말하는 이것 또한 이름으로만 있고 다만 저쪽(對境)을 가립해서 있는 것이지 찾으면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밖의 대경 즉 색을 포착 할 수가 없는데 그것을 분석 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색은 처음부터 얻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얻을 수가 없기에 자성이 없는 것이다. 자성이 없기에 환과 같다. 그렇기에 색이 없는 것도, 시간이 없는 것도, 대경들이 없는 것도, 인식하는 유경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분명히 있지만 얻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말로만-名言명언-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대들이 말하는 인식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인식이 이루어진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혀서 소리가 날 때 나무가 없는 것도, 소리가 없는 것도, 소리가 이쪽까지 오기까지의 시간이 없는 것도, 이것을 인식 하는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분명히 존재 한다. 그렇지만 그대가 말하는 대경의 요소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인식 또한 인식 하는 식이 있다고 말을 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인식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자성이 있기에 연기하지 못하고 의존되지 않기에 완전한 空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완전한 공이 아니면 환과 같이 존재할 수가 없고 환과 같이 있지 않으면 연기가 성립이 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것들은 말로만 있는 것이지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경을 찾을 수가 없기에 마음으로 저쪽을 다만 가립 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는 것도 가립이고 가는 것도 가립이다. 시간도 가립이고 물질도 가립이다. 이런 것들이 작용하는 것도 가립이고 이뤄지는 것도 가립이다. 다만 이름으로 있는 것들 환과 같이 있다.
온다, 간다, 멈춘다, 시간, 빛, 종, 소리, 냄새, 맛, 물질, 눈, 귀, 코, 혀 등 육경 육식, 모두가 환과 같이 가립으로만 있다.
내가 有部유부에서 말하는 대경의 인식 방식을 부정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인식한다고 말한다면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그들을 부정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만약 바깥 대경에서 보내는 힘이 있다고 거듭 고집해서 말한다면, 봐라! 그렇게 되면 대경에서 오근까지의 공간과 시간이 설정이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공간과 시간을 대경에서 보내는 힘이 통과해야 한다. 그렇다고 말하게 된다면 결코 대경에서 보내는 빛 등은 오근에 도달할 수가 없다(이것이 유명한 제논Zenon의 역설이다). 왜냐? 시간과 공간을 통과해야하기에 그렇다. 이미 설정 되어 있는 시간과 공간은 통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계속해서 통과해야 하는 오류에 빠지기에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대경에서 요소를 얻을 수가 있다고 말하게 되면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것을 그 말이 다 막아버리기에 연기가 성립되지가 않는다. 그렇기에 그 말을 부정하는 것이지 단순히 그 말을 부정하기 위한 부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그대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말한다면 대경은 인식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렇게 말하지 마라!
첫댓글 아... 반복해서 읽어봐도 어렵습니다. 범일스님 책도 읽고 있는데 혼돈스럽네요.
가립이라는 것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 인식 과정을 제대로 설명해 주는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릴게요.
도과선원에 나오셔서 도향스님께 물어보세요. 알기 쉽게 알려고 하면 알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올린 이유는 궁금증을 유발시켜 알고자 하는 의욕이 불붙여서 구도심을 이끌어내기 위함입니다. 이 글만 읽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불법을 거저 먹으려는 것이죠.
서울 근처에 살고 있다보니 선원을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네요...
스님께서 범일스님 강의를 추천해주셔서 뭔가 믿으며 읽고 있었는데 범일스님의 오류를 지적하시니 발 딛고 있던 뭔가가 확 빠져나간 듯 혼돈스럽고 살짝 울컥하는 마음도 올라오고 그러더라고요. ^^;;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 했는데 아직은 이말저말에 흔들리고만 있네요. 쉽게 빨리 정리하려는 조급증도 알아지고요.
궁금증은 유발되었으니 계속 생각해보고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