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필사
봄에 취하다
2024. 4. 향기 영란
광도천에서 이순신 공원에서, 미륵산 띠밭등에서 동암 바닷가에서, 머언 산으로 학교 언덕 위로... 꽃을, 봄을 오래오래 넣어두었던 시간이었다. 저 봄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몰랐던 사람들이 ‘그 어찌할 바’를 뚝뚝 떨어뜨려 놓은 글들이 많았다. 저절로 떨어진 조그만 것을 들여다 보고, 갈고 닦은 후에야만 비로소 ‘그 어찌할 바’들은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출 수 있었을 것이었다.
큰아이는 편입을 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작은아이는 경기도 가평 해발 1400고지 군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단 둘 다 물리적 거리가 상당히 먼 곳에 있는데 거리와 반비례하여 마음의 온도는 더 애틋해졌다.
둘이 나간 후에는 삶이 많이 달라졌다. 밥상의 색깔과 내용이 대부분 초록색이 되었고, 빨래의 양은 급격히 줄었다. 빨라진 취침 시간과 이른 기상으로 아침 시간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가벼워진 생활의 기반에서 내 일에 대한 집중력이 매우 높아졌다. 수업 준비, 관련 연수 듣기, 관심 분야 책 읽기 등. 비로소 내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작년에도 아이들이 나가 있었건만 올해 이런 생각이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저 요란한 꽃들이 아닐까. 여리여리한 봉오리가 맺힌 시간에 봄비가 거세게 내렸다. 대체 이 예쁜 아기들에게 이 비가 웬 심술이냐고, 아이고 어짤거나 하고 조마조마했다. 여기도 저기도 하면서 온 천지에서 피어올랐을 때에는 무대의 주인공인 마냥 뺨은 홍조로 붉었다. 광도천에서 겨울 눈이 아닌, 떨어지는 벚꽃잎으로 쌓인 봄눈을 보았을 때도 그래 너 이제 가야할 시간이구나 하며 보낼 수 있었다. 그 시간, 내 곁을 지켜준 남편은 그 아름다움을 더욱더 빛나게 해 주었다는 닭살스러운 언급도 짧게 넣어본다.
지금도 꽃잎은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제 역할을 다하고 떨어지고 있는 꽃도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나무의 그 비율과 가지의 방향은 흉내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예술품이라 느낀다. 제 생을 다하고 가는 모습을 통해 저물어가는 우리의 인생 또한 아름다울 수 있음을 배운다.
벚꽃/용혜원
봄날
벚꽃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무엇이 그리도 좋아
자지러지게 웃는가
좀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깔깔대는 웃음으로
피어나고 있다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기쁜지
행복한 웃음이 피어난다
벚꽃이 필 때/용혜원
꽃봉오리가
봄 문을
살짝 열고
수줍은 모습을 보이더니
봄비에 젖고
따사로운 햇살을 견디다 못해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봄소식을 전하고자
향기를 내뿜더니
깔깔깔 웃어 제치는 소리가
온 하늘에 가득하다
나는 봄마다
사랑을
표현할 수 없거늘
너는 어찌
봄마다
더욱더 화려하게
사랑에 몸을 던져
빠져버릴 수가 있는가
신바람 나게 피어나는
벚꽃들 속에
스며 나오는 사랑의 고백
나도 사랑하면 안 될까
벚꽃 피는 날/용혜원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 날이면
그대와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 날이면
나도
그대가 보고 싶어
안달하기 때문입니다
벚꽃 활짝 피던 날/용혜원
그대처럼
어여쁘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누가 나를 반기겠습니까
어쩌자고
어떻게 하려고
나를 끌어당기는 것입니까
유혹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내 가슴을 왜 불타게만 합니까
그대를 바라봄이 행복합니다
그대의 향기에 온몸이 감싸입니다
그대로 인해 내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술렁대고 있습니다
그대는 마음을 다 드러내놓고
온몸으로 노래하는데
나는 무엇을 그대에게
노래해야 합니까
벚꽃 피던 날/용혜원
겨울 내내
드러내지 않던
은밀한 사랑
견디다 못해
어쩌지 못해
봄볕에 몸이
화끈하게 달더니
온 세상 천지에
소문내고 있구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구나
웃음꽃 활짝 피워
감동시키는구나
벚꽃 피는 날/용혜원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 날이면
그대와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 날이면
나도
그대가 보고 싶어
안달하기 때문입니다
벚꽃들의 행진/용혜원
나를 환영하는 걸까
모두들 길가에 나와
겨우내 참았던 웃음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며
손뼉치며 날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만 같다
봄날에 피어나는 꽃들 중에
가장 화려한 나들이에
가장 행복한 웃음을
웃는 꽃은 벚꽃이다
봄날에 벚꽃들의 행진이
시작되는 거리를 걸으면
왠지 사랑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