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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남(자유인)의 YESHUAH(예슈아)YESHUA님의 이름 증거찬양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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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성경을 찾아서 스크랩 성서 3
최윤남(자유인) 추천 0 조회 295 16.04.05 20:42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성서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같은 성서이면서도 유대교와 카톨릭과 개신교가 그들의 경전의 범위와 내용과 편집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성서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보려고 할 때에는, 유대교의 히브리어 성서, 카톨릭의 제1경전과 제2경전, 개신교의 성경전서로 나누어 정리해 볼 수 있다.
유대교인들은 그들의 경전을 『율법서(律法書)와 예언서(豫言書)와 성문서(聖文書)』라는 긴 이름으로 부른다. 히브리어로는 『 Torah Nebhim Ketubhim』이라고 한다. 율법서라고 하는 ‘토라’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라고 하는 다섯 책이 들어 있다. 그래서 ‘토라’는 일명 ‘오경(五經 Pentateuch)’이라고도 한다. 예언서인 ‘네비임’은 전기예언서(前期豫言書)와 후기예언서(後期豫言書)로 나뉘며, 전기예언서에는 ‘여호수아기’ ‘사사기(師士記)’ [또는 판관기(判官記)] ‘사무엘기’ ‘열왕기(列王記)’가 들어 있고, 후기예언서에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열두 책’이 들어 있다. ‘네비임’에는 이처럼 전.후기 예언서 각각 네 권씩 모두 여덟 책이 들어 있다. ‘열두 책’이라는 것은 달리 ‘소예언서’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댜서’ ‘요나서’ ‘미가서’ ‘나훔서’ ‘하박국서’ ‘스바냐서’ ‘학개서’ ‘스가랴서’ ‘말라기서’와 같은 열두 책이 들어 있다. 열두 책이긴 하지만 일찍부터 한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었으므로 한 권으로 여김을 받았다.
성문서인 ‘케투빔’에는 ‘시편’ ‘잠언’ ‘욥기’와 같은 시와 지혜,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기’라고 하는 다섯 두루마리(하메쉬 메길롯), 이 밖에 ‘다니엘서’ ‘에스라-느헤미야기’ ‘역대지’와 같은 책들이 들어 있다. 성문서에 들어있는 책의 수는 시와 지혜 3권, 다섯 두루마리 안에 들어 있는 5권, 나머지 3권, 모두 11권이다.

히브리어 경전에 들어 있는 낱권 책의 수는 ‘토라’에 5권, ‘네비임’에 8권, ‘케투빔’에 11권, 모두 합하면 24권이다. 유대교 안에서 히브리어 성서가 어떤 경로를 거쳐 경전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라고 하는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일찍부터 율법서가 경전이 되고, 그 다음에 예언서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문서에 속하는 책들이 경전이 된 것 같다. 개략적으로 말하면, 먼저 율법서가 기원전 5세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돌아 오던 때에 에스라의 주도 아래에서 경전이 된다. 예언서가 경전이 된 것은, 일반적으로는, 시몬(219-199 B.C.)이 대제사장직에 있을 때라고 본다. 성문서에 속하는 책들이 마지막으로 경전이 되기는 하지만 ‘시편’과 같은 책은 일찍부터 예언서와 함께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결국 기원후 90년 얌니아(Jamnia) 회의에서 히브리어 성서의 범위가 확정되기에 이른다. 그 동안 경전성 논란을 불러 일으킨 에스겔서, 잠언, 아가, 전도서, 에스더기 등이 이 때에 함께 경전이 된다.
그리스시대 초기 유대 땅 예루살렘이 팔레스틴 유대교의 중심지였을 때, 옛 북왕국 이스라엘의 중심지 사마리아에 살던 야웨 숭배자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사회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들이 곧 사마리아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겜 근처의 그리심 산을 그들의 제사의 중심지로 정하였다. 그들은 경전으로서는 오경만을 받아들이고, 외경으로는 “세페르 하야밈”(Seper Hayyamim: “역사서”)과 “메마르 마르카”(Memar Marqa: “마르카의 교훈 속에 담긴 모세의 이야기”)가 있다. 이 책들이 그 권위에 있어서는 오경과 같지는 않으나 오경 버금가는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페르 하야밈”은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성서 시대 해당 부분에는 여호수아기를 위시한 역사서에서 상당한 양의 자료를 발췌하여 그들의 신학적 입장에서 그것을 고쳐 인용한 예가 많이 발견된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들 사이에서 기원전 3세기경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그리스어 구약이 그들의 경전이 된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 역시 사두개파나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오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여 번역하였다. 나머지 책들도 그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아 번역되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한 다른 책들(외경)을 성서에 포함시키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의 경전은 어디까지나 오경만이었다.

그들의 경전이 히브리어 원본에서 번역된 것이지만, 지금의 히브리어 마소라본문 성서와는 분량이나 책 편집이 다르다. 히브리어 경전은 구약을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라고 하여 셋으로 나누지만, 알렉산드리아 경전은 구약을 오경, 역사서, 문학서, 예언서로 나눈다. 오경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들어가고, 역사서에는 ‘여호수아기’ ‘사사기(또는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상’ ‘사무엘기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지상’ ‘역대지하’ ‘에스라기 1(외경)’ ‘에스라기 2(에스라기와 느헤미야기)’ ‘에스더기’ ‘유딧기’ ‘토비트기’ ‘마카베오기 1’ ‘마카베오기 2’ ‘마카베오기 3’ ‘마카베오기 4’를 편집하였고, 문학서에는 ‘시편’ ‘송시’ ‘잠언’ ‘전도서’ ‘아가’ ‘욥기’ ‘지혜서’ ‘집회서’ ‘솔로몬의 시’를 편집해 넣었으며, 예언서에는 ‘호세아서’ ‘아모스서’ ‘요엘서’ ‘오바댜서’ ‘요나서’ ‘나훔서’ ‘하박국서’ ‘스바냐서’ ‘말라기서’ ‘이사야서’ ‘예레미아서’ ‘바룩서’ ‘애가’ ‘예레미아의 편지’ ‘에스겔서’ ‘수산나’ ‘다니엘서’ ‘벨과 뱀’ 등을 편집해 넣었다. 위에서 보듯이 배열과 분책(分冊)방법이 히브리어 경전과 다르다.
1940년대에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에서 구약성서 사해사본이 발견되면서 쿰란종파의 경전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경전 전체의 윤곽을 파악할 길이 없다. ‘에스더기’를 제외한 히브리어 구약이 모두 발견되었다. 이것은 쿰란 종파의 경전이나 유대교의 경전이 거의 같았음을 암시한다. 다만 ‘에스더기’의 경우는, 그들의 경전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은 것인지, 그들의 경전에 들어 있기는 했지만, 우연히 발견되지 않은 것일 뿐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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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와서는 경전이 확대되고 재편집된다. 확대되었다는 말은 히브리어 경전에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 과 함께 구약과 신약 중간기에 형성된 제2경전이 첨가된 것을 일컫는 것이었고, 재편집되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첨가 외에, 히브리어 경전 24권을 70인역을 따라서 39권으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경전의 ‘사무엘기’ ‘열왕기’ ‘역대지’를 ‘사무엘기상’ ‘사무엘기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지상(歷代誌上)’ ‘역대지하(歷代誌下)’로 나누고, ‘에스라-느헤미야기’를 ‘에스라기’와 ‘느헤미야기’로 나누고, 소예언서 ‘열두 책’을 열둘로 나누어서 구약을 모두 39권으로 재편집하였다.

구약성서는 일찍부터 두 언어로 전승되어 왔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전 3세기부터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그리스어역 구약, 일명 칠십인역(LXX)이다. 초기 기독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보다는 그리스어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였는데, 거기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에는 없는 소위 외경(外經)이라고 하는 책들이 더 편집되어 있어서 가톨릭의 성서가 된다. 개신교에서 외경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제2경전(第二經典,deuterocanonical)’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히브리어 구약성서와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합친 성경을, 가톨릭에서는 ‘제1경전’ 혹은 ‘원경전(原經典,protocanonical)’이라고 한다.

제2경전에 들어가는 책은 역사적으로 변천되어 왔다. 또 편집 형태에 따라,책의 권 수도 일정하지 않다. 1977년에 나온 우리나라의 신.구교가 번역한 '공동번역성서'(1977)에 보면, ‘토비트’ ‘유딧’ ‘에스델(제1경전 에스더기의 추가부분)’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다니엘서(제1경전 다니엘의 추가부분)’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이상 9권이다. ‘바룩서’ 안에는 ‘예레미야의 편지’가 마지막장으로 편집되어 있고, ‘다니엘서의 추가 부분’에는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이 들어 있다. 영어개역표준성서(Revised Standard Version) (1957)에 실린 제2경전에는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가 더 들어 있다.

제2경전에 속하는 이러한 책들은 본래 유대교가 번역한 그리스어역 구약인 ‘칠십인역’에 들어 있던 것들을 초기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그것이 그대로 가톨릭의 경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2경전에 속한 책들이 제1경전과 합본된 것은 기독교의 작업이 아니라 유대교의 경전사와 관련된 것이다.

에 익숙하지 않던 초기 기독교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구약을 읽게 되면서 거기에 들어 있는 제2경전에 속한 책들까지 함께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고대 라틴어역 성서(Old Latin Version)는 바로 ‘칠십인역’에서 번역된 것이다. 교부들 사이에서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에는 없고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에만 나오는 책들에 대한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문제삼기는 하였으나,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는 그리스어 외경을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39권 책과 동일하게 영감 받은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하게 된다. 히브리어 구약에 들어 있는 39권의 책은 이미 경전으로 전해져온 것이므로 이것을 ‘제1경전’이라고 하였고, 그리스어 구약에 들어 있는 나머지 책들은 늦게 경전이 되었다고 하여 ‘제2경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논의의 편의상 여기에서 ‘제1경전’ ‘제2경전’이란 말을 쓰지만, 이런 용어는 16세기 트렌트회의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므낫세의 기도’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는 불가타역 성서에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으로 인정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불가타역은 이 세 책을 부록으로 취급하여 별도로 편집하였고, 나머지 책들은 구약의 여러 곳에 적절히 재배치하였다. ‘토빗트’와 ‘유딧’은 ‘느헤미야기’ 다음에, ‘에스더기 추가 부분’은 ‘에스더기’ 안에, ‘마카베오상’과 ‘마카베오하’는 ‘에스더기’ 다음에, ‘지혜서’와 ‘집회서’는 ‘아가’ 다음에, ‘바룩서’는 ‘애가’ 다음에, ‘다니엘서 추가 부분’은 ‘다니엘서’ 다음에 각각 편집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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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39권의 낱권으로 형성된 구약과 27권의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신교의 성서가 유대교의 경전과 다른 것은 구약외에 신약을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구약의 경우도 내용은 같지만 책의 분책과 배열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서는 '사무엘 상' 과 '사무엘 하'로 나누지만 유대교 경전에서는 '사무엘, 한 권으로 구성하고 있다.
책의 배열에 있어서도 개신교는 욥기, 시편, 잠언등으로 되어있는데 유대교 경전에서는 시편, 욥기, 잠언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창세기(창)

레위기(레)

신명기(신)

사사기(삿)

사무엘기상(삼상)

열왕기상(왕상)

역대기상(대상)

에스라기(라)

에스더기(더)

시편(시)

전도서(전)

이사야서(사)

예레미야애가(애)

다니엘서(단)

요엘서(욜)

오바댜서(옵)

미가서(미)

하바국서(합)

학개서(학)

말라기서(말)

출애굽기(출)

민수기(민)

여호수아(수)

룻기(룻)

사무엘기하(삼하)

열왕기하(왕하)

역대기하(대하)

느헤미야기(느)

욥기(욥)

잠언(잠)

아가(아)

예레미야서(렘)

에스겔서(겔)

호세아서(호)

아모스서(암)

요나서(욘)

나훔서(나)

스바냐서(습)

스가랴서(슥)

마태복음서(마)

누가복음서(눅)

사도행전(행)

고린도전서(고전)

갈라디아서(갈)

빌립보서(빌)

데살로니가전서(살전)

디모데전서(딤전)

디도서(딛)

히브리서(히)

베드로전서(벧전)

요한1서(요일)

요한3서(요삼)

요한계시록(계)

마가복음서(막)

요한복음서(요)

로마서(롬)

고린도후서(고후)

에베소서(엡)

골로새서(골)

데살로니가후서(살후)

디모데후서(딤후)

빌레몬서(몬)

야고보서(약)

베드로후서(벧후)

요한2서(요이)

유다서(유)

가톨릭과 다른 것은 가톨릭이 제2경전이라고 부르는 외경(外經)을 경건문학으로는 받아들여도 경전으로는 고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톨릭에서는, 외경의 경전성 문제가 논의되어 오다가 ‘제2경전’으로 정착되었지만, 개신교쪽에서는 종교개혁 당시부터 외경의 경전성 문제가 논의되다가 끝내 경전 안에는 들어 올 수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개신교 목사들이 편집한 츄리히 성서(Zurich Bibel or Swiss-German Bible)(1527-1530)는 외경을 신약 다음에 부록으로 편집해 넣었다. 1534년에 끝난 루터의 독일어역은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엮어 넣고, 그 서문에 “외경은 경전과는 동등하지 않지만 읽어서 유익한 책”이라고 언급하였다.
1535년에 프랑스 개신교가 처음으로 번역하여 발간한 성서도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넣고, 머리말에서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구약에는 없지만 불가타역본에 들어있는 외경”이라고 언급하였다.
1535년에 카버데일(Miles Coverdale)이 번역한 영어성서도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편집하였다. 즉 구약의 일부로 다루지 않고, 별도로 묶어 경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책임을 밝혔다.
1560년에 나온 제네바성서는 본문을 절로 나누어 출판한 최초의 성서일뿐만 아니라, 외경에 대해서도, 그 서문에서 개신교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서문에서, 외경을 두고서, 이 책들이 교회가 공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공인된 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경전이 확증하는 것과 같은 내용에 동의하는 한에서만 도움이 되는 책임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므낫세의 기도’만은 역대지하 끝에 편집해 넣은 예외를 보인다.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 역본(King James Version)도 외경을 경전과 구 별하는 점에서는 개신교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지만 신약성서 관주(전후참조)에서 외경과의 관련구절을 여러번 언급하여 외경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가톨릭교회가 외경을 ‘제2경전’으로 결정하면서부터 개신교쪽에서도 외경에 대한 태도를 좀 더 분명하게 하기에 이른다.
1562년에 영국교회가 발표한 39개조 종교조항 제6조는 “(외경은) 교회가 신도에게 생활의 모범이나 교훈을 가르치려고 할 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외경을 근거로 하여 교리를 제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1647년 웨스터민스터 신학자 총회에서 결정한 신앙고백 제1장 3절은 “외경은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므로 경전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외경은 성경과는 달리, 교회 안에서 어떠한 권위도 가지지 못하고, 인정되거나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개신교 가운데서는 어느 한 교회도 외경을 경전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없다.
개신교 가운데서도 성공회는 외경을 가장 존중하는 교회다. 그들의 기도서에 붙어 있는 성구절에는 언제나 외경이 인용된다. 최근에 영국 성공회에서 개정한 성구집에 보면 외경에서 인용한 일과가 44개나 되고, 미국성공회가 사용하는 최신 개정판 성구집에는 무려 110곳의 외경 인용이 있다. 일반적으로 개신교는, 종교개혁자들이 외경을 중요하게 권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경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슷하게 발음이 되는 낱말을 잘못 들어서 생기는 오기이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 “부정사(lo')”와 인칭대명사 여격 “그에게(lo)”의 혼용, 후음 “헷(het)”과 마찰음 “카프(kaf)”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아크(ah:형제)”와 “아크(akh:반드시)”의 혼용 등이 여기에 속한다.
“베트(beth:속에)”와 “카프(kaf:처럼)”사이의 혼용이 사해 두루마리 이사야와 마소라 본문 이사야서에서 많이 발견된다. 자음 글자의 자리가 뒤바뀌는 자순도치(字順倒置)의 오기도 있다. “키르밤(qirbam: 그들의 속 생각)”이 “(qibram:그들의 무덤)”으로 바뀐 예도 시편에서 발견된다. 자음 글자나 낱말이 중복되는 중복오사(重複誤寫 Dittography) 현상도 사해 두루마리 이사야서와 마소라본문 에스겔서 등에서 확인된다. 겹쳐 나오는 자음 글자나 낱말이 우연히 탈락되는 중자탈오(重字脫誤: Haplography) 현상도 사해 두루마리 이사야서에서 발견된다. 유사한 어두나 어미를 가진 두 개의 구나 절이 서로 몇 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을 때, 사본을 베끼는 사람의 눈이 그 몇 줄을 뛰어 넘기때문에 생기는 탈락이 있다. 사본에서는 이러한 유사문미(類似文尾:Homoioteleuton)나 유사문두(類似文頭:Homoioarchton)로 인한 본문 탈락현상도 발생한다. 사무엘기상 14장 41절의 마소라 본문을 칠십인역이나 불가타역과 대조해 볼 때에, 마소라 본문에서 이런 유형의 탈락이 많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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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같은 자음 본문을 어떻게 발음하여 읽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본래 히브리어 분문 성서에는 모음이 없었으므로 DBR 같은 글자를 마소라 본문 호세아에서 보듯이 “딥베르(DiBeR)”로 읽으면 “그가 말하였다”가 되고, 칠십인역 호세아서에서 보듯이 “데바르(DeBaR)”로 읽으면 명사 “(누구)의 말”이 된다. 히브리어 본문 성서에는 본래 낱말과 낱말 사이에 구분이 없었으므로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다른 뜻을 읽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모스서 6장 12절에 나오는 BBQRYM은 마소라 본문이 읽듯이 “바베카림(BaBeQaRYM)”으로 읽으면 “황소를 부려서”라는 뜻이 되고, 달리, “바바카르 얌(BaBaQaR YaM)”이라고 읽으면 “황소로 바다를”이라는 뜻이 된다.
히브리어 자음 본문 성서에는 가끔 약자가 나오는데 그 약자를 잘못 해독한 경우도 있다. 마소라 본문 사무엘기하 1장 12절, 에스겔서 12장 23절, 아모스서 3장 9절 등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마소라 본문과 칠십인역의 비교에서 확인된다.
사본을 복사하던 서기관들이 난해한 낱말을 설명하기 위하여 쉬운 말로 난외에 주석을 단 것이 본문 안으로 들어간 경우가 있다. 때로는 사본을 복사하는 서기관이 두 사본을 앞에 놓고 비교해 가면서 복사하다가 서로 다른 낱말이나 구가 있을 때 그 이문을 융합시키는 이문융합(異文融合:conflation) 현상도 있다. 창세기 18장 22절.
히브리어 성서 본문의 역사를 보면 본문을 정확하게 베끼고 전달하기 위한 장치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중엽에 나온 “아리스테아스의 편지(Letter of Aristeas)”에 보면, 그리스어 칠십인역의 원본 문제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당시, 오기가 많은 열등한 오경 사본들이 유포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이 보관하고 있던 “성전 두루마리”는 권위 있는 사본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랍비 전통에서도 제2성전 시대에 히브리어 성서 본문의 최종 정착을 위한 본문비평이 성전 두루마리를 근거로 실시된 경우를 말하고 있다.
칠십인역이란 히브리어 구약의 그리스어역이다. 전설적으로는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나온 70 또는 72명의 번역자가 번역하였다고 해서 “70인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번역자들이 100년 이상 걸려서 번역한 것이다. 칠십인역이 사용한 히브리어 원본은 지금 전해지고 있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는 다르다. 칠십인역의 히브리어 원본은 지금 남아 있지 아니하다.
사마리아 오경은 히브리어 본문의 교정판이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글씨체는 마소라 본문에 사용된 네모꼴 히브리어 글씨(square script), 일명 아시리아 글씨(the Assyrian script)가 아니라, 페니키아 고대 히브리어 문자(the Phoenician - Old Hebrew script), 일명 팔레오 히브리어 글자(paleo-Hebrew script)로 쓰여져 있다. 마소라 본문 오경과 비교해 볼 때 약 6,000여 곳의 차이가 있으나 철자상의 차이가 그 주종을 이루고, 다르다고 하여도 본문의 의미를 다르게 할만큼 다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마소라 본문과 다른 6,000여 곳 중에서 약 1,900여 곳은 칠십인역과 일치한다. 마소라 본문과의 차이 중에서 극히 일부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신학을 반영하는 고의적 변경도 있다(출애굽기 20장 17절 끝에 그리심 산에 성소를 지으라는 말이 첨가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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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광야 두루마리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기원 전 150년경의, 십계명과 신명기가 기록된 ‘나쉬 파피루스’가 가장 오래 된 사본이었다. 그러나 유대광야의 여러 동굴에서 두루마리가 발견되면서부터는 기원 전 3세기나 2세기 사이의 것으로 추산되는 180여 종의 서로 다른 구약성서 사본들이 공개되었다. 이 사본들은 가죽과 파피루스 위에 쓰여진 것들이다. 쿰란의 제1동굴에서는 두 개의 이사야 사본이 발견되었다. 하나는 기원 전 100-75년 경의 것으로 추산되는 이사야서 전체가 기록된 1QIsaa이고, 다른 하나는 이사야서의 일부만이 기록된 1QIsab이다. 전자는 마소라 본문 이사야와의 차이를 많이 보이고 있고, 후자는 몇개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마소라 본문과 매우 가까운 본문임을 나타내고 있다.
쿰란 제4동굴에서는 창세기 단편 다섯, 출애굽기 단편 여덟, 레위기 단편 하나, 신명기 단편 열넷, 여호수아기 단편 둘, 사무엘기 단편 셋, 이사야서 단편 열둘, 예레미야 단편 넷, 소예언서 단편 여덟, 잠언 단편 하나, 다니엘서 단편 셋 등이 발견되었다. 쿰란 제11동굴에서는 레위기 단편을 포함하여 마소라 본문과는 다른 본문 형태를 지닌 시편의 마지막 1/3이 발견되었다. 이들 사본들은 그 연대가 기원 전 250-200년까지 이른다. 이들 중 더러는 칠십인역에 반영된 히브리어 본문과 그 형태가 유사하고, 더러는 사마리아 오경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대다수는 전(前)마소라 본문 형태와 유사하다. 이것은 마소라 본문이 기원 후 7세기 경에 확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마소라 본문이 이미 기원 전부터 현재의 본문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그것이 조금씩 개정되어 왔었을 가능성을 반영한다. 유대광야에서는 쿰란 이외에도 마사다(기원 후 73년에 붕괴된 유대인의 요새)에서 레위기, 신명기, 에스겔서, 시편 등의 단편이 발견되었고, 안무라바아트에서는 출애굽기, 레위기, 이사야서, 소예언서 등의 단편이 발견되었다. 나할 레베르에서도 약간의 단편들이 발견되었다. 이들 사본의 본문 형태는 마소라 본문형태와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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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아 있는 히브리어 성서 코덱스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된 것은 “카이로 예언서”이다. 이것은 895년에 팔레스틴의 티베리아에서 모세 벤 아셰르(Moses ben Asher)가 쓰고 모음기호를 붙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 오래 된 것은 레닌그라드 코덱스인 “후기 예언서”이다. 916년 경에 나온 것으로서 벤 아셰르가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모음기호가 티베리아 마소라 체제를 따른 것이다. 그 다음으로 오래 된 것은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소위 “알렙포 코덱스”라고 하는 것이다. 솔로몬 벤 버야(Solomon ben Buya'a)가 썼고, 아론 벤 모세 벤 아셰르(Aaron ben Moses ben Asher)가 교정하고 구두점을 찍고 마소라 주기를 붙인 것으로서, 930년 경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본래 이 사본은 구약성서 전체를 포함한 것이었으나 오경과 성문서 부분이 거의 소실되고 “예언서” 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아론 벤 모세 벤 아셀의 체제를 따르는 또 다른 두 사본이 있다. 하나는 BMor 4445 사본으로서 오경 전체를 포함하고 있으며 950년 경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또 다른 하나는 레닌그라드 사본으로서 구약성서 전체를 다 포함하고 있는 MS B19a 사본인데, 이것이 완성된 것은 1008년이다. 이밖에도 1105년에 쓰여진 예언서로 “로이클린 코덱스(Codex Reuchliana of the Prophet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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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1050년 이전) 미샤엘 벤 우지엘(Mishael ben Uzziel)이 그의 책키타브 알 훌라프(Kitab al-Hulaf)에서 벤 아셰르의 마소라 본문과 벤 납달리의 마소라 본문 사이의 차이의 비교를 시도한 바가 있다. 솔로몬 예디다 노르지(Solomon Yedidah Norzi)는 민핫 샤이(Minhath Shai)로 알려진 본문비평 주석에서 방대한 양의 마소라 본문 자료들을 비교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1626년에 완성하여 1742년에 나온 만투아 성서(Mantua Bible)에 함께 인쇄되어 나왔다. 벤자민 케니콧(Benjamin Kennicott)은 615 개의 상이한 사본들과 52개의 인쇄본을 수집하여 2권으로 편집하였다(1776-80, Oxford). 죠반니 베르나도 데 로씨(Giovanni Bernado De Rorsi)는 731개의 상이한 사본들과 300개의 인쇄본들을 수집하여 4권으로 펴냈고(1784-88, Parma), 긴스벅(C. O. Ginsburg)은 70개의 상이한 사본들과 17개의 초기 인쇄본들을 수집하여 4권으로 펴냈다(1908-26,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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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이후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의 구약 본문 단편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십계명이 기록된 기원전 2∼1세기의 01.aspx#b01" target=_blank>나쉬 파피루스(Nash Papyrus)였다. 이것은 1902년에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그리고 신명기 6장의 '셰마'(6:4-5) 등이 섞인 본문이다. 이 본문은 성서 사본이 아니라 예배서에 인용된 본문이므로, 본문 비평을 위한 자료로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근에 이것보다 더 오래된 자료가 발견되었다. 1979년에 예루살렘의 케텝 힌놈(Ketef Hinnom)에서 아주 작은 은(銀) 01.aspx#b01" target=_blank>두루마리(minute silver roll) 조각 두 개가 발굴되었는데, 여기에는 민수기 6장 24-26절이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 있었다. 이것은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7∼6세기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 역시 성서 사본이 아니고 성서 구절을 인용한 단편이므로 본문 비평을 위한 자료로서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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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성서의 경우
마소라 본문 사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후 895년에 모세 벤 아셰르(Moses ben Asher)가 팔레스타인의 티베리아에서 만든 01_02.aspx#b1_11" target=_blank>카이로 예언서(Codex Cairensis)이다.
그 다음은 916년에 나온 페테르스부르크 후기 예언서 코덱스 (Petersburg Codex of the Prophets)이다. 이것은 벤 아셰르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티베리아 마소라 체계에 바빌로니아에서 발달된 모음 기호를 삽입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특기할 만한 마소라 사본은 소위 01_02.aspx#b1_12" target=_blank>알렙포 코덱스(Aleppo Codex)이다. 이것은 기원후 930년경에 솔로몬 벤 버야아(Solomon Ben Buya'a)가 필사한 것으로서 아론 벤 모세 벤 아셰르(Aron Ben Moses Ben Asher)가 수정을 가하고 모음 기호를 조정하고 마소라 주기 등을 고쳐서 만든 것이다. 본래는 구약 전체를 다 포함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예언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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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영국박물관 코덱스(British Museum Codex) BM Or 4445번으로 표시되는 950년경의 오경 사본과

1008년의 것인 01_02.aspx#b1_13" target=_blank>레닌그라드 구약 사본(Codex Leningradensis)이 중요한 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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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예언서 사본인 1105년의 01_02.aspx#b1_15" target=_blank>코덱스로이클리아나(Codex Reuchliana)가 있는데 이것은 모세 벤 아셰르 사본보다 더 정확하다고 하는 모세 벤 다윗 벤 납달리(Moses ben David ben Naphtali) 사본 체계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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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중엽으로 들어서면서부터 화려한 꽃무늬 장식을 한 필사본 사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러한 필사본은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에도 당분간 더 지속된다. 일찍이 이베리아 반도의 톨레도에서 1482년에 나온 01_02.aspx#b1_16" target=_blank>리스본 사본이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은 사무엘(Samuel Ibn Musa)이 만든 것으로서 모두 세 권으로 되어 있는데 구약이 다 들어 있다.
쇄술이 발달하면서, 히브리어 구약 본문은 일찍이 15세기 말 16세기 초 사이에 인쇄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인쇄본 구약은 1488년에 이탈리아의 손시노(Soncino)에서 나온 히브리어 성서이다. 두번째로 나온 것은 1491/93년에 네플(Naple)에서 인쇄된 히브리어 성서이고, 세번째 것은 1494년 브레스키아(Brescia)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 세 히브리어 성서는 모두 유대인들이 인쇄한 것이다. 1514/17년에 알칼라(Acala)에서 인쇄되고 1522년경부터 유포되기 시작한 01_03.aspx#b1_17" target=_blank>「콤플루텐시안 폴리글롯」(Compluten
sian Polyglot)
은 기독교 쪽에서 인쇄한 것이다. '콤플루텐시안'이라는 말은 '콤플루툼(Complutum, 곧 Alcala de Henar-es)'에서 인쇄된 것이기 때문에 그 곳 이름을 붙인 것이고, 여러 언어를 대조한 것이기 때문에 「폴리글롯」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스페 인의 추기경 프란시스코 지메네스(Cardinal Francisco Jimenes)의 감독 아래, 6권으로 편집되었다. 창세기를 보면, 보들리언도서관의 사본은 오른쪽에서부터 첫째 난에 히브리어 본문, 그 왼쪽 둘째 난에 라틴어역 불가타, 그 왼쪽 셋째 난에 그리스어 칠십인역, 칠십인역 각 행 위에 라틴어 번역(행간 성서처럼), 그 밑으로 넷째 난에 아람어역 타르굼, 그 오른쪽 다섯째 난에 타르굼의 라틴어역이 나온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 그리고 세 라틴어역 모두 여섯 개의 번역이 실린 셈이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왈톤이 편집한 것을 보면, 제일 왼쪽 난에 히브리어 본문이 있고, 그 행간(行間)에 라틴어 번역, 둘째 난에는 라틴어역 불가타, 셋째 난에는 그리스어 칠십인역, 넷째 난에는 칠십인역의 라틴어역, 다섯째 난에는 아람어역(온켈로스의 타르굼), 여섯째 난에는 타르굼의 라틴어역, 일곱째 난에는 사마리아 오경의 본문, 여덟째 난에는
사마리아오경 본문의 라틴어 역, 아홉째 난에는 시리아어역, 열째 난에는 시리아어역의 라틴어역, 열한째 난에는 아랍어역, 열두째 난에는 아랍어역의 라틴어역이 나온다.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아람어, 사마리아어, 시리아어, 아랍어, 이상 일곱 개 언어로 번역된 본문을 대조시키고 라틴어 불가타를 제외한 여섯 언어의 번역마다 라틴어 번역을 병기해 준 것이다.
이것에 이어 「랍비 성서」(Biblia Rabbinica)가 인쇄되어 나왔다. 펠릭스 프라텐시스(Felix Pratensis)가 편집하고, 베니스(Venice)에서 1516년에 다니엘 봄베르크(Daniel Bomberg)가 출판한 것이다.
1 1524/25년에 베니스에서 01_03.aspx#b1_18" target=_blank>「제2랍비 성서」가 나온다. 이것은 야곱 벤 하임 이븐 아도니아(Jacob Ben Hayyim Ibn Adoniah)가 편집한 것인데, 20세기 초까지 대표적인 히브리어 구약 성서 구실을 하였다. 「제2랍비 성서」가 마소라 주기와 본문 비평 장치 등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하게도 후기의 사본들을 많이 사용하였으므로 원본과는 거리가 먼 절충 본문(an eclectic text)을 편집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매 페이지 가운데에 히브리어 본문과 아람어 타르굼이 대조되어 있고, 좌우 여백에 라쉬와 이븐 에즈라의 주석이 들어 있는 주석 성서이다. 1866년에 영국성서공회가 발행한 「레테리스 히브리어 구약」이 있다. 이것은 메이르 할레비 레테리스(Meir Halevi Letteris: 1800∼1871)가 편집한 것이다. 레테리스 성서는 기본적으로 야곱 벤 하임 이븐 아도니아의 「제2랍비 성서」 본문을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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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나온 것이 영국성서공회에서 발행한 크리스천 다윗 긴즈버그 (Christian David Ginsburg) 편집의 히브리어 구약이다. 「긴즈버그 구약」은 1894년에 출판되어 1908년과 1926년에 부분적으로 교정된다. 이것이 우리말 「구역」과 「개역」 구약의 히브리어 대본이다. 다윗 긴즈버그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다. 「긴즈버그 구약」의 본문은 기본적으로 「제2랍비 성서」의 히브리어 본문을 따르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이 편집한 「히브리어 성서(Biblia Hebraica)」(1909)를 들 수 있다. 키텔의 「히브리어 성서」는 처음 두 판에서 「제2랍비 성서」를 본문으로 사용하였으나, 알브레흐트 알트(Albrecht Alt)와 오토 아이스펠트(Otto Eissfeldt)가 완성한 01_03.aspx#b1_19" target=_blank>「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제3판(1937)부터는 「레닌그라드 코덱스」 (MS B19a)를 본문으로 사용하였다. 영국성서공회가 「레테리스 구약」(1886), 「긴즈버그 구약」(1894, 1908, 1926)에 이어, 1958년에 내놓은 것이 노만 헨리 스네이드(Norman Henry Snaith)의 「히브리어 구약」이다. 이것은 위 두 히브리어 성서의 수정이나 보완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편집이다. 이것은 1482년에 리스본(Lisbon)에서 쓰여진 성서 사본 MS Or 1482인 히브리어 구약 사본(현재 영국박물관 소장), 1460년에 쓰여진 성서 사본 MS Or 2375인 「예멘 성서」, 1312년경에 쓰여진 「 토브 성서」(Shem Tob Bible)에 근거하여 편집한 것이다. 키텔의 「비블리 헤브라이카」를 40년 만에 수정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내놓은 것이 01_03.aspx#b1_19_1" target=_blank>「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 (1967/77)」이다. 본문으로서는 레닌그라드 코덱스의 마소라 본문(1008년의 MS B19a)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BHK의 오기를 많이 수정해 주었고, 마소라 주기 표기에 있어서도 BHK보다 더 상세하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서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1965년 이후부터 출판해 내고 있는 01_03.aspx#b_1_22" target=_blank>「히브리대학교 성서」 (Hebrew University Bible)이다. 위에서 말한 알렙포 코덱스에 반영된 마소라 본문을 예언서에 반영하고 있다.
원전 5,6세기 경부터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아람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었고, 팔레스틴 유대사회와 디아스포라(여러 나라로 흩어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아람어를 쓰게 되자, 유대인 회당에서는 예배 때에 "통역자(메투르게만 meturgeman)"가 등장하여 예배 때 낭독되는 율법서와 예언서 관련 본문 등을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통역하였다. 처음에는 구두로 통역되고 전승되던 것이 후대에 이르러 통역 내용이 일정한 형식으로 굳어졌고 드디어 기록으로 정착되었다.
율법서, 타르굼(오경 번역)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온켈로스(Onkelos)'의 타르굼으로 알려진 『바빌로니아 타르굼(Babylonian Targum)』이다. 이것은 본래 팔레스틴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바빌론으로 건너가서 거기에서 개정되고 큰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기원후 9세기 직후에 이것이 다시 팔레스틴으로 들어와 거기에 있던 다른 여러 종류의 타르굼들을 제치고 독립적 위치를 차지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 온켈로스의 타르굼은 문자적인 번역이면서도 랍비들의 주석을 번역에 반영시키고 있다.
팔레스틴 타르굼들 가운데서 제일 유명한 것은 소위 '요나단(Jonathan)의 타르굼'이다. 여기 '요나단'은 14세기 경부터 생긴 이름으로서 예루살렘 타르굼(Targum Jerusalem)을 뜻하는 히브리어 약자 'TJ'를 요나단의 타르굼(Targum Jonathan)으로 잘못 읽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옛 팔레스틴 타르굼(the Old Palestinian Targum)과 온켈로스의 초기번역을 뒤섞은 것이다. 랍비들의 주석, 설교, 교훈등이 번역에 많이 첨가되어 있다. 사마리아 오경을 번역한 타르굼도 있다. 유대인의 타르굼이 문자적인 번역인데 비해 이것은 좀 자유스러운 번역이다. 그것의 본문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적은없다.
예언서 타르굼도 본래는 팔레스틴에서 나왔으나 바빌로니아로 건너가서 최종적으로 개정되었다. 이것 역시 여러 세기에 걸쳐서 완성된 것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1세기 말에서부터 기원후 1세기 초까지 활동한 유명한 랍비였던 힐렐의 제자 요나단 벤 우지엘(Jonathan Ben Uzziel)의 번역으로 본다.
이것이 엄격한 문자적 번역은 아니지만 온켈로스에 의존한 증거가 많이 나타난다. 성문서의 아람어역은 모두가 기원후 5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이다.
브리어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배경에 관해서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지(the Letter of Aristeas)"에 언급되어 있다. 이 편지는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기원전 285-246년)가 이집트를 다스릴 때 기록된 그 당시의 편지임을 드러내려고 당시 관리로 있던 아리스테아스라고 하는 그리스 사람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편지는, 프톨레미 2세의 요청으로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학자들이 와서, 히브리어 율법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게 된 사정을 언급한다.
같은 이야기가,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여, 필로와 요세푸스와 탈무드와 교부들의 글에도 나타나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 편지의 저자가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으로서 율법서 번역이 끝난 다음에 이와 같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를 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칠십인역이란 기원전 3세기 중엽에 번역된 구약의 오경 곧 율법서 부분을 일컫는다.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모두 그리스어로 번역되기까지는 그 후 한 세기 이상이 걸렸다고 본다. 기원전 1세기까지는 번역이 완료되었었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하여, 칠십인역 성서는, 한편으로는 유대교를 이방 세계에 알리는 통로가 되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기독교의 전파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기독교가 칠십인역을 자기들의 성경으로 받아들이면서부터 유대교에서는 칠십인역을 버리고 자기들의 히브리어 본문 성서를 다듬는 일에 더 열성을 보였다. 제 2 성전 파괴 이후, 새로운 히브리어 본문이 편집되면서, 히브리어 본문과 칠십인역 사이의 차이점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게 되자, 그리스어로 구약을 읽던 이들 쪽에서는 최신 히브리어 본문을 대본으로 하는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퀼라는 소아시아의 폰투스 사람으로서 유대교인이 된 사람으로서, 랍비 아키바의 지도를 받으면서 기원후 130년 경에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
극도로 문자적인 직역을 하였다. 전체 역본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인용된 부분들과, 오리겐의 헥사플라(Origen's Hexapla: 여섯 언어 대조)에 그 단편이 남아 있고, 카이로의 고본 서고(Cairo Geniza)에서 나온 재활용 양피지(palimpsests: 한 번 쓴 양피지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에 단편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리스어 번역본의 2차 교정은, 칠십인역을 개정한 것인지, 아니면 칠십인역 외에 다른 그리스어역을 개정한 것인지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기원후 2세기 후반에 테오도션이라는 사람이 하였다.
히브리어 음역의 빈도수가 많은 것이 특징으로 지적되고 있다.
것은 기원후 2세기 말에 심마쿠스(Symmachus)가 번역한 것이다. 번역자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번역은 우수하지만 영향력은 미비했다. 제롬이 그의 불가타역에서 심마쿠스의 번역을 활용하기는 했으나, 오늘날 그의 번역은 헥사플라(Hexapla:여섯 언어 대조)를 통하여 단편 만이 알려져 있다.
러 가지 상이한 번역판을 갖게 된 기원후 3세기에 이르러서는 성서 본문에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빚는 혼란을 함께 감당해야만 했다. 기원후 230-240년 경에 가이사랴에서 활동을 하던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오리겐(Origen)이 『여섯 본문 대조 성서(Hexapla)』를 편집하였다.
(1) 히브리어 본문, (2) 히브리어 본문의 그리스어 음역, (3) 아퀼라역, (4) 심마쿠스역, (5) 칠십인역, (6) 테오도션의 개정역을 평행으로 편집하여 비교해 볼 수 있게 하였다. 오리겐의 주요 관심은 다섯째 난의 칠십인역이었다. 그는 칠십인역 본문을 히브리어 본문과 비교하여,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데 칠십인역에만 있는 첨가된 본문에는 앞과 뒤에 의구표(疑句標)를 하였고, 히브리어 본문에는 있는데 칠십인역에 그 본문이 번역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는, 다른 그리스어 번역에서 그 부분을 가져와서 칠십인역에 삽입시키고 앞뒤에 의구표를 붙여 놓았다.
의구표란 고사본의 의심스러운 본문이나 재생시킨 본문을 표시하던 단검표(+)나 마이너스표(-)나 나누기표(÷)나 별표(*) 등을 일컫는다.
헥사플라의 원본은 600년 경까지는 존속되었던 것 같으나, 오늘날에는 단편만 남아 있다.
본은 편의상 파피루스 사본, 대문자 사본(Capital letters:uncials)과 필기체 소문자 사본(Cursive script:Minuscules)으로 나뉜다.
파피루스 사본의 수는 수 백 개에 이르고, 크기는 다양하며, 이른 것은 칠십인역이 형성되던 초기까지 이르고 늦은 것은 7세기 중엽의 것도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 발견된 신명기 파피루스는 기원전의 것이다. 파피루스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양피지나 가죽에 쓰여진 것이기는 하지만 쿰란에서 발견된 출애굽기나 레위기나 민수기의 단편 조각 사본들, 그리고 나할 헤베르에서 발견된 기독교 직전 직후 시대의 것인 두루마리 사본도 중요한 고대 사본들이다.
가장 중요한 파피루스 사본은 구약에 속하는 책 아홉 권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는 열 한 개의 코덱스로 되어있는 02_07.aspx#b2_1" target=_blank>체스터 베티 파피루스(Chester Beatty Papyri)이다. 이 사본이 만들어진 것은 2-4세기 경이다. 그 후 300 여년 동안 파피루스 본문들이 급증하였고 지금은 200여개의 파피루스 사본들이 남아 있다.
문자 사본들은 4세기부터 10세기에 나온 것들로서 모두 코덱스(책 모양)로되어 있다. 괄목할 만한 것들로서는 4세기의 바티칸 사본 (Codex Vaticanus: 구약전체), 역시 4세기의 02_07.aspx#b2_2" target=_blank>시내 사본(Codex Sinaiticus:구약 일부), 5세기의 알렉산더사본(Codex Alexandrianus)이다.
이 셋은 본래 구약과 신약을 둘 다 포함한 것들이었다. 이 밖에도 성서의 일부만 보여주고 있는 사본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예언서를 보여 주고 있는 6세기의 것인 마르칼리안 사본(Codex Marchalianus)은 값진 것이다.
필기체 소문자 사본은 9세기 이후부터 나타난다. 11세기에서부터 16세기까지 1,500여개의 사본들이 발견되었으나 그들은 모두 같은 본문을 반영하는 사본들이다. 비록 후대의 것이기는 하지만, 좋은 본문을 간직한 대문자 사본을 베낀 것일 때에는 가치가 있다.
제일 먼저 인쇄된 칠십인역은 『여러 언어 대조 성서(Complutensian Polyglot (1514-17)』이다.
이것이 1522년에야 비로소 유포 되었으므로, 1518년에 베니스에서나온 알다인 판(the Aldine edition)이 실제로는 맨 처음에 나온 인쇄본이라고 할 수있다. 1587년에 로마에서 나온 식스타인(Pope Sixtus V) 판이 있고,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서 여러가지 비평적 편집본들이 나왔다.
독교가 이집트 안의 그리스어권 밖으로까지 퍼져 가면서 그 곳 언어로 성서가 번역되었다. 그 중 하나가 콥트어 성서이다. 3세기 말 4세기 초에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번역 대본은 그리스어 성서이다. 부분적으로는 고대 라틴어 역본과의 유사성도 보인다.
5 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아르메니아 민족 교회는 그 동안 문학과 예배 의식에서 그리스어와 시리아어를 함께 사용해 왔으나, 성 메스롭(St. Mesrob ca.361-439)이 아르메니아어 알파벳을 만들어 아르메니아 민족 문학의 기반을 닦자, 이 때 성서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되었다.
첫 번역은 (기원후 414년경) 시리아어역 페쉬타(Peshitta)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되었고, 곧 이어서 개정되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최종적인 공인 번역은 칠십인역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것이지만 여기에도 페쉬타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르메니아의 전통에 따르면, 조오지아어역도 메스롭의 번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오지아 구약의 가장 오래된 부분인 시편도 5세기 이전으로까지 소급되어올라가지는 못한다.
어떤 사본들은 그리스어 역본들에 근거해 있고, 또 더러는 아르메니아 역에 근거해 있다.
4 -5세기 경에 에티오피아에 기독교가 자리잡으면서 성서 번역이 시작되었는데, 최초의 번역은 칠십인역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본은 13세기의 것이다. 14세기 이후의 사본들에는 아랍어역과 콥트어역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많은 부분이 히브리어 본문과 일치하고, 칠십인역 본문과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
트족은 오늘날 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로 알려진 지방에서 살았다.
이 번역은 4세기 중엽, 기독교 선교사였던 울필라(Ulfilas)가 번역한 것이다. 그는 고트어 알파벳을 발명하여 성서를 번역하였다.
구약 번역은 에스라기와 느헤미야기의 극히 일부 단편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다 없어졌다. 그리스어역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것이다.
고트어로 기록된 문헌이라고는 성서 단편 사본뿐이다.
원후 2세기 중엽에 라틴어역 구약 성서가 북아프리카와 갈리아(Gaul)지방에 유포되고, 3세기 초에는 로마에서도 유포된 흔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로마 점령지에 살던 라틴어를 쓰던 유대인들이 번역한 것을 기독교가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원본도 히브리어가 아니고 그리스어역이다. 고대 라틴어 역본은 "라틴어 옷을 입은 칠십인역(the Septuagint in Latin clothing)"이라고(J. Ziegler) 할 수 있을 정도로 칠십인역과 관계가 있다.
고대 라틴어역본에는 오리겐이 개정하기 이전의 칠십인역의 상태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본문비평에 있어서 고대 라틴어역이 가지는 비중은 크다.
3세기까지 여러 종류의 라틴어역들이 유포되고 있었다. 그 여러 종류의 번역이 하나의 번역본에서 나온 개정판들인지,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번역된 것들인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4세기 말 (382경) 다마수스(Pope Damasus)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고대 라틴어 역본들에서 정리하게 된다.
학적 토론과 예배의식에서 사용되는 통일된 본문이 필요하게 되자, 다마수스가 이 일을 제롬(Jerome 일명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 Eusebius Hieronymus)에게 맡긴다. 제롬은 라틴어와 히브리어 실력을 고루 갖춘 기독교인 성서학자였다. 제롬은 세 종류의 라틴어 시편 개정판을 낸 바 있다.

첫 번 개정은 칠십인역에 근거하여 개정되었으므로 일명 "로마 시편(the Roman Psalter)"이라고도 한다. 두번 째 개정은 팔레스틴에서 펴낸 것인데, "여섯 언어 성서 칠십인역(the Hexaplaric Septuaginst)"에 입각하여 라틴어역을 히브리어 원문 쪽으로 가깝게 개정하려한 것이다. 갈리아 지방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으므로 일명 "갈리아 시편(Gallican Psalter)"이라고도 한다. 후에 이 시편이 불가타역에 그대로 들어간다. 세번 째 개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개정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번역이다.
히브리어에서 직접 번역된 것이지만, 널리 유포되지는 못했다. 이것을 준비하는 동안 제롬은 고대 라틴역을 다만 그리스어역에 근거하여 개정한다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롬은 라틴어 성서를 히브리어 원문 성서에서 직접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390년에 시작하여 405년에 끝냈다.
그러나 이미 서방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어 칠십인역이 굳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제롬의 라틴어역은 처음에는 교회 안에서 정착하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제롬의 라틴어 번역이 칠십인역의 내용과도 달랐고 고대 라틴어역과도 다른 곳이 많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읽어 오던 본문과 다르다고 하여서, 오히려 라틴어역의 권위가 도전을 받았다. 어거스틴 같은 지도자는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가 그리스 교회와 라틴 교회를 갈라지게 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결국 제롬의 새 라틴어역의 우수성이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8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번역은 02_14.aspx#b2_6" target=_blank>"라틴어 불가타(라틴어 보통말 번역)"가 되어서, 종교개혁 때까지 서방 교회의 성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상당 기간 동안 고대 라틴어역과 제롬의 불가타역을 손으로 베껴서 보급하는 과정에서 번역문에 많은 변화가 가해져서 일종의 종합 본문이 되버리고 말았다.
손으로 베끼는 과정에서 본문의 와전까지 겹치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약 8천여 개의 사본들 사이에 이독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중세기에 불가타역 회복을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히 실패하다가, 1546년에 트렌트회의에서 02_14.aspx#b2_8" target=_blank>불가타역을 공인하게 됨에 따라, 개정본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고, 거기에다가, 15세기 중엽부터 발달된 인쇄술은 번역 본문을 정착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교황 식스투스 5세의 식스타인판(Sixtein edition, 1590)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교황 클레멘트 8세가 1592년에 새 판을 간행하였다. 이것이 로마 교회의 공인 불가타가 되었다.
리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시리아역 성서는 일명 "페시타(Peshitta: "단순한" 번역)"라고도 알려져 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누가 언제 번역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번역은 본래 기원후 1세기경에 번역되었던 것 같고,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리아베네(Ariabene) 지역에 있던 유대인 사회에서 번역하여 사용했던 것 같다. 페시타는 문체도 다양하고 채택한 번역 방법도 다양하다.

오경 부분은 마소라 본문과 아주 가깝지만, 다른 부분은 칠십인역과 가깝다. 마소라 본문과 가까운 본문은 유대교인들이 번역한 것이고, 칠십인역과 가까운 본문은 기독교 쪽의 개정의 결과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5세기에 시리아 교회가 네스토리우스파(동 시리아)와 야곱파(서 시리아)로나뉘면서 페시타의 본문 역사도 두 갈래로 갈라진다. 네스트리우스 교회는 고립되어 있었으므로 그 교회가 간직하고 있던 사본이 덜 손상되었을 것으로 본다. 6세기 초에 마북(Mabbug)의 감독 필록세노스(Philoxenos)가 칠십인역의 루시아 개정본을 근거로 페시타를 개정하였다. 617년에는 헥사플라에 들어 있는 시리아어역을 텔라(Tella)의 감독 바울이 헥사플라 칠십인역에 근거하여 개정하였다. 지금 단편만 남아 있는 팔레스틴 시리아역은 에뎃사의 야곱(Jacob of Edessa, 708년 사망)이 새롭게 개정한 것이다. 현존하는 페쉬타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442년에 나온 것이다. 완전한 네 벌의 코덱스는 5세기부터 12세기 때의 것이다. 아직 비평적 편집본은 없으나, 국제구약학회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초의 것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본은 사아디아 벤 요셉(Sadia ben Joseph 892-942)이 번역한 것으로서 히브리어에서 번역되었고, 히브리어 글자로 쓰여진 아랍어 역본이다. 이 번역은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아부 알-하산(Abu al-Hasan)이 이것을 대본으로 하여 오경을 번역하였고, 11-12세기에 아랍어역 사마리아 오경으로 받아 들여졌다.
또 다른 아랍어역 사마리아 오경은 아부 사이드(Abu Said)가13세기에 번역한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다른 여러 번역들 중에 10세기에 야핏 이븐 알리(Yaphith ibn Ali)가 번역한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다.
946년에 스페인 코르도바의 기독교인이었던 발라드 케즈의 아들 이삭(Isaac son of Velasquez)이 복음서를 라틴어에서 번역하였다.
아랍어역 신구약전서 사본으로는 16세기에 번역된 것이 레닌그라드에 보관되어 있다. 19세기의 것인 파리와 런던에 있는 『여러언어성서(Polyglots)』에 아랍어역이 보존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아랍어역 사본들은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것들과,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것과, 사마리아어에서 번역된 것, 시리아어와 콥트어와 라틴어 중에서 번역된 것 등이 함께 전해져오기 때문에 번역판들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런 만큼, 아랍어역은 본문비평 자료로서는 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19세기와 20세기에 개신교와 카톨릭이 번역한 현대아랍어역들이 있다.
03.aspx#top" target=_blank>
에 대한 간략한 역사 (A concise History of the English Bible)는 목회자들, 교육자들, 연사들, 저술가들 등에게 영어성경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에 담겨있는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믿을 수 있는 간략한 글을 제공하기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원래 영어성경이 인쇄된 지 4백년이 지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성서공회의 사서였던 마가렛 T. 밀스(Miss Margaret T. Hills, M.A.)에 의해 A Ready Reference History of the English Bible이라는 제목으로 준비되었습니다. New English Bible의 등장을 계기로 1962년에 밀스에 의해 처음 개정되어 현재는 미국성서공회의 Bible Study Helps Dept.의 Assistant Director인 에롤 F. 로즈 박사 (Dr. Erroll F. Rhodes)와 미국성서공회 도서관의 큐레이터인 라이아나 루파스 박사(Dr. Liana Lupas)에 의해 개정판이 준비되었습니다.


Psalterium Davidis Latino
-Saxonicum vetus .
A Johanne Spelmanno … editum.
London: R. Badger, 1640.



옛영어(Old English)는 시편과 복음서들을 포함한 운문(韻文)으로 된 성경의 장절.
이 텍스트들의 인쇄본은 1571년부터 인쇄되기 시작했다.


The Wycliffe Version

1440년경에 필사된 신약 manuscript
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첫 번째 서신의 시작부분.
최초의 영어로 완역된 성경.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 1320~1382경)과 윌리엄 미들워스(William Middleworth), 존 트레비사(John Trevisa), 존 퍼비(John Purvey)를 포함한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번역이 이루어졌음. 이 성경은 라틴어로 된 불가타를 텍스트로 번역되었다. 이 역본은 15세기 내내 사본으로 퍼지다가 1850년에 처음으로 인쇄되었다.


틴데일 역본(The Tyndale Version)

모세오경(The Pentateuch). Antwerp: Johannes
Hoochstraten, 1530.
출애굽기 28장.
최초로 인쇄된 영어신약(1526)과 모세오경(1530)이다. 번역은 원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 텍스트를 기초로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 1494~1536경)에 의해 이루어졌다. 틴데일 자신이 개정한 신약이 1534년과 1535년에 등장했으며, 개정된 모세오경은 1534년에 출판되었다. 이교도라고 처형되기 전에, 틴데일은 여호수아기로부터 역대기하까지의 구약의 역사서들의 번역을 완성했다. 그가 번역한 것들은 1537년 Matthew's Bible에 포함되었으며, 1611년 King James Version의 번역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카버데일 성경(The Coverdale Bible)

Biblia. The Bible: that is, the holy Scrypture of the Olde and New Testament, faithfully translated in to Englyshe(Biblia. 성경: 즉, 영어로 충실히 번역된 구약과 신약의 성서.)
Cologne? Marburg?: E. Cervicornus and J. Soter?, 1535.
최초로 인쇄된 영어성경이다. 마일스 카버데일(Miles Coverdale , 1488~1568)에 의해 번역된 이 역본은 라틴어 불가타와 여러 16세기 독일어와 라틴어 역본을 기초로 번역되었다. 시편은 1539년의 Great Bible에 포함되었으며, 이 성경을 통해 Book of Common Prayer에 실리게 되었다.


Matthew's Bible

The Byble which is all the holy Scripture … truly and purely translated into Englysh by Thomas Matthew(토마스 매튜(Thomas Matthew)에 의해 거짓 없이 그리고 전적으로 영어로 번역된 성서인 성경.)
…Antwerp: R. Grafton and E. Whitechurch, 1537.
"Matthew's Bible" 초판. 이 성경의 타이틀 페이지에 번역자로 기록된 토마스 매튜(Thomas Matthew)는 아마도 틴데일의 동료였으며, Marina persecution의 초기 희생자였던 존 로저스(John Rogers, 1500~1555경)의 필명일 것으로 추측된다. Matthew's Bible의 3분의 2는 틴데일의 번역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신약과 모세오경은 1534~1535년의 개정판으로부터 차용된 것이다. 여호수아기로부터 역대기하까지의 책들은 현재는 사라진 틴데일의 원고를 기초로 하고 있다. 에스라부터 말라기까지의 구약의 나머지 부분들과 외경은 카버데일의 번역을 기초로 하고 있다.


Taverner's Bible

The thirde parte of the Byble, contaynynge these bokes …
(다음 책들을 포함하는 성경의 세 번째 부분)
Taverner's Bible의 개정판의 두 번째 타이틀 페이지. London: John Day, 1551.

리차드 테버너(Richard Taverner, 1505-1575경)는 Matthew's Bible의 새 판을 준비했다. 테버너가 가한 수정사항들은 대부분 어휘적인 변화를 준 수준이다. 예를 들어, advocate 대신 spokesman, similitude 대신 parable, 등이다.


The Great Bible

The Byble in Englishe … truly translated after the veryte of the Hebrue and Greke textes
(히브리어와 헬라어 텍스트들의 서술에 따라 거짓 없이 번역된 영어로 된 성경 ...)
마일즈 카버데일(Miles Coverdale)에 의해 준비된 Matthew's Bible의 개정판인 “Great Bible"의 초판. 구약은 뮌스터(Mster)의 Latin Old Testament와 에라스무스(Erasmus)의 Latin New Testament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인쇄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은 “가장 크고 두꺼운 성경”을 요청했다. 1540년에 발행된 이 텍스트의 두 번째 판은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Archibishop Thomas Cranmer, 1489~1556)의 서문을 포함하고 있어 때로는 “크랜머의 성경(Cranmer's Bible)"이라고도 불린다. Great Bible의 사본들은 모든 영국의 교회들에서 전시되었으며, 1569년 이후에는 다시 인쇄되지 않았다.


The Geneva Version

The Bible and Holy Scriptures conteyned in the Olde and Newe Testament. Translated according to the Ebrue and Greke, and conferred with the best translations in dieurs languages
(구약과 신약에 포함된 성경과 성서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부터 번역하였으며 dieurs 언어 가운데 가장 좋은 번역을 참조하였다.)
Geneva: Rouland Hall, 1560.
Geneva Bible version: New Testament(1557)과 성경(1560)의 초판. 이것은 1557년 신약의 유일한 번역자였던 윌리엄 위팅엄(William Whittingham , 1524~1579경), 안토니 길비(Anthony Gilby), 토마스 샘슨(Thomas Sampson) 등을 포함하는, 제네바에서 살고 있던 영국인 exiles(성격이 추방자들인지 망명자인지)에 의해 준비되었다. Geneva Bible는 즉각적인 인기를, 특히 청교도들로부터 얻었으며, 로만체 활자로 인쇄된 최초의 영어성경이었다. 이것은 또한 절 구분을 최초로 포함하였다. 창세기 3장 7절의 문구 때문에 “Breeches Bible"로도 알려졌다. 최소한 Geneva Bible의 160 edition들이 1560년과 1640년 사이에 인쇄되었다. 1578년 이후에 인쇄된 부수들 가운데, 프란시스 월싱엄 경(Sir Francis Walsingham)의 비서였던 로렌스 톤슴(Laurence Tomson, 1539~1608)가 개정한 신약이 있는 것들이 있다. 톰슨 신약 초판은 1576년에 인쇄되었다.


The Bishops' Bible

The holie Bible, conteynyng the olde Testament and the newe.
구약과 신약을 포함하는 성경.
London: R. Jugge, 1568.
매튜 파커(Matthew Parker, 1504~1575), 캔터베리 대주교와 W. 앨리(W. Alley), W. 발로우(W. Barlow), T. 벤담(T. Bentham)과 여러 다른 일련의 주교들과 학자들에 의해 준비된 Great Bible의 개정판이자 "Bishops' Bible"의 초판이다. 비록 공식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헌정된 것은 아니었으나 Bishops' Bible은 타이틀 페이지에 여왕의 초상을 싣고 있다. 이 성경은 주로 성직자들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가정용 성경으로 Geneva 성경을 대체하지는 못하였으며 1602년 이후에는 다시 인쇄되지 않았다. King James Version의 번역자는 가능하면 언제든지 Bishops' Bible을 따르라는 지시를 받았다. Great Bible의 경우처럼 Bishops' Bible은 매우 적은 난외주들을 담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시편 45:9에 대한 난외주로, Ophir를 “Iland ... founde by Christopher Columbo"로 지칭하고 있다.


The Rheims-Douai Version

진정한 라틴어로부터 영어로 충실히 번역되었으며, 헬라어와 diuers 언어들로 된 성경들을 성실하게 참조한 예수그리스도의 신약...Rheims: John Fogny, 1582.
Douai에 있는 English College의 회원들이 준비한 최초의 카톨릭 성경 번역본이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의 설립자였던 윌리엄 엘런(William Allen, 1532~1594)에 의해 후원되고 지시되었으나, 그레고리 마틴(Gregory Martin, 1540~1582 경)이 실제 번역을 대부분 책임을 맡았다. 신약은 Rheims에서 1582년에 최초로 출판되었고, 구약은 거의 30년 후인 1609~1610년에 Douai에서 발행되었다. 번역은 라틴어 불가타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 성경은 많은 note들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데, 신약에서는 리차드 브리스토우(Richard Bristow, 1538~1581)가, 그리고 토마스 워딩턴(Thomas Worthington, 1549~1627)의 난외주 e작업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성경은 개정이 되어 20세기가 되기까지, Rheims-Douai 성경은 표준 로마 카톨릭용 성경의 지위를 유지했다.


The King James Version

The Holy Bible, Conteyning the Old Testament, and the New: Newly Translated out of the Originall tongues: & with the former Translations diligently compared and reuised London: Robert Barker, 1611.
구약과 신약을 포함하는 성경: 원어로부터 새로이 번역되었으며, 이전의 번역본들과 성실히 대조하고 reuised되었다. London: Robert Barker, 1611.
제임스 1세의 제안으로 론셀롯 앤드류스(Launcelot Andrewes, 1555~1626), 존 하딩(John Harding, 1610년에 사망)과 애드워드 라이블리(Edward Lively, 1545~1605 경)의 지휘 하에 대략 50명에 달하는 학자들이 준비한 King James 또는 Authorized Version이다.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라는 제목의 서문은 마일즈 스미스(1624년 사망)의 작품이며, 스미스는 성경이 인쇄되도록 했다. 번역자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텍스트들을 사용하였으며, 주요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그리고 이태리어 성경역본들을 참조를 했다. 이들이 참조를 한 다른 성경들로는 the Bishops' Bible, the Rheims New Testament, Tyndale's and Matthew's versions, the Great Bible, and the Geneva Bible들이 있다. 1614년이 끝나기 전에 King James Bibled은 14 edition들이 출판되었다. 그 후로 여러 edition들이 매해 발행되었다. 그러나 King James Version이 Geneva Bible의 대중적 인기를 넘어서기까지는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많은 영국인 개신교도들에게 표준 성경이 되었다. 약간 현대화된 형태인 1611년 King James Bible은 영어로 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성경번역본이 되었다.


The Challoner Revision

우리의 주이자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신약 ... 성서의 Clementin판에 의거하여 새로이 개정하고 수정되었다... [Dublin?], 1729.
리차드 챌로너(Richard Challoner, 1691~1781)가 개정한 Rheims-Douai 성경. 1749년에 발행된 신약은 Testament는 단지 120 군데가 바뀌었다. 1750년에 발행된 성경은 챌로너의 유일한 구약의 개정내용을 담고 있다. 약 2,000개의 수정을 포함하고 있는 보다 면밀한 신약의 개정판이 1752년에 출판되었다. 챌로너의 최종판은 1763~1764년에 발행되었고, Confraternity 판이 1941년에 출판되기 전까지 표준 카톨릭용 영어성경의 자리를 지켰다.


The Harwood New Testament

신약의 진보적인 번역...London, 1768.
"A liberal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는 1776년판 헬라어 신약으로도 알려진 권위있는 학자인 에드워드 하우드(Edward Harwood, 1729-1794)에 의한 역본.


The Thomson Version

헬라어로부터 번역된 성경. Philadelphia: Jane Aitken, 1808.
시편 23편을 포함하는 톰슨(Thomson)의 친필 원고의 한 페이지. 미국에서 최초로 번역된 성경 역본이자 Septuagint를 최초로 영어로 번역한 역본. 헬라어 텍스트를 기초로 하여 찰스 톰슨(Charles Thomson, 1729-1824)이 번역하였다. 이 성경은 외경을 포함하지 않는다.


The Murdock New Testament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Syriac Peshitta version으로부터 제임스 머독(James Murdock, 1776~1856)이 직역한 신약.


The Leeser Version

구약의 타이틀 페이지. Philadelphia, 1853.
히브리어 구약을 아이삭 리저(Isaac Leeser, 1806~1868)이 직역한 역본. 모세 오경은 1845~1846년에 최초로 발행되었다.


The Julia Smith Bible

원어로부터 직역된 성경. Hartford: American Publishing Company, 1876. Preface.
여성에 의해 최초로 완역된 성경역본. 이 성경역본은 미국에서 여성들의 참정권 확보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였던 줄리아 이블리나 스미스(Julia Evelina Smith, 1793~1886)의 작품이다. 이것은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에 똑같은 의미의 영어 단어를 모든 곳에 대체하기 위해 노력을 한” 직역본이다.


The English Revised Version

American Committee가 제시한 이문들을 텍스트에 포함하고 있는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Convocation of Canterbury의 지시 하에 준비된 King James 역본의 개정판인 English Revised Version이다. 두 개의 위원회가 지명되었다. 에드워드 H. 브라운(Edward H. Browne, 1811~1891)이 감독한 구약위원회는 37명의 위원들이 있었다. 찰스 J. 엘리콧(Charles J. Ellicott, 1819~1905)이 의장으로 있던 신약위원회는 28명의 위원들이 있었다. 한 American 위원회는 부록에 처음 포함되어 있던 몇 개의 이문들을 추천하였다. 1898년에 이 이문들은 처음으로 본문에 포함되었다. King James Bible이 1611년에 최초로 발행된 이래로 유일하게 돋보이는 개정판이었다.


The Twentieth Century New Testament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포함하는 Part I의 타이틀 페이지.
The Twentieth Century New Testament는 매리 앤 킹즈랜드 힉스(Mary Ann Kingsland Higgs)와 “약 20명”의 사람들에 의해 추진된 “현대 영어”로의 번역이다. 각 책에 대한 짧은 소개글들을 담고 있는 그 최종적인 모습은 1904년에 등장하였으며, 책들은 전통적인 책들의 순서보다는 연대기 순으로 정렬되었다.

The American Standard Version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The American Standard Version는 1885년에 English Revised Version의 발행 이후에 자신들의 작업을 계속한 일련의 사람들로 구성된 American Revision Committee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들은 나아가 고어화된 단어들을 제거하였으며, King James Version에서 "Lord" 또는 "God"로 일반적으로 번역되던 "Jehovah"를 히브리어 단어로 교체하였다. 이 역본은 연구를 위한 텍스트의 표준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The Weymouth New Testament
1903년에 출판된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The "Modern Speech New Testament"는 "일상생활에 쓰이는 영어로의 관용적인 표현을 활용한 번역"으로 리차드 프랜시스 웨이머스(Richard Francis Weymouth, 1822-1902)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것은 1886년에 출판된 웨이머스판 헬라어 텍스트를 기초로 하고 있다.

The Moffat New Testament
1913년에 출판된 초판이 타이틀 페이지
제임스 모팟 (James Moffat, 1870~1944)에 의해 준비된 성경전서에 대한 "새로운 번역"이다. 모팟은 "근자에 이루어진 연구성과들을 담아내는 동시에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번역"을 하기 위해 시도했다. 그는 이미 1901년에 신약의 번역을 출판하였으나 이 1913년도 판은 또 다른 번역이었다.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Old Testament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구약은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의 한 위원회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모리스 재스트로우(Morris Jastrow, 1861~1922), 솔로몬 슈켓터(Solomon Schechter, 1847~1915)와 막스 L. 마골리스(Max L. Margolis, 1886~1932)가 그 위원회를 이끌었다. 이 역본은 "유대전통의 정신을 고대, 중세, 그리고 현대 성서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을 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An American Translation
1927년에 출판된 구약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시카고 대학 출판부가 출판한 "An American Translation"이다. 신약은 에드가 J. 굿스피드(Edgar J. Goodspeed, 1871~1962)에 의해서 번역되었고, 구약은 J. M. 포위스 스미스 (J. M. Powis Smith, 1866~1932)의 지도하에 있는 한 위원회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굿스피드가 번역을 한 외경의 책들은 1938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굿스피드는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영어단어들"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The Montgomery New Testament
1924년에 출판된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American Baptist Publication Society를 기념하기 위하여 출판된 "Centenary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이다. 침례교 목사였던 헬렌 베럿 몽고메리 (Helen Barrett Montgomery, 1861~1934)에 의해 현대 영어로 번역되었다.

The Lamsa Version
신약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고대 eastern 사본들로부터" 번역된 성경. 이 번역은 Syriac Peshitta version을 기초로 이루어졌으며, 조지 M. 람사(George M. Lamsa, 1893년 출생)에 의해 준비되었다. 그 제목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Urumia에서 출판되었던 1841년판을 기초로 하고 있다.

The Basic English Version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Bible in Basic English"는 사무엘 H. 후크(Samuel H. Hooke, 1874~1968)의 지휘하에 있던 한 위원회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이 성경은 찰스 K. 옥든 (Charles K. Ogden, 1889~1957)이 선별한 기초적인 단어 850개와 50개의 특별 성서 단어들을 보충하여 번역되었다.

The New American Bible
1970년에 출판된 완역성경의 타이틀 페이지
The New American Bible은 현대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활용한 카톨릭용 번역이다. 신약의 번역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Confraternity Version"으로 1941년에 발행되었던 Rheims-Challoner 텍스트의 개정작업이었다. 1943년에 출판된 Papal Encyclical Divino Afflante Spiritu는 번역작업이 라틴어 불가타만에 한정되지 않고 원어들을 기초로 하여도 된다고 명시하였다. 결과적으로 루이스 F. 하트만 (Louis F. Hartman, 1901~1970)이 의장으로 하여 성경 전체에 대한 새로운 번역이 히브리어와 헬라어 텍스트를 기초로 시작되었다. 이 성경은 1970년에 출판되었다. 신약의 개정판은 1987년도 판에 포함되었고, 개정된 시편은 1992년에 출판된 성경에 포함되어 출판되었다.

The Knox Version
신약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Roman Catholic Bishops of England가 지시하고, 로날드 A. 녹스 (Ronald A. Knox, 1888~1957)에 의해 준비된 라틴어 불가타의 새로운 번역본이다.

The Berkeley Version
성경전서의 타이틀 페이지
The Berkeley Version은 구약의 편집장을 역임하였고, 신약의 번역자였던 게릿 베르쿨 (Gerrit Verkuyl, 1872~1967)에 의해 준비된 현대 영어로의 번역이다. 그 개정판은 1969년에 "The Modern Language Bible"의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The Revised Standard Version
성경전서의 타이틀 페이지
The Revised Standard Version (RSV)은 루터 A. 와이글 (Luther A. Weigle, 1880~1976)이 위원장으로 있던 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된 American Standard Version의 개정판이다. 이 개정판은 헬라어 파피루스 사본들과 사해 사본의 발견에 따라 원어 텍스트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기초로 하였다. 단지 읽기나 instruction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식적, 개인적인 예배에 사용될 목적으로 개정된 RSV는 보다 현대적인 형태의 영어를 채택하고 있다. 신약은 1946년에 출판되었고, 성경전서는 1952년에 출판되었다. 외경은 1957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1973년에는 Orthodox Scripture Deuterocanon의 Esdras 3과 4, 그리고 Prayer of Manasseh을 추가적으로 포함하는 공동번역판이 발행되었다.

The New World Translation
1984년에 출판된 Complete Biblel 개정판의 타이틀 페이지
여호와의 증인 산하 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된 The New World Translation이다. 이 역본은 (구약을 비롯하여 신약에서도 모두) "Lord"를 "Jehovah"로 대체시키고 있으며, "cross"를 "torture stake"로 대체시켰다. 이 성경은 1960년에 완성되었다. 이 성경의 개정판들이 1970년과 1984년에 출판되었다. 이 영어 번역본을 기초로 하는 성경전서에 대한 번역이 20개 이상의 언어로 재번역되어 출판되었다.

The Phillips New Testament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존 버트람 필립스(John Bertram Phillips, 1906년에 출생)에 의해 준비된 일상 영어로 된 신약의 free translation이다. 번역본의 단편들은 1947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했다. 개정판은 1972년에 발행되었다.

The New English Bible
첫 성경전서의 타이틀 페이지
The New English Bible은 J. W. 훈킨 (J. W. Hunkin, 1887~1950), A. T. P 윌리엄스 (A. T. P. Williams, 1968년에 사망), 그리고 도널드 코건(Donald Coggan, 1909-2000)이 연이어 위원장을 맡았던 영국인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된 새로운 번역본이다. 번역작업은 1948년에 시작되었고, 모든 주요한 영국 개신교회들로부터 대표자들이 참여한 위원회에 의해 진행되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 파송된 observer들이 후에 참여하였다. 이 번역은 20세기에 이루어진 사본들의 위대한 발견들을 인식하고 있다. 이 번역은 고어들과 "transient modernisms"을 모두 배격하고 있다. 이 1970년판 성경은 외경을 포함한 것과 포함하지 않은 것 모두로 출판되었다.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New Version
구약의 타이틀 페이지
해리 M. 올린스키(Harry M. Orlinsky, 1908년 출생), 해롤드 L. 긴스버그 (Harold L. Ginsberg, 1903년 출생) 그리고 에프라임 A. 스파이저 (Ephraim A. Speiser, 1902~1965)의 지휘하에 Jewish Publication Society의 한 위원회에 의해서 준비된 구약의 새로운 번역이다. 부분적으로 개정된 판은 1985년에 발행되었다.

The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1971년에 출판된 성경전서의 타이틀 페이지
The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은 로크만 재단(Lockman Foundation)에 의해서 위촉된 한 위원회에 의해서 준비된 1901년도 텍스트를 개정한 것이다. 이 텍스트를 약간 개정한 판이 1995년도에 발행되었다.

The Jerusalem Bible
1966년에 출판된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Jerusalem Bible은 알렉센더 존스 (Alexander Jones, 1906년 출생)의 지휘 하에 카톨릭 학자들로 구성된 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것은 1956년에 출판된 불어판 Jerusalem version을 모델로 삼고 있으나 헬라어와 히브리어 텍스트들을 충실히 참조하여 번역되었다. 이 성경은 개정하거나 최신정보로 고친 곳들이 부분적으로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1961년도에 발행된 불어판으로부터 번역된 서문과 난외주들을 함께 실어서 출판되었다.

The Good News Translation
1966년도에 출판된 신약의 타이틀 페이지
1976년도에 출판된 성경전서의 타이틀 페이지
(예전에 Today's English Version으로 불렸고, 현재는 Good News Translation으로 불리는) Good News Bible은 미국성서공회가 새로 글자를 습득한 사람들의 필요들을 충족시키고, 전통적인 교회 역본들의 예스런 표현들에 익숙하지 못한 식자층을 위해 준비한 번역본이다. 로버트 G. 브랫처 ( Robert G. Bratcher, 1920년 출생)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는 의미를 전달하는데 역점을 둔 번역을 준비했다. 이 번역의 첫 단편은 1964년에 출판되었으며, 신약은 1966년에 발행되었으며, 다시 1971년에 개정되었다. 성경전서는 1976년에, 외경은 1979년에 출판되었다. 이 성경의 개정판은 1992년에 출판되었다. 이 Good News Bible의 발행인 가운데에는 세계성서공회연합회와 많은 개별 성서공회들이 있었다.

The Living Bible
1971년에 출판된 성경의 타이틀 페이지
The Living Bible은 한 위원회의 도움으로 케네스 A. 테일러 (Kenneth A. Taylor, 1917년 출생)가 준비한 의역본이다. 이 텍스트의 출판은 1964년에 "Living Letters" (로마서부터 유다서까지)의 출판으로 시작되었다.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
1978년에 출판된 성경의 타이틀 페이지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은 현재 International Bible Society의 전신인 New York Bible Society의 후원과 다양한 개신교 교단들을 대표하는 백명 이상의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된 번역본이다. 대체적으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띤 이 번역본은 명료하고 문학적으로 뛰어난 번역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예배와 개인의 성경 읽기, 교육, 설교, 그리고 말씀 암기용으로 준비되었다. 요한복음의 시험판이 1969년에 출판되었으며, 그 후로 1973년에 신약이 이어서 출판되었으며, 성경 전서는 1978년에 출판되었다. 이 성경번역본은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번역본 가운데 하나이다.

The New King James Version
1982년에 출판된 성경의 타이틀 페이지
The New King James Version은 King James 성경을 현대 영어 사용법에 따라 보수적으로 번안을 한 것이다. 이 역본은 "영어를 사용하는 주요 국가들을 대표하는 백명 이상의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되었다.

The New Jerusalem Bible
1985년에 출판된 성경의 타이틀 페이지
1966년도 판의 완전 개정판인 The New Jerusalem Bible은 헨리 웬스브로 (Henry Wansbrough, 1934년 출생)의 감독 하에 전문가 패널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소개글과 notes들은 대부분 다시 쓰여졌으며, 텍스트는 불어판으로부터 보다 더 독립적인 성격을 갖도록 개정되었다.

The Revised English Bible
초판의 타이틀 페이지
The Revised English Bible은 도날드 코건(Donald Coggan)이 의장으로 있는 영국의 Joint Committee of Churches에 의해 준비된 1970년도 판 New English Bible의 "radical한 개정판"이다. 개정작업은 히브리어 텍스트와 헬라어 텍스트의 가장 최신판인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와 Nestle-Aland 26판을 기초로 이루어졌다. 다른 전통적인 남성중심적인 단어들을 취하지 않은 것처럼 고어인 대명사, "thou"도 버렸다. 이전 판처럼 1989년도 개정판은 외경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 출판되었다.

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1991년에 출판된 공동번역본의 타이틀 페이지
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은 브루스 M. 멧즈거 (Bruce M. Metzger, 1914년 출생)의 지휘 하에 Committee of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에 의해서 준비되었다. 이 개정판은 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고어적인 표현들을 없애고, 보다 높은 정확성, 명확성 그리고/또는 euphony를 확보하고, 가능하다면 남성, 여성 모두를 포괄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성경은 외경이 있는 것과 외경이 없는 것 모두 출판되었다.

The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1988년에 미국성서공회에 의해 출판된
누가복음의 표지.
1995년에 출판된 성경전서의 타이틀 페이지.
The Contemporary English Version은 미국성서공회가 후원을 한 두번째 영어 번역본이다. 번역 작업은 1985년에 시작되었고, 바클레이 M. 뉴만 (Barclay M. Newman, 1931년 출생)와 로버트 호지슨(Robert Hodgson), 도널드 A. 존스(Donald A. Johns)와 스티븐 W. 번킹(Steven W. Berneking)을 포함하는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일임되었다. 원래 Good News Translation과 같이 아이들을 위한 번역본으로 계획된 이 번역본은 의미동역(dynamic/functional equivalence)의 원칙을 차용하고 있다. 얼마나 쉽게 소리를 내어 읽을 수 있는가와 말씀을 들어서 얼마나 이해를 할 수 있는가에 특별한 초점을 두었다. 신약은 미국성서공회의 설립 175년을 기념하여 1991년에 출판되었으며, 성경전서는 그 뒤에 1995년에 출판되었다. 외경을 포함하는 공동번역본은 2000년에 출간되었다.

The New Living Bible
1996년에 출판된 성경의 타이틀 페이지
The New Living Translation은 마크 R. 노턴(Mark R. Norton), 필립 W. 컴포트(Philip W. Comfort), 로널드 A. 비어스(Ronald A. Beers)와 마크 D. 테일러(Mark D. Taylor)들이 코오디네이트한 90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 번역본은 1971년도판 Living Bible의 텍스트를 원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 텍스트들과 면밀히 비교를 함으로써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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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4.06 09:09

    첫댓글 엄청난 정보이내요^^ 할렐루야^~^

  • 작성자 16.04.06 21:34

    자료를 정리한 사람이 대단한 분입니다.

    저는 이 자료중에서 특히 제가 그동안 출처와 그 성구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었던 사진 파일이 있었습니다.
    이 자료 중에서 그출처와 성구가 어디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 네 자음(요드 헤 바브 헤=YHUH)의 기원의 시기를 기원전 7-6세기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주 예슈아님의 거룩하신 성호에 대한 이름 전쟁에 꼭 필요한 자료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 자료에 대한 정보를 이 자료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 자료는 이 사진 파일입니다.

  • 작성자 16.04.06 21:43

    이러한 자료들은 롱맨(유리바다)이란 자가 주 예슈아(요드 헤 바브 헤)님의 히브리어 네 자음이 변개된 것이라는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 찾게 된 자료들입니다.

    메샤의 석비(기원전 9세기경)의 자료는 모압인들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기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또 다른 자료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사해 사본들을 통해서 주 예슈아(요드 헤 바브 헤)님의 히브리어 네 자음(YHUH)은 결코 변개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확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사야서는 너무나 귀중한 보물이었습니다.

  • 작성자 16.04.06 21:49

    특히 사해 사본 이사야서 12장에 기록된 말씀은 진정으로 가슴 떨리며 감개무량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엘 엘예슈아티"라는 단어는 참으로 경이롭고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엘예슈아티"란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이신 예슈아님께서 타브(십자가)에 매달리시어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실 것임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 16.04.06 22:01

    형제님의 안에서 외치시는 우리조상의 하나님 아버지의 영에 감사 합니다 나중에 이 이미지들을 이용해도 될려는지 여쭤보고 싶슴니다 영상 만들떼 사욯해 볼까 해서요^^ 저작권이나 이타 문제가 된다면 만들지 않도록 할께요^,.^ 유튜브에서는 음원 경고 2번 먹었습니다 ㅋ;;

  • 작성자 16.04.06 22:30

    스크랩한 본문의 자료는 제가 말씀드릴 수가 없는 것이지만,
    위의 케텝 힌놈 은 두리마리 자료도 출처와 성구들을 알지 못하여 사진 파일을 구해 놓고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 파일을 제가 분별하여 이해한 자료로 제 구성하였습니다.

    저의 자료는 편하게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어떤 자료도 형제님께서 분별하시고 판단하시고 재해석하여 다시 만들어 사용하신다면 어떤 저작권의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형제님께서 만들어 올리시는 동영상 자료들은 아주 귀한 내용들입니다.
    그 귀한 내용들이 손상되지 않도록 음원이라든지 자료들을 사용하시는데에 심혈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상에 맞게 자료를 만드심이 더 좋을듯도....

  • 16.04.06 22:41

    @최윤남(자유인) 오늘 비도 오고 찌뿌등 하내요 ^~^ 몸관리 잘하시고 편히 쉬세요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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