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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장
제 17 장 아덴
(대 지)
一. 데살로니가 교회 설립(1-9)
二. 귀한 베뢰아 사람(10-15)
三. 아덴 전도(16-34)
(본문 강해)
一. 데살로니가 교회 설립(1-9)
. 17: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떠나 서남쪽 52km 지점에 있는 암비볼리로 갔다. 그곳은 마게도니아의 주부(州府)가 있는 곳이다. 바울 일행은 거기에서 다시 서남쪽 50km 지점에 있는 아볼로니아로 내려갔고 거기서 서쪽으로 58km 지점에 있는 데살로니가로 갔다. 데살로니가는 그 지방의 수도이며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 전도하기를 시작하였다.
. 17:2-3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세 안식일에 구약성경을 강론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쉬지 않고 계속하여 전도하였다. 힘써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미리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다. 자기 힘으로는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계속해서 힘쓰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그 일이 성취된다. 바울이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강론하였는데 안식일 아닌 날도 성경을 강론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3주간을 강론한 것이다.
바울이 강론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구약에 예언한 그리스도가 오셨다.
② 그리스도가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된다(사53:1-6 참조).
③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해야 된다(시16:10 참조).
④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이다.
교역자가 성경의 뜻을 풀어 가르쳐 주므로 교인들이 진리를 깨닫고 성경에 서 있게 되면 그 신앙은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견고하여 요동하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성경을 강론하고 교인들은 성경을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교인들의 신앙이 성경에 서 있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봉사한다고 하여도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결국에는 동요되고, 풍조에 밀려 넘어지기 쉽다. 바울은 믿는 사람에게만 성경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로 성경을 가르쳐 주어 그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많이 생겼다. 성경을 말해 줄 때에는 그 말에 힘이 있고 또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 바울이 세 안식일 동안 성경을 강론하였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계속하여 말씀을 가르치면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하여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우리가 개인 전도할 때에도 성경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하면 그 종자가 싹이 나서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된다.
. 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유대인의 회당에서 바울의 강론을 들은 사람 중에는 헬라인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 중에 바울의 전도를 받아 믿는 자가 많이 생겼다. 유대인들은 조상 적부터 내려 온 전통과 율법을 많이 아는 것으로 교만하여 바울을 멸시하고 바울이 증거하는 말씀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복음이 이방 헬라인에게로 간 것이다. 귀부인 마게도니아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인들이 존숭되었다. 이 귀부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고 많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처음부터 말씀을 잘 받아 훌륭한 신자가 많이 생겼다(살전1:5-10 참조). 그러므로 이 교회는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에 모범적인 교회가 되었다.
.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교회가 잘 되어 나가는데 마귀의 역사가 일어났다.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어떤 괴악한 사람들(깡패종류)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란케 하고 야손의 집어 들어가 바울과 실라를 끌어내려고 하였다. 아마 사도들이 야손의 집에 유하였던 것 같다(7절 참조). 그들이 달려들어가 바울을 잡아내려고 하였으나 마침 바울이 거기에 없었다.
. 17:6-7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유대인의 꾀임을 받은 불량배들이 야손의 집에서 바울을 찾았으나 없으므로 야손과 및 형제들만 읍장들 앞에 끌고 가서 큰 소리로 고발하였다. 그들이 고발한 죄는 다음과 같다.
① 바울과 실라는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라고 함(행24:5 참조)
② 바울과 실라는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였다고 함.
③ 가이사 외에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고 함. 이것은 바울과 실라를 반역자로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예수를 하늘 나라의 왕으로 전하였는데 그것을 곡해하여 한 말이다.
④ 야손은 그 죄인들을 은닉한 자라고 함.
야손이 큰 죄인 바울을 숨겨 주고 동조하였다는 것이었다. 기독교를 핍박할 때에 이러한 치안법(소란케 하는 자)과 반역죄(다른 임금이 있다) 등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상례이다.
. 17:8-9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여러 가지로 고소하였으나 장본인(바울)이 없으므로 해결을 못하고, 다음에 부르면 다시 출두하는 조건하에 보석금(保釋金)을 받고 야손과 그 형제들을 놓아주었다.
二. 귀한 베뢰아 사람(10-15)
.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의 서남쪽 64km 지점에 있었던 마게도니아의 중요한 도시였다. 데살로니가에서 믿는 형제들이 밤에 바울을 베뢰아로 보낸 것은 핍박이 심하므로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베뢰아로 내려가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하였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다.
.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신사적 성품이 고귀(高貴)하다, 혹은 성격이 좋다는 뜻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인 것은 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베뢰아 사람들은 진리를 찾고 성경을 좀 더 깨닫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시편119:131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다윗이 말하였다. 성도는 목마른 사슴이 간절히 시냇물을 찾듯이 말씀을 사모하여 꿀과 송이 꿀같이 달게 받아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밥맛이 달고, 병든 사람은 밥맛이 쓰다. 성도가 성경의 단맛을 잃어버리면 신앙이 병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속히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② 성경을 상고하였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성경을 배웠으면 그 말씀을 상고하여 성경대로 신앙인격이 만들어져야 한다. 성경을 부지런히 상고하는 자는 성경이 생명이 되고, 힘이 되고, 기업이 있게 해 준다. 성경을 상고하여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확신을 가진 신앙은 고귀하고 견고하다.
③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읽은 것이다. 성경을 날마다 읽는 사람은 점점 고귀한 사람이 되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계1:3 참조). 요한 사도는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하였다(요5:39 참조). 하박국2:2에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 세 번 다 성경으로 이기셨다. 이렇게 귀한 성경을 많이 읽고 아는 사람은 참으로 고귀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베뢰아 사람 중에서 좋은 신자가 많이 나왔다.
. 17: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베뢰아에 믿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이렇게 존귀한 자들이 기독교에 많이 들어온 것은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이었기 때문이다.
.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베뢰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믿는 자가 많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에서 65km나 되는 베뢰아까지 달려와 바울을 반대하고 무리를 충동시켜 소동케 하였다. 이렇게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은 열심이 특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막히지 않는다. 진리는 언제나 전진하고 승리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하는 것과 폭력으로 하는 것은 그들이 진리에 서있지 않은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 17:14-15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유대인들이 방해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떠나야 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마귀의 종들은 따라 다니면서 바울을 방해하고 괴롭혔다.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고 바울은 안내하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아덴까지 내려갔다. 베뢰아에서 아덴까지는 320km이다. 10일 이상 걸리는 먼 곳까지 베뢰아의 성도들이 바울을 전송한 것은 그들이 바울을 귀히 여기고 자랑한 증거이다. 이렇게 전도자를 귀히 여기고 도와주는 자는 복을 받는다(마10:40-42 참조). 바울이 자기를 안내해 준 그 성도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자기에게 보내라고 부탁하여 보냈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의 도움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三. 아덴 전도(16-34)
. 17:16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아덴은 헬라 문화의 중심지이며 철학, 문학, 예술이 발달하여 당시 자유의 도시로 세계 제일의 문화를 자랑하였다. 그리하여 이 도시에는 우상이 가득하였었다. 세상 문화는 마귀에게 매여 있는 자들을 건져 주지 못하며 인간의 허탈증도 면해 주지 못한다. 세상 문화는 도리어 인간의 허영심을 조장하여 주는 것뿐이다. 마음에 분하여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안타까운 생각에서 분한 마음이 일어 난 것이다.
. 17: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바울이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저자에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복음을 전하며 변론하였다. 이렇게 바울은 쉬지 않고 열심히 전도하였다. 저자 시(市) 중앙에 있는 광장이며 그 주위에 상점과 시장이 있고 그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모여 자유로이 변론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 17: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흑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에비구레오 철학파의 이름이며 주전 348년에 사모스섬에서 출생한 에피큐로스라는 철학자가 세운 철학파이다. 이 철학파는 무신론을 주장하고 향락주의로 기울어져 인생의 목적을 자기 행복에 두고 유물주의적인 경향으로 흘렀다. 스도이고 철학파의 이름으로 주전 336년에 구브로에서 출생한 제논이란 철학자가 창립한 철학파이다. 이 철학은 범신론과 도덕주의를 주장하여 자기를 완전히 제어하고 자연과 도덕에 합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 인간의 영혼은 우주이성(宇宙理性)의 일부분을 받아 난 것이라고 한다.
바울이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과도 변론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말장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 것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바울이 예수와 몸의 부활을 전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변론하면서 전도하여 보았으나 그다지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새로운 말을 듣고 지식을 얻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변론하지 말라(딤후2:23 참조)고 한 것은 반대할 목적으로 따지는 사람들과 변론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주는 것이므로 도리어 물고 찢는다.
. 17:19-20 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아레오바고 화성신(火星神)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아덴의 서북쪽에 있는 언덕이다. 거기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재판소도 있고 그 맞은편 언덕에는 거대한 팔레온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이 아레오바고 언덕 위로 철학자와 군중들이 바울을 데리고 가서 바울이 전하는 새 교가 무엇인지 듣고자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를 받고자 함이 아니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많은 열매를 얻지 못하였다.
. 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아덴은 철학과 문화가 고도로 발달된 곳이므로 새로운 철학과 지식을 듣고 말하는 것만 좋아하고 그 일에만 시간을 다 허비하여 실재적인 일을 아니하였다.
. 17:22-23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였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하고 어느 정도 그들을 인정하여 주면서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두루 다니다가 어떤 곳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다고 말하였다. 아덴 사람이 알지 못하고 섬기는 것을 바울이 그들에게 알게 해 주겠다고 말하였다. 바울이 논리 정연하게 말하므로 그들은 즉시 알지 못하는 신을 알 수 있을까 하여 열심히 들었을 것이다.
.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는 것이 아니다. 또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생명을 내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살펴 나가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주지 아니하시면 사람은 잠시라도 살 수가 없다고 바울이 증거 하였다.
.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모든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의 자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한 혈통이요, 한 사람의 자손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연령과 각 국가의 연한을 정해 놓으시고 그 예정하신 기한대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민족들이 거하는 영토와 국가들의 국경을 하나님이 정해 주셨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대로 각 민족이 자기 땅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 17: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과 자연 은총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려 하심이다(롬1:19-20 참조).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렘23:24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고 하셨다.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고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고 만물에 내재하여 계시며 만물을 주장하고 계신다.
.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인생과 만물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 안에 존재하고(골1:17 참조), 만물이 주로 말미암아 살며 활동하고 있다(롬11:36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손을 떼시면 즉시로 만물이 멸망하고 만다. 시인 중에 주전 3세기경의 길리기아 사람인 아라터스 시집에 이러한 문구(신의 소생)가 있다고 한다. 그의 소생이라 이 시에 신의 소생이라고 한 것은 자기네 신의 소생이라는 뜻으로 한 것인데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소생으로 말한 것이다.
. 17: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나님께 피조된 사실에서 그의 소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영이시므로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겨 만든 우상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은 모두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피조물이 아니다.
.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알지 못하던 시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시대는 이방 족속이 구속의 도리를 알지 못하던 시대이었다.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책망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에는 이방 사람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으나 지금은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방인들의 구원문제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4:12이 답변한다. 즉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이 각처에 하나님의 종을 보내어 "회개하라"고 전파하고 있고 바울 자신도 전파하는 중에 있으니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정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으로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믿어야 된다.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바울이 증거하여 주었다.
. 17:32-33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바울이 증거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 희롱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다음에 다시 듣겠다고 하는 사람도 생겼다. 다시 듣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 17: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아덴 전도의 결과는 몇 사람의 신자가 생긴 것뿐이다. 바울이 이곳에서 조리있게 전도를 잘하였으나 결과는 그저 비방하는 사람, 다시 한 번 더 듣겠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몇 사람뿐이었다. 그 가운데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다른 몇 사람이 있었다. 바울이 아덴 전도는 거의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보이고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마11:25, 고전1:18, 1:26-29 참조). 당시 아덴에는 지혜 있고 통달한 지식인들이 많았다. 철학을 전공하고 가장 새로 되는 일만 들음으로 교만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② 듣는 사람들이 인간적인 지식으로 복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인간의 지식이 아니고 모든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신령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육의 사람이 자기의 지식으로 인식하려고 하면 깨달을 수 없다.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들은 자기 지식에 맞춰서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 믿기가 힘이 든다. 성경 말씀은 무조건 믿어야 하는데 자기 지식에 맞춰서 믿으려고 하니 믿을 수가 없다. 사람의 지식은 물질에 대한 것이고, 성경은 영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 인간의 지식으로 성경을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예수를 믿지 못한다. 말세에는 인간의 모든 지식이 최고도로 발달하고(단12:4 참조) 믿는 사람이 점점 적어진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그 지식을 다 내어놓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믿으면 그 사람은 훌륭한 신자가 된다.
③ 바울이 전도할 때에 그들의 지식에 맞추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다른 곳에서는 성경을 강론하고 성경으로 증거했는데 여기에서는 시인(詩人)의 말을 인용하고 그들 이방인의 지식과 논리에 맞추어 증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에 가서 전도할 때에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하였다. 또 고전2:4-5에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하였다. 구원의 복음은 인간의 지식과 이성으로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방법은 언제나 실패한다. 오직 성령과 능력으로 그 사람의 영에게 전해야 성령이 그 마음을 열어 주고 그 영혼을 중생시켜 믿게 되고 구원의 길로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