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상
어쩌다가 내 나이 벌써 망팔(望八)을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다.
종착역을 향해 달리던 인생열차가 간이역에서 몸을 추스르는 그런 마음이다. 많이 산것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적게 산 것도 아닌 나이(年齡)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정년 퇴직하면, 지시받고 보고하는 그런일 없이
팔도강산 유람하며 내맘대로 살것이란 마음의 자유를 천 만번 더 그리워했다, 재직중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나라를위해 헌신하겠다는 공무원의 신조를 한 순간도 잊어본적 없었다.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암묵적 지향점을 향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과정에 부딪치는 수 많은 걸림돌을, 나는 디딤돌로 삼아 정진(精進)했다.
그때 나는 인생 2막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 생각했다. 가고 싶은곳 다 가보고, 맘 내키는일 다해보면서 산천경개(山川景槪)유람하며 건강이나 챙기는 그런 노후를 보내겠다는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는 했다.
은퇴후의 인생길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순진하다 못해 너무 어리석었다 는 것을 알게된 시점은, 사회진입 신고자에게 주는 허니문 기간을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긴 세월, 울타리안에 갇혀 있었으면 그랬을까 하며 위안(慰安)도 해봤다.
서울생활 40여년, 어느 한번도 내고향 청도를 잊지않았고 내가자란 임당리를 동경(憧憬)하는 마음 어느 한 순간도 내려놓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경상도의 토종 그 자체였다.
나는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고 자평(自評)했다. 무작정 상경할 때, 고속버스 차창밖에 스쳐지나가는 산들보다 내 마음이 더 무거웠는데, 내 차를 내손으로 운전하여 흙 한번 밟지않고 고향집 마당에 도착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았겠는가!
재직중에 재형저축으로 마련한 목돈으로 내집 지을땅을 진작에 사두었다. 생애 처음 내손으로 내집을 짓고서, 지붕 네곳에 풍경을 달았다. 동에는 새날의 아침해를 영접하고자, 서에는 황홀한 저녁노을 전송하고자, 남에는 봄바람을 마중하고자, 별중에 별 북두칠성이 있는 북에는 내 사는 소식 전하려고, 소리나는 종을 달았다. 매년 새해 첫시에 온누리에 울려퍼지는 보신각 종을 연상해서 그렇게 했다.
내가 와서 마당가에 심은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 앉아, 살아온 가치와 살아갈 보람을 심사숙고(深思熟考)했다. 재직시 나는 일을 찾아다녔고 없으면 만들어서 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업무 개선을 통해 내가 몸담은 조직을 지상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이 무척 강했다. 내 인생 황금기에 혼신을 바쳐 일구어 놓은 무용담(武勇談)을 구슬처럼 꿰어야 보배가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일어났다. 나의 재능과 능력으로 만든 수만가지 업적을 한점 흔적없이 없애기는 너무 아깝고 소중하고 위대했다는 것이 나름 애착(愛着)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의 존재가치가 평준화된 지금, 굳이 고관(高官)이거나 유명 인사들만 자서전을 남기는 그런 시대를 지나, 누구든 자신의 인생행로(人生行路)를 글로서 남긴다면, 본인에겐 역사가 될것이고 공직의 후배와 가문의 후손들에겐 귀감이 될것이며, 삶에 굳건한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지혜로운 일이다.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정착되고 확산되면 기록문화의 보고(寶庫)가 되리라!
그때부터 기록을, 내 삶에 절대 가치로 규정하고 내 자서전을 내 맘대로 썼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실타래 처럼 술술 풀려나왔다. 지난날의 기억과 추억을 되새겨 보는 일이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지금까지는 한가지라도 더 잊혀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바쁜 마음에 경황없이 써놓은 내 글에, 문학적 가치를 보태고 싶었다. 전문가로부터, 문단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비법(秘法)을 배워, 내 작품에 도입해 보자는 엄청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길을 찾았다.
사람의 일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하고 있는 일이라했다.
연금공단에 가는 길은, 이사 한 친정집에 가는 설레임의 길이다.
참 좋다. 친정 엄마의 자애(慈愛)로움이 날 반겨주니까!
첫댓글 좋은 출발을 잘 정리 했습니다. 가는 세월 잡을 수 없습니다. 도한 오는 세월도 막을 수 없습니다. 빛나는 세월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칭찬과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토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