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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빈시인방
 
 
 
카페 게시글
애송시모음 스크랩 어떤 마을 외 / 도종환
작은시인 추천 0 조회 18 15.09.23 16: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떤 마을 / 도종환

 

 

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 위 시는 2001년 <중학교> 국어 1 - 2 에 실린 시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교과서에 실린 시 - 2009년 이후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종례시간 / 도종환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거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 주며 가거라

쉴 곳 만들어 주는 나무들

한 번씩 안아주고 가거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 해주다 가거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가 좋아하는 짐승도 그려 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게 그러듯

과꽃 붓꽃에 입맞추다 가거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방안에 갇혀 있지 말고

잘 자란 볏잎 머리칼도 쓰다듬다 가고

송사리 피라미 너희 발 간지리거든

너희도 개울물 허리에 간지럼 먹이다 가거라

잠자리처럼 양팔 날개하여

고추밭에서 노을지는 하늘 쪽을 향하여

날아가다 가거라

 

 

 

 

 

수제비 / 도종환

 

 

둔내 장으로 멸치를 팔러 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미루나무 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얇은 냄비에선 곤두박질치며

물이 끓었다

동생들은 들마루 끝 까무룩 잠들고

1군 사령부 수송대 트럭들이

저녁 냇물 건져 차를 닦고 기름을 빼고

줄불 길게 밝히며

어머니 돌아오실

북쪽길 거슬러 달려가고 있었다

경기도 어딘가로 떠난 아버지는 소식 끊기고

이름 지을 수 없는 까마득함들을

뚝둑 떼어 넣으며 수제비를 끓였다

어둠이 하늘 끝자락 길게 끌어

허기처럼 몸을 덮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국물이 말갛게 우러나던 우리들의 기다림

함지박 가득 반짝이는 어둠을 이고

쓰러질 듯 문 들어설 어머니 마른 멸치 냄새가

부엌 바닥을 눅눅히 고이곤 하였다.

 

 

 

 

 

여백 / 도종환

 

 

언덕위에 줄 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말없이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 도종환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 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

 

 

 

 

 

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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