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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가슴시리게 푸르디푸른 오월이다.
5월 27일(수) 오후 5시, 5.18추모법회 장소인 지광김동수열사 추모비를 찾았다.
조선대교정은 학생들의 발랄함이 가득했다.
미대 뒷편 한적한 곳에 자리한 지광김동수열사 추모비.
김동수열사는 대학생 신분으로 지난 1980년 5월 27일 새벽녘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지키다 계엄군의 총탄에 스러졌다.
대불련 전남지부장으로 초파일 봉축행사를 준비하다 맞이한 5.18.
김동수열사는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하다 전남도청에서 이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해가셨다.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같소"
평소 열사가 즐겨쓰던 말이다.
날씨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의지와 원력과 열정으로 마지막까지 전부를 걸고 살아가신 분.
김동수열사를 만난건 1989년 대학에 입학해서였다.
삼수까지 해서 들어간 대학.
원각사청년회 활동을 통해 불교와 지중한 인연을 맺었다면, 대불련 활동은 개인의 수행을 넘어서 이웃과 세상을 보듬어안을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았다.
법회가 집회의 공간이었고, 찬불가보다 민중가요가 더 많이 불리워졌다.
그러다 선배들을 통해 지광김동수열사를 알게 되었다.
보살행을 실천해간 김동수열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좌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웃과 세상을 보듬어안는 일이 어찌 쉬웠겠는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고 갈등하고를 반복하면서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불자로서의 올바른 길은 과연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쉼없이 묻고 묻고 또 물었다.
그래도 그때 함께했던 대불련 선배들, 도반들, 후배들과의 지중한 인연은 26년의 지난한 세월을 살아내는데 큰 버팀목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불교를 만난게 첫번째 행운이었고, 대불련을 만난건 두번째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대불련 활동을 통해 만난 김동수열사는 자기수행과 사회적실천이 오롯이 하나임을 깨닫게 해준 분이다.
1년 365일 몇년동안 오직 대불련 활동이 전부로만 알고 살아온 시간들.
그 시간들이 쌓이고쌓여 지금 활동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니 <불교>와 <대불련>, 그리고 <김동수열사>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깊은 화두가 되어 내 삶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도 많았지만 세상사 모든게 공부 아닌게 없다.
공부로 여기면 버릴게 하나도 없다.
푸르른 오월, 해마다 김동수열사 추모제를 진행해왔다.
어느 해는 전국 대불련 법우들 500명이 넘게 모여 추모제를 진행할 때도 있었다.
얼굴 한번 뵌 적 없지만 김동수열사는 우리 후배들에게 큰 힘을 갖게 해준 소중한 분이다.
80년 5월 27일 새벽, 김동수 열사는 대불련 뺏지와 단주를 손목에 차고 계엄군의 총탄에 스러져갔다.
35년이 지난 5월 27일, 열사의 기일을 맞이해 열사의 추모비 앞에서 인연있는 분들을 모시고 <5.18민중항쟁 제35주년 추모법회>를 갖는다.
5월 27일, 박양희 선생님, 주하주 선생님의 노래가, 김희용 목사님의 추모시가, 그리고 행법스님의 애잔한 이야기가, 반가운 도반들과 곡차 한잔 나누는 정담이 함께할 것이다.
미리 가본 김동수열사 추모비는 의연하게 서있다.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같소"
열사의 음성이 들려오는듯 하다.
오월의 푸르름이 추모비 주변을 감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