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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질 – 진화론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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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율 의존 선택(frequency
dependent selection) 4
학자의 취향과 입장에 따라 정신병질(psychopathy), 사회병질(sociopath), 반사회성 인성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APD)라는 용어를 쓴다. 어떤 면에서 정신병질은 정신병질 평가표-개정판(Psychopathy Checklist-Revised, PCL-R)과 연결되어 있는 개념이고, 반사회성 인성 장애는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의 진단법과 연결되어 있다. 정신병질 개념은 유전적 요인을 중요시하고 사회병질 개념은 사회적 요인을 중요시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냥 두 용어를 동의어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세 개념은 약간씩 다르지만 비슷한 것을 뜻한다. 나는 이 글에서 정신병질이라는 용어만 쓸 생각이다.
정신병질의 핵심 특징은 매우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 지체 때문에 도덕적 판단 능력이 없는 경우, 정신병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 경우, 명백한 뇌 손상(예컨대 뇌 종양이나 뇌졸중)이나 약물 중독이 원인인 경우 등은 제외된다. 정신병질자는 다른 면에서는 멀쩡해 보이는데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보통 사람들과 매우 다르다. 정신병질자는 죄책감, 동정심 등을 전혀 또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싸가지 없는 자로 낙인 찍히면 살아가기 힘들다. 따라서 정신병질자에게는 자신의 진짜 성격을 숨길 강력한 동기가 있다. 동성과 성교를 했다는 이유로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이란 같은 나라에서 동성애를 연구했다면 별로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성애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성 경험 등을 털어 놓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정신병질 연구는 매우 까다롭다. 동성애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덜 차별 받고 덜 억압 받는 나라가 있다. 반면 정신병질자를 반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이미 감옥에 갇힌 기결수들을 주로 연구한다. 그들은 이미 낙인이 찍힌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성격을 숨길 이유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가석방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솔직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상습적으로 남을 속이는 것이 정신병질자의 습성이라는 점도 연구에 방해가 된다. 그들은 일반인에 비해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훨씬 적다.
열병이라는 개념은 현상학적 또는 증상론적 개념이다. 열이 난다는 현상 또는 증상에 초점을 둔 개념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열병 같은 개념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바이러스성 질환과 같은 병인론적(etiological, 원인론적) 개념을 쓰고 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정신병질(psychopathy) 개념은 열병처럼 현상학적 개념이다. 학자들이 아직 현상학적 개념에 만족하는 이유는 정신병질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병질의 원인이 밝혀진다면 결국 병인론적(정신병질을 적응이라고 보는 사람은 ‘원인론적’이라는 번역어를 선호할 수도 있겠다) 개념으로 바뀔 것이다.
체온이 올라가는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파헤쳐서 바이러스성 질환 같은 병인론적 개념들이 탄생했듯이 몹시 싸가지 없이 행동하게 된 원인들을 파헤쳐서 현재의 정신병질 개념을 대체할 병인론적 개념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체온을 높이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듯이 인간을 몹시 싸가지 없게 만드는 원인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진화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정신병질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떠오른 핵심 화두는 “정신병질은 적응(adaptation)인가?”라는 질문이다. 정신병질이 병리학적 현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들 중 일부가 오작동하여 정신병질이라는 현상이 생긴다고 믿는다. 반면 정신병질이 적응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일부 인간들은 그렇게 싸가지 없게 행동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믿는다.
남자는 고장 난 여자가 아니며 여자도 고장 난 남자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적응이다. 자궁이 없다고 남자에게 결함이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음경과 고환이 없다고 여자에게 결함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번식을 위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전략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정신병질자에게 동정심이 없다고 그것이 곧 고장을 뜻한다고 볼 수는 없다.
적응 가설과 고장 가설(병리학 가설)이 완전히 서로 상충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 발열의 경우 바이러스성 질환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암 때문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발열이라는 현상으로 귀결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고장 때문에 몹시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즉 두 가지 가설이 모두 참일 수도 있다.
적응 가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사람들은 넓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자들(사회생물학자들 또는 진화 심리학자들)이다. 1990년 대 이전에는 적응 가설을 제기한 사람이 없었던 듯하다. 적어도 그 이전에는 적응 가설이 학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전에 정신병질을 연구했던 사람들은 진화론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화론과 별로 상관 없이 정신병질을 연구했던 학자들의 생각 속에도 적응 가설의 씨앗이 있었다. 그들은 정신병질의 사례를 기술할 때 그들이 남을 등쳐 먹는 것에 능하다는 식으로 썼다. 그런 학자들의 사례 기술을 읽다 보면 정신병질자가 남을 등쳐 먹는 전략에 전문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런 학자들이 이론적 모델을 세울 때에는 사례 기술에서의 이런 통찰이 완전히 사장되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고장 가설들만 만들어냈다.
20세기에 학자들은 상식적 통찰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들은 “남자는 늑대다”, “계모는 자식을 덜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남자와 계모는 원래 그렇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자의 본성 또는 계모의 본성에 대한 이런 상식적 통찰은 문화 결정론과 상충된다. 이것이 문화 결정론에 사로잡혔던 학자들이 이런 상식적 통찰을 무시한 이유다.
반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상식적 통찰이 진화론의 논리와 부합한다는 점을 깨달았으며 이 상식적 통찰을 과학적 검증이 가능한 명료한 가설로 변신시켜서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설득력 있게 입증한 사례들도 꽤 있다.
남자 전략과 여자 전략 중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이것은 남녀의 비율에
달려 있다. 만약 여자가 많다면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번식에 유리하다.
반면 남자가 많다면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극히 예외적인 몇몇 종을
제외하고는 암컷과 수컷의 비율이 거의
비율 의존 선택은 암수 결정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여러 동물들 중에 싸가지 없는 전략을 취하는 동물들이 있다. 어떤 곤충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 굴을 판다. 그런데 그 종의 동물들 중에는 남이 파 놓은 굴을 빼앗는 전략을 취하는 것들도 있다. 이 때에도 비율 의존 선택이 작동한다. 자신이 굴을 파는 개체들이 아주 많고 남의 굴을 빼앗는 개체가 매우 적다고 하자. 그러면 빼앗는 전략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빼앗을 수 있는 굴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그 반대로 굴을 파는 개체들은 거의 없고 빼앗는 전략을 쓰는 개체는 아주 많다고 하자. 그러면 빼앗는 전략이 불리하다. 왜냐하면 빼앗을 수 있는 굴을 발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빼앗을 수 있는 굴을 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헤매는 동안 차라리 자신이 굴을 파는 것이 낫다. 또한 빼앗는 전략을 쓰는 개체가 많아지면 굴을 두고 서로 싸울 가능성도 커진다.
어떤 곤충의 경우 수컷들이 암컷에게 주기 위해 일종의 선물을 마련한다. 암컷은 이 선물을 먹고 그 대가로 수컷에게 짝짓기 기회를 제공한다. 수컷들은 이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어떤 수컷들은 암컷 흉내를 내서 다른 수컷들로부터 그 선물을 훔친다. 이 경우에도 비율이 중요하다. 도둑 전략을 쓰는 개체가 너무 많다면 도둑질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훔칠 수 있는 선물은 적은데 도둑들은 많기 때문이다.
정신병질의 적응 가설은 남의 굴을 빼앗거나 남의 선물을 훔치는 비열한 전략과 비슷한 것이 인간 사회에도 있다고 본다. 상당히 선량한 사람들이 다수라면 소수의 정신병질자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r/K 이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는 http://en.wikipedia.org/wiki/R/K_selection_theory를 참조하라. 극단적인 r 전략은 수 많은 자식을 낳아 놓고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류의 여러 종이 이런 전략을 취한다. 엄청난 수의 알을 낳아 놓고 그 중에 소수라도 번식할 때까지 살아 남기를 ‘바라는’ 것이다. 반면 극단적인 K 전략은 극히 적은 수의 자식을 낳아서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극단적인 K 전략에 가깝다. 동물계에는 극단적인 r 전략에서 극단적인 K 전략에 이르기까지 온갖 중단 전략들로 가득 차 있다. r 전략과 K 전략의 이분법이라기보다는 스펙트럼을 이룬다.
침팬지의 경우 전체적으로 보면 K 전략에 가깝다. 하지만 암컷과 수컷을 따로 살펴보면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암컷의 경우에는 영락 없는 K 전략이다. 암컷은 태아를 자궁 속에서 키우다가 태어난 이후에는 젖을 먹이면서 몇 년간 더 키운다. 젖을 뗀 이후에도 암컷은 몇 년 간 더 자식을 돌본다. 반면 수컷의 경우에는 r 전략에 가깝다. 침팬지 수컷이 하는 것이라고는 정자를 제공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인간 남자는 이런 면에서 침팬지와 매우 다르다. 인간은 결혼을 하며 남자도 자식 돌보기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인간 남자의 자식 돌보기는 인간 여자에 비하면 상당히 미약하지만 침팬지 수컷에 비하면 엄청나다. 인간의 경우에는 남자도 K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일부 진화 심리학자들은 정신병질이 r 전략에 전문화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r 전략이라고 부르는 대신 카사노바 전략이라고 부를 것이다.
과거에는 여자가 카사노바 전략을 취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분유도 유전자 검사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여자는 임신해서 출산을 해 놓고 자식의 유전적 아버지에게 자식 기르기를 완전히 떠넘길 수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그 남자의 자식임을 보여 준 다음에 자신은 자식을 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된다. 물론 그 남자도 자식 기르기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현대 사회에서는 남자도 충분히 혼자 자식을 키울 수 있다.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 남자는 카사노바 전략(r 전략)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대한 여러 명의 여자와 성교하는 것에 성공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자식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은 전혀 또는 거의 돌보지 않는다. 자식 돌보기를 할 시간에 다른 여자를 꼬시거나 강간한다.
카사노바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반 남자들보다 자식을 더 많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식에게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식이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현대 복지 사회와는 달리 원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없는 경우 아이의 생존률이 훨씬 낮다.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 여자가 카사노바 전략을 취한다면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식을 낳아서 어머니가 전혀 돌보지 않으면 살아 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자식의 유전적 아버지에게 자식 돌보기를 떠 넘길 수는 없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긴 하다. 여자가 자식을 낳아서 자신의 부모(또는 다른 친족)에게 자식 돌보기를 떠 넘기는 전략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별로 가망성은 없어 보인다.
만약 정신병질이 카사노바 전략이라면 여자의 경우에는 정신병질이 없거나 적을 것이다. 실제로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남자 정신병질자가 여자 정신병질자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이 사실 자체가 적응 가설을 완전히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적응일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동성애의 경우에도 남자가 더 많다.
카사노바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반 남자들보다 더 많이 임신시켜야 한다. 문제는 여자들이 쉽게 성교에 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자에게는 아무하고나 성교를 하지 않아야 할 진화론적 이유가 있다. 유부녀의 경우 남편이 아닌 남자와 성교를 하다가 남편에게 들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처녀(결혼하지 않는 여자)의 경우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성교를 하면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을 혼자 키울 위험이 있다.
쉽게 성교에 응하지 않는 여자와 성교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강간하면 된다. 물론 강간에는 보복의 위험이 따른다. 둘째, 자신이 여자를 매우 사랑한다고 여자가 믿도록 만들면 된다.
카사노바 전략을 취하기 위해서는 자식 사랑 메커니즘이 아예 없거나 미약해야 한다. 일반 남자들처럼 자식을 몹시 사랑하여 그 자식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카사노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정신병질자에게는 자식 사랑 메커니즘이 없어 보인다.
자신이 여자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여자가 믿도록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매우 사랑하는 것이다. 정신병질자의 낭만적 사랑(보통 사춘기 이후의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열정적 사랑으로 결혼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것 같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정신병질자에게는 낭만적 사랑이 없다고 믿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에 대한 이상적 기준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간은 성교가 아니다”라는 명제와 일맥 상통한다.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성교에 대한 상을 상정하고 있다면 강간이 성교일 수가 없다.
나는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는 도덕적 이상에 부합하도록 개념을 정의하는 것보다는 설명력이라는 기준으로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본다.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성기의 접합을 성교로 정의하면 강간도 성교에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사랑 개념을 정의하기에 따라 매우 피상적이고 심지어 사악해 보이는 것도 사랑에 포함시킬 수 있다. 사랑에 대한 이상적 기준을 세워놓고 “질투를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과학 연구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 낭만적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상대를 보고 싶어 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하고, 잘 해 주고 싶어하고, 애무와 성교를 하고 싶어하고, 애무와 성교를 허락하고 싶어하고, 상대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성교를 할 때에는 질투를 하는 강력한 상태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의하면 조류의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서로 깊이 사랑하게 되면 보통 1, 2년은 간다. 이런 기간은 여자의 임신 기간을 생각했을 때 진화론과 잘 부합한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결혼의 핵심은 남자가 자식 돌보기에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사랑에 빠져서 성교를 한 후에 2, 3 개월 후에 헤어진다면 남자가 자식을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긴 임신 기간이 지나도록 사랑이 지속되어야 한다.
반면 카사노바 전략의 경우에는 여자가 성교를 허락하여 임신을 할 때까지만 사랑하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이상 사랑하는 것은 부적응적이다. 여자를 임신시켰다면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기 위해 임신한 여자를 져버리는 것이 유리하다.
카사노바 전략을 취하는 남자는 여자가 임신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여러 가지 임신 징후를 살펴 보는 방법이 있다. 임신을 하면 입덧을 하고, 생리가 멈추며, 배가 불러온다. 태아는 대체로 기하 급수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임신 초기에는 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기술이 없던 시대에 배가 불러오는 것은 가장 강력한 증거다.
만약 정신병질이 카사노바 전략이라면 정신병질자는 여자가 임신 징후를 보이면 갑자기 사랑이 식을 것이다. 반면 일반 남자들은 임신 징후를 보이는 여자가 더 사랑스러워 보일 것이다. 일반 남자들의 경우, 평소에는 배 나온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남자도 자신의 아내의 배가 불쑥 나온 것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토하는 모습은 보통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지만 자신의 아내가 입덧하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자신의 아내 또는 애인이 임신 징후를 보일 때의 사랑의 변화에 대한 정신병질자와 일반 남자의 반응을 비교 연구한 사례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둘째, 여자와 주기적으로 성교를 하기 시작한 후 임신을 하기에 충분한 일정 기간(예컨대 2달 정도)이 지나면 사랑이 갑자기 식는 전략도 가능하다. 여자를 정복(성교 성공)하고 나면 갑자기 흥미를 잃는 남자들이 있다는 통설이 있는데 이것이 카사노바 전략일 지도 모른다.
남을 등쳐 먹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깡패 전략도 있을 수 있지만 거지 전략도 있을 수 있다. 깡패 전략은 두려움을 이용하는 반면 거지 전략은 동정심을 이용한다. 깡패 전략은 남을 겁주는 반면 거지 전략은 자신이 불쌍해 보이도록 한다.
지금까지 정신병질을 연구한 학자들은 (깡패 전략을 염두에 두었던, 정신병질이 고장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깡패 전략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 이유는 실제로 깡패 전략만 존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지 전략이 학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지 전략을 쓰는 정신병질자가 있다 하더라도 감옥에 갈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동정심을 유발해서 남을 등쳐 먹는 사람은 당하는 사람을 환장하게 하겠지만 감옥에 갈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가 주로 감옥에 갇힌 정신병질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거지 전략이 학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깡패 전략을 쓰려면 상대적으로 겁이 없어야 한다. 실제로 정신병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병질자는 별로 겁이 없다.
거지 전략을 쓰려면 동정심 유발에 능해야 한다. 『The Sociopath Next Door(Martha Stout)』에 거지 전략으로 보이는 사례가 나온다. 거기에 나오는 어떤 남자는 잘 울고, 우울해한다.
『진단명 사이코패스』 같은 책을 보면 정신병질자가
속임수에 능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을 아직 접해 보지 못했다. 만약 정신병질이 남을 등쳐 먹는 전략이라면 속임수에 능하도록 태어났다고 예측할 수 있다. 즉 정신병질자는 뇌의 더 많은 부분을 속임수 계산에 투자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정신병질 연구자들 중 대부분은 정신병질자가
일반인에 비해 속임수에 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과학적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례들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엄격한 통계학을 적용하지 않으면 상황을 오판할 수 있다.
정신병질자가 일반인에 비해 속임수에 능하지
않다고 가정해 보자. 속임수에 능한 정신병질자도 남을
등쳐 먹으려고 하고 속임수에 능하지 않은 정신병질자도 남을 등쳐 먹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주로 성공하는 쪽은 속임수에 능한 자들이다. 그리고 주로
관심을 받는 쪽도 속임수에 능해서 남을 성공적으로 등쳐 먹는 쪽이다. 엉터리 예언자가 예언을 하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 하지만 주로 맞는 경우에 관심이 집중되어서 사람들은 그 예언자의 예언에
대체로 맞는다고 착각한다. 정신병질자가 일반인에 비해 더 매력적이라고 믿는 학자들도 많은데 이것도 비슷한
오류 때문에 만들어진 환상일 수 있다. 수 많은 여자를 울린 제비(매력적이고
속임수에 능한 남자)는 뉴스에 타지만 여자 꼬시기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제비가 뉴스에 나올 리는
없다.
만약 과학적 연구를 통해 정신병질자가 일반인에
비해 속임수에 능하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적응 가설과 부합한다. 하지만 적응 가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식의 설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질자가
속임수에 능한 이유는 선천적으로 그런 식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병질자의 습성상
늘 속임수를 쓰고 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연습을 많이 해서 속임수에 능한 것일 수도 있다.
적응 가설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정신병질자가 남들을 등쳐 먹는 것에 전문화된 사람들이라고 본다. 하지만 적응 가설을 옹호한다고 해서 반드시 정신병질 유전자가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증거가 쌓이기 전까지는 세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 두어야 한다.
첫째, 인간의 성별 결정처럼 정신병질 여부가 거의 100%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수정란의 염색체를 살펴보고 그 수정란이 나중에 남자가 될 지 여자가 될 지 여부를 사실상 100%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처럼 과학이 충분히 발달하면 수정란의 염색체만 살펴보고 그 사람이 나중에 정신병질자가 될 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악어의 성별 결정처럼 정신병질 여부는 100%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셋째, 첫째 방식과 둘째 방식이 혼합되는 복잡한 상황도 가능하다. 한 가지 가능성만 살펴 보자. 정신병질 유전자가 있긴 하지만 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100% 정신병질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유전자가 없는 사람이 정신병질자가 될 가능성은 사실상 0%인 반면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정신병질자가 될 가능성은 50% 정도다. 환경에 따라 50%는 정신병질자가 되고 50%는 일반인이 된다.
현대 도시는 익명 사회다. 게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 가기도 쉽다. 매우 싸가지 없이 행동하다가도 다른 도시로 이사 가면 평판이 무효화된다. 반면 우리 조상들이 진화한 사냥-채집 사회는 투명 사회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의 악행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 사냥-채집 사회는 도시 사회보다 정신병질자에게 매우 불리하다. 인간이 주로 사냥-채집 사회에서 진화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통 침팬지(common chimpanzee)의 경우 수컷이 다른 무리로 이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컷 침팬지들은 다른 무리의 수컷 침팬지가 혼자 있어서 쉽게 죽일 수 있으면 의도적으로 죽인다. 만약 인간의 조상들의 경우에도 그랬다면 정신병질자에게는 더더욱 불리했을 것이다.
정신병질이 도시가 생긴 이후로 진화했다는 대담한 가설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은 정신병질이 진화하기에는 너무나 짧아 보인다. 만약 정신병질이 최근에 진화했다면 도시 사회를 경험한 적이 없는 원시 부족들 사이에는 정신병질자가 없거나 적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