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주제> 증언(證言)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春川기계공고 교사)
도시 춘천 동녘에 대룡산이 길게 누워있다.
예전부터 들은 얘기로는 험해 보이기는 진병산이지만 등정하기는 쉽고, 길게 누워 평온해 보이지만 막상 오르려면 힘들다는 대룡산이 가리산에서 분가해 힘차게 달린다.
지난 주말이었다. 정오 쯤 대룡산 느랏재를 넘어 모처럼 산 증인과의 뜨거운 해후는 잊을 수가 없다. 대룡산을 넘나들 때면 길옆에 풍상우로에 젖은 이정표가 행인의 눈길을 끈다. 흰 페인트로 대충 흘려 쓴 안내판 둥지-. 글씨 아래 화살표로 방향까지 그려 아랫마을의 궁금증을 더해준다.
문화는 여유로울 때 잉태된다. 애마를 길옆에 주차시키고 먼 곳의 그리움을 해소라도 하듯 가파른 능선을 따라 발길을 옮긴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나서였다. 심산유곡으로 노란 개다래가 조롱조롱 덤불을 이루고, 만산홍엽이 절정에 달해 붉게 타 내리던 계곡이 부르르 몸을 떨며 이방인을 맞이하였다.
대낮인데도 울창한 숲으로 적막했다. 우거진 잡목 사이로 산짐승 소리가 바람소리와 묘하게 어우러져 엄습해 왔다. 가을은 찬란하지만 어느 동양화가는 곱고 화려해서 오히려 더 슬프고 쓸쓸하다고 갈파했다.
황홀감보다 엄습해 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찾아가서니 노파 한분이 들깨를 수확하고, 낡은 토담집 한 채가 비스듬히 노파와 벗하며 졸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손이 궁금해 둥지를 찾아 왔노라고 했더니 노파는 다시 아래 마을로 눈길을 준다. 입구에 선연한 십자가! 이끼 낀 통나무 관을 통해 흐르는 샘물로 우선 목을 축였다.
인적이 뜸한 산속에 들깨 터는 소리가 부서지고, 무서리가 내렸는지 호박 알몸을 가려주던 잎들이 서걱거리며 뒤척인다. 팔순 노파의 증언-. 고인돌처럼 묵직한 전설들을 하나씩 들춰내면서 어느새 둥지 속으로 나는 깊이 침잠하고 말았다.
한 때 백 여 호가 넘던 마을이 화전정리로 모두 이주해 떠나고 혼자 산속을 지키며 살아오신 팔순 노파는 터줏대감으로 자부심 또한 대단하셨다. 소시적에 작은 산을 훌훌 타넘어 다니시며 고사리, 산나물을 채취하셨다는 노파는 최후의 산사람이셨다.
할머니 손끝을 따라 아무리 둘러봐도 전혀 밭을 일굴 터전이 아닌데, 당시 계단식 화전밭이 한창일 때 이 마을에서 최고가는 부자였다고 털어놓으신다. 당시 이 심산유곡에는 그저 토끼길 만한 길로 곡식을 머리에 이고 새벽이면 오십 리가 넘는 읍내까지 단숨에 가서 곡식을 팔던 추억들을 접할 땐 축지법이라도 쓴 것일까 의아했다.
할머님은 다 쓰러져가는 폐가로 눈을 돌리셨다. 곤히 잠들어 있는 전설을 일깨우신다. 그 집에 살던 끼 있는 안주인은 새우젓 장사와 눈이 맞아 지아비와 자식을 팽개친 채 팔자 고쳐 달아나자, 기다리던 남편은 화전밭 불속으로 뛰어들고, 급기야 자녀들마저 도회지로 뛰쳐나가 풍비박산이 되었다는 증언이다. 무슨 끼냐고 했더니 늘 구찌뻬니에 분을 하얗게 찍어 바르고, 짧은 적삼에 터질 듯한 젖가슴을 처매지도 않고 늘 앞산만 바라보던 화냥년이라고 일갈하신다. 사위를 돌아본다. 워낙 깊은 두메라 한국동란 때도 중공군들이 그냥 통과한 곳이라고 귀엣말처럼 일러주신다.
할머니는 안셈이 모처럼 터지셨나보다. 비탈길에 웅크리고 있던 너럭바위 아래 살던 두 내외로 화제를 이어가신다. 어찌나 남정네가 술만 들어가면 여편네를 장작 패듯 패대는지, 매에 못 이겨 결국 느랏재 고개 중턱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핏대를 세우시는 할머니-. 남편 역시 다음날 술 먹고 어디론가 증발해 돼지 먹이를 한달을 주었다는 할머니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놈의 술이 웬수라고 치를 떠셨다.
다른 어느 산골보다 부촌이라 늘 박물장수가 뻔질나게 찾아와 묵어가던 곳이며, 잣을 수확할 때면 동네 처녀 총각들이 몰려와 수십 가마씩 따며 밤 새워 희희덕 거리던 소리가 지금도 앞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고 회상에 젖는 할머니.
여기서 몇 마장 가면 작은 학교도 있어 가을 운동회 때면 마을에서 도야지를 잡고 메밀국수를 눌러 마을 잔치를 성대히 했단다. 가래떡을 빼다가 명절이면 토종꿀에 찍어 대접하고, 다식을 만드는데 재료가 모자라 먼 곳까지 가서 다식판을 얻어 왔다는 대목에선 신바람이 가미되어 목소리마저 춤을 추었다.
증언이 끝나면 다시 깨를 토닥이신다. 까맣게 영근 알들이 전설처럼 또르르 쏟아진다. 털면서 할머니는 예전엔 계곡물이 많아 산림간수들이 뻔질나게 몰려와 천렵을 했고, 그 때마다 우리 막장이 동이 났다고 으스대시는 할머니는 서둘러 큰 애 출산 얘기가 한창이셨다. 앞산 민둥산에서 길들인다고 코뚜레를 잡고 앞서 고랑을 타다가 갑자기 산기를 느껴 결국 도중에서 보가 터졌다며 미련한 게 인간이라고 산이 울릴 정도로 하회탈처럼 깔깔 대시던 할머니시다.
앞산 낙엽송 그림자가 도깨비처럼 길어질 때, 취해 있던 자신을 추스리며 일어났다. 빈손으로 와서 죄스럽다고 했더니, 도시에 거하는 아들이 수시로 용용거리를 사온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삭막하던 대룡산 계곡이 갑자기 할머니 증언으로 바위 하나 언덕 하나가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그저 그리운 것이 떠난 사람들이라고 중얼거리시던 할머니는 지금도 눈만 오면 가파른 고갯길을 쓸어내리신단다. 기다림이다. 시내에서 막일을 하는 아들이 허기진 기다림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며칠 상간으로 찾는다는 귀뜸이다.
바람이 분다. 곡풍이다. 생소하던 마을이 할머니의 증언으로 금방 쪄놓은 고구마처럼 따끈따끈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가고 노파마저 대룡산을 떠나면 화전 마을의 추억들은 낙엽과 함께 천년만년 잠들다 스러질 것이다.
삭정이처럼 사그라 드는 화전마을의 편린들. 천수를 누리시라고 허리 굽혀 인사하고 오른 발길이 허허롭다. 살다가 사라진 생의 골짜기는 수천 만 년 후면 집터마저 분간이 어렵고, 토담집에 있던 깨진 사기그릇들은 퍼즐처럼 맞추며 지난 시절을 추정하리라. 화전 밭에 불 싸지르다가 불귀객이 된 남정네의 혼백은 어느 구천을 떠돌까? 오르는 고갯길엔 산까치가 유난히 울어댄다. 짧은 인생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주신 할머니-.정상에서 다시 굽어본 화전민 동네는 할머니가 피워낸 파아란 연기 한줄기만이 힘겹게 세월을 밀쳐내고 있었다.(끝)
* 용용거리-주전부리감,
* 이 글은 한국작가(2009)에 게재된 작품임
* 이 글은 월간지 전원생활(농민신문사) 8월호에 게재됨(지은이-德田)
첫댓글 같은 시절에 태어나서 그런지 쏟아내는 글의 단어들이 마음에 쏙쏙 들어오며 어떻게 많은 상항을 잊지 않고 찾아 내나 감탄이며, 그것은 많은 책을 읽고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매진한 노력의 수확이라 생각되오. 요즘은 덕전의 글을 버릇처럼 온나인 사이트에서 기웃거려 졌소 ,고맙소.
ㅎㅎ 그래요. 한시대를 헤엄쳐온 우리들 절대빈곤시대를 넘어 이제 살만한데 나이는 또다시 줄행랑을 치네요. 제 수필집 어머니의 빈손이란 책을 받으셨는지요. ㅎㅎ 감사
보내 .주웠어요 . 아-유 고마워요. 사이트에 보니 출판 기념행사 사진이
있었어요 .
"어머니의 빈손" 빨리 받고 싶어요 .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