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唐書 本紀 卷二 本紀第二 太宗皇帝 李世民 貞觀三年
八月己巳朔,日有食之。丁亥,李靖為定襄道行軍大總管,以伐突厥。九月丁巳,華州刺史柴紹為勝州道行軍總管,以伐突厥。十一月庚申,幷州都督李世勣為通漠道行軍總管,華州刺史柴紹為金河道行軍總管,任城郡王道宗為大同道行軍總管,幽州都督衞孝節為恆安道行軍總管,營州都督薛萬淑為暢武道行軍總管,以伐突厥。
[신당서 본기 권2 태종황제 리세민 정관 3년]
8월 기사 삭, 일식이 있었다. 정해, 리정을 정양도행군대총관으로 돌궐을 치게했다. 9월 정사, 화주차사 채소를 승주도행군총관으로 삼고 돌궐을 벌하였다. 11월 경신, 병주도독 리세적을 통막도행군총관, 화주차사 채소를 금하도행군총관, 림성군 왕 도종을 대동도 행군총관, 유주도독 위효절을 항안도 행군총관, 영주도독 설만숙을 창무도행군총관으로 삼고 돌궐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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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 本紀 卷三 本紀第三 太宗 李世民 下 貞觀十五年
十一月壬戌,廢鄉長。壬申,還京師。癸酉,薛延陁以同羅、僕骨、迴紇、靺鞨、霫之眾度漠,屯于白道川。命營州都督張儉統所部兵壓其東境;兵部尚書李勣為朔方行軍總管,右衞大將軍李大亮為靈州道行軍總管,涼州都督李襲譽為涼州道行軍總管,分道以禦之。
[구당서 본기 권3 본기3 태종 리세민 하 정관 15년]
11월 임술, 향장을 폐하였다. 임신 경사로 돌아왔다.
계유, 설연타가 동라, 복골, 회흘, 말갈, 습의 무리로 사막을 건너와 백도천에 주둔했다. 영주도독 장험에게 군대를 이끌고 그 동쪽경계를 막게 하였으며 병부상서 리적을 삭방행군총관, 우위대장군 리대량을 령주도행군총관으로, 량주도독 리습예를 량주도행군총관으로 명하고, 길을 나누어 막게 했다.
十二月戊子朔,至自洛陽宮。甲辰,李勣及薛延陁戰于諾真水,大破之,斬首三千餘級,獲馬萬五千匹,薛延陁跳身而遁。勣旋破突厥思結於五臺縣,虜其男女千餘口,獲羊馬稱是。
12월 무자 삭, 락양궁으로부터 돌아왔다. 갑진, 리적이 설연타를 약진수에서 대파하고, 3천급을 베었으며, 말 1만 5천필을 빼앗자 설연타는 도망갔다. 적이 돌아가 돌궐 사결을 오대현에서 깨뜨리고, 그 남녀 1천구를 포로로 잡고, 양과 말을 빼앗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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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 本紀 卷四 本紀第四 高宗 李治 上 永徽六年
三月,營州都督程名振破高麗於貴端水。嘉州辛道讓妻一產四男。壬戌,昭儀武氏著內訓一篇。
夏五月癸未,命左屯衞大將軍、盧國公程知節等五將軍帥師出葱山道以討賀魯。黃門侍郎、潁川郡公韓瑗為侍中,中書侍郎、南陽男來濟為中書令。兼吏部尚書、河東縣男柳奭貶遂州刺史。
六月,大食國遣使朝貢。
[구당서 본기 권4 본기4 고종 리치 상 영휘 6년]
3월 영주도독 정명진이 귀단수에서 고려를 대파하였다. 가주 신도양의 첩이 아들을 네 아들을 낳았다. 여름 5월 계미 좌둔위대장군, 로국공 정지절등 다섯 장군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총산도로 가서 하로를 벌하게 하였다. 황문시랑 영천군공 한원을 시중, 중서시랑, 남양의 사람 래제를 중서령으로 임명했으며, 겸 리부상서, 하동현 사람 류석폄을 수주차사에 제수하였다. 6월, 대식국에서 사신을 보내와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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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 本紀 卷五 本紀第五 高宗 李治 下 調露元年
六月辛亥,制大赦天下,改儀鳳四年為調露元年。秋七月己卯朔,詔以今年冬至有事嵩岳,禮官學士詳定儀注。八月丁巳,侍中郝處俊、左庶子高智周、黃門侍郎崔知溫、給事中劉景先兼脩國史。九月壬午,吏部侍郎裴行儉討西突厥,擒其十姓可汗阿史那都支及別帥李遮匐以歸。冬十月,單于大都護府突厥阿史德溫傅及奉職二部相率反叛,立阿史那泥熟匐為可汗,二十四州首領並叛。遣單于大都護長史蕭嗣業,將軍花大智、李景嘉等討之。與突厥戰,為賊所敗。嗣業配流桂州。壬子,令將軍曹懷舜率兵往恆州守井陘,崔獻往絳州守龍門,以備突厥。庚申,前詔封嵩山,宜停。癸亥,吐蕃文成公主遣其大臣論塞調傍來告喪,請和親,不許。遣郎將宋令文使吐蕃,會贊普之葬。
[구당서 본기 권5 본기5 고종 리치 하 조로원년]
6월 신해, 천하에 칙서을 만들어 내리고, 의봉4년을 조로원년으로 한다 하였다. 가을 7월 기묘 삭, 금년 동지에 숭악에 거둥하여 제를 지낸다고 조서를 내리고, 례관학사에게 의례를 상세하계 준비하도록 하였다. 8월, 정사, 시중 학처준, 좌서자 고지주, 황문시랑에 최지온, 급사중 류경선을 수국사를 겸하게 하였다. 겨울 10월, 선우대도호부의 돌궐 아사덕온부가 2개 부와 서로 다투고는 아사나 니숙복을 가한으로 세우니, 24주의 수령이 함께 반란하였다. 선우대도호장수 소사업, 장군 화대지 리경가 등을 보내 벌하게 하였는데 돌궐과의 전투에서서 패하여, 사업은 桂州로 유배를 갔다. 임자, 장군 조회순에게 군대를 이끌고 긍주로 가게하여 경징을 막게하고, 최헌을 강주로 보내 용문을 지키도록 하여 돌궐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경신, 숭산에 행차하니 조회를 중지하도록 하였다. 계해, 토번의 문성공주가 변방국경으로 대신을 보내 국상을 고하고 화친을 청했으나 불허하였다. 랑장 송령문을 토번에 사신으로 보내고, 찬포의 장례에 참석하게 했다.
十一月戊寅朔,左庶子、同三品高智周罷知政事。癸未,以吏部侍郎裴行儉為禮部尚書,賞擒都支、遮匐之功也。甲辰,裴行儉為定襄道大總管,與營州都督周道務等兵十八萬,并西軍程務挺、東軍李文暕等,總三十萬以討突厥。甲寅,臨軒試應岳牧舉人。
11월 무인 삭, 좌서자, 동 3품 고지주가 지정사에서 파직했다. 계미, 이부시랑 배행검이 도지와 저복을 사로잡은 공으로 례부상서로 임명했다. 갑진 배행검을 정양도대총관으로 삼고 영주도독 주도부등에게 10만의 병사를 주고, 또 서군에 정무정, 리문간등을 동군으로 하여 총 30만으로 돌궐을 공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