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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먼저 꿈과 비전을 가진 선생님들이 되십시오!”
+ 본문 : 창 세 기 37장 5절 - 11절 (구약성경 56쪽)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아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기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을 부르면서, 조국 통일의 큰 꿈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두 번째 시집 "꿈을 비는 마음" 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소?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 바다로 서해 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 펄떡 뛰면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이외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시집 후기에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낙천가로 태어난 모양입니다.
나는 비관할 줄 모릅니다. 수염까지 희끗희끗해 가는 나이에 아직도 어린애 같은 꿈을 곧잘 꿉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그의 꿈이었던 남북통일을 위해서서라면, 기꺼이 고난을 받기를 자원하였고,
그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품은 소년처럼,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행복하게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한 철도회사에서 두 사람이 도랑 파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도랑만 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랑을 파기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전날 밤에 수십 년 동안 도랑 파는 일만 하던,
그 선배가 리무진을 타고 온 회사 사장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사장님 리무진에서 내린 사람이 선배님 맞습니까?"
"맞네! 사장과 나는 오랜 친구일세. 우리는 똑같이 오래 전에 도랑 파는 일을 같이 시작했다네.
친구인 사장은 도랑을 파면서도 꿈이 분명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늘 노력하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애를 썼으나 나는 단지 돈을 쓰기보다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도랑 파는데만 열심히 했어.
세월이 지나 꿈을 가지고 노력한 친구는 승진해서 사장이 되었고, 나는 지금도 도랑을 파고 있다네."
똑 같은 시작했지만, 꿈과 희망을 갖고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비록 살아있어도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현재만 살아가는 사람은 너무나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를 초월하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현재보다 더 큰 꿈을 가진 사람이고, 그 비전에 의해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그 무엇인가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넘어선 것이라고 해도, 앞만 보며 전력질주 하는 삶은,
언제인가 자신에게 그 꿈은 성취되고, 손에 쥘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와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오늘만을 위해 움직입니다. 내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일에 대한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를 초월한 삶을 살아보려고 전혀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겐 내일이 가져다 줄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생각지도 않습니다. 단지 현재에 만족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의 생애를 변화시킬 수 있는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런 꿈에 사로잡혀 사십시오.
그래야 삶과 일터에서 열정이 솟아납니다. 자녀들에게도 그런 꿈이 어떤 것인지를 자꾸 말해 줍니다.
이렇게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현재를 살아도 미래에 닿아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돈을 벌어도 왜 돈을 버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며, 미래를 향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은 꿈을 꾼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얼마나 생생하게 꿈을 꾸었는지, 요셉은 그 꿈을 생생하게 이야기 할 만큼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꿈과 비전이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생생하게 우리 삶에 자리 잡는 것이어야 합니다.
더욱이 이 꿈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예언적인 꿈이었습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비전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었고, 그 꿈에 따라 움직였던 꿈쟁이, 꿈꾸는 자였습니다.
바로 이 꿈쟁이 요셉을 그의 형들도 인정했습니다. 요셉을 보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3년 여름, 유치부와 아동부는 여름성경학교를 하게 되고,
우리 중고등부와 청년회는 여름수련회를 하게 됩니다. 꿈과 비전을 심는 특별 여름행사입니다.
바로 이 특별여름 행사인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려면,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교역자들과 우리 선생님들이, 먼저 꿈과 비전을 가진 꿈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명자 예배를 통해서 꿈쟁이 요셉을 통해서, 비전과 꿈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가지도록 기도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꿈을 주실 지 기대하며 기도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늘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다른 교회에 비해 젊습니다.
물론 우리교회에 나이 드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분들도 생각과 마음이 젊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젊다면 그 사람은 젊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이와 상관없이 늘 젊은 생각, 젊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더 큰 꿈을 가지십시오.
우리 모두 나이 탓하지 맙시다. 배운 것 따지지 맙시다. 가진 재물과 권세 같은 것도 따지지 맙시다.
요셉도 아무 것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에 의해서 종으로 팔려가면서도,
성실하게 섬겼던 주인 보디발 장군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은혜를 베푼 사람이 배신을 했어도, 그런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이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요셉에게는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환경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꿈입니다. 오늘 우리 해남중앙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이 꿈이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이라는 현재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하는 비전, 내일이라는 미래가 보장되는 꿈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비전이 있으면, 이 비전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의 강함은 그에게 하늘 비전과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아멘!
사도 바울에게는 모든 교회를 향한 비전, 각 교회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 비전 때문에 그는 모든 위험과 고통과 억눌림에서 언제나 싱싱하게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현재를 넘어서는, 미래의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워집니다. 그래야 내 일터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꿈을 갖고 살다보면, 요셉처럼 생각지도 않은 고난을 당할 수도 있게 됩니다.
꿈과 비젼을 가지고 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꿈과 비전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네가 가진 그 꿈이 어떻게 되는 지 두고 보자.’ 하고 말하는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내가 가진 꿈을 이루어 가는 일에 반드시 걸림돌이 생깁니다. 내 꿈을 허물려고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요셉의 꿈은 결코 깨지지 않습니다. 도우미를 보냅니다. 꿈쟁이 요셉의 도우미는,
그의 형 르으벤이었습니다. 르으벤이 말합니다.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꿈은 결코 깨어지지 않습니다.
꿈쟁이들은 꿈을 따라 살다가 걸림돌 때문에, 고난 때문에, 마음의 상처 때문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고난과 실패와 좌절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꿈과 비전을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이 요셉의 인생의 끝이었습니까?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창세기 37장까지만 읽는다면,
우린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 꿈대로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 형제들과 부모까지 요셉에게 절한다더니, 꿈대로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은, 그의 꿈을 이루기 원하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고,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용기도 하나님께서 주신 용기였습니다.
그 일로 성 추행범이라는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감옥에 갇힌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관원장이 은혜를 입고도 잠시 요셉을 잊은 것도, 만사에 때를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고, 옥살이를 하는 고난의 삶이,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의 인생의 마지막도, 전부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준 꿈과 비전, 요셉이 하나님을 위해서 꾼 꿈과 비전이 거기까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종으로 팔려 가고, 옥살이를 하는 것은 꿈과 비전 성취의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은 그 고난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일 뿐이었습니다.
그걸 안 요셉이기에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그가 가진 꿈과 비전성취를 기쁨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꿈과 비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가 발견한 꿈과 비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확장되어 갑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정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더 나은 것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맞부딪침일 뿐입니다. 여러분! 그것 때문에 꿈을 버리면 안 됩니다.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꿈과 비전의 성취가 있음을 믿기 바랍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설적인 인물 만델라는, 27년 동안 정치범으로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온 국민들의 환호 속에 마침내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만델라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27년의 감옥 생활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27년간 매일 내일 나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가면, 나는 나를 감옥에 넣은 백인들을 절대로 복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런 꿈이 그에게 있었기에, 27년간의 억울한 감옥생활 중에도 그의 꿈은 결코 시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서기 겸 ‘동화담당자’ 였습니다.
동화책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책을 보고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 내내 꿈을 꾸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꾼 그 꿈들은 동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아무런 꿈도 없는 저 시골교회의 아이들을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꿈을 꿉니다. 아마 제 꿈을 여러분 앞에 다 펼쳐 놓으면,
여러분은 저의 꿈 이야기를 듣고 ‘김대용목사는 천 년 만 년 살려는가보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날마다 우리교회가 확장되어져 가는 꿈을 꿉니다. 기도 제단에 엎드렸을 때도 꿈을 꿉니다.
중보기도실에 엎드려 있는 기도 시간에도, 저만의 골방기도실에 엎드려 있으면서도 저는 꿈을 꿉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지금 이렇게 설교를 하면서도 저는 꿈을 꿉니다.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지금 우리교회 주변의 빈 땅들을 보면서도 저는 꿈을 꿉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분은 ‘우리 목사님은 일 저지를 궁리만 하고 일만 저지른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일을 저지르면 거기에는 고생이 있지만, 그건 꿈이기에 나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날마다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한 꿈을 꿉니다.
여러분을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분은 힘들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진짜 힘들게 했다면 짜증을 부렸을텐데, 행복해 하는 것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날마다 우리 지역에 대한 꿈을 꿉니다. 제 아내는 그런 나를 여기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저는 이 땅의 한 영혼이라도 건져내기 위한 일이라면, 정말 나는 미치고 싶습니다.
저는 날마다 저의 두 딸과 아들에 대한 꿈을 꿉니다. 이젠 손자들에 대한 꿈까지 꿉니다.
제가 꿈 이야기를 하면, 그런 꿈쟁이 나를 보고 제 아이들은 너무 기대가 큰 것 아니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아이들은 이 아빠와 함께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다닐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아이들에 대한 나의 꿈과 비전은 인간적인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꿈과 비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선생님들! 2023년, 아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면 언제 어디서라도 같이 꿈을 꾸십시오.
요셉처럼 그 가지가 담을 넘는 꿈! 함께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다닐 꿈과 비전 이야기 말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꿈과 비전은 인간적인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꿈과 비전임을 믿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숨과 함께 넋두리 같은 절망적인 말은 절대로 하지 맙시다.
이 꿈쟁이 목사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꿈을 꿉시다. 늘 새로운 꿈과 비전을 잉태합시다.
교회학교에서, 셀 목장에서, 여전도회에서, 남선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전도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이런저런 사역하면서도 꿈을 꿉시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꿈 이야기를 합시다.
여러분! 꿈이 있는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꿈을 반드시 성취시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 그의 꿈대로 담을 넘어 그 가지가 뻗어나갔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 우리교회 교사들의 꿈대로! 우리 교회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그리고 우리들의 가족들! 우리들의 자녀들이! 그리고 우리들의 생업이 뻗어나가고,
특별히 우리 유치부와 아동부의 여름성경학교! 우리 중고등부와 청년회의 여름수련회!
우리 교사들도! 아이들도! 학생들도! 청년들도! 함께 꿈을 꾸는 멋진 시간들이 되어서,
꿈이 성취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