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접견에서 처음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건가 싶었죠. 이런 일일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신문으로 자세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졌습니다. 그저께 티비에서 용산 철거민들의 농성 소식을 볼 때만 해도 솔직히 무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일이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우선 몇달전 담당 검사와의 조사가 생각나더군요. 그분은 집시법 위반에 대한 물리력 사용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법과 국가권력과 간접민주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그걸 의문시하고 따르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가 올 것이란 얘기였죠. 뭐, 상대방이 그러는한 저도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 저와 다르다는 이유로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공권력의 불길이 사람들을 집어삼킨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이 자신의 말을 믿었다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싶습니다. 저는 여기서 '법은 우릴 지켜주어요~'하는 노래를 듣는게 일과지만, 이게 꼭 그렇지 않다는걸, 혹은 그 '우리'라는게 생각과 조금 다른다는걸 모두들 알지 싶습니다.
이번 일을 두고도 그 '법치'라는 말이 만리장성 밑에 사람을 묻던 그 시절처럼 끊임없이 옹알대고 있는데, 우선 그 사람들이 왜 골리앗에 올라 화염병을 들 수밖에 없었나를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성격파탄자라서 '도심에서 테러'를 일으키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을까요? 평생 그 자리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는 법의 테두리에서 빠져나와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테두리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절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고, 겨울에 강제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깨고, 하루만에 위험물질이 가득한 곳에 경찰력을 대거 투입하는게 그토록 강조하던 법과 원칙이라면, 적극적으로 지키지 않으렵니다.
그들에게 무기를 들게하고 사지로 내몬건 바로 그 법과 원칙의 수호자들입니다. 전철연이 예행연습을 했는지, 화염병이 물대포를 맞고 떨어졌는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위협받자 가느다란 줄 위에 올라섰습니다. 지지받지 못하더라도, 내려와봐야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선 살 곳이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법과 원칙은 그런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립니다. 확인사살입니다. 호흡기를 뗀 거죠.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고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못했을 겁니다. 존중과 배려에 바탕한 대화와 소통은 인간 사회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게 없으니 사람들이 답답할 수밖에요. 법과 원칙의 강조가 이젠 투정으로만 들립니다. 대화같은거 이해도 안가고 그저 모두 같은 뜻으로 오직 한 가지만 보고 일사분란하게 달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럼 전국민에게 로보트 시술을 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삽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봅시다. 우린 개미도 아니고 벌도 아니에요.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게 최소한 존재할 수 있게끔하는 기본요건을 얘기하는 겁니다. 최소한 상대방을 인정하고 가야죠. 인정될 수 있을만큼의 자유로 보장되어야 하고요. 상대방의 생각을 박멸하고 정화할 박테리아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랑 공존이 될까요. 뭐, 공존할 생각이 없는 듯도 보이지만.
얼마전 그리스 시위를 보면서 이곳에도 저런 일이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내몰리고만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자, 이제 우린 거리로 나가 화염병을 던지고 바리케이트를 쳐야할 때가 온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죽음이라는 사실의 무게에 휩쓸리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분명한 목소리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냉정하고 신나게 분노를 드러내야죠.
우리는 춤을 출겁니다. 침묵을 부수고, 폭력을 씻고, 사람들 사이로 진동하며 세상을 뒤덮을 춤을, 하지만 흥분해서 스텝이 엇갈려 넘어지면 안되겠죠.
여전히 답답한 마음입니다. 그저 꽃을 놓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여기 섭니다.
2009. 1. 21.
안양교도소에서 이길준.
첫댓글 아...........................................................................!!
힘내세요....저희도 힘내서 으샤으샤 해야죠..ㅠ
역시 이길준은 이명박보다 강하다! _()_
힘내세요~~
법과 원칙은 그런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립니다. 확인사살입니다. 호흡기를 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