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둥덩애타령>을 부르며 노는 해남 우수영(문내면 동외리) 사람들.
*우수영 사람들은 '진도 아리랑'을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우수영 아리랑'을 부르겠단다. "옛날에는 무슨 대교가 있어서 넘어왔간디? 진도에서 해남으로 시집오면 출세한 것이었제..." 지금은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진도대교가 있고 그 아래 명량(울둘목)의 물결 자체가 '관광상품'인 시절이지만, 녹진항에서 배를 타고 우수영(해남 문내면)을 다녔던 시절만 해도 '억센' 우수영 사람들의 텃세는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해남 우수영으로 시집온 '진도댁'들은 지금도 우수영 토호들에게 큰소리를 못 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안 가득 장구 가락이 울려퍼지면서는 진도 출신이고 해남 우수영 출신이고가 없었다. 1997년 조공례 할머니(진도 지산면 인지리)가 작고하기 전까지 젊은 국악인들치고 토속민요를 공부하러 진도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그들의 말은 이랬다. "진도 양반들은 징해라우." 돌아가신 조공례 할머니의 입에서 흥보 박에서 금은보화 나오듯 줄줄줄줄 넘쳐흐르던 옛날노래들을 기억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잔가지들은 또 얼마나 많이 뻗었으랴. 지금도 진도 지산면 소포리에는 '문화재감'이 얼마나 우글우글한가...
*진도에 견줄 곳이 없으려니 했다가 이참에 강적을 만난 것이다. '진도'아리랑이 아닌 '우수영' 아리랑을 부르겠다는 사람들. 그들은 해남 우수영 강강술래의 '1세대' 전사들! 장구장단이 시작되자 문내면 동외리 김내심 할머니댁에 모인 70-80대 할머니들에게서 '민요 전쟁'이 불을 뿜는다. 강강술래 문화재 보유자이자 선소리꾼인 박양애(71) 어머니는 아예 뒷전에 빠져있다. 여기서는 진도아리랑 대신 둥덩애타령이 널리 불리고 있다. 김내심 할머니(81)가 선창으로 "연아 연아 진둣년아 진두하고 먼들년아/한사 모시 석자 시치 오른손에 감어쥐고/녹진나루 건너나 가면/어느나 친구가 날 찾아올거나" 한 절을 뽑고 몇 절을 더 하자 유근애 할머니(78)가 잇는다. "대명산천 물레방아 물을 안고 잘도 돌고/우리집이 도령님은 나를 안고 잘도 돈다." 곁에서 누가 "살리고 살리고" 할 새가 없다. 김복심(73) 정춘단(79) 박봉금(77) 박정례(70) 할머니들이 여기저기서 둥덩애타령 한 절씩을 매긴다. 마이크를 손에 든 향단이는 누구한테 마이크를 대줘야 할지 이리갔다 저리갔다 정신을 못 차린다.
*그렇게 둥덩애타령으로 한 순배가 돌자, 이번엔 스페셜 무대가 시작된다. "내가 취미가 있어. 그랑께 한 자리 할라고"하고 운을 뗀 김내심 할머니가 <육자배기>를 내놓는다. "고나헤~/내 정은 청산(靑山)이요/임의 정은 녹수(綠水)로구나/녹수야 흐르건만/청산이야 변할소냐/아마도 녹수가/청산을 못 잊어/빙빙 감돌아갈/고나헤~" 시간을 재보니 2분 10초다. 길다. 하지만 <우리 동네 소리꾼을 찾아라>에서 <육자배기>급의 예술성 있는 명곡은 '편집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떨고 꺾고 내지르는 맛'으로 익혀온 육자배기 가락의 맛은, 가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2분 여 동안 숨쉴 틈 없이 한 절을 토해낸 할머니의 말씀이 재미지다. "부를지도 모른디 미안하요"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kjmbc.co.kr%2Fdata%2Fstone%2F2005%2F09%2F08%2FALSeeEdit%255FCIMG1714.jpg)
*<육자배기>를 부르고 나서 <살풀이>까지 선보인, 우수영의 '토털 엔터테이너' 김내심 할머니(81).
*김내심 할머니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나서는 다음 타자는 유근애(78) 할머니. "내가 할 말은 아니어도 이종(移種; 옛날 모내기)가먼 나한테 상사소리 덮을 사람이 없어. 나는 끝까지 메겨부러" 이렇게 호언을 하더니 과연 1분 15초짜리 모심는 소리를 내놓는다. "상사소리는 어디를 갔다가/내 맘 찾아서 잘도나 온다/허 여 여허 여루 상사뒤요/잘도 허네 잘도나 헌다/우리 농민들이 잘도나 헌다/허 여 여허 여루 상사뒤요." 곁에서 들으니 여든살을 바라보는 노인의 목청이 아니다. 줄모를 심는 논에서 쉰 살쯤 되는 중년의 쨍쨍한 목소리 같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멎지 않을 태세의 유근애 할머니는 "나 덮을 사람 있으면 나와봐" 라고 하고서 물러앉는다.
*움츠러들 만도 한데 방안은 조용해지지 않는다. 박봉금(77) 할머니가 유근애 할머니의 노래를 '덮어보려고' 나섰다. "아직도 못 잊었냐/연기 같은 내 사랑아/꿈에나 보잤더니/이제 와서 만났으니/떨리는 이 내 심정/진정할 수 없네 헤~" <흥타령>이다. 여느 마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민요가 아니다. 그런데도 노래를 마친 할머니는 "(노래를 못해서)미안합니다"하고는 물러앉는다. 같은 남도민요라도 <성주풀이> <남원산성>류와 <흥타령> <육자배기>류는 '계보'가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앞엣것들은 옆사람이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이지만 <흥타령>이나 <육자배기>는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감상의 예술'로 분류해야 하는, 고난도의 민요가 아닌가.
*우수영(문내면 동외리)의 한 방안에서 풍요를 느낀다. 육자배기 그 유장한 진양 가락을 뽑아놓고도 "부를지도 모른디 미안하요"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말 속에서 농투성이로 살아온 순수와 겸양을 읽는다. "내 노래 덮을 사람 없었어"라는 유근애 할머니의 당당함이 멋져 보인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지금도 이런 절창들을 해내는 가수들이 건재하다는 것이. 이쯤 되고 보니 '진도 아리랑'을 안하고 '우수영 아리랑'을 하겠다는 우수영 사람들의 속뜻을 알 것도 같다. 우수영은 남도 지역 민요권에서, 진도는 물론 어느 지역에 밀리지 않는 '독립 자치구'라는 것 아닐까...
|
첫댓글 세탁소 성재형 형님 모친이네요 고향에가면 자주인사드립니다. 수석도 있는것보니까 성재형 집이네여......또 저희작은어머님도 보이네요~~~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