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등잔불 이야기
등잔받침 / 깡통등잔/ 쌍심지 등잔 / 사기등잔 / 코쿨
내가 어렸을 적이니 50년대 중반으로 우리 마을은 모두 밤이면 석유 등잔불(Oil Lamp)에 의지했다.
등잔(燈盞)을 호롱이라고도 불렀는데 석유를 조명(照明)에 사용하면서 석유를 넣는 도구를 호롱, 등잔이라 불러 호롱불, 등잔불 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등잔이라는 것이 박물관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사기(砂器)로 구워 만든 뽀얗고 예쁘장한 깜찍한 등잔이 아니라 음료수 빈 깡통을 잘라서 납(鉛)으로 땜질하여 붙인 볼품없는 등잔이었는데 심지가 두 개 있는 쌍심지 등잔도 있었다.
등잔 받침은 모양이 다양했는데 맨 위, 혹은 중간 쯤 등잔을 올려 놓는 곳이 있고 맨 아래 받침에는 테두리를 만들어 어른들의 재떨이로 쓰기도 했다. 이따금 젊은이들이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등잔 받침을 거꾸로 잡고 휘두르고....
읍내에 가면 철물점이나 길가에서 노점상이 늘어놓고 팔았는데 모양은 모두 깡통을 잘라 만들어서 거의 같았고, 이 등잔에 헝겊 쪼가리나 무명실을 꼬아 심지를 만들어 끼우고 석유를 채워 불을 밝혔다. 석유는 시오리길(6km)인 강릉 읍내에 가서 됫병(유리병)으로 사왔는데 한 병에 얼마였는지 어머니는 항상 석유를 아끼라고, 저녁에 공부를 하려고 조금만 늦게 앉아 있어도 불 끄라고 야단을 치시곤 했다. 그리고 심지를 조금 더 올리면 밝은데 석유가 닳는다고 야단을 치셔서 항상 겨우 불이 붙을 만큼만 심지를 올렸으니 침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석유 등잔불은 방 가운데 켜 놓으면 방 구석 쪽은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책이라도 읽으려면 바로 머리 옆에 바싹 붙여 놓아야 했는데 머리카락을 그슬리기 일쑤고 아침에 일어나보면 그을음으로 콧구멍 속이 새까맣게 되고는 했다.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석유가 얼마나 밝은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정어리 기름을 짜서 접시에 담고 심지를 걸쳐 놓아 불을 켰는데 훨씬 더 어두웠노라고 하시곤 했다. 오죽했으면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이 생겼을까....
예전에는 동해에서 정어리가 많이 잡혔다는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정어리가 어디로 다 가버렸는지 잡히지 않았다.
정어리가 많이 잡힐 때, 미처 팔리지 않으니 배를 가르고 창자를 끄집어 낸 다음 줄에 매달아 말렸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과메기의 시초라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정어리가 잡히지 않자 그 맛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꽁치로 대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과메기하면 당연히 꽁치인 줄 안다.
동네에서 오래된 고택(古宅)이었던 내 친구 남화집에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코쿨이 있었다. 코쿨은 방안의 모서리(구석) 부분에 가슴 높이 정도로 단을 만들고 굴뚝을 만들어 바깥으로 연기가 나가게 만든 원시 조명기구라고나 할까....
이 단 위에다 관솔(송진끼가 많은 소나무의 옹이)을 잘게 쪼개어 올려놓고 불을 붙여 방안을 밝히는 것이었는데 석유 값을 아낀다고 그 집에서는 내내 그것을 사용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연기가 거꾸로 방안으로 들어와 옷이고 사람 콧구멍이고 온통 새까매진다. 오죽하면 뭐든지 시커먼 구멍을 보면 ‘꼭 코쿨같네....’라는 말이 있었을까.....
일 년에 몇 번 제사를 지낼 때 촛불을 켰는데 너무 밝은 빛에 눈이 부셔서 실눈을 뜨곤 했다. 침침한 등잔불에 익숙한 눈에 촛불은 너무도 밝은 빛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학교를 다니면서 전기 불을 처음 보았는데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전기다마(전구)를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신기해 하다가 다른 곳을 보면 한참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눈을 비비던 기억이 난다.
시내에 살던 중학교 친구들은 언젠가 내가 선생님한테 깜짝 놀란 소리로 ‘선생님, 전기불이 점점 더 밝아지는 것 같애요....’ 했었다고 나를 두고 ‘쌩 촌놈이 출세했다’고 지금까지도 놀리곤 한다.
구공탄(연탄)도 중학교 때 처음 보았는데 그 구멍에서 올라오는 파란 불꽃이 신기했고, 보이지 않는 가스가 나온다는데 몸에 해롭다는 것도 신기했다.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옆에 구공탄에서 벌겋게 불길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아저씨, 여기서 가스가 나오나요? 그리구 그 가스가 정말 몸에 나쁘나요?’
하고 물어 보았더니 불을 피우던 아저씨는 그렇다며 가까이서 냄새를 맡지 말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는데 몸에 나쁘다니 믿어야할지, 말아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