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침법(針法)을 논(論)하다
상고(上古)에는 폄석(砭石)의 제(制)가 있었고 내경([內經])에는 구침(九針)의 별(別)이 있었으니, 그 제(制)는 비록 부동(不同)하여도 거병(去病)한다는 의미(意)는 하나이다. 또 창양(瘡瘍) 일과(一科)에서는 침(針)의 사용이 귀(貴)한다.
사용할 때 비록 '궤(潰)의 천심(淺深)을 헤아려야 한다.'고 하지만 당연히 그 육(肉)의 후박(厚薄)을 더 따라야 한다. 만약 피(皮)가 박(薄)한데 침(針)이 심(深)하면 도리어 양육(良肉)을 상(傷)하니 그 궤(潰)를 더욱 증(增)하게 한다. 육(肉)이 후(厚)하고 침(針)이 천(淺)하면 농(膿)의 독(毒)이 출(出)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통(痛)을 익(益)하게 한다. 침(針)을 쓰는 자가 이에 신중(: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골저(附骨疽)에 이르러서는 기독(氣毒)이 유주(流注)하여 오래 지나도 불소(不消)하고 내(內)가 궤(潰)하여 불통(不痛)하므로, 마땅히 번침(燔針)으로 개(開)하여야 한다.
만약 인후(咽喉)의 환(患)을 치(治)하려면 당연히 삼릉침(三稜針)을 써야 한다.
만약 단류(丹瘤) 및 옹독(癰毒)으로 사반(四畔)이 흔적(焮赤)하고 동통(疼痛)하여 작(灼)하는 것 같으면 마땅히 폄석(砭石)으로 거혈(去血)하여 설독(泄毒)하니, 중(重)하면 감(減)하고 경(輕)하면 소(消)한다.
홍씨(洪氏)의 부인(:室)이 복옹(腹癰)을 환(患)하여 농창(膿脹) 민무(悶瞀)하였다.
와(臥)하게 하고 침(針)을 자(刺)하니 농(膿)이 출(出)하면서 바로 소(蘇)하였다.
어떤 사람이 낭옹(囊癰)을 환(患)하여 농(膿)이 숙(熟)하고 종창(腫脹)하며 소변(小便)이 불리(不利)하여 거의 위태(:殆)하였다.
급히 침(針)하여 농수(膿水)를 대설(大泄)하니 기(氣)가 통(通)하면서 나았느니라.
대체로 침(針)을 사용하는 법(法)은 영(迎)하여 탈(奪)하고 순(順)하여 취(取)하다. 소위 '이성(已成)을 치(治)하지 않고 미성(未成)을 치(治)한다.'는 것이니, 바로 이러한 의미(意)이다.
요즘의 환자(患者)는 침(針)을 외(畏)하여 잘 쓰지 않고, 의자(醫者)도 환자(患者)의 의(意)에 순(徇)하여 침(針)을 잘 쓰지 않으니, 결국 농(膿)이 이미 되어도 궤(潰)하지 않고, 궤(潰)하여도 상(傷)이 이미 심(深)하게 되어 갑자기 요왕(夭枉)하는 자가 보통 80~90%가 되니, 이 또한 비(悲)하도다!
(외과심법([外科心法]: 설립재)에 나온다.)
경(經)에 이르기를 "천(天)이 온(溫)하고 일(日)이 명(明)하면 사람의 혈(血)이 뇨일(淖溢)하여 위기(衛氣)가 부(浮)하므로 혈(血)을 쉽게 사(瀉)하고 기(氣)가 쉽게 행(行)한다. 천(天)이 한(寒)하고 일(日)이 음(陰)하면 사람의 혈(血)이 응삽(凝澁)하여 위기(衛氣)가 침(沈)한다." 하였다.
따라서 천시(天時)로 인하여 혈맥(血脈)을 조(調)하게 하여야 한다.
따라서 천(天)이 한(寒)하고 수(水)가 빙(氷)하는 것을 만나거나 음기(陰氣)가 응체(凝滯)하는 시(時)에 침자(針刺)를 행(行)하려면 먼저 당연히 온의(溫衣) 복개(覆蓋)하거나 애엽(艾葉)을 초열(炒熱)하거나 열(熱)한 염(鹽)이나 열(熱)한 의(衣)의 종류(類)로 먼저 그 처(處)를 위(熨)하여 혈맥(血脈)이 온화(溫和)하도록 힘 쓴 후에 자(刺)하면 혈(血)이 사(瀉)하고 기(氣)가 행(行)하여 그 병(病)이 즉시 낫느니라.
만약 혈(血)이 한(寒)하고 맥(脈)이 삽(澁)할 때 급히 침(針)을 사용하면 사독(邪毒)이 사(瀉)하지 않고 헛되이 양육(良肉)만 상(傷)하게 되니 도리어 그 병(病)을 익(益)하게 한다.
입재(立齋)가 이르기를 "원기(元氣)가 허약(虛弱)하면 반드시 비위(脾胃)를 보조(補助)하고 도침(刀針)의 사용을 금(禁)한다. 만약 함부로 써서 육(肉)을 거(去)하고 혈(血)을 거(去)하므로 양(陽)이 음(陰)을 따라 산(散)하면 그 위(危)를 속(速)하게 한다." 하였다.
설안([薛案])에 이르기를 "사명(四明: 절강성)에 도수경(屠壽卿)이 있었으니, 앞니(:當門齒)가 갑자기 격(擊)한 듯 통(痛)하여 불가인(不可忍)하고 맥(脈)이 홍대(洪大)하면서 현(弦)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현홍(弦洪)이 상박(相搏)하니 창독(瘡毒)이 발(發)한 것이다.' 하였다.
먼저 청위산(淸胃散)에 백지(白芷) 은화(銀花) 연교(連翹)를 가한 것으로 1제(劑) 하니 통(痛)이 바로 지(止)하였다.
저녁(:晩)에 이르러 비(鼻) 위에 일창(:一瘡)이 발(發)하고 면종(面腫) 암통(黯痛)하길래, 앞의 약(藥)에 서각(犀角)을 가한 것으로 1제(劑)를 하였다. 종(腫)이 양액(兩額)까지 이르고 구(口)로 예기(穢氣)가 출(出)하며 맥(脈)이 더욱 홍대(洪大)하고 오한(惡寒) 내열(內熱)하니, 이는 독(毒)이 치(熾)하고 혈(血)이 어(瘀)하여 약력(藥力)으로 적(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자주 폄(砭)하니 해(害)하는 곳에서 자혈(紫血)이 출(出)하였다. 서각(犀角)의 해독(解毒)하는 약(藥)을 복용하게 하였더니, 다음날(:翼日)에 종통(腫痛)이 더 심(甚)하게 되었다.
이에 또 환처(患處)와 순(脣) 위를 폄(砭)하고, 아울러 구내(口內)의 적맥(赤脈)을 자(刺)하여 각 독혈(毒血)을 출(出)하게 하고, 다시 앞의 약(藥)을 복용하게 하였더니 수 제(劑)만에 나았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