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我聖上 以聰明叡智之資 日御經筵 降志下求 則國之多士 必有伊傅之臣 而左右焉 承化矣
지금 우리 임금님께서는 聰明하시고 智慧로운 資質로 날마다 몸소 經筵에 나오셔서 뜻을 낮춰 아래로 구함은 즉, 나라의 많은 선비들이 반드시 伊尹과 傅說과 같은 신하가 左右에 있어 임금의 뜻을 敎化할 것입니다.
※降志下求: 山水蒙의 六五 象의 傳에서 舍己從人順從也 降志下求卑巽也 能如是優於天下矣(程頤(정이)의 설명,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름은 순종함이요, 뜻을 낮추어 아래로 구함은 겸손함이니, 이와 같이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넉넉할 것이다.)
捨此 先王設學之本意 復設科 而取士者何也 古文純公臣 李珥謂 擧子之業曰 門內之寇 而愚以謂 其害無比也
이것을 버리고 先王께서 學校를 세운 본래의 뜻에 다시 科目을 開設함은 어찌 선비를 뽑고자 함인가요? 예전에 文成公 臣 李珥(이이)가 이르길, 科擧(과거)를 보는 선비들의 業을 말하면 집안의 도둑이다. 내가 이르길 그 해로움이 더 이상 비할 바가 없다. 라고 했습니다.
※栗谷 李珥(1536년 중종31 ∼1584년 선조17): 諡號(시호)는 文成公으로, 文純公은 오기로 추정됨. 擧子: 예전에, 과거를 보는 선비를 이르던 말.
近世 申蔡李金 上下諸人 乃科儒家祖述之士 而互稱文章 博識者也 其所博識者 何有益於 爲治之政乎
近世에 申氏, 蔡氏(채씨), 李氏, 金氏 등 모두 과거시험을 보러 가서 옛글을 서술한 선비로, 서로 文章이 博識(박식)한 者라 하는데, 博識한 자가 어찌 정치에 이익이 되겠습니까?
※申蔡李金: 不明. 科儒: 예전에, 과거를 보는 선비를 이르던 말. 祖述: 선인의 주장이나 학설을 본받아 서술함.
如洞庭如天波始秋之句 謂之絶作 而人人誦 歎自恨其 不及此詩之旨 用於修身 而可乎 用於齊家而可乎 用於治國而可乎 用於平天下而可乎 愚未見 其可於爲人上 道理之一段的旨 國有何所用而不廢乎
마치 ‘동정호 물빛이 하늘처럼 파랗게 물결치며 가을을 알리는구나.’와 같은 詩句(시구)를 뛰어난 작품이라 하며, 사람마다 외워 자신의 감정을 읊어대지만, 이 시의 뜻이 修身에 쓰이기가 가능하거나, 齊家에 쓰이거나 治國에 쓰이거나 平天下에 쓰이는 게 可能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제가 사람으로서 道理를 한 단계 높이는 걸 가히 보지를 못했습니다. 나라에서는 어디에 쓰이기에 폐하질 않는지? <번역을 달리함>
※始秋: 늦여름, 초가을
※關山戎馬(관산융마): 조선 英祖 때 申光洙가 지은 詩. 唐나라 杜甫가 만년에 경승지를 찾아 유람하다가 嶽州(악주)의 嶽陽樓에 오른 일을 읊은 漢詩로, 본디의 제목은 登嶽陽樓歎關山戎馬이다.
秋江寂寞魚龍冷
人在西風仲宣樓
梅花萬國聽暮笛
桃竹殘年隨白鷗
가을 강은 적막하고 물고기조차 추워하는데
쓸쓸한 가을바람에 한 나그네 중선루에 오르는구나
매화는 온 세상에 가득 피고 저물녘에 피리 소리 들리니
지팡이 짚은 늙은 나그네 갈매기 따라 흐르네
烏蠻落照倚檻恨
直北兵塵何日休
春花故國濺淚後
何處江山非我愁
서쪽으로 지는 해 바라보며 난간에 기대어 생각하네
북녘 땅 전쟁은 어느 날에 멈추려나
고향 봄꽃에 눈물 뿌리고 떠난 뒤에
江山 어느 곳인들 나의 수심이 되지 않았나!
新蒲細柳曲江岸
玉露淸風虁子洲
靑袍一上萬里船
洞庭如天波始秋
曲江 가에는 창포 새싹과 가는 버들이 늘어졌고
虁洲(기주)에는 이슬비에 시원한 바람도 맞았느니
이제 靑袍 입고 萬里船에 올라
동정호에 이르니 하늘처럼 푸른 물빛이 일어 가을을 알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