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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부흥을 위한 기도
출애굽기 33:12-17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 때문에 그들에게서 그 임재를 어떻게 철수시키셨으며, 그들이 어떻게 회개했고, 모세가 그들을 위해서 어떻게 중보기도를 했으며, 그런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어떻게 들으시고, 구름 기둥이 회막 문에 어떻게 다시 돌아왔는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 시점에서 부흥을 위한 기도가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숙고하고 있는 이 대목의 전체 요점은 모세가 아직도 만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바랐습니다. 그는 회막으로 다시 돌아와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 바로 여기가 부흥의 전체 문제에 있어서 사활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점입니다. 부흥은 여분의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부가적인 어떤 것이요, 아주 비상한 것입니다. 이것을 제가 강조하는 것은 제가 볼 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부흥이란 정의상 평범한 것에서부터 벗어난 어떤 것이요, 특별하고 비상하고 예외적인 어떤 것이라는 요점을 전혀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정통적인 것 외에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정규적인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회심하는 일이 일어나고, 더 애를 쓰는 것 외에 무엇이 필요한가? ···.’ 이 논증은 부흥이 무엇인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음을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부흥은 그보다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 그래서 그들은 ···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흥의 전체 문제에서 가장 중차대한 국면이라 부르는 것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3장의 두 번째 대목에 그 점이 너무도 명백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더 많은 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처럼 많은 것을 가졌던 모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더 여분의 것을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 개인적인 확신감을 위한 기도
“부흥이 오기 전에 중보기도를 드리던 자들이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는 것들이 여기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 그는 가장 우선적으로 개인적인 확신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 그는 말합니다.‘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그는 자기가 은총을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알고 사람이 그 친구에게 말하듯이 모세에게 말씀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기도는 ‘내게 주를 알리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께 열납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단순한 지식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있다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 그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했습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물론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한 표증을 원했습니다. 그것에 관한 절대적인 확신을 원했습니다.”
“여기에 여러 시대의 교회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대한 성도들의 삶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부흥과 중보 기도의 문제를 위하여 손을 대셨던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났던 첫 번째 일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더 큰 지식을 스스로 느꼈다는 것입니다. ··· 이제 그들은 더 크고 더 깊은 무엇을 위하여 주리고 목마른 갈망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고 충만하게 아는 지식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바로 그들은 그것을 원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교회가 평범한 상태라고 하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특이한 것, 비상한 것을 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흥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체험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그것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매우 생생하고 절실하게 의식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 이것이 우리에게 드러나서 명백해지되 어떤 의심이나 어떤 주저함도 나타날 수 없을 정도로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표증이요, 비상한 나타남이요, 어떤 사랑에 대한 부가적인 확증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가 기도했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부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 우리는 바다 가운데서 노를 젓고 있는 어린아이들과 같습니다. 큰 대양과 그 깊이,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여기에 ··· 그 비상한 확증을 위해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울부짖음이 있습니다. ‘내게 주를 알리소서.’”
“물론 모세는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생각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 그 약속된 땅으로 행진하여 들어갈 때 함께 해주실 것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확증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으며 천사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셔야 합니다. 저는 주의 길을 알기 원합니다. 주의 위대한 계획과 목적을 알 수 있는 어떤 조짐을 제게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제게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 우리는 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교회 예배에 임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감찰해 주시기를 간하는 어떤 특별한 기도를 드리거나 아니면 그렇게 해주실 것을 가정하고 예배에 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가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고통거리가 아닙니까? ···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는 보다 더한 것을 위하여 울부짖고 있습니다.
··· 그것이 바로 부흥을 위한 기도입니다-매주간, 매달, 매해 계속 그냥 진전되어 나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부흥을 위한 기도입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작은 일들을 하는 날을 무시하지 않고 있습니다-다만 저는 우리가 사소한 일에 빠져 있는 시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만을 원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큰 일이 있습니다. 저는 더 큰 일을 위해서 갈망하는 모습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그것은 간구-개인적인 확신을 위한 소원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와 제안과 생각의 비밀을 알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2. 능력을 위한 기도
“두 번째 사항을 생각해 봅시다. 물론 그것은 필연적으로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능력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 모세가 하나님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능력을 위한 이 기도는 부흥이 있기 전의 교회 역사에서 언제나 나타납니다. 이것은 중보자들이 가장 긴박하다고 느끼는 것이요,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첫 번째 이유는 자기들이 직면한 난제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요, 자기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원수들의 힘과 ··· 땅을 정복하기 위한 엄청난 임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 제가 다시 한 번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제가 볼 때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직면한 난제의 엄청남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극적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난제의 거대함을 인식하기만 하면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고 강권할 필요성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닫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교회에 출석하는 수자가 줄어들고, 주일학교 출석률이 낮아지고,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이 줄고 있는 양상을 보십시오. 모든 교단들에서 그 비율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 악과 죄와 불경건과 신성 모독적인 모습이 증가하는 데 대하여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볼 수 없습니까? 영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그것을 볼 수 없습니까? 복음을 생각조차 하지 아니할 현대 지성주의를 알 수 없습니까? 번영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영혼과 하나님에 관해서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보실 수 없습니까?
··· 제가 말씀드리지만, 그 처지는 점점 더 악화되고 갈수록 두려운 양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을 다 강구해도 그 주요한 상황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는 명백히 압니다. ··· 제가 주장하는 전체 요점은 이것입니다. 곧 모세가 그 백성들이 이미 그러한 입장에 있었으나, 그들은 여분의 다른 것을 위하여 간구하고 있었고 비상한 것을 위해서 간청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곧 예외적인 것을 그들은 간청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저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간청하는 바입니다.
··· 제가 보건대 비극은 사람들이 ‘이것이면 충분하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치 못합니다. 중요한 처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악화되어 있습니다. 능력과 비상한 표증을 위해서 울부짖고 간청하기를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모세와 백성들은 난제의 본질을 인식했습니다. 그들은 난제의 본질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연약함도 인식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듣기로는 모세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연약과 자기의 무능을 인식했습니다.
··· 모세는 하나님 없이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확실성이 없이는 나아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다시 이것은 부흥이 있기 전 교회 안에서 언제나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너무나 확신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그것을 떠벌립니다. ··· 우리는 우리의 무능 상태를 의식하지 못하며, 우리의 연약과 우리에게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을 조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에게 어떠한 소망도 없습니다. 부흥의 시작은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부단하게 취했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3-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께서 모세 개인에게 주시는 확신과 능력을 위한 모세의 기도를 생각해 왔습니다. 그는 역시 당시의 교회와 교회의 사명에 대한 특별한 확증을 요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6절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다른 말로 해서 이 기도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대로의 교회의 모습을 취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교회는 구별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셨습니다.”
3. 교회의 교회다움을 위한 기도
“그러므로 부흥을 위한 기도는 교회가 다시 교회답도록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 하나님의 성령의 비상한 부어주심이 아니고서는 그 어느 것도 그러한 일을 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온 세계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큼 두드러지고 표적적인 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은 언제나 그러한 일을 했습니다. 우니는 스스로 그와 같은 일을 전혀 흉내도 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대단히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것이 세상에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다 해도 세상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 그리고 우리가 주장하는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히 구별된 백성들임을 증언할 비상한 것을 필요로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기도 속에 드러난 세 번째 간구 제목의 진수입니다.”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제가 이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긴박한 요구사항입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문제가 됩니까? 사라진 것이 바로 교회의 독특성입니다. 교회는 다른 기관들이나 다른 집단들과 거의 방불해 보이며, 다른 어떤 제도와도 똑같아 보입니다. ··· 보편적으로 말해서 세상은 영향을 받지 않고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 필요로 하는 것은 이것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아주 명백히 해줄 어떤 초자연적인 표증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필요로 하는 것은 오순절날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 저는 다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성령께서 강림하시기를 위하여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다시, 저는 사도행전 4장에 기록된 그 사건 속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하나님의 성령의 부어주심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순절의 반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제가 구하고 있는 것은 사도행전 10장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서 고넬료와 그 가정들에게 설교했을 때 말입니다. ··· 그것이 바로 제가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행동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해줄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어떤 표증 바로 그것을 저는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또 다른 실례를 들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2:3,4).’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확증하셨습니다. 곧 그것이 초대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비상하고 예외적인 인증과 확증을 주셔서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가 그것을 얼마나 잘 아는지요. 성령이 없이 설교할 수 있습니다. 이지적으로 말씀을 강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는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을 필요로 합니다. ··· 사람이 전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행하십니다. 성령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능력을 부어주시고, 이 독특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내려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가 바라며 기도했던 바입니다. 바로 그것이 세 번째 간구입니다. ··· 너무나 놀랍고 엄청나고 너무나 신적이어서 온 세상이 오순절날에 말했던 사람들처럼 ‘이 어찐 일이냐?’라고 말하게 할 그 무엇을 행하시옵소서라고 저는 구하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때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고 성령께서 휘트필드와 웨슬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부어졌던 이백년 전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한 백여 년 전 미국이나 북아일랜드나 웨일즈나 스코틀랜드나 다른 여러 곳에서 일어난 부흥을 보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어찐 일이냐? 이것이 무엇이냐?’ ··· 부흥을 위한 기도는 정상적으로 일에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명백합니다-우리는 언제나 하는 일에 정규적으로 축복해 달라고 기도는 해야 합니다-그러나 부흥을 위한 기도는 그 정규적인 복락 위에 비상한 것을 덧붙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고 특별한 것, 하나님과 그의 일을 그 백성들 가운데서 확증시켜 주는 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
첫댓글 예수님! 이 부흥을 담는 그릇되게 하소서! 부흥의 열정을 주옵소서. 하나님 안에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한 열망을 주옵소서...거룩함, 주님의 이름, 열정,,,,주님의 영광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