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밖으로 나오는데 숨이 막혔다. 내 심장과 허파는 아열대 플로리다에 대한 준비를 못하고 있었다. 잔설 뒤덮혔던 롱아일랜드 수풀 대신 알록달록 일렁이고 휘청대는 플로리다 수림이 와락 달려들었다. 늘어져있던 나뭇가지들이 내 몸을 휘감고는 몸의 동력을 누그러뜨린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 겨울과 여름을 경험한다. 여름은 겨울을 순식간에 제쳐버리고 엄연한 내 삶의 영역을 장악했다. 사실 그 여름은 이 지구에서 한번도 겨울과 공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던 내가 지구의 저쪽에 존재하는 타인의 계절을 경험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제 집중적 공간 이동으로 그 여름을 이끌어내었다. 움츠렸던 생명의 숨결이 툭 트이며 활개를 친다. 온갖 꽃과 이파리와 열매들이 여기저기 쑥쑥 치밀어오르며 얼어붙었던 가슴을 꿈틀거리게 한다. 우리가 기적이라 일컫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휘날리던 눈보라가 눈을 다시 떠보니 꽃보라이다.
잭슨빌(Jacksonville)은 참 조용하고 넉넉한 도시다. 녹색이 넘쳐 흐르고, 훈풍이 살갗 속으로 들어와 살과 함께 녹아내린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다투고 경쟁하려는 마음이 누그러질까? 그럴 것도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결 느리고 표정이 부드럽다. 이 도시가 무슨 산업으로 시민들에게 일자리와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지 모른다. 그래도 도시는 지나치는 길손에게, “그럭저럭 살아도 사는 것은 사는 것!”이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다. 도시는 내가 그 말을 듣든 말든 나직이 중얼거리기만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 중얼거림에 민감해져 나도 모르게 빠져 들어간다. 그러다가는, 도시가 내 삶의 무장을 해제시키려 하고 있다고 소리 질러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게 해준 그 긴장과 집념을 놓아버리지 말라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도 다짐한다. 신산했던 내 삶이 떠오른다. 아이에게는 이런 느긋한 곳에서의 삶을 마련해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좀더 근본적이 된다. 삶의 속도를 늦추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느리게 살아가는 저 사람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인체 리듬이 느려진 속도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게다. 우리도 저 속도에 익숙해지면 저들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질문을 잘 던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부릅뜬 위압적 눈과 모진 힘이 들어간 어깨에 감사하자. 이렇게 나를 다독거린다.
평소 잘하지 않은 생각과 느낌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런 생각과 느낌의 연쇄 반응이야말로 여행이 가져다주는 보너스일 것이다. 남국으로의 여행은 나를 몽상적 사춘기로 돌아가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