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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문학(批評文學)의 확립(確立)을 위하여
김환태(金煥泰)
「우리의 평단(評壇)이 너무나 빈약(貧弱)하다」느니, 「비평(批評)다운 비평이 없다」느니 하는 소리가 한창 높은 이때이므로, 《신동아(新東亞)》지에 게재(揭載)된 김두용(金斗鎔)씨의 <조선문학(朝鮮文學)의 평론(評論) 확립(確立)의 문제(問題)>를 그 제목에 끌리어 다대(多大)한 기대(期待)를 가지고 읽어 보았다.
그러나 씨(氏)는 이 장논문長(論文)을 통하여 사회주의적(社會主義的) 리얼리즘과 XXX리얼리즘에 대한씨가 파지(把持)하고 있는 견해(見解)의 확인을 요구(要求)하고, 「일체(一體)의 예술(藝術)은 모두 극기한(極飢寒)에는 정치적(政治的) 임무(任務)로 환원(還元)된다는 이론(理論)」밑에 「부르조아, 소(小)부르조아 문학에 대한 투쟁(鬪爭)과 동시에 투쟁적(鬪爭的) 형태(形態)를 띠고 나오는 작품(作品), 혹은 비평(批評) 속에 나타나는 소부르조아적 방면(方面)에로 전향(轉向)하는 경향(傾向)에 대한 투쟁(鬪爭) 」이 금일(今日)의 비평의 임무(任務)라는 것을 제시(提示)하였을 뿐 비평 확립(批評確立)에 대한 아무런 방도(方道)도 구명(究明)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씨를 책(責)할 의도(意圖)를 조금도 가지지 않는다. 만일(萬一) 씨가, 나는 조선문학(朝鮮文學)의 평론(評論) 확립(確立)을 위(爲)하여 어떤 방도(方道)를 구명(究明)하려고 한 것이 아니요, 다만 사회주의적(社會主義的) 리얼리즘과 XXX리얼리즘에 대한 정당(正當)한 나의 결론(結論)을 안함광, 한효, 양씨에게 계몽(啓蒙)하였고, 조직(組織) 문제(門題)와 관련(關聯)하여 문단(文壇) 헤게모니 전취(戰取)의 방도(方道)와 현(現) 단계(段階)에 있어서의 XX주의 문학의 사명(使命)을 말하였을 뿐이라고 반박(反駁)하면 그것으로 문제(問題)는 낙착(落着)되고 말 것이니까.
그러나 이는 나의 부질없는 추측(推測)이요, 김두용씨는 XX주의적 리얼리즘과 XXX리얼리즘이란 조선적(朝鮮的) 현실(現實)에 있어서는 따로 분리(分離)되는 것이 아니요, 이어동의(異語同義)라는 자기의 주장(主張)을 용이(容易)하고, 조직(組織)을 통(通)하여 문단(文壇) 헤게모니 전취(戰取)의 방도(方道)를 요구(要求)하고 부르조아 내지 소부르조아 문학(文學)에 대한 투쟁(鬪爭)과 XX주의 문학의 이데올로기 이완(弛緩)의 경향(傾向)에 대한 투쟁(鬪爭)을 용감히 전개(展開)함으로서 비로소 우리 문단(文壇)에 평론(評論)이 확립(確立)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상(以上)과 같이 함으로써 우리 문단(文壇)에 평단(評壇)의 권위(權威)를 확보(確保)할 수가 있을까? 이곳에 문제(問題)가 있다. 만일 이상과 같이 함으로써 평단을 확립(確立) (씨의 「평단확립(評壇確立)」과 동의(同義)로 사용한 것이라고 이해(理解)하고 이 글을 쓰기로 한다.) 할 수 있다고 하면 과거(過去)에 프로문학은 씨가 요구(要求)하고 있는 바와 같이 문학을 정치적 임무(政治的任務)에 굴복(屈伏)시켰고, 또 조직을 통하여 현상적(現象的)이기는 하나 어찌했든 완전(完全)히 문단의 헤게모니를 잡은 일이 있고 또 오랫동안 그 이름도 이루 헤일 수 없을 만큼 잡다(雜多)한 사실주의(寫實主義)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論爭)이 있었으니 그만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평단(評壇)이 확립(確立)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프로문학(文學)의 평단(評壇)의 확립(確立)은 어느 정도까지 도왔을 것이요, 비평(批評)의 권위(權威)도 어느 정도(程度)까지는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조선의 프로문학 비평을 돌아볼 때, 우리는 그곳에 정치이론(政治理論)과 사회비평(社會批評)(그때그때의 외국(外國)의 정치이론(政治理論)의 극(極)히 조잡(稠雜)한 반영(反映)인)은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어도 진정(眞正)한 문학이론(文學理論)과 문예지평(文藝地坪)은 얻어 보기에 지극(至極)히 힘드는 것이었다.
문예비평(文藝批評)의 대상(對象)은 사회(社會)도, 정치(政治)도, 사상(思想)도 아니요 문학(文學)이다. 이는 누구나 일소(一笑)에 부치지 말 극히 초보적(初步的)인 단안(斷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過去)의 우리의 비평가(批評家)들은 이 극히 상식적(常識的)이요, 초보적(初步的)인 사실(事實)을 전연 망각(忘却)하고 있지 않았던가. 더욱이 비평(批評)의 대부분을 점(占)하고 있던 막스주의 문학비평(文學批評)에 있어서 그렇지 않았던가?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가 사회(社會)를, 정치(政治)를 논(論)하는 것을 나는 조금도 비난(非難)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사회비평(社會批評)과 정치론(政治論)을 하는 것이 아니요, 문학론(文學論)을 하고 있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나 정치를 문학과의 관련(關聯)하(下)에서 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문학의 입장(立場)에서 그것들을 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文學)이란 자유(自由)의 정신(精神)의 표현(表現)이며 탐구(探求)의 정신(精神)의 소산(所産)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속(拘束)을 싫어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회나 정치나 시대(時代)를 초월(超越)하여 그것들을 자기의 법칙(法則) 밑에 굴복(屈伏)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나 사회나 사사이 한 문예작품(文藝作品)에 담긴 때에는 그것은 벌써 제 스스로의 법칙(法則)을 포기(抛棄)하고 문학 그것의 법칙(法則) 앞에 굴복(屈伏)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문학(文學) 그것을 정치(政治)나, 사회(社會), 철학(哲學)이나, 윤리(倫理)나 그 외의 모든 문화영역(文化領域)의 우위(優位)에 두려는 소위(所謂) 예술지상주의자(藝術至上主義者)의 주장(主張)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인류(人類)의 각 문화영역(文化領域)은 각각 그 특유(特有)한 법칙(法則)과 가치(價値)를 가지고 있어 어떠한 딴 영역(領域)의 침범(侵犯)도 허락(許諾)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함으로써 그 독자(讀者)의 가치(價値)를 가장 잘 발휘(發揮)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力說)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각 문화영역(文化領域)은 모두 상호(相好) 관련(關聯)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독립(獨立)한 일면(一面)을 가지는 것이며, 일반적(一般的)으로 볼 때에는 다 동등(同等)한 가치(價値)를 가지는 것이나 각 영역(領域)을 따로따로이 볼 때에는 그것들은 언제나 딴 영역을 자기 속에 소화(消化)하고 포옹(抱擁)하여 그 우위(優位)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나, 사회(社會)나, 사상(思想)이나, 종교(宗敎)는 그것이 문학(文學) 속에 나타날 때는 그 본래(本來)의 목적(目的)이나 사명(使命)을 버리고 문학 그것에 봉사(奉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선전(宣傳)이나 교화(敎化)의 역할(役割) 버리고, 사람을 감동(感動)시키고 기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사람을 감동(感動)시키고 기쁘게 하려면 정치(政治)나 사상(思想)의 선전(宣傳)과 계몽(啓蒙)의 목적(目的)을 버리고 한 성격(性格)있는 정태(情態)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의 상상력(想像力) 속에 융해(融解)하여 감정(感情)의 옷을 입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에서 문학비평(文學批評)의 본질(本質)과 비평가(批評家)의 임무(任務)가 규정(規定)된다.
먼저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는 한 작품(作品)이 얼마만한 선전(宣傳)과 계몽(啓蒙)의 힘을 갖추고 있는가를 지시(指示)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하기야 어떤 문학작품(文學作品)이든 그것을 우리의 여러 가지 측면(側面)으로 이용(利用)할 수가 있다. 선전(宣傳)의 도구(道具)로서도 이용할 수가 있으며 계몽(啓蒙)의 수단(手段)으로서도 이용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는 문학(文學) 이외(以外)의 입장(立場)에서 하는 것이요, 문학의 본래(本來)의 입장(立場)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가 한 작품(作品)의 선전(宣傳)이나 계몽(啓蒙) 가치(價値)를 측정(測定)하고 있을 때 그는 결코 문예비평(文藝批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 「문예비평(文藝批評)의 대상(對象)은 언제나 문학(文學)이다」는 이 극히 초보적(初步的)인 명제(命題)가 일소(一笑)에 부치지 못하고 큰 경고적(警告的) 의의(意義)를 가지는 것이다. 문예비평(文藝批評)의 대상(對象)은 문학(文學)이므로 문예비평은 언제나 작품(作品)에 한(限)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작품의 법칙(法則)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문예비평(文藝批評)은 한 작품이 얼마만한 선전(宣傳)과 계몽(啓蒙)의 가치(價値)를 가졌거나, 어떠한 사상(思想)과 현실(現實)과 의도(意圖)를 가졌다거나 측정(測定)하고 지적(指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 나타난 사상(思想)과 현실(現實)이 얼마만한 정도(程度)에 있어서 작가(作家)의 상상력(想像力)과 감정(感情) 속에 융해(融解)되었으며, 그것을 어떤 방향(方向)으로 지도(指導)하려던 그 작자의 의도(意圖)가 얼마만한 정도(程度)에 있어서 실현(實現)되었는가 그리고 그 결과 그 작품이 얼마만한 정도로 우리를 감동(感動)시키고 기쁘게 하였는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예비평(文藝批評)이 정치비평(政治批評)이나 사회비평(社會批評)과 다른 점이 진실(眞實)로 이곳에 있다.
정치론(政治論)이나 사회비평(社會批評)이나 철학(哲學)에 있어서는 자기를 말하는 것은 용서(容恕)되지 않는다. 이에 있어서는 객관적(客觀的) 현실(現實)을 냉정(冷靜)히 관찰(觀察)하여 그것을 정연(井然)한 이론(理論)의 범주(範疇)에 넣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는 먼저 자기(自己)를 말하여야 한다. 한 작품에서 어떠한 감동(感動)과 기쁨을 받았는가를, 그리고 그로 인하여 자기가 얼마만큼 변모(變貌)되었는가를 고백(告白)하여야 한다. 정연(井然)한 논리(論理)를 세우기는 쉽다. 그러나 자기를 표현(表現)하기는 어렵다. 문예비평가가(文藝批評家) 창작가(創作家)와 함께 자기표현의 고통(苦痛)을, 다시 말하면 창작(創作)의 고통(苦痛)을 맛보는 것은 오직 이 길을 통하여서인 것이다.
그러나 과거(過去)에 우리의 어떤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가 자기를 말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작가의 창작(創作)이 진통(鎭痛)을 자기의 것으로서 느껴보려고 하였으며, 문학의 세계(世界)에 침잠(沈潛)하여 문학 그것으로 하여금 스스로 제 법칙(法則)을 말하도록 하려고 하였던가? 일부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들이 문학은 정치적(政治的) 목적(目的)에 봉사(奉仕)하여야 한다는 전제(前提)하에 사회의 객관적(客觀的) 정세(情勢)를 논한 일은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社會的) 정세(情勢)에 대한 이론(理論)은 우리는 그들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의 입을 통하여서 보다도 정치 논객(論客)들에게 더 정확(正確)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따라서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의 그런 이론(理論)에서 작가가 어떤 자극(刺戟)과 영향(影響)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예비평가로서의 그에게서가 아니라 정치(政治) 논객(論客)으로서의 그에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더 나아가서는 그런 정치이론(政治理論)이면 그들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더 정확한 이론을 하여 주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작가(作家)나 문예(文藝) 독자(讀者)는 그들의 그런 이론(理論)을 경청(傾聽)할 아무 의무(義務)도 필요(必要)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 문단(文壇)에 있어서의 문예비평가(文藝批評家)의 존재(存在) 의의(意義)에 대한 의혹(疑惑)은 이 점에도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否認)할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류의 각 문화(文化)영역(領域)은 다 같은 가치수준(價値水準) 위에 서는 것이나 그것들이 각자적(各字的)으로 딴 영역(領域)에 대하여 그 우월(優越)에 주장(主張)할 수 있는 것이므로, 문예비평가(領域)가 정치(政治)의 입장(立場)에서 작품(作品)을 논(論)할 때 그들은 어떤 자기도취적(自己陶醉的) 우월감(優越感)을 가지고 작가(作家)를 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 우월감(優越感)이 점점 자라서 끝내는 그들 정치이론(政治理論)에서 연약(軟弱)한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적 창작방법(創作方法)이니, 사회주의적(社會主義的) 창작방법(創作方法)이니 하는 것으로 제시(提示)하여 작가에게 그것의 존수(尊守)를 명령(命令)하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비평가(批評家)는 과연 작가에게 창작 방법(創作方法)을 가르칠 수가 있을까?
무엇이고 시대(時代)가 뒤떨어진 사상(思想)이면 배격(排擊)하고, 일반적(一般的)으로 용인(容認)된 이론(理論)이면 반박(反駁)하는 우리 문단인지라 이것은 또 무슨 진부(陳腐)한 미학설(美學說)이냐고 비웃을는지도 모르나, 예술(藝術)의 예술된 본령(本令)은 그 독창성(獨創性)에 있다. 그리고 이 독창성을 낳은 것은 예술가의 개성(個性)이다.
그런데 예술가(藝術家)의 개성(個性)이란 외적(外的) 법칙(法則)에 구속(拘束)되지 않는 독자적(獨自的) 정신(精神)이므로, 한 작가의 창작방법(創作方法)이란 그의 개성(個性)에 따라서 결정(決定)될 것이요, 비평가가 제시(提示)한 규준(規準)에 의하여 결정(決定)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평가(批評家)는 작가(作家)에게 전연 아무런 규준(規準)도 제시(提示)할 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비평가는 작가에게 어떤 규율(規律)을 제출(提出)할 수가 있다. 그는 자기 포회(包懷)한 사상에서 연역(演繹)한 규준(規準)을 가지고 작가에서의 준수(遵守)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고금(古今)의 위대(偉大)한 문예작품(文藝作品)에서 귀납(歸納)하여 얻은 공통(共通)된 법칙(法則)을 작가의 참고에 공(共)하는 데 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그러면, 비평(批評)의 지도성(指導性)을 부인(否認)하려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만일 비평의 지도성을 부인한다면 비평의 존재(存在) 의의(意義)가 어디 있느냐?」는 반박(反駁)이 있을는지도 모르나 그 반박(反駁)에 대하여는 우리는 「지도성(指導性)이라는 그 말이 내포(內包)하고 있는 의미(意味)에 의하여 긍정적(肯定的) 대답(對答)도 내릴 수 있으며 부정적(否定的) 대답(對答)도 내릴 수가 있다.
만일에 지도성(指導性)이란 어구(語句)를 비평가가 작가에게 어떤 창작방법(創作方法)을 명령(命令)하고 감시(監視)할 수 있다는 의미(意味)로 사용(使用)하였다면, 그런 의미의 지도성(指導性)은 앞에서 말한 「작가(作家)는 언제나 자기의 내면적(內面的) 법칙(法則)에 따라 창작(創作)하는 것 」이라는 그 사실(事實)에 의하여 당연히 거부(拒否)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비평(批評)이 그런 의미(意味)의 지도성(指導性)을 끝까지 고집(固執)한다면 그도 또한 그 존재(存在) 의의(意義)를 상실(喪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眞正)한 의미(意味)의 비평(批評)의 지도성(指導性)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진정(眞正)한 비평(批評)은 창작방법(創作方法)을 가르치고 창작과정(創作過程)을 감시(監視)하는 대신에 작가의 창작력(創作力)의 성장(成長)과 발현(發現)을 위하여 그에 필요한 분위기(雰圍氣)와 관념(觀念)의 계열(系列)을 준비(準備)한다. 그리하여 이로 말미암아 작가(作家)의 창작력(創作力)의 건전(健全)한 성장(成長)과 발현(發現)을 볼 때 그곳에 비로소 비평(批評)의 지도성(指導性)이 발생(發生)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평(批評)의 지도성(指導性)은 언제나 비평 스스로의 겸손(謙遜)에서 오는 것이며, 비평가(批評家)의 권위(權威)는 그가 입법자(立法者)나 재판관(裁判官)이 될 때가 아니라 작가(作家)의 좋은 협동자(協同者)가 될 때에,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한 작품(作品)에서 얻는 인상(印象)을 그것이 암시(暗示)된 방향(方向)에 따라서 재구성(再構成)하여 작품에 의존(依存)하면서도 그것에서 독립(獨立)한 작품상作品(象)을 만들어 보여 줄 수 있는 창작가(創作家)가 될 때 비로소 확립(確立)될 것이다.
이상에서 나는 비평(批評)의 본질(本質)과 관련하여 우리 문단(文壇)에 비평(批評)의 확립(確立)을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비평(批評)의 입장(立場)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까를 암시(暗示)하여 놓았다. 그런데 비평(批評)의 본질(本質)과 관련(關聯)되지 않은 외면적(外面的) ․실제적(實際的) 방면(方面)에 있어서 비평(批評)의 확립(確立)을 저지(沮止)하는 경향(傾向)을 우리는 또한 간과(看過)할 수가 없다. 이에 예정(豫定)하였던 지면(紙面)도 다 하였으므로 간단히 그 두 세 가지만 예거(例擧)하여 두고자 한다.
우리는 적어도 매월(每月) 수십 평의 평론(評論)을 신문(新聞)이나 잡지(雜誌)상에서 본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읽는 동안 너무나 많이 토쿄에서 간행(刊行)되는 잡지(雜誌)에서 읽던 글을 재독(再讀)할 기회(機會)에 봉착(逢着)한다. 아니 때때로는 3독, 4독 까지 할 때가 있다. 이를 우리는 좋은 평론(評論)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읽히자는 우리 비평가(批評家)들의 호의(好意)로 해석(解釋)하여야 옳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마비(痲痺)된 예술적(藝術的) 양심(良心)의 소위(所爲)라고 이해하여야 옳을까? 원컨대 전자(前者)이니라. 그리하면 우리로 하여금 그들에게 그런 호의(好意)를 완곡(婉曲)히 거절(拒絶)하는데 그치게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너무나 이해(理解)할 수 없는 평론(評論)을 많이 접한다. 한 페이지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한 말이 모순(矛盾)․당착(撞着)됨은 묻지 말자. 그러나 한 페이지 속에서도 서로 반대(反對)되는 사상(思想)이 아무런 통일(統一)도 없이 잡연(雜然)히 나열(羅列)되어 있는 데야 어찌하랴. 적어도 자기의 서명(書名)이 있는 이상 비평가(批評家)는 자기의 글에 대한 책임(責任)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옳든 그르든, 무엇이고 통일(統一)된 의견(意見)을 말하여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 서명(書名)이 없더라도 이것이 자기의 글이라는 것을 주장(主張)할 수가 있게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연락 없는 단상(斷想)의 나열(羅列)과 고금동서(古今東西)를 통한 뭇 사상가(思想家)의 어구(語句)의 수집(收集)만으로써 이곳에 자기의 의견(意見)이 포함(包含)되어 있다고 주장(主張)할 수가 있을 것인가. 남이 이해(理解)하지 못할 글을 써서 자기 사상(思想)의 심원(心願)을 가장할 수는 있으리라. 실로 광범(廣範)한 뭇 범위(範圍)의 사상가(思想家)의 언설(言說)을 인용(引用)함으로써 자기의 다독(多讀)을 자랑할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진정(眞正)으로 양심(良心)있는 비평가(批評家)는 그것을 삼가리라.
다음으로 평단(評壇)의 아니 전 문단(文壇)의 발달(發達)을 위하여 가장 악질적(惡質的)인 경향(傾向)이 또 하나 있다. 문단정치(文壇政治)를 하려는 경향(傾向)이 그것이다. 진정(眞正)한 작품행동(作品行動)과 비평행동(批評行動)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책동(策動)을 하여 문단(文壇)의 지도적(指導的) 지위(地位)에 오르려는 경향(傾向)이 그것이다. 작품(作品)의 우위성(優位性)은 언제나 양(量)이 아니라 그 질(質)에 의하여 결정(決定)되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組織)과 책동(策動)을 통해서 완전히 문단(文壇)의 헤게모니를 전취(戰取)하였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도리어 패배(敗北)의 쓴 잔을 마시지 않으면 다행(多幸)일 것이다.
( 이 후 '창작계(創作界) 수확(收穫)‘ 부분은 생략 )
《조선중앙일보》, 1936, 4, 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