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암그루와 수그루가 있다. 가장 확실한 은행나무 암수 구별법은 무엇일까. 가을철에 묻는 싱거운 질문! 당연히 열매를 맺었으면 암그루, 아니면 수그루겠지. 그렇다면, 노란 은행잎이 겨울이 다가왔다는 걸 알리는 거센 바람을 맞고 우수수 떨어진 뒤, 파란 하늘 아래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때에는 어떻게 암수를 구별하면 좋을까. 전문가는 줄기에서 사방으로 퍼지는 가지를 보라고 말한다. 가지가 주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건 수그루, 옆으로 펴지는 건 암그루란다. 하지만 그게 그리 완벽하지 않은 것 같다. 은행나무 가로수 중에 암그루가 많은 걸 보면. 가장 확실한 특징은 옆구리에 있다. 은행나무 암그루의 옆구리는 한결같이 두들겨 맞은 상처를 안고 있다.
은행나무 가로수는 수그루가 원칙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열매가 인파에 밟히면 거리를 지저분하게 할 뿐 아니라 교통사고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도로까지 뛰어나가 떨어진 열매를 주우려는 시민이 있지 않던가. 떨어졌다면 주운 자가 임자라지만 아직 매달린 열매는 그렇지 않단다. 가로수를 관리하는 시에 소유권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은행을 턴다. 작대기로 무장해 은행을 터는 사람이 가을에 꼭 있지만 그런다고 경찰서마다 비상이 걸리는 건 아니다. 미처 작대기를 가지고 가지 않은 사람은 나무줄기를 흔들어대다 가끔 발길로 걷어찬다. 그래서 은행나무 암그루는 가로수로 부적당하다는 건데, 가로수로 심겨지기 전에 파악되지 못한 암그루는 가을마다 수난을 당한다.
도시의 나무들은 공기가 깨끗한 시골에 뿌리내린 나무에 비해 열매를 많이 맺으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솔방울을 지독하게 많이 매단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생물일수록 수명을 다하기 전에 많은 후손을 퍼뜨리려 하는 본성 때문이라고 하던데, 온몸으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맞는 가로수는 그 정도가 심할 거라 짐작할 수 있겠다. 건물에 막힌 만큼 햇빛을 덜 받는 가로수는 빗물을 잘 흡수하지 못한다. 보도블록에 둘러싸여 빗물이 흘러들 공간이 부족하고 나무 아래의 인파에 짓밟힌 흙은 딱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던한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신발 바닥에서 솔솔 풍기는 냄새로 지하철에서 민망해질 정도로.
도시의 열매에는 배기가스에서 비롯된 중금속이나 황과 같은 뜻밖의 성분이 포함될 소지가 다분하다. 모든 생명체는 제 몸에 흡수된 위험한 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려하는 까닭이다. 농약이 묻은 풀을 뜯는 젖소는 농약 섞인 우유를 내보내고 양질의 사료를 먹은 닭이 생산하는 계란은 값이 비싸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임신 중인 가축은 유산시킬 것을 유럽의 당국자는 권했다. 핵물질이 새끼들에 전달될 거를 염려했던 건데,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은행나무 가로수는 아니 그럴까. 그래서 가을 지난 뒤 좌판에서 파는 출처 의심스런 은행은 구입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몸에 좋은 열매라 해도.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가로와 세로, 그리고 환상의 녹지축이 외곽의 녹지를 도심까지 연결해준다. 그래서 시민들은 도시 복판에서 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람쥐를 쉽게 만난다. 녹지축과 연결된 공원에 동물들을 불러들이는 나무들이 열매를 매달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을 축내 만든 우리네 아파트단지에도 새들이 날아들고 이따금 청설모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파트단지의 경계를 구별하는 둔덕에 잣나무가 더러 심겨 있는 까닭인데, 녀석들,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새벽녘 여물지 않은 잣을 축내다 눈길이 마주쳤다. 하지만 고맙게도 달아나지 않는다. 봄부터 시끄럽던 직박구리도 아파트단지 내 녹지에서 무언가 먹는다. 구청에서 끈적끈적한 살충제를 뿌릴 때마다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는데 이제 그들도 겨울을 맞아야 한다. 다음세대를 기약하는 열매는 도시의 아파트단지에도 충분하다. 덕분에 사각 철근콘크리트 속에 머무는 사람들도 직박구리와 청설모를 바라볼 수 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칠갑이 된 도시는 열매가 이듬해 뿌리내리는 걸 한사코 방해한다. 4월 중순 상춘객으로 들끓던 벚나무 길은 여름이 깊어지기 전 새까만 열매를 사방에 떨어뜨렸는데, 대부분 보도블록에서 밟히고 말았다. 아파트단지 둔덕의 녹지에 맺은 열매도 다음세대를 기약할 수 없다. 직박구리가 먹기 때문이 아니다. 이듬해 땅을 뚫고 오르는 싹은 동원된 관리인들이 깨끗하게 깎아내기 때문이다. 자연공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나마 열매가 맺을 수 있으니 다행인데, 꿀벌이 가루수정을 해야 열매를 맺는 나무와 풀은 언제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화사한 꽃을 아무리 만발해도 도무지 찾아주지 않는 꿀벌은 대기오염과 살충제를 아주 싫어하는데, 욕심 사나운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근친교배해 유전적 다양성이 지나치게 줄어들었다. 환경 변화에 이겨낼 힘을 잃었다.
도토리를 다람쥐에게 돌려주자는 환경단체의 캠페인 덕분인지, 수입돼 들어오는 도토리묵 가루가 많아서 그런지 자연공원의 참나무는 가을철 실한 열매를 떨어뜨리는데, 도대체 다람쥐가 없다. 입 안 가득 도토리를 물고 또 물다 도저히 더 넣을 수 없으면 땅에 파묻곤 하 다람쥐는 어디로 간 걸까. 다람쥐는 어디에 도토리를 저장했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다. 다람쥐의 침이 묻은 도토리가 이듬해 흙을 뚫고 싹을 내놓아야 참나무는 다음세대를 기약하기 쉬울 텐데, 사통오달 등산로로 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인파에 떠밀렸는지, 산허리를 이리저리 끊은 아스팔트로 차단된 공간에서 근친교배에 의존하다 그만 대가 끊겼는지, 도무지 다람쥐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사람이 나서 도토리를 파묻어야 할 판이다.
자동차 배기가스로 오염되어도, 대기오염으로 산성비가 내려도, 흙을 찾기 어렵게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여 있어도, 도시는 어김없이 가을을 맞고, 대지에 뿌리를 내린 식물은 열매를 맺는다. 열악한 서식환경으로 움츠려든 생명이라도 다음세대를 꾸준히 타진하고, 그 덕분에 직박구리와 청설모가 찾아오니 회색도시의 시민들도 삭막함을 그만큼 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나무와 풀이 스스로 다음세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사람이 나서야 한다.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에서 후손도 건강한 법이므로. (작은것이아름답다, 200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