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팥망아지 이야기>
팥(깻)망아지 / 누에 /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나방
참깨 밭이나 배추밭, 아카시아 나무에 많이 생기는 나비나 나방의 애벌레로 팥망아지가 있다. 보통 짙은 녹색이나 검붉은 갈색을 띄는데 크기가 보통 누에의 두세 배나 되는 크기여서 정말 징그럽다. 예쁜 나비가 애벌레 시절에는 왜 그리 징그러운 모습인지 모르겠다.
6~70년대는 양잠(養蠶)을 장려하던 시절이라 집집마다 누에를 키우는 집이 많아서 누에는 비교적 익숙해 졌음에도 누에조차 징그럽다고 못 만지는 사람도 많았다.
싱겁데기 우리 형님은 언젠가 밀랍(양초)으로 엄지손가락 굵기의 가짜 팥망아지를 만들어서 아카시아 나뭇가지에 붙여서 허리춤 뒤에 숨기고 다니다가는 사람들 앞에 불쑥 내밀며 ‘팥망아지~~’ 하고 놀래키기를 잘했는데 어른이고 아이고, 남자고 여자고 모두 질겁을 했다.
팔십이 넘었던 아랫집 고모할머니는 그것을 보시고 진짜 팥망아지인 줄 알고
‘아이구~~, 사돈총각 팜마아지를 함부로 하면 벌 받네... ’ 하시곤 했다.
알에서 애벌레로 바뀌었다가 다시 고치 속의 번데기, 아름다운 나비로 거듭나는 나방류는 그 화려한 변신 때문이었는지 애벌레를 건드리면 ‘벌 받는다’는 속설(俗說)이 있었던 것 같다.
나방류의 이 변신처럼 원래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게 바뀌는 것을 우리 고장에서는 ‘환두(換頭)’ 라고 했다.
‘갑짜기 지네가 환두하더니 이쁜 아가씨가 되더래.....’
짙은 녹색의 팥망아지는 특히 참깨 밭에 많이 생겼는데 참깨 잎을 갉아 먹으니 어떻게든 잡아야 하는데 ‘벌 받을까봐’ 차마 죽이지는 못했다. 나뭇가지로 떼어 내어 모아다가는 멀리 풀숲에 버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직접 죽이지는 못하고 나뭇잎에 올려놓고 물에 띄워 보내기도 했는데 그것도 벌 받는다고 께름칙하게 생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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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는 처녀애인데도 겁이 없었는지, 인정머리가 없었는지 참깨 밭에서 이 팥망아지만 보면 맨손으로 잡아서 땅바닥에 내팽개쳐 죽이곤 했다. 배가 터지면 퍼런 물이 쏟아져 나오고 통통하던 몸뚱이가 푹 쪼그라든다. 사람들은 옥녀년은 독하다고, 틀림없이 벌 받을꺼라고 면전에 대고 얘기를 해도 옥녀는 콧방귀를 뀌며 ‘쳇 그까짓 벌거지가.....’ 하곤 했다.
옥녀가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눈까리가 희멀건 것이 꼭 팥망아지를 닮았다고 했고 사람들은 팥망아지의 복수가, 팥망아지의 환두가 아닐까 수군거렸다.
배가 통통하게 젖을 먹였는데도 계속 젖꼭지를 물고 놓지를 않아서 강제로 떼어 밀어 놓으면 계속 기어와 피가 나도록 빤다는 둥, 눈을 치뜨고 젖을 빠는 것이 꼭 팥망아지가 깻잎을 갉아 먹을 때처럼 오물거리더라는 둥.....
아이가 여나문 살이나 먹어서 컸는데도 젖 빨기를 멈추지 않았다.
산에서 나무를 한 짐 해 와서는 지게를 내려놓자마자 부엌이고, 밭이고 제 어미를 찾아서는 덤벼들어 젖을 빨았다. 그러다 보니 옥녀는 젊은 나이임에도 피어나지 못하고 점점 말라갔으며 얼굴에 핏기가 없이 창백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어느 날 노스님이 지나다가 물 한 대접을 청하며 집에 들렀는데 물을 떠다주는 피골이 상접한 옥녀를 쳐다보더니
‘허허... 어쩌다 이런 화를 당하였을꼬....’ 하며 혀를 차더란다.
그러더니 ‘내가 화를 면할 방법을 일러 줄테니 꼭 그대로 실행하시우.’ 하고는 훌쩍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옥녀는 스님이 일러준 대로 가마솥에 소죽을 넣고 불을 지피워 놓고는 가슴 높이의 외양간 구유 위에 지르마(길마)를 뒤집어 올려놓고는 외양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바깥에서 지게를 내려놓은 소리가 쿵 나더니 부엌문을 열고 들여다보던 아들은 제 어미가 보이지 않자 ‘이년, 어디 갔나?’ 하고 휘돌아 보더란다.
그러다 외양간 구유 밑에 엎드려있는 제 어미를 보고는 히죽 웃더니 휙~하고 구유를 뛰어넘다가 지르마 가지에 다리가 턱 걸려서 부엌바닥에 철퍼덕 나동그라지는데 배가 터지며 시퍼런 물이 한 동이나 쏟아지더니 죽는데 바로 팥망아지 형상이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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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아무리 하찮은 미물(微物)이래도 함부로 하면 안되는 거여~~’
위 이야기는 우리 어머님의 옛날이야기를 정리하여 본 것이다.
참고로 지르마(길마)는 옛날 소등에 짐을 얹기 쉽도록 구부러진 나무 두 개를 마주 붙여 소등에 걸쳐놓아 짐을 싣도록 만든 도구 이름으로 양쪽에 쌀 한 섬 정도씩 실을 수 있다.